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11화 (11/200)

# 11

“자, 이쪽으로 와. 소소 언니는 내 옆방에서 살면 되지만 너는 아니니까.”

당소혜는 순순히 이들을 데리고 거처로 향했다.

가면서도 그녀는 은근히 진소소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치를 살폈다.

진소소가 싱긋 웃음을 짓는 것을 보며 한 차례 소름이 돋았으나 이내 마음을 굳게 먹었다.

‘겨우 한 알 먹었는데 내공이 삼십 년이나 올랐어. 두 알이면 일 갑자가 될 거야.’

당소혜가 진소소와 신유강을 받아 준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대충 만들었다며 먹였던 선기단을 한 알로 내공이 반 갑자나 올랐고, 진소소의 말을 들어주기만 한다면 한 알을 더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세가의 무사들을 동원하여, 강제로 빼앗을 수는 있지만 당소혜는 욕심이 많았다.

만약 세가에서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필시 진소소의 선기단을 빼앗을 것은 분명하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만큼 오라비나 언니들에게도 돌아갈 것이다.

당소혜는 그것이 싫었다.

혼자 차지해도 모자랄 판국에 다른 이들에게도 나눠 준다고?

절대 사절이었다.

진소소가 가지고 있는 옥병에는 선기단이 한가득 들어 있고, 원하는 것을 들어줌으로써 하나씩만 얻어먹어도, 내공으로 콧대 높은 언니 오빠들을 눌러 버리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어쩌면 강호 역사상 최강의 여걸이 탄생할지도 몰랐다.

당소혜는 장밋빛 꿈을 꾸며 히죽거렸다.

‘어린 애들은 다루기가 쉽다더니 정말이네.’

반면 앞서 가는 당소혜를 바라보며 진소소는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선기단을 이용해 사천당가의 들어온 것은 맞지만 그녀는 더 이상 선기단을 줄 생각이 없었다.

한 알만 해도 그 값을 측정할 수 없는 보물을 함부로 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녀에겐 굳이 선기단이 아니더라도 당소혜를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신유강처럼 삼 층에 오르진 못했지만 그녀 역시 기연고서점에서 기연을 얻었다.

지금까지 그것을 단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원한다면 언제든지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주위에 있는 적을 위협할 수 있었다.

고로 당소혜의 꿈은 이룰 수 없는 헛된 것이다.

“여기가 네 처소야.”

당소혜가 안내한 곳은 허름한 창고였다.

창고의 외관은 차라리 진소소와 함께 숨어 있었던 곳이 훨씬 나을 정도였다.

너무 낡은 곳인지라 바람은 숭숭 들어왔으며, 바닥은 눅눅하여 지푸라기를 깔아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또한 냄새가 어찌나 나는지 절로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이곳이 제가 머물 곳입니까?”

“물론이야. 본래라면 하인들이 쓰는 거처로 가야 되는데, 그곳은 자리가 없어. 하인들 중 누가 죽거나 나가면 옮겨 줄게.”

무서운 말을 서슴없이 한다.

“차라리 아까 그곳에서 먹고 자는 게 낫겠습니다.”

“너무 멀잖아? 그리고 하인 한 명 때문에 매일 문을 열고 닫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랬다간 문지기들이 너를 괴롭힐걸?”

생각해 보니 그건 곤란했다.

하지만 거지들조차 살 수 없을 것 같은 곳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이 꺼림칙했다. 바닥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온갖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게 소름이 다 돋을 지경이었다.

“유강은 나와 함께 지내요. 그럼 되죠?”

“네에? 아가씨와 제가 말입니까?”

“나,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도 몰라? 그건 내가 절대 허락 못해.”

당소혜는 앙칼지게 소리를 쳤고, 신유강도 당황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비록 거지 소굴에 있을 때에는 남녀가 뒤엉켜 잠을 자곤 했지만, 진소소는 거지패들도 아니었고, 엄연히 명문세가의 자식이지 않은가?

이렇게 자신 때문에 당가에서 시녀 노릇을 하는 것 자체도 죄스러울 지경인데 더 폐를 끼칠 순 없었다.

“유강은 내 동생 같은 아이에요. 무슨 문제라도?”

“그…… 그거야…….”

진소소는 더듬거리는 당소혜의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이윽고 상큼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존댓말을 쓰라고 말을 했었죠?”

“그, 그치만 여긴 당가 안이고, 내가 존댓말을 쓰면 다들 이상하게 여길 거고…… 그러면…….”

“뭐 좋아요. 그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네요. 하지만 유강을 이런 곳에서 자게 하는 건 절대 용납하지 못해요. 내 방에서 같이 살아도 되죠?”

“윽…….”

당소혜는 말이 없었다.

어찌 대응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친남매와 비슷하다고는 하나 둘은 핏줄이 이어지지 않은 남녀였다.

‘혹시 내 옆방에서…… 그…… 그렇고 그런…….’

당소혜는 무엇을 상상했는지 시뻘겋게 얼굴을 붉혔다.

“저, 절대로 안 돼!”

“당 동생,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지만, 오해는 하지 말아 줄래요?”

“따, 딱히 오해 같은 건 하지 않았는데…….”

진소소는 뚫어지게 당소혜의 얼굴을 바라봤다.

매섭게 내려다보는 시선에 당소혜는 기가 죽었는지 몸을 움츠렸고, 결국 항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 몰라! 하지만 나중에 하인들 방이 비면 그곳으로 옮겨야 할 거야!”

“그건 그때 가서 생각을 하도록 하죠.”

진소소는 또다시 의미 모를 미소를 머금었다.

성큼성큼 다시 앞서 걷고 있는 당소혜가 안내를 해 준 곳은 그녀가 머물고 있는 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어렸을 적 당소혜의 유모가 사용하던 방이었는데, 그녀가 당가를 나가게 된 이후부터 비어 있는 곳이다.

내부는 깔끔하면서도 아담했다.

침상은 둘이 자기에는 넓다 싶을 정도였으며, 당소혜의 방과도 근접해 있는지라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구경하고 있는 진소소와는 다르게, 신유강은 머뭇거리며 문턱을 넘지 못하였고, 당소혜는 뭐가 그리 불만인지 두 볼을 가득 부풀리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

“뭐해요, 들어오지 않고?”

“아가씨, 제가 그냥 아까 그곳에서 자겠습니다.”

“아니에요. 괜찮으니 들어와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진소소는 웃음을 지으며 신유강의 팔을 잡아끌었다.

팔에서 느껴지는 온기 때문에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으나, 그는 이내 잡념을 떨치며 침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바로 옆에는 진소소가 있어 무릎과 무릎이 맞닿을 거리였다.

“제가 왜 유강과 함께 방을 쓰려는지 아세요?”

“자, 잘 모르겠습니다.”

“유강은 걸어 다니는 절세 비급과 마찬가지에요. 그것도 무림 역사상 한 번도 나타난 적 없는 힘이죠. 만약 누군가에게 그것을 들키기라도 하면 큰 일이 날 거예요. 그러니 항상 조심, 또 조심해야 해요.”

신유강은 진소소의 기세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부터 유강에게 틈틈이 글공부를 시킬 거예요.”

“공부요?”

“네 공부요. 머릿속에 비급들이 들어 있지만, 아직 읽지는 못하죠?”

“네.”

“유강은 공부를 하면서 그것들을 익혀야 해요. 그리고 또…….”

“또 뭐가 있습니까?”

신유강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진소소를 바라봤다.

뜸을 들이는 것이 약간이지만 불안감이 엄습했다.

“석 할아버지의 무공을 익히세요.”

“네에?”

“고서점의 주인이었던 할아버지의 무공 말이에요.”

“그걸 제가 어찌 익힙니까?”

진소소는 이런 방응을 보일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서점 주인의 무공인 선선운현무(扇仙雲現武)는 그녀가 얻었던 기연과는 별개로 익힌 것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도 다른 누구에게 전수를 하지 말라는 소리를 한 적은 없었다.

게다가 그것은 삼백여 년 전 절세의 고수이자 천하제일인이었던 석무자의 신공이다.

“익히지 못하면 죽어요, 유강.”

“주, 죽는단 말입니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상처 하나 입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신유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운이 나쁘면 넘어질 수도 있으며, 누군가의 싸움에 말려들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유강의 몸은 저절로 치유가 되겠죠. 그걸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조금 전만 봐도 당 가주에게 다른 일이 없었다면 큰일이 날 뻔했어요. 그러니 최소한 자신의 몸을 지킬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녀의 타당한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진소소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것은 무언가 약속을 하자는 의미인지라 신유강은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내밀어 걸었고, 진소소가 환하게 웃음을 지으며 도장까지 찍었다.

“이곳에서 글을 익히고 무공을 익힐 때까지만 머물러요. 그리고 그다음엔 우리가 남들 눈치 안 봐도 살 만한 곳으로 가요. 알았나요?”

신유강은 그녀의 물음에 대답을 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네, 아가씨.”

“유강, 저를 똑바로 봐요.”

“왜 그러십니까?”

“내 이름은 아가씨가 아니에요. 이제부터 소소라고 불러요. 그리고 내 앞에서 그렇게 기죽은 말투도 쓰지 말고 당당해져요. 예전의 유강은 지금 이 순간부터 죽은 거예요.”

이것은 그녀의 오해였다.

그녀는 알지 못하나 신유강은 언제나 당당했다.

그렇지 않으면 왕윤 같은 놈에게 어찌 고개를 숙이지 않았겠는가.

또한 객잔에서 당소혜에게 얻어맞으면서도, 신음 한 번 흘리지 않았을 만큼, 그의 성격은 굉장히 남자다웠다.

다만 진소소에 비해 자신의 신분이 천하다는 것과 기연고서점, 그리고 여러 가지 일들이 겹치면서 잠시 기가 죽은 것뿐이었다.

신유강은 가만히 진소소의 눈을 바라봤다.

가녀린 여인의 몸으로 조부를 잃고도 흔들림 없는 눈빛과 행동은 능히 존경받아 마땅할 만한 여걸이다.

신유강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동안 그답지 않았다는 생각이 번쩍 든 것이다.

하도 이런저런 일이 겹치는 통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신유강은 고개를 끄덕였고, 진소소는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럼 먼저 이론부터 시작을 하죠.”

진소소는 그날 선선운현무의 기초 이론과 천자문을 가르치기 시작을 하였고, 이날을 기점으로 신유강의 인생은 크게 달라지고 있었다.

* * *

어두운 밤, 신유강은 곤히 자고 있는 진소소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바닥에 누워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에는 알 수 없는 구결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것은 틀림없이 회귀신공의 구결이었으며, 그중에서 신유강이 읽을 수 있는 글자는 진소소에게 배운 것뿐이었다.

그것은 회귀신공의 첫 장에 쓰여 있는 단어.

회귀하라.

* * *

신유강은 번쩍 눈을 떴다.

‘둘…… 셋.’

꼬끼오-!

닭이 우는 것과 동시에 그는 슬슬 자리에서 일어섰다.

길게 하품을 하며 간단하게 몸을 푼 신유강은 벌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시원한 새벽 공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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