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합종연횡 (1)
높은 봉우리가 삐죽삐죽 솟은 십만대산.
저 멀리 아련하게 보이는 마교 총단에 시선을 고정한 주석하는 상념에 잠겼다.
오늘로 십만대산에 온 게 세 번째다. 그리고 올 때마다 회귀했다. 한 번은 타인의 의지로, 한 번은 자신의 의지로. 이번에는 어떻게 될까? 이번에도 회귀하게 될까?
두 번 모두 회귀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으니 이번에도 변수가 발생해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모른다.
다만 두 번의 회귀를 거치면서 어렴풋하게 확고해지는 깨달음이 있었다.
세상은 흉악한 악한에게 휘둘리는 것 같지만, 하늘은 결국 순리대로 사는 사람에게 살 만한 세상을 제공해준다고. 흔히 말하는 사필귀정이 완전히 허구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절벽에서 떨어지고도 살아남은 것이 바로 하늘의 도움이었다고. 어쩌면 오늘 이 순간을 위해 하늘이 도와준 것이라고.
악한 자는 욕심 때문에 자신을 갉아먹고 마침내 파멸에 이른다고.
그래서 역천을 행하는 자는 짧은 시간에서는 성공할지 모르지만 긴 시간에서는 뜻을 이룰 수 없다고.
여러 차례 회귀를 거듭하면서 최강의 무공과 최강의 전력을 구축한 천마는 이 점에서 발목을 잡혔다고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정말 지긋지긋하게 천마와 얽힌 인생이다.
그의 옆에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우설금이 서 있었다.
“예전과 느낌이 다르죠?”
과거의 우설금은 천마를 수호하는 마교수호사령으로 이곳에 있었다면 지금의 그녀는 천마를 심판하기 위해 이곳에 서 있었다. 비록 마교를 향한 그녀의 애정은 마찬가지일지라도.
그녀는 여전히 말이 없다.
“당신의 처소는…….”
주석하는 총단 좌측의 작은 전각 쪽을 가리켰다. 그는 그곳에서 싸늘한 시신이 된 우설금을 매일 만났었다.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가슴이 찢어진다.
“내가 다시 갈 일이 있을까요?”
“천마만 사라지면 가야죠.”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알기에 바로 대답해주었다. 우설금은 마교가 사라지기를 절대 원하지 않는다.
“그때는 천주문을 어떻게 통과했었죠?”
“힘으로.”
주석하는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답네요.”
우설금은 지금 전장을 구상하고 있었다.
천주문 안쪽 총단에서 싸울 것인지, 아니면 천주문 밖 평원에서 싸울 것인지. 그리고 싸우는 범위를 어떻게 할 것인지.
천마와 일대일 승부를 보면 가장 좋다.
최악은 마교 주력부대 전부가 맞부딪치는 혈전이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달려있고 마교의 흥망성쇠 또한 걸려 있기에 우설금은 천마와의 소규모 싸움을 원했다.
하지만 원한다고 그렇게 되지 않는다. 천마의 선택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천마는 절대 일대일로 대결하지 않을 겁니다.”
“왜요?”
“무한회귀공 대결에서 지는 바람에 승산이 높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전생에서 자신이 패배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쉽게 승부를 결심하기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다른 방법은 피해가…….”
“어떻게 나올지 두고 봐야죠. 우리 뜻대로 유도하려고 노력해야죠.”
주석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예전의 방문과 비교하면 긴장이 사라졌다. 그 이유는 우설금이 옆에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살아있으니 급하지 않다.
“집결 완료했습니다.”
뒤에서 패도통령이 읍을 하고 보고했다.
멀리 수백 명에 달하는 주력부대가 포진해 있었다.
몇 달 전 중원정벌의 꿈을 품고 이곳을 떠났던 주력부대가 모두 돌아왔다. 구대문파 전부를 합친 전력과 비등한 그 부대가 지금 마교 총단 입구에 정렬해 있었다.
이제는 그들도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안다. 그들은 현 마교를 갈아엎을 혁명의 전사로 탈바꿈했다.
“사기도 높습니다. 동료를 구하겠다는 의지로 불타고 있습니다.”
수가 많기에, 적어도 총단에 남은 병력보다 수가 배가 되기에 이들은 쉽게 의지를 꺾지 않을 것이다. 다만 가장 큰 변수는 남아 있다. 천마가 등장해서 이들을 직접 설득한다면 이들은 다시 원상 복귀할 가능성이 없잖아 있다.
단천마령이 보여준 그 무력만으로 완벽하게 천마의 그림자를 지울 수는 없다.
“고생했다.”
우설금은 짧게 패도통령의 노고를 치하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뭐지?”
“우리의 뒤쪽으로 무림맹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우설금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것은 마교 내부의 분란이고 그녀와 천마의 싸움이다.
그런데 외부세력이 개입했다. 물론 무림맹이 가만히 있으리라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이런 신속한 움직임은 뜻밖이다.
우설금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주석하를 향했다.
물론 주석하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벽로천에서 만사지존을 죽였고 무림맹주와 구파 장문인들이 복수를 위해 그곳으로 달려왔다.
그 상황에서 두 사람이 마교 주력부대를 회군시켰으니 무림맹에서도 절호의 기회라고 인지했으리라.
“예상치 못했던 일은 아니니까 큰 변수는 아니죠.”
주석하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를 믿는 우설금은 패도통령을 물렸다.
“알았다. 다른 변수가 생기면 바로 보고하도록.”
전방을 바라보던 그들은 천주문 건너편에 집결하는 마교도 부대를 발견했다. 이쪽에서 진을 치고 세를 과시하니 저쪽에서도 마찬가지로 같은 방식으로 응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죠?”
우설금의 안면에 불안감이 어렸다.
앞에는 천마의 주력부대, 뒤에는 무림맹 부대.
천마를 죽이겠다고 증오하며 호기롭게 여기까지 왔어도 그녀는 지금까지 천마에게 억눌려있던 사람이다. 하루아침에 천마의 영향력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없다. 이런 점은 다른 마교도도 마찬가지다.
주석하는 천마와 승부를 겨뤘던 그날을 차분하게 되새겼다.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총단 내부에 우리 편을 심어야 합니다.”
“그건 쉽지 않아요.”
“가능한 사람이 있어요. 바로 묵천마령이죠.”
그때 본 묵천마령이라면 완전히 그들 편으로 끌어들일 수 없더라도 적어도 천마에게 협조하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비록 묵천마령과 가깝긴 하지만…….”
“어떻게든 그를 설득해야죠.”
주석하는 미소를 지으며 천마각으로 시선을 돌렸다.
***
천마각 지붕 위에서 한 인물이 천하를 오시하며 천주문 쪽을 살피고 있었다.
바로 마교의 지배자이자 이곳 십만대산에서 수십 년 칼을 갈아온 천마다.
“보라! 마교 전사의 늠름한 모습을!”
천마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지금 마교의 주력부대는 칠 할이 천주문 밖에서 총단을 향해 포위하듯 포진해 있고, 나머지 삼 할은 천주문 안쪽에서 그들에 대항하여 진을 치고 있다.
이들은 서로 기세를 겨루는 일촉즉발의 상황이건만 천마의 눈에는 아직 그들 모두가 마교의 충실한 교도로 보였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한솥밥을 먹었던 마교 전사들이 지금 두 패로 갈라져 있어도 천마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의 작전 구상에는 저들이 서로 부딪쳐 양패구상할 일이 없으니까. 아직 저들은 그의 충실한 부하들이었다.
“단천마령…… 많이 컸구나.”
천마는 쓴웃음을 삼켰다.
단천마령이 주력부대를 회군시켜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무덤덤했었는데 막상 이렇게 서로 대치하고 나니 그제야 단천마령의 배신을 실감했다.
어릴 때부터 눈에 밟혀 곱게 길렀던 그녀이기에 천마의 배신감은 무척 컸다. 다만 인간적으로는 그녀의 배신을 충분히 이해했다. 자신이 저지른 업보가 있으니까.
“그래 봐야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번에 회귀하면 너부터 다시 키울 테니까.”
다음에는 절대 배신하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주인만 바라보는 개로 만들겠다고 천마는 다짐했다.
어쨌든 그 모든 것은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의 문제다.
지금은 어떻게 이길 것인지 부터 고민해야 한다.
그때 회귀를 실패한 이후 천마는 결론을 내렸다.
반드시 주석하를 해치워야 한다. 주석하가 그와 비등한 능력을 지녔다고 추측하는 이상 단둘이 부딪치면 안 된다.
전생에서 그가 죽었다면 금천마령이나 은천마령의 배신 때문일 수도 있다. 이 모든 요소를 다 피하려면…….
복잡한 문제를 풀기 위해 지금까지 머리를 싸맸다. 그게 아니었다면 그는 오래전에 중원으로 날아가 단천마령과 주석하를 징벌했을 것이다.
천마각 지붕 아래에 마교수호사령이 도착했다. 금빛, 은빛, 묵빛 옷을 입은 세 사람이 천마각 뜰에 모였다.
“천마시여!”
세 사람이 동시에 허리를 숙였다.
“흐흐! 봤느냐? 저들의 가증스러운 행동을. 지금 천마의 은총을 입었던 자들이 검을 거꾸로 들고 몰려왔다. 이제 저들을 단죄할 것이다!”
천마의 외침에 세 마령이 고개를 숙였다.
“묵천마령! 명령을 내리겠다.”
“하명하시옵소서!”
“내일이면 저들의 뒤에 정파 무림맹이 진을 칠 것이다. 넌 은밀하게 무림맹주인 무극천존을 만나라!”
천마에게서 떨어진 의외의 명령에 세 마령이 천마를 올려다보았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최근 들어 천마는 다소 이상했다. 천화원에서 갑자기 피를 토하고 쓰러진 이후부터였을 것이다.
과거에 소요가 발생했을 때는 천마는 사건의 전말을 따지지 않고 모두 도륙했다. 그런데 지금은 앞으로 나서지 않고 뒤에서 공작을 꾸민다.
예전의 천마와 확실히 달라졌다.
뭔가 몸을 사리는 기분은 괜한 우려인가.
묵천마령은 살짝 스며드는 이상한 낌새를 떨쳐내고자 재빨리 다시 고개를 숙였다.
***
“아무래도 내가 다녀와야 할까 봐요.”
우설금이 막사 안에서 한숨을 토했다.
백귀를 총단 내에 투입해서 묵천마령에게 연락을 취하려 했다. 평소 자주 드나들었고 친한 자도 많았기에 어렵지 않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백귀는 천주문조차 뚫지 못했고 오히려 다쳐서 돌아왔다. 큰 상처는 아니라지만 작전에 차질이 생겼다. 첫 단추를 끼워보지도 못하고 문제가 생긴 셈이다.
“직접 가는 건 위험해요.”
주석하는 적극적으로 말렸다.
우설금 홀로 들어가는 위험을 감수할 바에야 차라리 묵천마령을 포섭하지 않는 게 더 낫다.
묵천마령을 끌어들이는 것은 적의 동향을 확인하고 허를 찌르기 위해서다. 어차피 이번 전쟁의 핵심은 묵천마령이 아니다.
“이대로는…… 승리를 보장할 수 없잖아요.”
우설금이 고집을 부렸다.
방금 그들은 나쁜 소식을 들었다. 무극천존이 이끄는 무림맹이 그들의 뒤에 진지를 구축했다는 소식이었다. 무림맹이 따라왔을 때부터 이렇게 되리라고 예상했지만 현실이 되니 기분이 나빴다.
“흑귀의 말로는 주력부대가 동요하고 있대요.”
지금 우설금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마교 내부의 전쟁이라면 주력부대는 그녀에게 충성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마저 천마가 직접 나섰을 때는 쉽지 않겠지만.
그런데 지금처럼 외부세력이 마교를 위협한다면?
마교도들은 천마냐 단천마령이냐보다 마교의 위험을 먼저 떠올린다. 누가 권력을 쥐든 무림맹에 함락당하면 마교의 앞날은 없으니까.
외부의 위협에는 뭉치는 것이 일반적인 습성이다.
그렇기에 주력부대는 단천마령을 향한 지지를 철회할지도 모른다.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주석하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애초에 주력부대로 마교를 점령하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그 경우에는 정말 피의 전쟁이 벌어지니까. 주력부대를 이용한 이유는 우설금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마교 측에서도 마교도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수단일 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머릿속에는 그와 천마의 일대일 대결이 그려져 있었다.
“그럼 어떻게…….”
“자, 당장 일을 벌일 수는 없으니 우리는 무극천존 쪽을 한번 만나볼까요?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 왔는지.”
주석하가 슬그머니 이빨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