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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신공-5화 (5/200)

# 5

“할아버지 말대로 산에서 다친 사람이에요. 그래서 치료도 해 주었고, 으음…… 나이는 어리지만 분명 점괘에 나온 손님이 맞다니까요.”

“내 점괘에 나온 손님은 소년이 아닌데…….”

노인은 더욱 묘한 표정을 지으며 신유강을 바라봤다.

이윽고 슬쩍 몸을 움직이는 듯싶더니, 어느새 신유강의 앞에 나타나며 그의 전신을 꼼꼼히 살피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신유강이 눈을 껌뻑이는 사이 족히 삼 장은 될 법한 거리를 뛰어넘은 것이다.

신유강은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놀랍다는 말로는 지금 이 상황이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흐음…… 네놈은 정말 어린 애가 맞느냐?”

“……보, 보면 모르십니까?”

“보고 아니까 문제인 게다.”

노인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이곳에 올 손님은 틀림없이 나이가 좀 있는 자여야 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틀려 본 적이 없는 것이 자신의 점괘인 만큼, 예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인데, 눈앞에 있는 아이는 틀림없는 ‘소년’이었다.

그렇다고 손님이 아닌 것은 아니다.

기연고서점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곳과 연이 닿은 자들뿐.

그 외에는 누구도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 어디서 뭐하는 놈이냐?”

“처…… 천운객잔의 점소이입니다.”

“점소이?”

“네.”

“그, 객잔에서 음식을 날라 주는 천한 것이란 말이냐?”

천하다는 말에 신유강은 인상을 썼으나 왠지 모를 노인의 기백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그러나 분한 듯 움켜쥔 주먹이 신유강의 기분을 대변해 주었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신유강입니다.”

“신유강이라…….”

이름을 들은 노인은 그것을 몇 번이나 중얼거리더니 손가락을 접기 시작했다.

그 행동은 마치 무언가를 짚어 보려하는 점쟁이들의 행동과 다를 바가 없었는데, 한참 동안 그것을 행하던 노인은 인상을 찌푸렸다.

“태어난 날은 언제더냐?”

“모…… 모릅니다.”

“몰라?”

“저는 고아이기에…….”

노인은 가만히 신유강에 눈을 응시했다.

마치 신유강의 말에서 거짓과 진실을 판별해 내려 하는 듯 보였다.

하나 곧 흥미를 잃은 것인지 고개를 돌리며 또다시 신음성을 내뱉었다.

“기이하군. 기이해. 네놈과 이곳의 인연은 보이지 않는데 어찌 이곳을 찾아낸 것이지?”

“할아버지? 제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인가요?”

손녀가 불안한 듯 물었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이 고서점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중원을 샅샅이 뒤졌음에도 불구하고, 연이 없는 자는 결국 고서점을 찾지 못했다.

인연이 있는 자가 아니라면 결코 볼 수도, 찾을 수도 없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런데 눈앞의 이 소년은 그 모든 법칙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렸다.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다 문득 노인의 귀가 파르르 하며 떨렸다.

놀란 노인이 다급하게 시선을 돌려 무수히 많은 책들이 꽂힌 서점 안 어느 한 곳을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하던 노인은 무척 긴장한 듯 급하게 숨을 삼켰다.

“아니야. 그것이 아니다. 네가 데리고 온 아이는 손님이 맞다.”

“정말요? 다행이네요. 후우.”

소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자 노인은 인자한 웃음을 머금고는 신유강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 순간, 신유강은 시야가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으며, 어느새 소녀가 저 아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일 층에 있었던 신유강이 눈 깜짝할 새 삼 층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헛!”

경악성을 터트린 신유강은 입을 쩍 벌렸는데, 그보다 더 놀라워하는 것은 다름 아닌 소녀였다.

이 기연고서점에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으며, 그들은 일종의 대가를 치르고 천하의 둘도 없는 무공이나, 병법서, 의학서, 혹은 각종 잡서들을 사 가지고 돌아갔다.

그들이 사 간 책들은 오직 이 기연고서점에서만 살 수 있는 것이었고, 그 책에 담긴 지식이 무공이라면 능히 천하에서도 손꼽힐 만한 고수의 반열에 올랐으며, 대장장이라면 천하의 둘도 없는 보검을 만들 비기를 얻었다.

병법서를 사 간 이는 필승무퇴(必勝無退)를 하며 천하를 손에 넣었다.

중요한 것은 기연고서점은 총 삼 층으로 나뉘며, 열 명이 찾아오면 그중 한 명만 이 층에 올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유강은 삼 층에 올랐다. 소녀는 생전 처음으로 삼 층에 오른 인물을 보았다.

소녀의 할아버지가 말하기론 기연고서점이 생긴 아득한 옛날부터 지금까지 삼 층에 오른 인물들을 합쳐도 채 다섯이 넘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이 일대종사라 불리며 대대손손 천하를 호령하였는데, 그들의 정체는 소림의 달마, 무당의 장삼봉, 곤륜의 청운, 마교의 천마, 사도천의 육극이었다.

세상 모든 이가 알고 있는 쟁쟁한 인물들이었으며, 그들 중에는 신으로 추대되는 이도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문파는 그들이 죽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난 아직도 세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소녀는 넋을 잃고 삼 층을 올려다봤다.

너무 높아 목이 다 아플 지경임에도 고개를 내리지 못했다.

새로운 전설이 탄생하는 순간을 한시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인이 신유강을 데리고 다가선 곳은 이 거대한 고서점의 삼 층에 딱 하나 존재하는 문 앞이었다.

삼 층에는 그 황금으로 만들어진 듯 번쩍이는 문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문에 새겨져 있는 웅장한 문양은 실로 눈을 떼지 못할 만큼 아름다웠다.

두근두근.

신유강은 그 문을 바라본 순간, 전신에서 알 수 없는 감각을 느꼈다.

그의 심장은 터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거세게 뛰고 있었는데, 문 또한 그런 신유강의 심장 소리에 반응하듯 기묘한 떨림을 발생시켰다.

쿠쿵쿠쿵!

그 소리는 점차 크게 울려 퍼졌다.

“꺄악!”

아래층에 있던 소녀가 놀란 듯 소리를 치며 주저앉았다. 그만큼 커다란 소리였으며, 전각 전체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느껴지느냐?”

노인은 희열에 가득 찬 표정으로 물었다.

생애 마지막 손님. 그것도 자신의 점괘에 나오지 않았던 이가 삼 층에 오르는 일이 벌어졌으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신유강이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문 안의 뭔가가 저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껄껄껄.”

노인은 더욱 크게 웃음을 지으며 신유강의 등을 떠밀었다.

겉보기엔 아주 살짝 민 것뿐이었는데, 신유강의 몸은 크게 움직이며 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 어?”

그는 균형을 잡기 위해 두 손을 뻗었다.

순간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마치 누군가 문을 연 것처럼 황금빛 문이 급작스레 열렸고, 신유강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 할아버지!”

“괜찮다. 암, 괜찮고말고.”

노인은 이미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신유강을 떠올리며 또다시 웃음을 지었다.

그가 무엇을 가지고 나올지 생각을 하니, 전신의 떨림이 쉬이 멈추지 않았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삼 층에 오른 이를 만나다니!

영광도 이런 영광이 따로 없었다.

* * *

한편 문 안으로 빨려 들어간 신유강은 내부를 바라보며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의 주위는 아무리 키가 큰 사람이라 해도 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책장이 신유강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착각이 아니라면 틀림없이 빙글빙글 그의 주변을 돌고 있는 듯했다.

신유강은 그것을 바라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조금 전 노인과 소녀가 있었던 곳보다 더욱 낡아빠진 책들, 수천 권은 될 듯 해 보이는 어마어마한 그것들은 절로 경이로움을 느끼게 할 정도다.

“도대체…….”

신유강은 마른침을 삼키며 주위를 둘러봤다. 들어왔던 문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뒤를 돌아보았는데, 기이하게 그가 들어왔던 문은 보이지 않았다.

신유강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담이 좋다고는 하나 그는 아직 소년이다.

이런 기이한 공간에 혼자 있다면 응당 그런 것이 당연했다.

신유강은 불안한 마음을 애써 다스리려 애를 썼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린나이에 겪은 일들이 많았던 탓에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건……?”

그 순간 참으로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책장 가장 높은 곳에서 사람에 손으로 뽑지 않는다면 결코 빠지지 않을 것 같아 보이던 책 한 권이 떨어져 내렸던 것이다.

쿵!

책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는 굉장히 커다랬다. 마치 공간 전체를 크게 울리는 듯한 그 소리에 신유강은 기겁을 하며 몸을 움츠렸다.

떨어진 책은 이곳에 있는 그 어떠한 책들보다 낡아 보였다.

질 좋은 종이를 쓴 것도 아닌 듯했으며,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너무 삭아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져 나갈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그 책을 바라보고 있는 신유강은 마치 책이 자신을 부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도 모르게 걸음을 옮겨 그 책을 향해 다가갔다.

땅에 떨어져 있는 책은 딱히 화려하지 않으며, 투박한 글씨체로 네 글자가 쓰여 있을 뿐이다.

하나, 글을 알지 못하는 신유강을 그것을 읽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신유강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 책자를 집어 들었다.

기묘한 것은 글을 읽지 못하는 신유강이 첫 장을 넘김과 동시에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빤히 첫 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동안 첫 장을 바라보던 신유강은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였다.

사락사락.

신유강이 있는 공간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저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그가 두텁지도 않은 책을 모두 읽은 것은 그로부터 약 일각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후우.”

신유강이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책을 덮었다.

탁!

“어?”

그 순간, 책은 마치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처럼 부서지며 사방으로 휘날렸다. 그러나 참으로 신기한 것은 신유강이 그 책에 적힌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머릿속에 담았다는 것이다.

다만 글을 몰라 책의 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 신유강에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책을 살 만한 돈이 없는데 책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신유강은 어찌해야 좋을지 난감했다.

그때.

벌컥!

큰 소리오 함께 신유강은 마치 무언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절로 몸이 붕 떠 뒤로 날아갔다.

이 방에 들어왔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으악!”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발버둥을 쳐 보았지만, 거대한 돌풍에 휘말린 것처럼 날아가는 몸뚱이는 그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 * *

쾅!

“꺅!”

육중한 소리와 함께 삼 층에 있던 문이 열리고, 거센 돌풍이 불어오자 소녀가 작게 소리를 치며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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