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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검천하-261화 (261/273)

261화 영빈관 풍운 (2)

영빈관 내 누구도 지금 무슨 사태가 벌어졌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주석하만은 명백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설금이 움직였어.’

이제는 무극천존을 비롯한 무림맹에서 이성을 잃기를 기다리면 된다.

그때 밖에서 다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급히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푸른색 장삼을 걸친 무당파 제자였다.

“무, 문주님! 사, 사숙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갑작스러운 호들갑에 구파 장문인들의 미간이 다시 찌푸려졌다. 하지만 무당파인 무극천존과 장문인 태을진인의 안색은 심각했다.

저들이 말하는 사숙은 무당파에서 핵심 요직을 맡은 장로가 아닌가. 그의 무공은 장문인에 근접하는 강자였다. 그런 자를 소리 없이 죽일 수 있는 최강고수라면…….

태을진인의 시선이 주석하를 향했다. 잠시 고심하던 그의 시선이 천천히 금천마령과 은천마령에게로 옮겨갔다.

태을진인의 안면은 분노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제야 금천마령과 은천마령도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무림맹에서 마교를 의심하고 있다.

“우, 우리는 아니오!”

“마공의 흔적이라지 않소?”

태을진인이 버럭 소리쳤다. 태을진인을 따라 무극천존도 보조를 맞췄다.

“금천마령께선 이 상황을 설명해보시오. 설마 무림맹 내부 분란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맹주, 보시다시피 마교수호사령은 지금 이 영빈관에 있소. 이건 모함이오!”

“그럼 흑검서생이 저질렀다는 거요? 그것도 마공으로?”

“그, 그게 아니라…….”

“다른 고수를 동원했겠지.”

금천마령이 미간을 찌푸리며 주석하와 무극천존을 번갈아 살폈다.

물론 마교의 모든 사람을 통제할 수 없으니 꼭 마교가 아니라 할 수는 없지만 이런 일이 벌어진 시기가 아무래도 미묘했다.

태을진인과 분노를 공감한 무극천존이 무거운 어조로 다그쳤다.

“최근에 마교와 우리 정파는 계속 대립해왔소. 십만대산에 도착한 후에도 말이오. 말단 무사들만 그런 줄 알았더니 설마 수뇌부 쪽에서 이런 식으로 작당할 줄 몰랐소. 해명해보시오!”마교로 쳐들어온 중원 무림인과 수성하는 마교 사이에 분란이 없을 수 없다. 서로 대치하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작은 소동이 일긴 했다.

다만 지금까지는 대세에 영향을 줄 큰 사건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런데 구파 장문인을 살해한 사건은 쉽게 넘길 수 없다. 자칫 구대문파의 명예가 땅에 떨어져 사기가 바닥을 치면 이 전쟁을 망칠 우려가 있다. 그렇기에 무림맹주도 함부로 이 사건을 덮기 곤란했다.

금천마령도 이런 문제를 알기에 무작정 반박할 수 없었다.

양측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을 때였다.

“원수!”

갑자기 무당파의 제자들이 금천마령을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사숙을 죽인 범인이 눈앞에 있으니 그들은 혈기를 다스릴 수 없었다.

수 자루의 검이 금천마령과 은천마령을 향해 날아갔다.

순순히 죗값을 치를 두 사람이 아니었다.

애초에 금천마령은 천마의 지시가 마땅치 않았다.

그가 평가한 마교의 전력은 무림맹에 비해 압도적이다. 반란을 일으킨 마교 주력부대는 천마가 나서서 한마디만 하면 바로 회유될 놈들이다.

그런 오합지졸을 앞에 두고 몸을 사리다니! 천마의 지시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곳 영빈관에서도 마교수호사령 셋이라면 충분히 모든 놈을 쓸어버릴 수 있다. 구파 장문인? 무공도 변변찮으면서 입만 살은 자 아닌가. 그런 놈들을 두고 협상이라니?

비열하다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니 누구도 그들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마교에는 그만한 힘이 있고 특히 마교수호사령에게는 그 힘이 집중되어 있다.

검이 날아오자 금천마령 또한 분노가 폭발했다.

“이 버러지 같은 것들!”

금천마령이 손을 휘젓자 금빛 강기가 앞으로 쭉 뻗었다.

“아악!”

덤벼들던 무당파 제자들이 한꺼번에 낙엽처럼 나뒹굴었다. 그들은 선혈을 토하며 사실상 무공을 쓰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감히! 누구에게 손을 쓰느냐!”

태을진인이 고성과 함께 금천마령을 공격했다.

이 공격이 신호가 됐다. 각파 장문인들이 모두 무기를 들고 금천마령과 은천마령을 공격했다.

삽시간에 영빈관 내부는 전쟁터로 변했다.

자하검존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석하를 치려고 계획한 이 회담이 엉뚱하게 변질되어서다. 그의 시선이 한쪽 구석에서 빈둥거리는 주석하를 향했다. 빙그레 미소를 담은 저 얼굴을 검으로 반쪽 내고 싶었다.

“저놈의 계략인가…….”

심증은 있지만 현재 상황은 그런 주장을 할 만큼 여유롭지 않다. 금천마령이 화산파 제자를 공격하고 구파 장문인들이 이를 응징하면서 장내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자하검존은 검을 꾹 움켜잡았다.

어차피 흑검서생이든 금천마령이든 모두 때려잡아야 할 자들이다.

저들이 살아있는 한 중원 무림의 평화는 없으니까. 누구를 먼저 죽이든 무슨 상관인가. 결국 모두 죽여 버릴 건데.

마음을 굳게 다잡은 자하검존도 검을 들고 싸움에 가담했다. 이러한 결심은 무림맹주인 무극천존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도 마교의 무서움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우물 안 개구리였다.

***

그 시각 우설금은 마교 내부로 잠입했다.

어릴 때부터 살아왔던 곳이기에 그녀는 마교 내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마교의 살벌한 기관 진식과 철통같은 경계망은 그녀에게 무용지물이었다.

우설금은 달빛을 타고 천마각으로 접근했다. 물론 천마각이 목표는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뛰어 들어가서 천마를 죽이고 싶었으나, 그 결말이 무모한 개죽음임을 그녀도 안다.

조심스럽게 전진하던 그녀는 영빈관을 돌아봤다. 지금쯤 저기에서는 사건이 터졌을 것이다. 과연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을까. 그녀는 주석하의 무사를 빌었다.

지금 그녀의 목표는 천화원. 천마각 뒤쪽에 조성된, 천마를 위한 후원이다.

달빛이 교교히 내리는 천화원은 오늘따라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가끔 천마와 함께 천화원을 거닐었기에 그녀는 이곳 지리 또한 매우 익숙했다. 천마가 어떤 나무와 꽃을 좋아하는지 어떤 식물에 더 관심을 가지는지 그녀가 모를 수 없다.

천화원에 도착한 그녀는 재빨리 목표 지점으로 숨어들었다.

예전과 달리 향긋한 냄새가 진동했다. 바로 십년유심홍의 열매에서 풍기는 냄새다.

과연 십년유심홍의 열매는 얼마 전 그녀가 보았던 때와 상태가 달랐다. 작은 앵두처럼 생긴 열매는 예전에는 푸른 녹색이었다. 지금은 빨갛다 못해 검게 변했다.

‘열매가 검은빛을 띠면 다 익었다는 신호야. 그게 보름달이 뜨는 오늘이지.’

주석하의 당부가 들리는 듯했다. 과연 그의 예상은 정확했다.

우설금은 십년유심홍의 효능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주석하의 설명으로는 천마는 이 열매와 목숨을 바꾸었다고 했었다. 그 집착이 이번에도 동일할 가능성이 크기에 이 임무는 지극히 위험하지만 중요하다고 했었다.

“후욱.”

그녀는 크게 숨을 몰아쉬고는 십년유심홍의 열매에 손을 뻗었다.

뚝.

열매를 따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우설금은 열매의 향기를 맡아보았다. 기분이 좋아지는, 청아하고 달콤한 냄새다. 검은 빛깔에서 어떻게 이런 향이 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이것으로 임무 완료.

그녀는 시선을 들어 천마각을 쳐다봤다. 어둠 속에서 천마각이 웅장한 자태를 과시하고 있었다. 지금 저 안에서 천마는 영빈관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천마의 음모는 완전히 깨졌다.

스스슥-

우설금은 재빨리 신형을 날렸다. 이제 시작이다!

***

콰앙!

영빈관을 구축했던 견고한 석판이 갈라지고 돌무더기가 우르르 쏟아졌다.

웅장했던 건물은 이미 절반이 파손됐다. 중원과 마교의 최강고수가 격돌하는 이곳에 무사히 남을 건물은 없다.

“크윽!”

비명이 일고 또 한 명의 구파 장문인이 목숨을 잃었다. 싸움은 점점 격렬해지고 그들은 파리 목숨과 다름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무극천존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그의 앞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은 구대문파를 호령하던 사람들이다.

그런 고수가 속수무책으로 썰려 나가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마교수호사령 세 사람은 잔인했다.

무극천존은 마교의 잔인함을 간과했다. 이들은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격돌하자마자 무림맹 인사들은 당황했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절반이 죽음을 맞이한 후였다.

“이노오오옴!”

무극천존은 분노의 일성을 지르며 금천마령을 공격했다. 그의 검이 공격 중인 자하검존의 검과 합세하자 간신히 금천마령과 평수를 이뤘다.

하지만 금천마령의 표정을 본 순간 무극천존은 절망에 사로잡혔다. 상대의 표정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이들의 무공은 대체 어떤 수준인가?’

중원에서 무극천존의 무공은 죽은 반야불존을 제외하면 넘을 자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무공에 자부심을 품었다. 천마의 무공은 아득하다고 알려졌기에 상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여겼지만, 마교수호사령조차 이렇게 힘들 줄은 생각지 못했었다.

무림맹은 우물 안 개구리였고 마교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러니 마교는 중원 침공을 자신했겠지.

새삼 주석하가 대단해 보였다. 이런 마교 주력 부대를 되돌려 거꾸로 마교로 쳐들어갔으니.

그가 아니었다면 무림맹은 감히 마교와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무극천존은 주석하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분명 영빈관 내에 있었는데 이 혼란한 와중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금천마령의 공격을 가까스로 막는 순간 강한 충격에 고개가 확 돌아갔다.

그때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주석하가 보였다. 주석하는 팔짱을 낀 채 마치 유람 나온 사람처럼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무극천존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 자식이 이 모든 사태를 유도한 건가?

그렇지 않으면 주석하를 치려고 모였던 이 회담에서 주석하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검을 겨눌 리 없다.

의문이 들불처럼 일었으나 그렇다고 이 싸움을 그만둘 처지도 아니었다. 어차피 마교는 무림맹의 적이고 언젠가는 칼을 겨눠야 할 사이다. 단지 그것이 조금 더 빨라졌을 뿐.

“크윽!”

옆에서 태을진인이 무릎을 꿇었다. 은천마령과 싸우더니 결국 힘이 부쳤나 보다.

쓰러지기가 무섭게 은천마령의 일장이 태을진인의 등을 강타했다. 피투성이가 된 육신이 날아가서 벽에 부딪혔다.

아마 태을진인은 저 한 방으로 죽었거나 사실상 무공을 쓰지 못하는 몸이 되었을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분노가 일었다.

“우- 아아아!”

무극천존은 내공을 실은 긴 사자후를 터트렸다. 그의 외침이 구파 장문인을 비롯한 주요 인사의 투지를 일깨웠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전세를 바꿀 수 없었다.

금천마령과 은천마령이 구파 장문인과 무극천존, 자하검존을 상대하는 동안 묵천마령이 남은 사람을 공격했다. 무공 차이가 너무 났기에 아무도 묵천마령의 살수에 대항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피의 제전이었다.

무극천존은 최고 절기인 태극무상검법을 꺼냈다. 그는 합공 중인 자하검존에게 신호를 보냈 다. 옆에서 가담하던 이대호법도 의도를 알아챘다.

무림맹 최강자라 할 네 사람이 동시에 금천마령을 공격했다. 그 기세는 산을 무너트리고 강을 가를 듯했다.

금천마령이 음산한 웃음을 터트리며 금빛 마기를 뿜어냈다.

“으하하하! 마교는 최강이다!”

콰아아아앙!

드디어 전력을 기울인 금천마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위력은 무극천존과 자하검존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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