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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신공-12화 (12/200)

# 12

신유강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가 머물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자그마한 빗자루다. 신유강은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 인상을 찌푸렸다.

“니미 시벌…….”

이 이야기는 만이천칠백칠십오 번 반복된 이야기였다.

第四章. 회회인생(回回人生)

신유강은 빗자루를 들고 열심히 천운객잔의 마당을 쓸었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으며, 지금까지 단 하루도 거르지 않은 아주 개 같은 일이었다. 먼지가 사방으로 날리는 탓에 절로 기침이 나왔으며, 입고 있던 백의는 순식간에 더러워졌다.

“이 돌고 도는 미친 인생아, 어쩌려고 그러냐?”

고작 열다섯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년의 입에서 나올 법한 소리는 아니었으나, 세월의 한탄이 뒤섞인 말투에는 마치 중년인의 느낌이 물씬 풍겨 왔다.

신유강은 이 회귀의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만이천 번이 넘는 회귀를 하면서, 진소소를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만났으며, 그녀에게 온갖 이야기를 털어놓고 자문을 구했기 때문이다.

신유강은 그간 진소소 덕분에 글자를 떼었고 무공을 익혔다.

회귀를 할 때마다 찾아가 처음부터 다시 설명을 해야 하는 게 미칠 것만 같았으나 지금은 그것이 아주 당연하게 생각되어 진소소를 납득시키는 것에는 도가 텄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신유강은 이 회귀신공을 만든 현선자라는 인간을 저주했다.

글을 다 떼고 난 뒤 구결을 모두 읽어 보니 내용은 아주 개판이었다.

첫 장에 있는 회귀하라라는 단어를 제외하면, 다른 것들은 전혀 구결 같지 않았고, 그저 이 회귀신공을 어째서 만들었는지에 대해 쓰여 있을 뿐이다.

사람은 때때로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있다.

그러나 실제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 자체는 우스운 일이며, 결코 인간의 힘으로는 이룰 수가 없다.

그런데 회귀신공을 만든 현선자는 신인의 경지에 오른 지고지순한 이였다.

기연고서점 삼 층에 있는 모든 책들은 대개 한 분야에서 신의 반열에 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단한 이들이 쓴 것들이니 당연하다.

현선자는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고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신공을 만들어 내었고, 그 결과가 이 회귀신공이라는 엿 같은 무공이다.

게다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 현선자는 아주 진지한 필체로 이리 써 놓았다.

절대 익히지 마라.

“…….”

현선자 본인 또한 첫 구결을 쓴 뒤부터 수십만 번의 회귀를 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는 신의 경지에 오른 이였기에 겨우겨우 회귀에서 빠져나왔으나 자기가 만든 이 회귀신공이 얼마나 무서운 마공인지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듯 절대 익히지 말라는 말을 남긴 것이다.

어쨌든 첫 번째 구결 뒤에 이어진 두 번째 구결은 비교적 간단했다.

다스려라.

“까고 있네, 아주.”

기운을 다스려야만 이 이 회귀를 멈출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진소소에게도 이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녀도 답을 생각해 내지 못했으니, 신유강은 아주 미칠 지경이었다.

기운은 만이천 번이 넘는 회귀를 경험했음에도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다치면 치유하고, 매번 제멋대로 회귀를 해 댔다.

주인의 말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는 아주 괘씸한 놈이었다.

“호호, 고작 마당 좀 쓰는 거 가지고 무슨 푸념을 그리하니?”

신유강은 돌아보지 않아도 말을 건 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씹어 먹어도 시원찮은 손금운의 딸이며, 자신의 손에 회귀신공을 들어오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여자아이.

만약 손약란이 왕윤에게 쓸데없는 이야기만 하지 않았다면, 왕윤이 자신을 노리는 일도 없었을 테고, 신유강이 기연고서점을 찾아갈 일도 없었을 것이다.

신유강은 한껏 인상을 쓰며 말했다.

“넌 잠도 없냐? 어서 가서 잠이나 자라.”

“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유강이랑 나랑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난다고! 그리고 내가 누나거든!”

‘내가 네 나이의 곱절은 더 먹었다.’

회귀를 한 횟수를 나이로 환산을 한다면 사십은 훌쩍 넘었을 것이다.

물론 조금 더 깊게 파고든다면 다른 이들 또한 예전으로 돌아왔으니 그와 비슷한 나이라 할 수 있는데, 기억을 하지 못하는 자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자의 차이는 크다.

손약란은 그런 신유강의 기분 따위는 알 리가 없기에 잠시 미간을 찌푸리다가 이내 마음을 풀고 한껏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신유강의 표정은 여전히 시큰둥했다.

아무리 예쁜 옷을 차려입고 예쁜 짓을 한다 하여도, 이미 그의 머릿속에 있는 진소소의 외모에 비해면 손약란은 전혀 예뻐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회귀를 반복할수록 변함 없는 손금운의 행태를 보면 이가 갈리니, 절로 그 딸인 손약란에게 좋은 감정이 들 수가 없는 것이다.

“어때?”

“뭐가?”

“이 옷 말이야! 서역에서 들여온 비단으로 만든 거야.”

신유강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진소소가 입는다면 탄성을 내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손약란이었으니,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고울 리 없다.

“호박의 줄긋는다고 수박 되냐?”

“이씨! 죽을래?”

신유강은 휘휘 손을 내저었다.

그것은 마치 파리를 내쫓는 듯한 행위였기에 손약란은 기분이 상했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바로 어제만 해도 얼굴을 보면 그나마 반가운 기색이라도 보였는데, 갑작스레 변한 신유강의 태도에 의아함을 느낀 것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너 오늘 왜 그래?”

“아무 일도 없다.”

신유강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더욱 세차게 빗질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자욱하게 먼지가 날리니 손약란이 콜록거리며 기침을 했다.

기이하게 먼지는 그녀가 서 있는 곳을 향해 날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유강이 일부러 그런 것이리라.

“유강! 먼지…… 콜록!”

“그러니 어서 들어가서 자라니까.”

“에이 씨! 옷 다 버렸네.”

손약란은 투덜거리며 옷을 털며 사라졌다.

신유강은 한 차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한숨을 쉬며 마당을 쓸기 시작했다.

* * *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드는 정오 시간.

이 시간이 되면 신유강은 정말이지 정신없이 바쁘다는 말로도 표현을 할 수가 없을 만큼 분주했다.

점소이를 하나 더 구하면 괜찮을 텐데, 손금운은 그것을 거부하였고, 그런 이유로 객잔 안에 모든 일을 혼자 도맡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유강은 오늘 객잔에 있지 않았다.

“엿이나 먹으라지.”

정문을 깨끗하게 쓸어 놓기는 하였으나 방 안에 고이 모셔 두었던 은자 열 냥을 꺼내어 혼자 저자거리를 나돌고 있었다.

지금쯤 손금운이 그 거대한 몸집으로 뒤뚱뒤뚱 움직이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고 있을 생각하니, 절로 고소해졌다.

신유강은 꼬치 하나를 입에 물고 걸었다.

어차피 이틀만 지나면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된다.

굳이 손금운에게 맞춰 줄 필요도 없었으며, 하고 싶은 대로 하면 그만인 것이다.

객잔의 정문을 쓸어 주는 일은 그나마 칠 개월 동안 먹여 주고 재워 준 값이었다.

“이거 유강이 아니야? 네가 지금 시간에 저자거리에 나오고…… 돈돈자(豚豚子) 놈이 뭐라 하지 않더냐?”

신유강에게 말을 건 것은 천운객잔의 단골들이었다.

그들은 손금운을 돈돈자라 불렀는데, 그것은 돼지보다 더 돼지 같은 자식이라는 욕을 담은 별칭이었다. 신유강은 씩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쯤 땀 좀 흘리고 있으실 거예요. 말없이 나왔거든요.”

“하하하! 그래, 잘했다. 그놈은 골탕을 한번 먹어 봐야 돼.”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신유강의 처지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

본래 다른 객잔에서 일하고 있었던 신유강을 은자 네 냥이라는 거금으로 꼬드겨 데리고 가 놓고, 제대로 봉급을 주긴커녕 사람대우조차 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유강아, 차라리 우리 객잔으로 돌아오면 어떠냐. 내가 은 네 냥은 주지 못하지만, 세 냥은 줄 수 있다.”

다른 객잔의 주인 하나가 지나가는 신유강을 향해 큰 소리를 쳤다. 그러나 신유강은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웃을 뿐이다.

점소이 생활은 이제 지긋지긋했다.

사십이 넘는 세월 중 절반 이상을 점소이로 보냈으니 질려도 한참 질린 것이다.

신유강이 원하는 것은 먼저 이 개 같은 회귀를 풀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

‘다른 일로 돈을 벌어 객잔을 운영하는 것도 좋겠지.’

신유강은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사람들이 잘 찾아오지 않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한때 당소혜와 마주쳤던 곳이며 진소소와 함께 이틀의 시간을 보냈던 곳이기도 했다.

허름한 창고와도 같은 곳으로 들어선 신유강은, 조용히 주저앉아 머릿속에 있는 구결들을 풀어 헤쳤다.

요즘 그는 이 구결을 풀어내는 것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고 있었고, 기운을 다스려 회귀를 멈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며 기운들을 움직이려 해도 쉽지가 않다. 진소소에게 많은 것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회귀신공은 무학이자, 무학이 아니기에 더욱 미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시진이 가고, 두 시진이 지났을 때 신유강은 눈을 떴다.

“역시 안 되는구나.”

다스려라.

기운을 다스리는 것만이 이 끝없는 회귀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데, 신유강은 도무지 그 해답을 이끌어 낼 수가 없었다.

고서점의 주인에게도 몇 차례 물어보았으나, 항상 대답은 같았다.

내공을 다스리는 것과 회귀신공의 기운을 다스리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그것은 회귀신공이 선택한 주인인 신유강이 풀어야 할 과제라고 하였다.

신유강은 실없이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느새 날이 저물어 갔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군.”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신유강은 폐가를 빠져나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폐가의 뒤에 있는 산을 거침없이 타고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하루이틀 산을 탄 이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신유강이 향하고 있는 곳은 바로 기연고서점이다.

기연고서점은 낮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저녁에만 문을 연다.

그 때문에 하루 종일 해가 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그의 일과가 되었고, 그 뒤에는 당연하게 산을 타고 움직였다.

처음으로 회귀했을 당시에는 어디에 있는 줄 몰라 엄청나게 헤맸다.

과거의 일이 떠오르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 신유강이 미소를 지으며 발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는 회귀를 하며 무공을 익혔지만 어디까지나 이론뿐이었다.

백날 단련을 해 봐야 처음 그 상태로 돌아와 버리니, 진소소가 알려 준 무공을 익히는 것은 이미 반쯤 포기한 그였다.

신유강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웃었다.

이윽고 머지않은 곳에 기연고서점이 보였다.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는 등불이 불을 밝혔고, 은은하면서도 기이한 기운이 주위에 흘렀다. 그것은 아마도 인연자가 아니라면 결코 고서점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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