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어찌나 심하게 얻어터졌는지, 얼굴은 시퍼런 멍 자국이 가득하였고, 코와 입에선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거 위험한 거 아냐?”
왈패들 중 한 명이 피를 흘리며 비틀거리는 왕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리 보아도 그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얻어맞은 왕윤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휘청거리고 있었다.
돌멩이로 머리를 얻어맞은 탓에 정신이 아득히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뚝뚝 떨어지는 피를 보니 이러다가 정말 자기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돌연 공포가 엄습해 왕윤은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신유강의 대한 일 따위는 멀리 날아가 버린 지 오래였다.
“의, 의원! 의원을 데리고 와!”
왕윤이 거칠게 소리를 치며 발광을 하자, 왈패들에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들 또한 의원을 데리고 오고 싶었지만, 이런 첩첩산중에 어디 가서 의원을 찾는단 말인가.
“왕윤아, 진정하고 내려가자. 어서 내려가자고!”
“으아아악!”
왕윤은 아이들에 말을 들으면서도 소리를 지르는 걸 멈추지 않았다.
널브러져 있는 신유강을 무시하고, 아이들이 왕윤을 부축하였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어 버린 이상 신유강은 온전치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비록 아미와 청성, 당가의 밀린다고는 하지만 미산검문은, 이 사천에서 네 번째로 큰 곳이었고, 그곳에 소문주인 왕윤이 이렇게 처참하게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왕윤의 아버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놔! 죽여 버릴 거야! 저 새끼 죽여 버릴 거라고!”
왕윤은 이미 제정신이 아닌 듯 소리를 치며 아이들을 밀쳐 내었고, 널브러져 있는 신유강을 향해 달려들려고 했다.
그러나 단 한순간도 지체할 수 없는 왕윤의 상태를 보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왕윤을 뜯어 말리며 억지로 산을 내려갔다.
어느새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은, 왕윤이 흘린 핏자국과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널브러져 있는 신유강뿐이었다.
그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객잔으로 돌아가는 것은 무리다.’
미산검문에 후예인 왕윤의 얼굴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아마 미산검문 전체에서 신유강을 찾기 위해 눈을 불을 켤 것이 틀림없다.
저자거리에서 왕윤과 싸웠을 때와는 사뭇 다른 일인 것이다.
당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며, 사천당가에 무인들도 몇 명 있었기에 미산검문에서 함부로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신유강은 자신이 결코 사천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빌어먹을…….”
第二章. 기연고서점(奇緣古書店)
신유강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죽지 않으려면 어디론가 움직여야 한다.
마을로는 들어갈 수 없으니, 결국 부상당한 몸으로 산을 타야 했다.
신유강은 이를 악물고 힘겹게 걸음을 옮겨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며 정신이 멍했다.
걷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기이하게 몸이 앞으로 나가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머리가 멍하며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이, 아까 얻어맞은 충격 탓인 것 같았다.
“죽겠네, 진짜…….”
신유강은 한숨을 쉬며 맑은 공기를 폐부 속으로 집어넣었다.
순간 정신이 맑아지는 것처럼 느껴졌으나 곧 주변이 흐려졌고, 한여름인데도 한기가 엄습하였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몸이 식어 가고 있는 것이다.
걷는 것은 물론이고, 이제 숨을 쉬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최대한 머리를 감싸 안기는 했지만, 내공을 이용해 발길질을 한 왕윤 탓에 정신이 아직도 멍했고, 마치 머릿속에서 누군가 망치질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하아.”
신유강은 또다시 한숨을 쉬었다.
‘이곳이 어디지?’
무작정 앞만 보고 숲을 가로질렀던 탓도 있었지만, 애초에 그는 이 산이 사천 어디에 붙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어디로 가야 마을이 나오는지도 모른다.
다만 왕윤과 싸운 곳에서 상당히 멀어졌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리고 살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한 걸음을 내딛던 신유강은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쿵.
경사가 있는 곳이라 그런지 작은 그의 몸은 거침없이 땅을 구르기 시작했다. 험난한 산세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으아악!”
구르면 구를수록 바닥에 깔려 있던 돌과 나무 조각들이 온몸을 찔렀다.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기에 그저 굴러 떨어질 뿐이었다.
퍽!
“커억!”
자그마한 몸통이 두터운 나무에 부딪치자 절로 신음이 터졌다.
신유강은 흐릿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성인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으나, 신유강은 악바리와도 같은 근성으로 고통을 참아 내며,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하였다.
“저…… 저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같이 힘겨운 몸놀림으로 걷고 있는 신유강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을 부릅뜬 상태로 앞을 바라봤다.
그가 있는 곳은 사람의 흔적조차 찾기 힘든 외진 산골이었다.
그런데 지금 신유강의 눈앞에는 커다랗고 화려한 장원이 있었다.
혹여, 버려진 건물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건물에는 거미줄 하나 쳐져 있지 않았으며, 누군가 매일같이 손질을 한 듯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신유강은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奇)…… 점(店)?”
깔끔하기 그지없는 현판에 쓰여 있는 웅장한 필체의 글자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하나 글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기에 신유강은 첫 글자와 끝 글자만 입에 담았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입을 열었다.
“기연고서점(奇緣古書店)! 이렇게 읽는 거예요.”
신유강은 화들짝 놀라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한 소녀가 배시시 웃음을 지으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소녀의 나이는 많아야 열일곱 살 정도 되었을까 싶었다.
새하얀 백색 경장을 입고 웃고 있는 모습은 절로 시선을 앗아 갈 정도로 귀여웠다.
또래 아이들 중 가장 예쁘다는 평을 받고 있는 손약란조차, 눈앞에 있는 아이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불경스런 일일 것이다.
“할아버님이 오늘은 좋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그게 손님이 찾아온다는 말이었나 봐요.”
신유강은 이 소녀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단순히 산을 헤매다 우연찮게 장원을 발견한 것이고, 딱히 무언가를 살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은데, 소녀는 자신을 손님이라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다치셨네요? 그 상태로 서점에 들어가면 할아버님에게 혼쭐이 날 거예요.”
소녀는 피투성이가 되어 버린 신유강을 바라보다, 동그랗게 눈을 뜨곤 말했다.
그러곤 품을 뒤적거리다 금창약 하나와 붕대를 꺼내어 쪼르르 신유강을 향해 다가갔다.
“이리 앉아요.”
소녀는 근처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자그마한 손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신유강은 그 모습에 말없이 바위에 앉았다.
처음 보는 것이 분명한데, 소녀는 자신에게 전혀 거리낌이 없이 행동을 하니, 신유강 또한 경계심이 누그러진 모양이었다.
신유강이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자, 소녀가 다친 곳에 금창약을 바르고 조심스레 붕대를 둘렀다.
상처에서 통증이 느껴질 만도 하건만, 신유강은 금창약을 바른 뒤부터 조금의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유강은 거리낌 없이 피 묻은 몸을 만지며, 치료를 하고 있는 소녀를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평소에 그런 걸 가지고 다니십니까?”
“아, 이거요? 원래는 가지고 다니지 않아요. 하지만 오늘 할아버지가 가지고 나가라고 해서……. 아마 손님 때문이었나 봐요.”
소녀가 또다시 배시시 웃음을 짓더니 신유강의 다리를 탁 쳤다.
“이제 되었어요. 일단 보이는 곳은 다 치료를 한 것 같은데…… 어디 또 아픈 곳이 있나요?”
“괜찮습니다.”
신유강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소녀와 주위를 바라봤다.
이곳은 마을과도 상당한 거리가 있는 곳이었으며, 은거를 하기에도 적당하지 않을 만큼 산세가 험난한 지역이었다.
손님조차 찾아오지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한 곳에 고서점을 차려 놓고 있다는 것에 의문이 든 것이다.
더욱이 조금 전 소녀가 발라 주었던 금창약은 약이 스며든 것과 동시에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억만금을 줘도 사지 못할 대단한 영약이 틀림없을 것이다.
신유강이 깊게 생각을 하며 가늘게 눈을 뜨고 있자, 소녀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자, 들어가요. 할아버님이 기다리고 계셔요.”
“기다린다고요?”
소녀는 신유강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싱그럽게 웃음을 지으며 더욱 그의 팔을 잡아당길 뿐이었다. 치료를 받기 전보다 한결 나아진 신유강은 저도 모르게 소녀의 손에 이끌려 기연고서점 안으로 들어섰다.
고서점 내부를 본 신유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총 삼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고서점은 어림잡아도 몇 만 권의 책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울 만큼 수많은 책들에 신유강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그 많은 책들은 가만히 꽂혀 있는데도 기이한 위압감을 발하고 있었다.
고작해야 책 따위가.
사방에 꽂혀져 있는 책들 사이 고서점 중앙에는 한 노인이 책상 앞에서 곰방대를 손에 들고 꾸벅꾸벅 고개를 흔들며 졸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백색 수염과 눈썹, 새하얀 백삼을 입은 그 풍모는 흡사 신선이라 하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기기묘묘(奇奇妙妙)한 모습이었기에, 책들에 시선을 빼앗겼던 신유강은 노인을 쳐다봄과 동시에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선인(仙人)이다.’
어찌 보면 단순히 책상 앞에 앉아 졸고 있는 것뿐이었지만, 자세히 쳐다보니 노인의 몸은 세 치 정도 허공에 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발견한 신유강은 기겁을 하였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일어나요!”
어느새 신유강의 곁에 있었던 소녀는 신유강이 알아채지도 몰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신선풍의 노인 곁으로 다가갔다.
방금 소녀가 보여 준 움직임은 지금까지 객잔에서 점소이 일을 하면서 무수히 보았던 무림인들조차 따라 하지 못할 정도로 신묘해 보였다.
신유강이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소녀와 신선풍 노인을 바라보고 있자, 손녀의 목소리에 잠이 깬 노인이 슬쩍 한쪽 눈을 뜨며 신유강을 바라봤다.
“에잉?”
“할아버지! 손님! 손님이 왔다니까요.”
“예끼, 이 녀석아. 저런 어린놈이 무슨 손님이냐.”
노인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웃음은 보는 이들조차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기묘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소녀는 그런 할아버지의 볼을 꾹 하고 잡아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