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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신공-13화 (13/200)

# 13

장원 앞에 서 있는 진소소의 모습을 본 신유강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애타게 밖에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그녀는 틀림없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 그녀의 입장에선 누구인지도, 언제 올지도 모르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신유강은 한 걸음에 달려가기 위해 걸음을 내딛다 바위에 걸려 그대로 넘어졌다.

“크윽…….”

“어머 괜찮으세요?”

소리가 들린 쪽으로 달려 온 진소소가 넘어진 신유강을 바라보며 깜짝 놀랐다. 이윽고 품에서 약을 꺼내려 했는데, 찢어진 옷 사이로 보이는 맨살은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하기만 했다.

진소소는 고개를 갸웃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여긴?”

짐짓 아무것도 모른 척 묻자 진소소는 의아해 하면서도 밝게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그녀가 보일 수 있는 최고의 미소였으며, 보고 있는 신유강의 마음을 흔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기연고서점이에요. 손님은 정말 오랜만인데…… 할아버님의 점괘가 맞아서 다행이네요.”

진소소는 그리 말을 하며 신유강을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신유강이 참 기이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보통 이곳에 처음 온 사람들은 기겁을 하며, 땅에 머리를 조아리거나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혹은 도깨비에게 홀렸다고 생각하며 줄행랑을 치는 이들도 있었는데, 이 남자는 아주 태연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였다.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식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진소소는 어이없어 웃었다.

‘에이, 설마 그건 말도 안 돼.’

이곳은 결코 드러나지 않고, 결코 누군가에 입에서 흘러나오지 않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 어서 들어가요. 할아버님이 기다리고 계셔요.”

오랜만에 본 사람이었기 때문에 진소소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자신과 같은 또래 아이가 고서점을 찾은 것은 처음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물론 이 소년이 고서점을 나가면 더 이상 인연이 없을 테지만, 그래도 또래아이와 이야기 하는 것이 도대체 몇 년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진소소는 쿡 하고 웃음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고서점 안으로 들어선 신유강은 변함없이 잠을 자고 있는 노인을 바라봤다.

‘이름이 석무자라 했던가?’

몸은 허공에 떠올라 있었으며, 긴 수염과 긴 눈썹이 참으로 인상적인 노인네다.

그러나 처음과는 다른 것은 진소소가 깨우지 않았는데, 석무자가 눈을 떴다는 점이다. 신유강은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수많은 회귀를 거치며 항상 행동이 똑같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소소야, 그 아이는 누구냐?”

“할아버지, 보면 모르세요? 손님이잖아요.”

“허허, 오늘 와야 할 손님은 나이가 많은 중년인이었는데?”

석무자의 말에 진소소는 빤히 신유강을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중년처럼 보이지 않았기에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반로환동을 한 사람일지도…….”

“예끼, 이 노부도 하지 못할 것을 이런 꼬맹이가 했다고? 에잉, 소소야. 요즘 영웅담에 너무 빠져 있는 것 아니냐?”

“그렇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술시(戌時)에 나타난 사람은 이 아이밖에 없었어요, 할아버지.”

석무자는 진소소의 말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순식간에 신유강의 앞으로 다가왔다.

몇 번을 봐도 놀라운 움직임이었다.

“네놈, 이름이 무엇이냐?”

“신유강이라 합니다.”

“으음…… 나이가 몇이고?”

“올해…… 열다섯?”

이 부분에 대해서 신유강은 자기가 말해 놓고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석무자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점괘에 따르면 오늘 올 손님은 적어도 사십이 넘은 이였다.

또한 점괘가 대단하여 안심하고 소소를 맡길 수 있을 인물이라 생각을 하였는데, 전혀 뜻하지 않은 아이가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고 인연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이곳을 찾을 수 있는 자는 인연자밖엔 없으니까.

“으음……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좋다. 어디 한 번 책을 골라 보아라.”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신유강은 그것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기이하게도 신유강은 처음 회귀신공을 얻은 뒤로 두 번 다시 삼 층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그것은 이미 그가 희귀신공이라는 절세의 신공과 인연이 이어져 있으니, 더 이상 삼 층과는 인연이 없다는 뜻 같았다.

신유강은 느긋하게 일 층을 돌며 책을 찾기 시작했다.

이미 이곳에 있는 서적 중 삼 할을 읽었다. 회귀를 할 때마다 한 권씩 얻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것을 기억할 만큼 머리가 뛰어난 것은 아닌지만, 어쨌든 이 많은 서적들 대부분을 읽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신유강은 적당히 주위를 둘러보다 한 권의 책을 꺼내었다.

이미 대부분 본 책들이고, 삼 층에서 회귀신공을 얻었을 때와는 다르게, 글자가 머릿속에 박히는 것이 아닌, 실제로 책을 읽어야 했다.

제목조차 보지 않은 책을 아무렇게나 꺼내 들자, 노인은 마치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장부에 마지막 장을 기록해 나갔다.

이윽고 다음 일은 일사천리(一瀉千里)다.

평소와 같은 말, 울먹이는 진소소, 사라지는 노인.

이 모든 것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똑같이 일어났으며, 그것을 보고 느끼고 있는 신유강은 하품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할아버지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어린 손녀의 신파극은 이제 지긋지긋할 정도였다.

노인이 사라지기 무섭게 신유강은 책을 품에 넣고 잽싸게 달려가 진소소를 끌어안았다.

그 순간 돌풍이 몰아치며 그들을 고서점 밖으로 내쫓았고, 곧 쾅! 하는 거친 소리가 들리며 정문이 닫혔다.

이윽고 안개가 짙게 끼기 시작하며 모든 등불이 꺼지고, 기연고서점은 말 그대로 침묵에 잠겨 버렸다.

신유강은 지끈 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눈을 떴다.

진소소를 만나기 위해 이곳으로 올 때마다 생각이 드는 것이지만, 저 돌풍은 은근히 사람을 짜증나게 했다.

조용히 문 밖으로 나가게 하면 그만인 것을 꽤 먼 곳까지 사람을 날렸기 때문에 나무에 부딪치지 않게 온갖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하여튼.”

신유강은 혀를 쯧쯧 내차며 품 안에 고이 잠든 진소소를 바라봤다.

할아버지를 잃은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돌풍의 영향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 이각 동안은 깨지 않을 것이다.

“일단 돌아갈까?”

진소소의 키는 신유강보다 한 뼘 정도 더 컸는데도 등에 업혀 있는 그녀의 무게는 깃털처럼 가볍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신유강은 다른 때보다 잘 깨지 않는 진소소의 얼굴을 한 차례 바라보더니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진소소를 알지 못하였다면 만이천 번이 넘는 회귀를 경험하며 신유강은 미쳐 버렸거나, 혹은 자결을 하기 위해 무수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라 하지만, 같은 날이 수도 없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자신 혼자 그것을 깨닫고 있다는 것은 괴롭다는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들게 했기 때문이다.

초창기에는 그녀를 붙잡고 울고불고 난리를 폈고, 몇 번은 참다못해 그녀의 단검으로 스스로 목을 그어 버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목을 그어 버리는 순간, 다른 때보다 배 이상 빠르게 움직인 회귀의 공능이 목을 순식간에 치료해 버렸다.

한마디로 회귀의 공능이 움직이는 것보다 빠르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는 절대 죽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유강은 이제 자신의 몸이 괴물이라 불려도 시원찮을 것임을 잘 알았다.

또한 진소소와 처음 만났을 당시 그녀가 왜 그리 걱정을 했는지도 뼈저리게 깨달았다.

만이천 번이 넘는 회귀를 하며 괴물 같은 치유 능력을 무인들에게 들킨 적이 수도 없었고, 회귀의 주기인 삼 일이 지날 때까지 쫓긴 적도 있었다.

한 번은 미산검문주에게 붙잡혀 온갖 고문을 당하였고, 또 한 번은 당가의 인물들에게 붙잡혀 독물 실험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신유강은 당시의 일을 떠올리다 인상을 썼다.

“미친…….”

“저, 저기?”

욕을 내뱉는 그의 귀에 진소소의 당혹스러운 음성이 들려 왔다.

시선을 돌리자 업혀 있는 그녀와 눈을 마주쳤는데, 얼굴이 맞닿을 거리라 그런지, 진소소가 화들짝 고개를 뒤로 젖혔다.

신유강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몇 번을 경험해도 그녀와 처음 대화하는 것은 어색했기 때문이다.

“일어나셨습니까?”

“아, 네, 감사해요. 그런데 지금 어디를 가는 거죠?”

진소소는 조금 전 일어났던 일들을 상기하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사라지는 것에 큰 충격을 받고 쓰러진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뒤로는 전혀 떠오르지 않으니, 자신이 왜 이 남아에게 업혀 있는지, 이 소년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의문이 든 것이다.

“제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갑니다.”

“아, 그래요?”

진소소는 약간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이야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다른 아이들의 비해 성숙하게 컸기에 말투가 이렇다 하지만, 이 열다섯밖에 되지 않는 어린 녀석의 말투가 기묘했던 탓이다.

“소소는 따로 갈 곳이 있습니까?”

“네에? 아, 없어요.”

진소소는 돌연 자신의 이름을 입에 담는 남아를 보며 더욱 정신이 없었다.

마치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람을 부르듯, 쉽게 이름을 입에 담았기 때문이다.

‘어려서 그런가?’

또한 진소소는 업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려 달라는 소리를 하지 못하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기이하게도 마치 할아버지의 등에 업혀 있는 것처럼 편안했다.

“저기…… 신유강이라고 했죠? 혹시 우리가 어디서 만났던가요?”

“그런 적 없습니다.”

“그, 그래요?”

신유강은 실실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삼 일 뒤면 모두 잃어버릴 테니, 굳이 밝힐 생각이 없었다.

이미 수많은 회귀를 하면서 그녀에게 들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들었고, 이제는 자신의 힘으로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가 기연고서점에 들어간 이유는 단순히 그녀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였다.

회귀 중 고서점을 찾아가지 않은 날도 있었고, 날짜로 따지면 신유강은 진소소의 얼굴을 두 달 만에 보는 것이었다.

둘은 묵묵히 걸었다.

진소소는 어색한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여전히 신유강의 등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신유강은 천천히 산길을 타고 걸으며, 오랜만에 느끼는 그녀의 온기에 기분이 좋은 듯 웃고 있었다.

그렇게 약 한 시진 정도 걸어 천운객잔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손님들이 죄 빠져나갔고, 객잔의 불 또한 꺼져 있었다.

객방에는 몇 명의 손님들이 있는 것 같았지만, 신유강이 신경을 쓸 이유는 없었다.

“여기가 유강이 사는 곳인가요?”

“제 집은 아니고. 얹혀사는 처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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