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1화 (1/200)

# 1

序章

“그것이오?”

한 남자가 눈앞에 있는 책을 바라보며 묻자, 초췌해 보이는 노인이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땅에 떨어진 책을 집어들어 이리저리 살펴보다, 겉표지에 쓰여 있는 제목을 발견하고 피식거렸다.

“당신이 만든 것이니 확실하겠군. 그럼 이것으로 거래는 성사된 것이오.”

남자는 참으로 기묘한 제목인 책을 품에 갈무리하며, 여전히 부드럽게 웃고 있는 노인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지금까지 노인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 비급을 집은 순간부터 느껴졌던 꺼림칙한 기분 때문일지도 몰랐다.

남자는 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아, 알았소, 알았소. 당신이 원하는 것은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이오.”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고, 노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윽고 힘없이 늘어졌다.

남자는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떠난 노인을 향해 한숨을 내쉬며 등을 돌렸다.

“당신은 내가 보았던 그 어떤 사람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였소.”

나지막하게 말을 내뱉은 남자는 품속에 넣어 두었던 책을 꺼내 들며 다시 한 번 바라봤다.

“회귀신공이라…….”

第一章. 점소이(店小二)

사천(四川)의 성도(成都) 인근에는 작지만 그럭저럭 단골손님들이 많은 객잔이 하나 있다.

천운객잔(天運客棧)이라 적힌 객잔의 현판은 낡아 빠졌으며 비질조차 하지 않은 듯, 거미줄이 잔뜩 끼어 있었기에 마치 다 무너져 가는 객잔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으스스한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실제로 아직까지 운영을 하고 있는 곳이며, 삼 대째 내려오고 있는 곳이니 만큼 사천 성도 토박이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으며, 상당히 장사가 잘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이른 아침, 눈을 뜬 신유강은 반쯤 멍한 눈빛으로 방을 나와 객잔 정문을 쓸기 시작했다.

나이는 이제 열다섯 정도뿐이 되어 보이지 않았으나, 슥슥 비질을 하는 모습엔 오랫동안 종살이를 한 이들 못지않은 노련함이 깃들어 있었다.

비질을 하던 신유강이 투덜거렸다.

“쓸어 봤자 또 더러워지는 것을 왜 쓸라고 하는 것인지…… 하아.”

신유강은 매일 아침마다 정문 앞을 쓰는 것이 영 달갑지 않았다.

어릴 땐 푹 자야 큰다는 말이 있는데, 한참을 달콤한 잠에 빠져 쑥쑥 클 이 어린 나이에, 이른 아침 일어나 꼭두새벽부터 먼지를 뒤집어써야 하니 기분이 좋을 리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바람이 많이 불어오는 탓에, 조금만 쓸어도 먼지가 자욱하게 날려 순식간에 온몸이 더러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신유강의 착각이 아니다.

한숨만 나왔다.

“하아…….”

신유강은 한숨을 쉬더니 천천히 현판을 바라봤다.

얼마 전 보았을 때에는 새끼였던 무당거미 한 마리가, 얼마나 많이 처먹었는지 뒤룩뒤룩 살이 쪄 벌써 자신의 손바닥만큼 커져 있는 것이 보였다.

현판 전체를 뒤덮고 있는 거미줄에는 하루살이들과 나방들이 대롱대롱 걸려 있었다.

아마도 당분간 사냥감 걱정을 없을 듯했다.

“차라리 저 현판처럼 손이 닿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다른 곳에 비해 현판이 더러운 이유는 간단했다.

객잔의 청소를 맡고 있는 신유강의 키가 작은 탓에, 빗자루를 뻗어 보아도 거미줄을 걷어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유강은 다시 시선을 돌려 정문 마당을 바라봤다.

그리고 슬쩍 비질을 시작하며 다시 한 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호호, 고작 마당 좀 쓰는 거 가지고 무슨 푸념을 그리하니?”

그때 객잔에 문을 열고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이 객잔 주인의 딸인 손약란이었다.

나이는 신유강보다 한 살 많았으며, 이 근처에 사는 또래 남자아이들에겐 사모의 대상이라 할 만큼 귀여운 여아다.

양 갈래로 땋은 머리와 객잔 주인인 손 씨가 딸을 위하여 사 온 비단으로 만들어진 옷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신유강은 잠시 그런 손약란을 바라봤다.

“호박에 줄긋기?”

“죽을래?!”

아직 잠조차 깨지 않은 이른 새벽부터 소리를 치는 손약란 탓에 신유강은 고운 인상을 찌푸리며 빗질을 멈추고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시끄러우니까 너랑 놀아 줄 사람 필요하면 다른 애들한테 알아봐.”

“누…… 누가 놀아 줄 사람을 찾는다는 소리야. 나, 나는 그냥…… 네가 아침부터 투덜거리고 있으니까 한마디 해 주려고 한 것뿐이야.”

“한마디 끝났으니 그만 들어가라, 마당 쓸고 있는 거 안 보이냐? 이거 다 끝내지 못하면 네 아버지가 꿀밤을 서너 대는 때릴 거다. 그리고 아침도 못 먹겠지. 또 이번에 나오는 은자 네 냥 중 일 안 한다고 한 냥 빼 버리면, 난 어찌 먹고 살라고? 하는 수 없이 다른 객잔을 알아보는 수밖에 없지.”

“그…… 그건 네가 일을 못해서.”

신유강이 점소이 일을 그만둔다는 말에 손약란의 얼굴이 변했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그녀는 틀림없이 신유강이 일을 그만두는 것을 원치 않는 듯했다.

하여 애써 변명을 하듯 말을 했는데, 신유강은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네 아버지라고 감싸려 들지 마. 난 지난달에 그릇 한 장 깨 먹은 적 없고, 꼬박꼬박 객잔 청소도 다했어. 근데 왜 네 냥이 아니라 세 냥만 받았을까?”

“그…… 그거야 모르지.”

손약란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찔리는 것이 있는 거다.

“그 이유는 바로 너야! 내가 일을 할 때마다 네가 찾아와 방해를 하니, 주인 어른 눈에는 내가 농땡이를 피우는 것처럼 보인다고. 그런 이유로 너는 지금 내 앞길을 방해하고 있단 말이다, 손약란.”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손약란은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을 했다.

물론 그녀가 유강이 일을 할 때 찾아가 수다를 좀 떨기도 하고, 일을 도와준답시고 그릇을 나르다 깨 버린 적도 있었으며, 비슷한 또래 여자아이가 주문을 한 다음 유강을 빤히 쳐다보면 부리나케 쫓아가 멱살을 쥔 적도 있다.

그 때문이 유강이 아버지에게 몇 번 혼이 난 적이 있었고, 손님에게 따귀를 맞은 적도 있었으며, 사천 당가의 직계 딸에게 무릎을 꿇은 적도 있었지만…….

하지만 고작 그런 이유로 봉급을 제대로 못 받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우리 아빠가 그랬을 리 없어.’

손약란은 애써 신유강의 말을 거짓으로 치부했지만, 신유강은 그녀의 어리광을 받아 줄 생각이 없었다.

“아니, 사실이야. 나는 이 객잔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부터 너 때문에 제대로 된 봉급을 받아 본 적이 없단 말이다. 그러니까 내 근처에서 얼씬거리지 마.”

“만에 하나 정말로 그렇다면 내가 직접 아빠한테 따져 줄 테니 걱정하지 마.”

당당하게 양손을 허리에 두르며 말을 하는 손약란 때문에 신유강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또 한 번 한숨을 쉬었다.

어린 나이에 왜 이리 한숨 쉬는 날이 많은 것인지 그는 자신의 박복함을 탓했다.

“행여나 그런 짓은 절대 하지 마라. 아니, 내 일엔 신경도 쓰지 말고, 입도 벙긋하지 마. 이거 보여?”

신유강은 슬쩍 오른 쪽 눈을 가리켰다.

그러자 손약란이 종종 걸음으로 다가와 신유강의 눈을 바라보더니, 기겁을 하며 두 눈을 치켜떴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분명 멍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누…… 누구야? 이런 짓을 한 게…… 설마 아빠가?”

“너, 왕윤이 놈한테 날 좋아한다고 말했다면서?”

“그…… 그건…….”

지금까지 고이 숨기고 있던 마음이 들켰기에 손약란은 눈에 띌 정도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가뜩이나 토끼처럼 커다란 눈을 가지고 있는 손약란이 더욱 눈을 크게 뜨니, 귀엽다는 말로도 설명이 되지 않을 정도였으나 신유강은 시큰둥했다.

“그놈에게 맞았다.”

“에엑?”

“장난이 아니라 아주 죽일 기세로 달려들던데? 덕분에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어.”

“와…… 왕윤이랑 싸운 거야?”

“그럼 이 꼴을 보고도 안 싸운 것 같아 보이냐?”

“왕윤이는?”

“지금쯤 의방에 누워 있겠지.”

손약란은 할 말을 잃은 사람처럼 멍 하니 신유강을 바라봤다.

기왕윤이라는 아이는 이 근처 또래 아이들 중에서 가장 주먹을 잘 쓰기로 유명했다.

사천에 있는 나름 잘 나가는 중소문파 중 하나인 미산검문(尾山劍門)의 후예로, 어려서부터 그곳의 무예를 익혔기 때문이었다.

‘그런 왕윤이랑 싸움을 해서 이겼다고?’

손약란은 두 눈을 더욱 초롱초롱하게 빛을 냈다.

그 모습에 신유강은 자신이 괜한 소리를 했다는 것을 깨달으며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 * *

하루 중 천운객잔이 가장 바쁜 시간은 정오인 오시(午時)였다.

이 근방에 있는 토박이들이 가장 싸고 맛있는 집을 찾아 객잔으로 오기 때문이다.

비록 화려하지 않고, 맛도 고급 객잔들보다는 못하지만, 사천 서민들의 배를 불리는 정도라면, 이곳 천운객잔만한 곳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신유강은 이 시간 때가 가장 싫었다.

사람들은 몰리고 자리는 없으며, 여기저기 시끄럽게 떠드는 자들 때문에 귀가 다 아플 지경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신없이 움직여야 함은 물론인 데다, 자칫 단골이 아닌 손님들과 부딪치기라도 한다면 뺨 한두 대 정도는 각오해야 했다.

사실 그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다.

얼마 전 객잔에서 일하고 있던 점소이 하나가 무림인의 옷에 음식을 흘렸다가 피똥을 쌀 정도로 두들겨 맞는 것을 두 눈으로 보지 않았던가?

그 탓에 현재 객잔에 점소이라고는 신유강 하나밖에 없는지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말로도 이 상황을 전부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한 차례 폭풍이 몰아치는 오시(午時)가 지나자, 신유강은 다소의 여유를 가질 수가 있었다. 물론 치워야 하는 그릇들이 한가득인지라, 앞으로 반 시진 정도 더 움직여야 했지만, 사람들이 바글바글할 때보다는 훨씬 나았다.

신유강은 묵묵히 그릇을 치우며 힐끔 주위를 살폈다.

천운객잔의 주인은 손금운은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탁자 위에 발을 올려 놓고 동경(銅鏡)을 쳐다보며 코털을 다듬고 있었다.

이백 근은 족히 넘어갈 듯한 어마어마한 덩치를 지닌 손금운이 앉아 있는 의자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 같아 안쓰러울 정도였다.

신유강을 그런 그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유강아.”

“예, 어르신.”

“내일이 네 봉급 주는 날이었던가?”

신유강은 그가 알면서 물어보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굳이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대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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