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대격돌 (2)
“올까요?”
우설금의 목소리에서 불안감이 스며 나왔다.
“당연히 올 거예요.”
주석하는 주먹을 불끈 쥐며 기세를 끌어 올렸다.
오늘 천마는 이곳에 오지 않을 수 없다. 중원의 이목이, 마교도의 이목이 쏠려 있기 때문이다. 천마가 이 도전을 회피한다면 지금까지 쌓아왔던 천마의 명성이 허물어질 테니까.
명성, 체면 같은 것은 윗자리에 있을수록 지킬 때 큰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법이다.
천마는 그와 우설금을 경계하면서도 금천마령과 은천마령이 제값을 했기를 바랄 것이다.
또 회귀를 반복하면서 쌓았던 자신감도 있고. 도전을 무시했을 때 천마는 손해 볼 것이 너무 많다.
“늦어도 정오가 되기 전까지.”
야밤에 벌어진 금천마령과의 대결과 달리 천마와의 싸움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무림의 역사를 새로 쓸 수 있다.
이 점은 천마 또한 절실하기에 천마도 밤이 아닌 낮에 공개된 장소를 택할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돼요. 기억하죠?”
주석하는 우설금과 무수히 교감했던 작전을 다시 꺼냈다. 마교로 오면서 두 사람은 손발을 맞추고 작전을 짰다. 두 사람이 한 몸처럼 움직이지 않으면 천마를 상대할 때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우설금이 입술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서 결의가 엿보였다.
주석하는 네 곳에 무리 지은 군중을 확인했다. 두 곳은 마교도이고 한 곳은 무림맹, 한 곳은 흑련이다. 그들의 분위기는 각자 달랐다.
그들은 지금 제각각이고 서로 화합할 수 없는 존재다. 그렇기에 균형을 이루어 소란이 일지 않고 있다.
“묵천마령이 밥값을 하겠죠. 머리가 있다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저 멀리에서 거대한 마기의 기운이 몰려왔다. 마기를 감지한 우설금도 미간을 모으고 정신을 집중했다.
눈이 내린 듯 하얀 장삼을 걸친 천마가 묵천마령을 앞세우고 등장했다.
과연 천마였다. 그가 한 걸음씩 걸음을 옮겨 다가올 때마다 숨 막히는 마기가 점증했다. 군웅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일순간 소요가 잦아들었다.
역시 세상은 천마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전생에서 주석하는 천마를 천마각과 천화원에서 만났었다. 당시에는 사실상 군중이 없었으니 천마와 단둘뿐이었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둘이서 만난 때와 지금처럼 수많은 군중이 보는 앞에서 만난 천마는 그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지금까지 이만큼 강한 존재감을 무의식중에 드러내는 인물은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천마란 존재는 공간을 지배했다.
쿵!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다가오는데도 마치 진각을 밟는 것처럼 압박감이 전해졌다.
‘그날 제대로 싸웠더라면 기세에서 밀려 천마를 이길 수 없었겠어.’
천마와 생사의 혈투를 벌였을 때는 우설금 때문에 눈이 뒤집혀 있었다. 그렇다 보니 천마의 압도적인 위압감을 미처 느낄 정신이 없었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천마는 본인이 천하 최강임을 아낌없이 드러내며 상대를 압박하고 있다. 이 순간 천마를 주시하는 모든 무림인이 공통으로 이런 기분을 느낄 것이다.
주석하의 시선이 우설금을 향했다.
역시 우설금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평생을 천마의 밑에서 보호를 받으며 살아온 그녀가 이런 천마의 기세를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어찌 보면 너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주석하는 슬그머니 그녀의 손을 꽉 쥐었다. 떨리던 그녀의 손이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나만 믿어요. 우리는 이길 거니까.”
그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의 말이 우설금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지금부터 그녀는 반드시 자신을 붙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싸우기도 전에 패배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십 장 앞까지 다가온 천마가 두 사람을 노려봤다. 눈에서 뿜어지는 섬뜩한 살기가 가슴을 도려내는 기분이다.
“많이 컸구나!”
나지막하지만 뚜렷한 목소리로 천마가 일성을 발했다.
우설금은 몇 차례 심호흡한 후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나는 오늘 당신과 생사를 건 결투를 벌일 거예요!”
“천마가 되고 싶었더냐?”
천마의 질문이 되돌아왔다.
“마교를 변화시키고 싶으니까요.”
우설금도 스스럼없이 대답했다.
주석하는 우설금이 점차 안정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좋은 현상이다.
“능력이 있다면 해보아라.”
“그전에…… 하나만 묻죠. 당신이 나의 부친과 모친을 죽였나요?”
천마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렇다. 반야불존이 알려준 그대로다!”
천마가 말을 돌리지 않고 시인했다.
전생의 그때는 말을 빙빙 돌리면서 구구절절 설명하더니 오늘은 간략하다. 아마도 군웅들 앞이기에 무한회귀공을 언급할 수 없어서겠지.
“오늘 당신을 죽여 원수를 갚겠다!”
우설금이 결의를 불태웠다.
천마가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두 팔을 양쪽으로 벌렸다. 마기가 폭증하여 그의 몸을 휘감았다. 점차 마기가 잠식하는 공간이 확장했다.
“혼자냐? 아니면 둘이냐?”
“흑검서생과 함께다!”
“좋을 대로!”
천마는 단천마령이 홀로 상대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단천마령의 능력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어서 최근에 그녀가 아무리 무공이 상승했더라도 상대가 아님을 알고 있으니까.
우설금이 홍철산을 폈다. 붉은 바탕에 수놓은 모란꽃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허공에 피어났다.
단천마공이다.
“단천마공만으로는 나의 절대천마공을 절대 누를 수 없다!”
천마의 자신감이 말투에 묻어났다.
“과연 그럴까? 단천마공 하나만으로는 그럴지 모르지만 다른 무공과 융합하면 상황이 다르다!”
우설금이 주석하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주석하는 정좌를 하고 앉아 흑검소를 입에 물었다.
“천무태평악을 아나?”
“당연히 알지. 악군의 신공 아닌가? 천무태평악으로 나를 상대할 수는 없다.”
“천무태평악의 연주가 끝나기 전까지 당신을 처리하겠다!”
주석하의 호기로운 예언에 천마가 한차례 광소를 터트렸다.
천무태평악과 단천마공의 조합! 어울리지 않는 두 무공의 조합에 천마는 가소로움을 금할 수 없었다.
기껏 이것뿐인가? 이런 식인데 어떻게 전생에서 죽었지?
천마의 의문이 더욱 짙어졌다.
그의 시선이 한쪽 옆에 대기한 묵천마령에게 멎었다. 저놈도 수상쩍은데? 금천마령과 은천마령이 혹시 살아있나? 내공이 소모되었을 때 기습하려고?
의심이 끝없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전생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이 의문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묵천마령! 너는 저쪽에서 이 대결을 주관하라! 이 대결은 천마에게 도전한 마교수호사령과 천마의 개인적인 대결이자 마교의 신성한 행사이니 다른 자들이 절대 간섭 못 하게 하라.”묵천마령은 군말 없이 명령을 이행했다.
마교도의 함성이 울렸다. 그들은 천마에게 도전하는 마교도를 오늘 처음 만났다.
게다가 말로만 듣던 천마의 무공을 처음으로 구경하는 자리였다. 그렇기에 대부분 마교도는 긴장감 속에서도 마교의 무한한 긍지를 품었다.
말로만 듣던 강자존의 세계. 그 정점을 천마가 손수 확인시켜주리라. 오늘 이 대결에서 승리하는 자가 진정한 천마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시작하라!”
천마가 절대천마공을 일으켰다. 세상의 모든 마기를 제압한다는 마공의 최정상! 절대천마공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군웅들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갑자기 몰려오는 압박을 이겨내면서 주석하는 천무태평악을 연주했다. 청아한 퉁소 소리가 천마평을 울렸다. 내력이 실린 음률이 모두의 귀를 붙잡았다.
삘리리리-
음률이 무형의 강편을 만들고 그 강편이 주석하의 주위를 휘감기 시작했다.
홍철산이 빠르게 회전하며 산강을 뿜어냈다. 수없이 일렁이는 모란꽃 사이에서 우설금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그녀는 무형의 강편을 밟으면서 공간을 누볐다.
- 오래도록 기다렸죠. 당신이 나를 바라볼 때까지.
- 단아한 기품, 숨길 수 없는 표정. 그리움만 쌓였죠.
천무태평악이 깔리고 홍철산에서 뿜어지는 산강이 천마를 향해 몰려갔다.
“하찮은 재주! 그것만으로 절대천마공을 깨트리겠다면 오산이다!”
천마가 양옆으로 펼쳤던 두 손을 가슴에 모은 후 앞으로 쭉 뻗었다.
눈처럼 하얀 마기가 폭풍처럼 앞으로 몰아쳤다.
콰앙!
절대천마공의 폭풍이 홍철산을 강타했다. 펼쳐진 우산을 그대로 치받은 마기가 우설금의 신형을 뒤흔들고 충격파로 변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놀라운 위력에 관전하던 모두의 입이 쩍 벌어졌다. 과연 천마는 모두의 상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우설금도 충격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처음으로 천마와 무공을 겨뤘다. 단 일 초식만으로도 그녀는 천마의 무공이 자신을 아득히 넘어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주석하를 흘끔거렸다. 퉁소를 부는 주석하의 표정은 평온하고 잔잔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믿음이 가슴을 채웠다.
‘분명히 이길 수 있다고 했어!’
주석하는 계산 없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 전생에서 천마를 경험해봤다는 그의 말을 믿어야 한다. 이제 시작일 뿐이고 아직은 보여줄 것이 너무 많이 남았다.
우설금은 움츠러드는 몸을 쫙 펴며 허공을 활보했다. 그때마다 그녀의 발밑에서 천무태평악의 강편이 몸을 떠받쳤다.
그 순간 강편의 형상이 변했다.
- 이별은 피할 수 없고 사랑은 가슴을 가득 메워.
- 꽃비가 날리고 기다림이 길어져도 사랑은 돌아오지 않아요.
음률이 검강을 만들고 강편은 단검의 형상을 띠기 시작했다. 허공에 수천 개의 단검이 폭발적으로 탄생했다.
우설금은 단검을 밟으면서 우아하게 춤을 추었다. 모란꽃이 그녀를 감싸고 환영을 그렸다. 드디어 우설금의 장기가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수천 개의 단검이 기이한 검로를 형성했다. 바로 흑풍검신의 절대검법이었던 흑검육식의 마지막 절초였다.
회오리를 따라 휘몰아치던 단검이 벌떼처럼 천마에게 몰려갔다.
그제야 천마도 주석하의 무공을 알아챘다.
아득히 오랜 옛날에 상대했었던 검법이다. 놀랍게도 흑풍검신이 죽고 절전되었다고 생각했던 검법을 지금 주석하가 펼치고 있었다.
콰아아앙!
단검의 폭격이 시작됐다.
천마는 절대천마공으로 단검의 공격을 막았다.
그 순간 우설금의 산강이 천마를 기습했다. 홍철산의 회전을 타고 사방으로 비산하던 산강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허공을 선회하면서 천마를 강타했다.
파파파팟!
천마의 호신강기가 잘려나갔다. 틈이 벌어진 호신강기를 천무태평악의 단검이 찢고 들어왔다.
쿠쿵!
방어만으로는 상대하기 쉽지 않다고 판단한 천마가 새로운 공격을 개시했다.
“이게 천마다!”
천마의 양손에서 절대천마공이 뿜어져 우설금을 향해 날아갔다.
일순간 수천 개의 단검이 절대천마공을 가로막고 우설금의 홍철산이 절대천마공을 마중했다.
콰아앙!
재차 충격파가 터지고 천마평을 뒤흔들었다.
절대천마공에 튕겨 나간 무형의 단검이 주변 지대를 폭격했다.
깊은 구덩이가 패고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지면이 쭉쭉 갈라졌다. 관전하던 사람들이 혼비백산해서 옆으로 피하기 바빴다.
- 당신을 그린 하늘은 여전히 변함없네요. 마치 내 마음처럼.
- 미소 짓던 당신을 기억하기에 당신의 눈빛에 묶여버렸죠.
천마가 공세를 추가하기도 전에 음률의 강도가 변했다.
그 충격파를 타고 우설금의 신형이 모란꽃 잔영 속에서 다시 춤을 췄다. 모란꽃 사이에 교묘하게 숨은 그녀의 붉은 신형이 천마에게 접근했다.
그 순간 천무태평악의 단검이 천마를 폭격하고 홍철산 산강이 위력을 더했다.
콰콰쾅!
관전하던 사람들은 넋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