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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검천하-250화 (250/273)

250화 사천으로 (2)

갑자기 도망친 명월의 행동에 주석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옆의 우설금을 힐끔 보니 그녀의 안색이 조금은 밝아진 기분이다.

“왜 그래요? 걱정 있어요?”

주석하의 질문에 몇 번이고 주저하던 우설금이 결국 입을 열었다.

“백화루잖아요.”

“백화루가 왜…….”

“기녀가 백 명이라…….”

열렸던 주석하의 입이 닫혔다.

“백화루라도 백 명은 아닌데…….”

“명월 같은 여자가 백 명이면…… 하아…….”

우설금이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정작 주석하는 기분이 좋아졌다.

‘지금 이 여자가 질투하는 거지?’

항상 우설금이 무뚝뚝해서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전생에서 그녀가 썼던 편지와 행동에서 그녀의 마음을 알았다지만, 이번 생에서도 정작 그녀는 그에게 조금의 표현도 하지 않았다.

애교는커녕 그의 접근마저도 철벽을 쳤다. 간신히 손 몇 번 잡아본 게 전부였다.

그런 그녀가 질투한다.

그에게 다른 여자가 붙으니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내비쳤다.

“음, 그래서 내가 백화루주인게 싫어요?”

우설금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도수처럼 백 명의 기녀와 노는 일은 포기해야 할 듯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모두를 다 양보할 수는 없는 법.

“그럼…… 기녀 다루는 건 도수한테 넘기고 나는 여기 요리만 관심 가질게요. 그럼 괜찮아요?”

“네.”

우설금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설금이 홍조를 띄우다니!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다.

그만큼 통 큰 양보를 했으니 이젠 받아내야 한다. 주석하는 우설금의 손을 잡았다. 우설금이 별다른 제지가 없다. 역시…….

“그 대신에 앞으로 나에게 잘해줘요.”

우설금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말을 잘 이해 못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주석하는 그녀의 섬섬옥수를 만지작거리며 그녀를 옆에 꼭 껴안았다. 그녀의 가녀린 몸이 품 안으로 쏙 들어왔다.

누가 이 여인을 그 무시무시한 마교수호사령이라고 생각할까.

주석하는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등을 슬그머니 쓸면서 옆구리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니까…… 으악!”

푸아악-

갑자기 강력한 강기가 휘몰아치면서 주석하는 별채 옆의 작은 연못에 처박혔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는 우설금을 쳐다보았고 우설금은 난처한 표정으로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미, 미안해요!”

“하아…….”

아무래도 아직은 손잡는 게 한계인가. 그녀와 만리장성을 쌓으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것 같다.

투덜거리면서 일어나 물을 털고 있자니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왔다.

“어? 이 비둘기는?”

이번 생에서는 처음인가? 지난 생에서 두 번이나 만났던 터라 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역시 예상대로 전서구의 다리에 작은 연통이 매달려 있었다.

연통을 열어보지 않아도 서신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안다.

“설금! 우리 흑검문부터 들를까요?”

우설금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화루에 비하면 그녀에겐 흑검문이 월등하게 좋다. 물론 흑검문에 가면 무시무시한 시누이가 있어 긴장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

“으아앙, 오라버니! 무서웠어!”

명아가 그를 보자마자 붙잡고 울음을 터트렸다.

주석하는 주격과 주소은에게 바쁘게 인사하면서 명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번에는 회귀 전과 달리 마교의 위협이 구체화하지 않았는데 무엇이 무섭다는 걸까.

“보고 싶었구나?”

“응. 내가 편지 보내고 싶었는데…….”

“편지? 아!”

백화루에서 대충 답장을 써서 보내긴 했는데 그 전서구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 보다.

“근데, 그 자식들이 밥만 축내고 일을 안 하잖아? 편지 매달고 암만 쫓아내도 또 돌아온단 말이야. 난 오라버니가 있는 화산까지 날아가라고 시켰는데…….”대충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하긴 훈련도 제대로 시키지 않은 전서구가 제대로 일을 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그래도 오늘도 한 마리가 날아왔고, 지난 생에선 무려 두 번이나, 그것도 그 먼 십만대산까지 날아왔으니 그 임무를 몇 배나 완수했다.

“내가 이것들을 확…….”

명아가 뜰에서 모이를 주워 먹고 있는 비둘기를 향해 눈을 치켜떴다.

“오늘 낮에 편지 받았어. 답장 보냈는데 아직 안 왔니?”

“정말 받았어요?”

“그럼.”

명아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고생하며 비둘기를 키운 보람을 찾았다는 표정이다.

“신난다! 모이 줘야지.”

명아가 모이를 가지러 뛰어갔다. 아무래도 저 비둘기들은 살이 쪄서 다음부터는 전서구의 소임을 다하지 못할 것 같다.

주석하가 명아와 회포를 푸는 사이 우설금은 주소은과 묘한 대치를 하고 있었다.

주소은은 우설금이 유난히 주석하와 가깝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단순한 동료가 아니었다.

물론 그녀는 우설금에게 특별한 반감을 품고 있진 않았다.

우설금을 볼 때마다 어딘지 모르는 싸늘한 분위기에 조금 겁이 났지만, 오빠 옆에서 여우짓 하던 녹윤영이나 백화령에 비하면 훨씬 마음에 들었으니까.

그런데 오늘 주석하가 우설금과 단둘이 나타났으니 아무래도 오빠를 빼앗기게 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또 오셨어요?”

주소은의 인사에 우설금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특별한 인사말은 없었지만 과거 대비 한결 냉담한 기운이 줄었다.

그것만으로도 주소은은 이제 우설금을 겁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큰마음을 먹고 우설금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 오빠랑 어떤 사이예요?”

“주 공자께서 죽었던 저를 살려주셨어요.”

우설금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녀는 자신이 천마에 의해 죽어 주석하가 회귀한 사실을 숨김없이 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주소은은 눈을 크게 떴다.

죽었던 사람을 어떻게 살리지? 그녀는 우설금이 거짓말했다고 생각했다. 주소은은 화가 나서 우설금을 노려봤다.

우설금은 도리어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면을 찡그리던 주소은은 평소에 우설금이 말수가 드물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는 건가?

‘죽고 못 사는 사이?’

백번 유추해 봐도 그렇게 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은…….

‘설마 벌써 합방했다는 거야?’

주소은의 얼굴이 갑자기 붉게 타올랐다.

오빠를 결국 빼앗겼다는 점이 분하긴 했지만, 그보다 뜬금없이 그녀의 눈앞에 남궁천의 늠름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말할 수 없을 만큼 보고 싶었다.

주소은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후다닥 안으로 들어갔다.

우설금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

밤이 되자 주석하는 우설금과 외곽의 한 장원을 방문했다.

전생에서 마교의 주력부대가 집결했던 장소를 알기에 정보를 수집할 일도 없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이번에도 마교 주력부대는 그곳에 모여 마교칠왕과 조우할 것이다.

그들이 그때처럼 흑검문을 칠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는 모른다. 어떤 경우라도 대세에 전혀 영향이 없다.

우설금을 앞에 세우고 그 뒤로 주석하와 흑귀, 백귀가 포진했다.

장원 앞에 도착했을 때 문 앞에서 경계를 서던 마교도가 기겁해서 허리를 숙였다.

“다, 단천마령을 뵙습니다.”

“수고가 많아.”

“아, 안에 연락을…….”

경계 무사가 안으로 뛰어 들어가려는 것을 우설금이 재빨리 제지했다.

“신경 쓰지 말고 경비나 잘하도록.”

경계 무사가 옆으로 비켜섰다.

주석하는 주변에 포진된 마교도를 확인했다. 곳곳에 배치된 마교도들이 꽤 많았다. 그 수는 전생에서의 그때와 비슷했다.

주석하와 달리 우설금은 처음 와보는 곳임에도 곧장 주력부대원 대부분이 집결한 장소를 찾아냈다.

장원 뒤쪽의 커다란 공터, 평소에는 연무장으로 쓰였을 법한 공간이다.

대략 이백여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마교도가 연무장에 빙 둘러앉아 있었다.

그 중간에서 모닥불이 타올랐다. 기세등등하게 교도들을 내려다보며 마기를 뿜어내는 자들이 있었다.

모두 셋. 바로 마교칠왕인 붕천마검, 혼세섭왕, 잔백귀혼이다.

당연히 주석하는 이들과 싸운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이들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구별했다.

그들은 일반 교도를 모아 놓고 전의를 북돋우고 있었다.

그때와는 다소 양상이 달랐다.

우설금은 일반 마교도 뒤로 조용히 접근해서 그들의 대화를 경청했다. 자연스럽게 주석하도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위대한 마교의 전사다! 사천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우리를 막을 자는 없다. 앞으로 이 세상은 마교 천하가 될 것이다!”

붕천마검이 소리를 높였다.

주변에 둘러앉은 마교도들이 큰소리로 호응했다.

“여러분들은 나, 붕천마검과 함께 중원을 정벌하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여겨야 한다. 내가 누군가! 나와 함께라면 공적을 세울 수 있다. 마교칠왕 중에서 가장 강한 자가 누구냐? 바로 나 붕천마검이 아니냐? 이번 중원정벌이 끝나면 나 붕천마검은 마교수호사령과 대등한 급으로 승진한다. 그때가 되면 여러분 개인의 공을 내가 반드시 챙겨주겠다!”

“와아!”

수위를 넘는 발언이 쏟아졌다.

마교도들은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다. 마교는 실력만 있으면 언제든 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강자존의 세계니까.

“자! 나와 같이 하남으로 진격해서 중원 문파를 쓸어버리자!”

이번에는 흑검문을 공격하라는 치사한 명령은 내려오지 않은 모양이다.

주석하는 내심 안심하면서 마교칠왕 셋을 처리할 작전을 점검했다. 정면으로 맞서더라도 절대 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정당당하게 녀석들과 맞설 생각은 없다.

모두가 흥분해서 마기를 뿜어내며 호응하고 있을 때, 우설금이 마교도를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주석하는 흑귀, 백귀와 함께 그녀의 뒤를 따랐다.

“마교수호사령이 되고 싶은가?”

우설금을 발견한 마교칠왕의 안색이 확 변했다. 특히 방금 헛소리를 지껄이며 기세를 높이던 붕천마검은 안면이 와장창 일그러졌다.

“다, 단천마령…….”

모닥불에 비친 우설금의 얼굴은 대단히 신비로웠다. 그녀를 알아본 마교도들이 함성을 터트렸다.

“단천마령이 오셨다! 와아!”

과연 단천마령은 마교의 꽃이었다.

그녀의 인기는 마교칠왕을 수십 배나 능가했다.

“어, 어떻게 오셨습니까? 오신다는 연락을 못 받았습니다만.”

붕천마검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설금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하남으로 진격하지 않는다. 우리는 마교의 부흥을 위해 십만대산으로 돌아간다.”

우설금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장내의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붕천마검이 주장했던 내용과 달라 마교도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붕천마검이 짜증이 난 목소리로 물었다.

“천마의 명입니까?”

“아니다.”

“그런데 어찌…….”

“이곳에서 내 명령을 거역할 자가 누가 있는가? 마교칠왕도 마교수호사령의 명을 받아야 함을 모르는가?”

우설금의 서릿발 같은 목소리가 마교칠왕을 압박했다.

붕천마검은 우설금의 행동이 평소와 다르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평소 단천마령은 마교칠왕을 간섭하지 않았을 뿐더러 마교 부대와도 거리를 두었었다.

비록 단천마령이 천마의 복심이라 불리지만 지금 그녀의 명령은 총단에서 내린 지시와 분명히 달랐다.

붕천마령은 재빨리 계산에 들어갔다. 일반 마교도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

그렇게 본다면 자신의 편은 마교칠왕 셋이다.

단천마령은 본인과 그 밑의 수하 셋. 한 놈은 처음 보는 놈이지만 다른 두 놈의 실력은 잘 안다.

일반 마교도보다 약간 더 나은 수준. 마교칠왕에 비하면 까마득한 하수다.

비록 단천마령이 강하다고 해도 마교칠왕 셋을 동시에 감당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단천마령을 처리해 버릴 수 있지 않을까?

그녀가 천마의 총애를 받으니 후환이 살짝 두렵긴 하지만 어차피 강자존의 세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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