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사천으로 (3)
단천마령이 사라지면 마교칠왕 셋 중에 가장 강한 사람이 마교수호사령으로 올라설 수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 마교칠왕에서 마교수호사령으로! 그야말로 마교의 핵심부로 진입하는 그 유혹은 실로 대단했다.
붕천마검은 동료인 혼세섭왕과 잔백귀혼의 무공을 가늠했다. 적어도 그들 둘보다는 자신이 우위란 판단이 섰다.
‘마교수호사령 말단 자리는 내 것이다!’
붕천마검은 가슴이 뛰었다.
마교도라면 누구나 강해지기를 원하고 더 높은 자리에 앉길 기대한다.
천마보다 더 강하면 천마를 치고, 그 자리에 앉는 게 자연스러운 곳이 바로 마교다.
붕천마검은 유유히 다가오는 단천마령을 보며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마교도였다. 눈앞의 단천마령도 마교도이고. 그러니 강자를 따르는 것은 순리다.
그는 좌우에 선 혼세섭왕과 잔백귀혼에게 눈짓했다. 두 사람도 붕천마검의 의도를 눈치챘다.
“단천마령!”
결심한 붕천마검이 묵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우설금이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천마의 명이 아닌 이상 우리는 따를 수 없소.”
“불복인가?”
“흐흐! 단천마령! 천마의 총애를 받았다고 기고만장하구나!”
드디어 붕천마검이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다.
계획대로 돌아가자 주석하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무뚝뚝한 우설금이 연기를 잘할지 걱정이었는데 상황을 보니 기우였다. 우설금의 연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교칠왕의 탐욕이 해결책이었다.
“흐흐, 네년이 천마에게 애교를 떨면서 실력 이상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여기에 있는 줄 아느냐? 네년의 그 반반한 얼굴과 늘씬한 몸이 아니었다면 마교수호사령은커녕 마교칠왕, 아니지…… 그보다 저 아래에 있었을 것이다. 그런 너의 명령이 이곳에서 먹힐 줄 아느냐?”그야말로 적나라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둘러싼 마교도들은 수준을 넘은 발언에 흠칫했으나, 마교칠왕의 태도를 보고 낌새를 눈치챘다. 오늘 마교칠왕이 단천마령을 손보려고 작정했구나.
일반 마교도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최강자의 권력 다툼을 눈앞에서 구경할 수 있게 되어서다. 애초에 마교는 강자만이 살아남는 곳이니까.
정작 모욕을 당한 우설금은 평정심을 유지했다. 그녀는 평소처럼 싸늘한 눈빛으로 붕천마검을 노려봤다.
“자신 있나 보지?”
“흐흐, 네년 하나 정도야. 금천마령이라면 몰라도 묵천마령이나 단천마령은 겁나지 않는다! 오늘 뜨거운 맛을 보여주지. 마교칠왕이 마교수호사령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좋아, 용기를 높이 사지. 다만 그 발언의 책임을 목숨으로 감당해야 할 것이다.”
우설금이 홍철산을 올려 붕천마검을 겨눴다.
붕천마검은 기세 좋게 내력을 끌어올렸다. 이왕 시작했으니 무조건 상대를 제압해야 한다.
자신이 단천마령에게 패하지 않으리란 자신감은 있었으나 그래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야 하니까.
붕천마검은 검을 만지작거리며 낄낄대며 웃었다.
“누가 할 소리! 아, 네년은 목숨까지 걸지 않아도 돼. 몸으로 때운다고 사정하면 봐줄지도…… 커윽!”
붕천마검은 말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한 움큼 선혈을 내뱉었다. 그의 얼굴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그의 눈이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한 방!
놀랍게도 가슴에 반 자나 되는 구멍이 뻥 뚫려있고, 그곳에서 쉴 새 없이 피가 용솟음치고 있었다. 내공을 끌어올리며 대비했음에도 전혀 기습을 막아내지 못했다.
붕천마검은 피거품을 머금고 입을 뻐금거렸다.
분명히 방심하지 않았는데 기습에 당한 것은 무슨 뜻인가! 단천마령의 무공이 아득히 높다는 것일까? 대체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물론 그는 생각을 이을 수 없었다. 기운이 빠져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몸이 무너졌다.
죽음이 붕천마검에게 내려앉았다.
붕천마검이 쓰러진 뒤에는 주석하가 흑검소를 만지작거리면서 비웃음을 짓고 있었다.
“별 것도 아닌 자식이! 어딜 감히 단천마령에게 헛소리를 해?”
이곳에서 주석하의 신분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단천마령과 함께 들어왔으니, 그것도 흑귀, 백귀와 어깨를 나란히 했으니 단천마령의 부하라고 여길 뿐이었다.
남은 마교칠왕 두 사람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들이 상대해야 할 자는 단천마령 혼자가 아니었다. 방금 붕천마검을 한 방에 날려버린 저 녀석은 단천마령 못지않은 고수였다.
대체 누구인지 정체를 알 수 없으나 이제 그들의 적은 단천마령 하나에서 둘로 불어났다.
단천마령 하나만으로도 버거운데 둘이라니! 마교칠왕은 전의를 상실했다.
“그, 그…….”
“혼세섭왕! 잔백귀혼! 네놈들은 남길 유언이 있느냐?”
우설금의 냉혹한 목소리가 두 사람을 휘몰아쳤다.
“그, 그게…… 우, 우리는…….”
혼세섭왕은 자신이 붕천마검과 한패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었다.
그런데 단천마령의 선언을 곱씹어보니 상대는 이미 결정을 내린 듯했다. 어떻게 행동하든 이 자리를 빠져나갈 수 없어 보였다.
주석하는 비웃음을 머금고 우설금의 뒤에 섰다. 흑귀와 백귀처럼 그는 우설금의 호위로 돌아가 있었다.
오늘 그가 나서는 일은 여기까지다. 지금 이 자리는 우설금이 돋보여야 할 자리다.
마교칠왕 셋을 맞이하여 간신히 승리하는 것보다 둘과 싸워 압도적으로 눌러버리는 것이 우설금을 훨씬 돋보이게 한다.
그래서 그는 기습으로 붕천마검을 죽였다. 물론 붕천마검이 그를 경계하지 않은 덕분이다.
우설금이 손에 쥔 홍철산을 장난스럽게 빙글빙글 돌렸다.
“와라! 이왕 검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어야지? 기껏 한 놈 죽었다고 벌써 기가 꺾여서야 마교칠왕이라 할 수 있겠어?”
적당히 타협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우설금의 태도에 혼세섭왕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퇴로는 이미 막혔다.
혼세섭왕과 잔백귀혼이 우설금의 뒤에 선 주석하를 경계하면서 그녀를 포위했다.
우설금은 여유롭게 두 마교칠왕이 내력을 끌어올리기를 기다렸다.
잔백귀혼의 몸에서 붉은 귀기가 피어오르고 혼세섭왕의 주위로 흐릿한 잔영이 여럿 생겨났다. 평범한 마공과 다른, 사술에 가까운 마공이다.
저들은 마교칠왕이란 직위에 있는 만큼 절대 약한 자가 아니다. 그렇기에 우설금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죽엇!”
잔백귀혼이 먼저 공격해 들어왔고 그 뒤에서 혼세섭왕이 손발을 맞추었다.
우설금은 마음을 굳히고 홍천산을 흔들었다. 우아한 모란꽃이 공간을 잠식하며 퍼져나간다.
일반 마교도에게 우설금은 마교의 꽃이었다.
그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둔 이유는 그녀가 어린 나이에 마교수호사령이란 핵심 직책을 차고 있는 데다 그 외모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의 무공을 견식 했던 자들은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무공이, 그녀의 단천마공이 얼마나 강한지 알지 못했다.
오늘 우설금은 주력부대 앞에서 그들의 편견을 깨트려야 했다. 마교칠왕 둘을 상대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가장 빠른 해법이다.
그녀의 무공이라면 사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콰아앙!
홍철산에서 뿌려진 산강이 암기처럼 혼세섭왕과 잔백귀혼을 휘감았다.
혼세섭왕은 전력을 다해 섭혼술을 펼쳤고 잔백귀혼은 귀기를 뿜어내며 우설금의 내공을 흩트리려 했다. 하지만 단천마공 앞에서는 그 위력이 반감됐다.
우지직-
부근의 장원 전각이 반파됐다. 아름드리 단장한 정원과 담벼락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위력에 그들을 둘러싸고 앉아 있던 마교도들은 혼비백산해서 뒤로 물러섰다.
과연 마교수호사령과 마교칠왕은 일반 교도를 한참 넘어서는, 그 능력이 신에 이른 자였다.
강력하게 회전하는 홍철산에서 모란꽃의 환영이 타오르는 모닥불을 타고 일렁였다.
일순간 모두의 시야를 모란꽃의 잔영이 가렸다.
콰아앙!
폭음이 터지고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몸을 움츠린 마교도들은 눈을 부릅떴다. 이 충격에서 마교칠왕이 과연 온전히 몸을 보존할 수 있을까.
서서히 장내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차마 볼 수 없는 참상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혼세섭왕은 산강에 수직으로 잘려 몸이 두 조각났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정확히 좌우로 갈라졌다. 당연히 목숨이 붙어 있을 리 없었다.
잔백귀혼은 육신이 수십 토막 났다.
수십 개의 산강이 그의 몸을 사선으로 그었다.
육편이 되어 너덜너덜해진 고깃덩어리가 남아 있었다. 그의 얼굴은 공포에 사로잡혔고 고통을 참느라 이를 악물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나 안다. 그는 일각도 목숨을 유지할 수 없음을.
모닥불이 피어있던 자리에서 우설금이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모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루 설명할 수 없는 위압감이 장내를 짓눌렀다. 그 모습은 흡사 천마를 접하는 듯했다.
한참 마교도들을 노려보던 우설금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붕천마검, 혼세섭왕, 잔백귀혼은 사라졌다. 또 반항할 자가 있느냐? 도전하겠다면 받아준다. 마교수호사령이라는 직위를 걸고.”
마교수호사령이 되고 싶은 자 누구나 덤비라는 뜻이었다.
장내가 술렁였다.
아무리 강자존의 마교라지만 이런 식으로 공개적으로 도전을 받은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다.
마교도들은 눈앞의 이 여인이, 단순히 천마의 총애를 업고 마교의 핵심이 된 것이 아님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녀의 무공은 마교칠왕을 완전히 압도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아니, 셋인가.
장내가 조용해지자 우설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은 나의 목적이 궁금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가 명확하게 장담할 수 있는 것은 마교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거다. 지금까지 마교는 어떠했는가? 중원을 정벌하겠다는 일념으로 수십 년을 웅크리며 고통을 감내하지 않았던가?”마교도들의 안색이 숙연해졌다.
그들 모두가 안다. 수십 년간 무엇을 해왔는지.
중원을 침공하겠다는 천마의 염원을 실현하고자 한뜻이 되어 노력했다. 마교를 위한 것인지 천마를 위한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분명히 일반 교도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바람이 이루어져 지금 여러분은 중원에 들어왔다. 자, 어떻게 되었나? 여러분은 행복한가? 소원을 이루어 더 삶이 좋아졌나? 중원을 지배하게 되었나? 지금 중원인들은 여러분을 마두, 살인마라 부르고 두려워한다. 이것이 여러분이 원하던 삶이었나?”커다란 충격이 마교도를 강타했다.
지금까지는 당연한 일이었다. 중원에 들어가서 약자인 중원인을 무참히 죽이고 약탈한다.
마치 그것이 수십 년간 웅크렸던 목적처럼 행동했다. 강자인 마교도 앞에 약자인 중원 무림인은 당연히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 남은 것은 무엇인가. 중원인의 멸시와 마교의 악명만이 더욱 높아졌다.
많은 마교도가 그동안 꿈꾸던 중원 침공 환상이 현실과 다르다고 인지하던 상황이었다.
“나는 강하다. 여러분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강하다! 그렇다고 내가 여러분을 내 마음대로 죽일 권리가 있나?”
우설금의 한마디가 마교도의 가슴에 파문을 불러왔다.
주석하는 우설금에게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지금까지 긴 시간 동안 그는 우설금을 변화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녀가 평범한 사람과 같은 생각을 가지도록, 같은 가치관 속에서 살아가도록.
그렇게 그녀를 변화시켰고 회귀 후에는 그 노력을 더욱 본격적으로 기울였다.
십수 년의 세월 동안 익숙해진 그녀의 사상이 한순간에 변하지는 않겠지만, 지금 그녀는 그가 바랐던 방향으로 바람직하게 움직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천마와 차별되게 선을 그었고 그녀의 삶의 터전이었던 마교를 품에 안았다.
우설금의 선언은 짧고 강렬했다.
“우리는 십만대산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마교를 변화시킬 것이다. 뜻을 같이하는 자 나를 따르라!”
“와아아!”
마교도의 함성이 하늘을 뒤흔들었다. 마교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주석하는 주변의 마교도들을 쓱 훑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녀석들이 찔끔 겁을 집어먹더니 엄지를 척 올렸다. 역시 개 값은 주인의 가치를 따른다더니.
“짜샤! 알아서 기어!”
“네? 넵!”
마교도들이 우르르 그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 왕이 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