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둘의 손이 부딪힘과 동시에 자신의 몸에서 이상한 느낌이 일었고, 그 순간 당소혜가 날아갔다는 말을 들은 진소소는 자그마한 고개를 끄덕이더니 슬쩍 내력을 끌어올려 신유강에게 손을 뻗었다.
그것은 사람의 눈으로 쫓을 수 없을 만큼의 속도였다.
왕윤은 물론이고, 당소혜조차 보일 수 없는 고차원적인 수법이었다.
신유강은 깜짝 놀랐으나 그가 무언가를 해 볼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진소소의 손에 맺힌 살기가 진득하여, 저것이 닿는 순간 죽을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죽음을 떠올린 순간, 몸에서 기이한 기운이 몰아치며 반사적으로 그의 손이 움직였다.
퍽!
“윽!”
“아, 아가씨!”
당소혜 때와 마찬가지였다.
그가 인식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손이 움직이며 그것을 쳐 냈다.
또한 정작 괴로워해야 할 신유강은 태연하기 그지없었고, 오히려 그를 공격하려 한 진소소가 미간을 찌푸리며 신음을 흘렸다.
진소소는 괜찮다는 듯 손을 들었다.
당소혜와는 다르게 되돌아온 내력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서점에서 보았던 그 회귀신공의 효능인 것 같아요. 유강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아마 본능적으로 발휘되는 것 같네요.”
무공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했겠지만, 사실상 그러한 것 말고는 도무지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다.
유강은 일말에 내공조차 없는 일반인이다.
그런 그가 반 갑자의 내력을 가진 사천당가의 여식을 이겼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 아니던가?
더욱이 진소소의 실력은 당소혜보다 우위에 있는데, 신유강은 진소소의 공격에 조금도 타격을 받지 않았다.
회귀(回歸)!
여러 가지 뜻을 내포한 단어지만 가장 기본적인 뜻은 본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신유강이 몸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는 것을 느꼈다 하니, 그의 몸속에 있는 그 능력이 본능적으로 움직이며 그녀의 내력을 되돌려 보낸 것이 확실했다.
진소소는 가만히 신유강을 바라봤다.
“당 소저에게 맞았다고 했죠?”
“네, 여기저기 조금…….”
“지금은 어때요? 아픈 곳이 있나요?”
“그러고 보니…….”
신유강이 몸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곧 당소혜에게 맞았던 곳을 슬쩍 눌렀다.
그러나 그 어떤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고, 결코 다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진소소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어 당황한 듯한 신유강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절로 실소가 나왔다.
어쨌든 지금 그의 상태를 보니 회귀신공의 능력은 단순히 내력을 되돌려 보내는 것뿐이 아닌 듯했다.
“유강, 잠시 이리 와 봐요.”
신유강이 쭈뼛거리며 다가오자 진소소는 품에서 자그마한 단검을 꺼내 매섭게 그의 팔을 그었다.
“으아악!”
신유강이 기겁을 하며 팔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는데, 어느 순간부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으며, 흐르던 피가 절로 멈추었다.
그러곤 곧 검상이 나 있던 상처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이, 이건…….”
놀란 듯 말을 더듬는 신유강을 바라보며, 진소소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웃고 말았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지금 신유강의 전신은 회귀신공이라는 신에 필적하는 권능에 둘러싸여 있었다.
상처를 내도 상처가 없었던 상태로 회귀하니, 절로 치유가 되는 것이다.
이제부터 신유강의 몸은 언제나 최적의 상태를 유지할 것이며, 그 어떤 치명적인 독도 그의 몸에 침범하는 즉시 회귀의 권능이 그것들을 집어삼킬 것이다.
불사지체까지는 아니겠으나, 그것과 동등한 수준의 치유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몸 자체가 항상 최상의 상태로 회귀해 버리니, 그를 죽이려면 권능이 발휘되기 전에 목을 베든, 심장을 꿰뚫든, 아니면 사혈을 짚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정확한 것은 아니었기에 진소소는 혹시 신체가 절단되어도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심각한 고민을 했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신유강은 말 그대로 무적(無敵)이었다.
“저, 저는 어찌 되는 겁니까?”
“제 생각엔 득이 되면 됐지 별다른 이상은 없을 것 같네요.”
진소소는 나지막하게 말을 하며 웃음을 머금었다.
허둥지둥하는 신유강의 행동이 꽤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신유강은 다른 사람의 말은 쉽게 믿지 못했지만, 기이하게 진소소의 말에는 수긍이 가며 절로 믿어졌다.
그것은 그녀가 기연고서점이라는 신비로운 곳에 있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나긋나긋하게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절로 그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죠? 당 소저가 깨어나면 난리가 날 거예요.”
“그, 그렇겠죠?”
사천 당가의 여식인 당소혜는 자존심 하나로 똘똘 뭉친 소녀다.
어려서부터 중소문파의 인물들에겐 하늘처럼 떠받들어야 할 대상이었으며, 뒷골목 왈패들에게는 악귀(惡鬼), 동네 또래 아이들에게는 나찰(羅刹)이라 불렸다.
그런 당소혜가 무공이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신유강에게 얻어맞아 기절을 하였으니, 일어났을 때 들이닥칠 후폭풍은 절로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그렇게 되면 왕윤의 일은 고민 축에도 끼지 못하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당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큰일 나겠죠?”
“무, 물론입니다.”
어디 큰일뿐인가?
당 가주의 금지옥엽에게 상처를 입혔으니, 미산검문의 추격보다 더욱 집요하게 쫓아올 것이다. 더욱이 당가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일류를 오가는 고수들이니, 신유강은 목숨을 보전하지 못할 것이다.
진소소는 가만히 쓰러진 당소혜를 바라봤다.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 당소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차라리 이런 건 어떤가요?”
“방법이 있습니까?”
“그럼요. 사자무언(死者無言)이라고도 하죠.”
글을 알지 못하는 무지렁이 신유강이 그녀가 한 말의 뜻을 알 리가 없다.
신유강은 살짝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한마디로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거예요.”
스릉!
단검을 뽑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신유강은 기겁을 하며 그것을 바라보았고, 파르르 눈가를 떨던 당소혜가 실눈을 뜨며 그것을 바라봤다. 그 순간 매섭게 휘둘러지는 단검의 궤적에 기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잠깐! 나, 난 아무것도 몰라!”
소리를 지른 당소혜는 자신의 목 앞에서 멈춘 단검을 바라보며 파르르 눈가를 떨었다.
어찌나 살벌하고 매서운 속도인지, 기가 다 죽을 지경이다.
곁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신유강은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진소소는 틀림없이 당소혜를 죽이려 했다.
절대 장난삼아 저런 행동을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싱긋 웃고 있는 진소소의 모습이 나찰(羅刹)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이리라.
얌전해 보이는 외모에 가려진 무서울 정도로 냉정한 심성이었다.
신유강은 속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진소소에게만은 밉보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어머, 일어나 계셨나요? 꿈속에서 조용히 가는 게 편했을 텐데요.”
진소소는 진심으로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말에 담긴 뜻은 사나웠으나 살짝 두 볼을 부풀리는 행동이 어찌나 귀여운지, 그것을 본 신유강의 얼굴이 다 벌게질 정도였다.
그러나 당소혜는 긴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조금 전 단검을 휘둘렀을 때 보여 준 수법은 그녀가 결코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이가 어리기는 하나 자신보다 무위가 높은 이를 알아볼 안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소혜는 진소소의 무공이 자신에 비하면 아득하게 높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진소소에게 대드는 멍청한 짓을 하지 않았다.
당소혜는 비록 천방지축 날뛰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런 상황에서까지 상대를 알아보지 못하고 자기 고집을 피울 정도로 어리석진 않았다.
“우, 우선 이거 좀 치우고 말하는 게 어떨까?”
“당 소저라고 했죠. 저는 열일곱 살이에요. 몇 살이죠?”
“오, 올해 열여섯…….”
“저보다 한 살이 어리네요?”
“으, 응.”
진소소는 싱긋 웃음을 짓더니 단검을 당소혜의 가슴 깃으로 가져갔고, 그것을 슬쩍 그으니 옷고름이 잘려 나갔다.
“헙!”
신유강은 기겁을 하며 시선을 돌렸고, 당소혜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존댓말.”
“여, 열여섯입니다!”
“좋아요.”
당소혜는 찔끔 눈물을 흘리며 앞섶을 부여잡았다.
힐끔 시선을 돌려 신유강을 바라보니, 그는 다행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그러나 명문세가의 여식으로 태어나 한 번도 이런 대우를 받은 적이 없는 당소혜에게 매우 치욕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름은?”
“다, 당소혜…… 입니다.”
“예쁜 이름이네요. 저는 진소소, 이쪽은 유강이에요. 신유강. 안면이 있죠?”
당소혜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당했던 상처가 굉장히 욱신거린 탓에, 그를 보고 있는 눈빛이 좋지는 않았으나, 진소소에게 기가 죽어 차마 화풀이를 하진 못했다.
진소소는 그런 당소혜를 보며 눈을 빛냈다.
“정신을 잃은 건 아니였죠?”
“……네…….”
당소혜가 정신을 잃었던 것은 쓰러질 당시였다.
다행히 큰 상처가 아닌지라 금세 눈을 떴는데, 생전 처음으로 남자에게 업혀 있다는 사실에 대한 부끄러움과 고작 점소이에게 맞았다는 충격에 정신을 잃은 척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 두 사람의 모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실눈을 뜨고 바라보았을 당시, 진소소가 단검으로 신유강의 몸을 그어 버리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하였는데, 그 상처가 순식간에 낫는 걸 본 뒤에는 자지러질 뻔하였다.
‘사람의 상처가 어떻게……?’
소림의 대환단을 먹었다 해도 불가능할 것이다.
“지금 동생이 본 것은 그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 되는 비밀이에요. 그래서 미안하지만, 동생을 살려 줄 수가 없군요.”
진소소의 입가에 또다시 서늘한 미소가 맺혔다.
듣는 이로 하여금 오금이 저리게 만들 정도로, 차가운 말투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기에, 신유강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진소소를 돌아봤다.
그가 시선을 돌리자 창백한 안색의 당소혜가 놀란 듯 더욱 옷깃을 여미었다.
“아가씨, 당 아가씨께선 아무런 잘 못이 없습니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으로 입을 막는다는 것은 악인들이나 하는 행동입니다.”
신유강이 나서서 말리자 진소소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고서점에서 지금까지 그녀가 본 신유강은 자신에게 쩔쩔매며 공대를 하고 있었으나, 상당히 비상한 머리를 지녔다.
겁이 없고, 담도 컸으며 위기 상황에서도 항상 살 방도를 모색하는 남아였다.
그저 그런 자였다면 아마 지금쯤 미산검문의 사람들에게 붙잡혔을 것이다.
이곳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던 것도 신유강의 기지가 컸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놔두었다간 유강의 소문이 퍼질 거예요. 당가에서도 우리를 쫓아올 테고……. 미산검문 또한 가만히 있지 않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