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자칫 단주의 귀에 들어갔다간 경을 칠걸?”
“내가 틀린 소리라도 했냐? 애라 해도 몇 시진이면 이미 산을 넘었겠구먼.”
“쯧,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우리가 무슨 힘이 있겠나. 소문주가 그 꼴이 되었으니 문파 사람 대부분이 나설 수밖에. 쯧쯧…….”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신유강은 더욱 숨을 삼켰다.
지근거리에서 들리던 목소리가 서서히 멀어져 갔다.
“사천 미산검문에 소문주가 고작해야 점소이한테 맞았다는 소문이 돌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문주께서 지금 쉬쉬하는 것이지. 그 때문에 다른 곳에 협력해 달라 말도 하지 못하는 거 아닌가.”
곳곳에서 작게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하자, 신유강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숨을 가다듬었다.
“으읍.”
그때 진소소가 눈을 뜨며 신음을 흘렸다.
신유강이 화들짝 놀라 손을 뗐다.
“이곳은……?”
“쉿.”
“네?”
다급하게 손을 들어 올린 신유강은 근처에 있는 수풀을 끌어당겨 몸을 가렸고, 살짝 떨어져 있는 진소소를 품에 안았다.
그 순간 놀란 그녀가 소리를 치려고 했는데, 어느새 신유강의 손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제길! 놈의 시체라도 발견했으면 마음이 편할 텐데 눈에 띄질 않으니 고생만 하는군.”
성큼성큼 걸음을 걸으며 나타난 이는 목소리로 보아, 조금 전 이들을 부리던 단주라는 자 같았다. 그는 한 차례 주위를 둘러보더니 인상을 쓰며 다른 곳으로 몸을 날렸다.
신유강에겐 다행히 미산검문의 수준이 그렇게 대단한 곳이 아닌지라, 숨을 죽이는 것만으로 그의 이목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사천당가나 아미와 청성 같은 곳에서 수색을 하였다면, 신유강은 도망을 칠 여유조차 없이 붙잡혔을 것이다.
“푸하! 왜, 왜 그러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쫓기는 중이라…….”
신유강이 손에서 입을 떼자 진소소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보았을 때 심한 상처를 입은 걸 보았다.
그 사실을 떠올리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소소는 신유강의 몸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슬쩍 다가와 풀려진 붕대를 빤히 쳐다보고는 더욱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상처가…… 다 나았네요?”
신유강의 몸을 치료해 준 것은 진소소 본인이었으니, 그의 상처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만든 금창약을 이용했다고는 하지만, 상처가 너무나 빨리 아물었으며 지금 보니, 상처를 입은 것 같지도 않았다.
신유강 또한 그제야 자신의 상처를 살펴보았다.
진소소가 그의 상의를 벗기고 붕대를 풀자, 얼굴을 붉혔으나 곧 자신의 몸을 확인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신유강은 자신의 몸에 그 어떠한 상처도 발견하지 못했다.
멍 자국은 물론이며 긁히고 찢긴 곳도 없었다.
“……아가씨께서 발라 주신 약이 무척 귀한 것이었나 봅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신유강이었으나, 진소소는 뭔가 꺼림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리 약이 좋아도 이렇게까지 나을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소소는 이내 생각을 접어야 했다.
어느새 신유강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저들은 저를 쫓고 있는 것이니 제가 먼저 나가겠습니다. 그러니 제가 나가면 일각 뒤에 나와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만약 이곳에서 저들에게 잡힌다면 애꿎은 진소소마저 말려들 수 있었기에, 신유강은 홀로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혼자 남을 진소소가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 이곳에 자신과 함께 있는 것보다는 몇 배는 안전할 것이다.
그리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진소소가 신유강의 옷깃을 잡았다.
“저를 데려가기로 저희 할아버지와 약속을 하셨잖아요.”
“하지만…….”
“저는 유강을 따라갈 거예요. 저를 책임져 주시기로 약속하셨으니까요.”
진소소의 단호한 태도에 신유강은 신음을 삼켰다.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보다 더 심한 꼴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신유강의 말에 진소소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제 한 몸 건사할 수 있어요. 이래 봬도 할아버지에게 무공을 배웠으니까요.”
진소소가 화사하게 웃음을 답하자 신유강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고서점 안에서 보았던 그녀의 움직임은 대단한 무림인들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말을 하는 진소소의 눈빛에, 신유강은 머리를 긁적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손에서 따스한 사람의 온기가 느껴져 화들짝 놀라 옆을 돌아보니, 진소소가 그의 손을 붙잡고 화사하게 웃었다.
“이러면 안 떨어지겠죠?”
신유강은 얼굴을 붉혔다.
* * *
“안 보인다고?”
“그, 그렇습니다.”
머리에 붕대를 두르고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는 왕윤은, 매섭게 눈앞에 있는 자를 쏘아봤다.
고작해야 점소이 놈 하나 찾는 것에, 미산검문의 전 문도들을 투입하고도 아직까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는 말에 심기가 뒤틀리는 것은 당연하다.
“고작해야 어린놈이다! 애송이이란 말이다! 그런 새끼 하나 못 잡아 온다는 것이 말이 될 성싶으냐!”
왕윤은 지끈 거리는 머리를 잡고 탁자 위에 있던 물건을 거칠게 그를 향해 던졌다.
퍽!
“큭!”
왕윤이 던진 목갑이 남자의 머리를 터트리고 떨어졌다. 남자는 한 차례 신음을 삼켰으나 이내 마음을 가다듬었다.
욱신욱신 머리에서 통증이 몰려왔다.
그러나 할 말은 해야 한다.
“하지만 소문주, 벌써 빠져나간 놈을 무슨 수로 잡겠습니까. 소문주가 당했던 곳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곳에 도랑으로 떨어진 흔적은 있지만, 그 뒤에는 아예 종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왕윤은 더욱 인상을 썼다.
그렇게 얻어맞았으니 멀리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또한 그곳에서 사람 사는 곳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고, 그가 내려오는 것을 본 이가 없다 하였으니, 아직까지 산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나 벌써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가 문도들을 시켜 신유강을 쫓은 지 몇 시진은 되었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죽었을 확률은?”
왕윤은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 않고는 기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으나, 그 당시 신유강의 상태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처참했다.
“크게 다쳤을 테니, 산을 내려와 의방을 가지 않았다면 짐승의 먹이가 되었을 겁니다.”
“의방에는 가 보았나?”
“이틀 동안 사천 성도는 물론이고, 인근에 있는 작은 촌락에 의방까지 저희 문도들이 감시를 하였지만, 못 찾았습니다.”
왕윤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아 사천을 빠져나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신유강이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죽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얻어맞은 상태로 치료조차 받지 않고 산을 거닐면 당연한 일이다.
“빌어먹을!”
자신의 손으로 복수를 하지 못한 것이 억울하고 화가 치밀 일이었으나, 신유강이 죽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물론 그렇다고 추적을 포기할 만큼 어리석은 그가 아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 주위를 잘 살펴라. 놈이 나타나는 즉시 알 수 있도록. 당분간 사천을 빠져나가는 길목을 전부 지키라 해라.”
“예!”
* * *
왕윤의 생각과는 다르게 신유강과 진소소는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을 실행시키듯 아직까지 사천에 머물고 있었으며, 두 아이가 있는 곳은 바로 웬만한 무인들조차 찾지 않는다는 사천당문의 땅이었다.
이곳은 본래 당문의 영역이긴 하나, 오랫동안 쓰지 않는 곳이었으며, 한때 하남에서 사천으로 넘어왔던 신유강이 근 한 달 동안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당문의 인물들에게 들키지 않았던 곳이다.
들킨다면 경을 칠 것이 분명하나 아직까지 그러한 낌새조차 없었다.
그곳은 버려진 폐가와도 같은 곳이었는데, 마른 지푸라기를 깔고 누우면 천운객잔에 있었던 신유강의 방보다 더욱 아늑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또한 바로 옆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우물이 있어 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먹을 것만 있다면 굶주리지는 않을 것이다.
“언제까지 이곳에 있어야 하나요?”
진소소는 지푸라기를 깔고 자리에 앉아 두 다리를 껴안은 채 물었다. 산을 내려와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 벌써 이틀이 지났다.
제대로 먹은 것이라곤 산에서 내려올 때, 캐 온 나물과 물 몇 모금 정도였기에 이틀 사이 두 사람은 부쩍 야위어 있었다.
“하루 이틀 정도만 더 있다가 움직이겠습니다. 객잔에 있는 방에서 돈을 가져와야 이곳을 떠날 수 있을 테니 말이죠.”
“아, 하지만 위험하지 않나요?”
그간의 모든 사정을 들은 진소소는 미산검문이라는 곳에서 신유강을 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들의 세력이 사천에서 네 번째에 든다고 하니, 자칫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단순하게 끝날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런 일에는 익숙하니까…… 괜찮습니다.”
신유강은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 하남에서 살고 있었던 신유강이 사천 땅으로 온 이유 또한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거지 소굴에서 살다가 동냥한 돈을 빼돌렸다는 이유로, 어린 거지 패를 관리하는 이에게 두들겨 맞았는데, 그 당시 신유강은 이를 악물고 맞섰다.
결국 그는 깨진 사기그릇으로 놈의 허벅지를 찌르고 도주를 했다.
그 때문에 거지 패들에게 쫓기는 신세를 면치 못했고, 그 경험 덕분에 미산검문의 추격을 지금까지 쉽게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진소소는 잠시 신유강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유강은 저보다 어린데 많은 일을 겪었군요?”
“아, 아가씨, 천한 놈입니다. 말을 낮추십시오.”
“유강이나 저나 똑같은 사람이에요.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고…… 그리고 저는 존대를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진소소의 말은 굉장히 따스하게 와 닿았다.
하나 무림의 일은 자세히 알지 못하는 신유강이지만, 하북의 진가를 모를 만큼 바보가 아니었다.
천운객잔에서 점소이를 할 당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 호사가(好事家)들에게 하북진가라는 곳이 정도를 대표하는 팔대세가 중 한 곳이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곳의 여식이라면 자신 같은 놈은 말을 내리는 것조차 불경스러운 일이다.
자칫 그녀가 세가로 돌아간 직후, 그것을 빌미로 걸고넘어지는 일이 생긴다면 신유강은 필시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