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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신공-16화 (16/200)

# 16

다만 손약란이 고운 아미를 찌푸리며 사라지고 있는 신유강과 진소소의 뒤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 * *

“대단히 재미있는 분이네요.”

방으로 들어온 진소소는 어느새 침상에 누워 조용히 입을 열었다.

또래의 아이, 그것은 같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와 말을 섞는다는 것이 어린 진소소에겐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재미있는 하루를 보낸 듯한 기분이다.

“다행입니다. 저는 소소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말이죠.”

신유강은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만약 왕윤 때문에 진소소가 기분을 망치면 어찌할까 하는 두려움에 몸서리가 쳐졌기 때문이다.

진소소는 어리지만 강하다.

또한 나긋나긋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한 번 수틀리면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독하게 변한다.

객잔에서 그녀가 일을 하는 동안, 혹여 그 불같은 성질이 나오지 않을까 내심 불안했던 신유강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네요. 왕윤이란 그 아이,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재미있는 걸요.”

“다, 다행이군요.”

몇 번의 회귀를 거치며 진소소는 품에 숨겨 놨던 단검으로 왕윤의 국부를 잘라 버린 적도 있었으나, 차마 그 사실을 입에 담지 못하는 신유강이었다.

신유강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그때 나지막하게 진소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서점에서 얻은 책은 어떻게 됐나요?”

신유강을 만나 지금까지, 그가 책을 보고 있는 것을 전혀 본 적이 없었던 진소소는 혹시 그가 책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여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신유강은 그 책에 대해 전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미 서점에 있던 책들은 대부분 본 그였고, 제목조차 보지 않고 뽑아 온 것인지라 이미 본 책일 가능성 또한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보지는 않았습니다.”

신유강의 말에 진소소가 몸을 뒤척이며 침상 아래 있는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기연고서점 내에 있는 책들은 한 분야에서 선인의 능력을 얻은 이들의 책이다.

그 비급을 얻은 자는 말 그대로 기연을 얻는 것과 같았는데, 신유강은 그러한 물욕이 전혀 없는 모양이다.

“한 번 봐요. 어떤 책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진소소가 슬그머니 말끝을 흐리자, 신유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품속에 고이 넣어 두었던 책자를 꺼냈다.

그리고 두 쌍에 눈빛이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진소소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고, 신유강은 미간을 찌푸렸다.

책은 생각했던 것보다 얇다.

또한 쓰여 있어야 표제가 없었으며, 한 장을 넘기자 있어야 할 단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백지였다.

“어…….”

진소소는 그것을 바라보며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기연고서점은 수만 권의 책이 있고, 그중에서 특이한 책들 또한 있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책이 있다 한들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괜찮아요. 제, 제가 석 할아버지의 무공을 알려 드릴게요.”

진소소는 자못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 했다.

평생에 한 번 있는 기연, 그 기회를 고작해야 백지 책으로 날려 버렸으니 만큼,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신유강은 멀쩡하기 그지없다.

그는 그저 가만히 백지뿐인 책을 바라보다 이내 방 한 구석으로 집어던지고는 미소을 지었다.

그 연륜이 담긴 미소는 결코 소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지라, 진소소는 기이하다는 표정이다.

“괜찮습니다. 책보다 더한 것을 얻었으니 말이죠.”

의미 모를 그 말에 진소소는 골똘히 머리를 굴리다가 신유강의 눈동자가 자신에게 향했다는 것을 상기하고는 얼굴을 붉히며 몸을 뒤척였다.

영문은 모르겠으나 가슴이 크게 두근거렸다.

진소소는 한 차례 심호흡을 하며, 보이지 않는 신유강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그만 자요. 내, 내일 아침도 빨리 일어나야 하잖아요.”

신유강은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 번 웃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第五章. 회회전진(回回前進)

아침에 눈을 뜸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난 신유강은 자신이 침상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표정을 굳혔다.

꼬끼오!

우람찬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여전히 굳어져 있는 표정의 신유강은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차디찬 새벽 공기가 스쳤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굉장히 익숙한 광경이었다.

자기 전까지 함께 있던 진소소의 모습은 아무리 찾아 봐도 보이지 않았고, 느껴지는 것은 과거와 같은 회귀를 했다는 그 느낌뿐이다.

또한 몸속에서 요동을 치던 기운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더 빨라졌군.”

만이천 번이 넘는 회귀, 그리고 최근 들어 느끼기 시작한 것은, 회귀를 하는 주기가 눈에 띄게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엔 첫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기점으로 삼 일 정도 시간이 있었던 것에 반해, 이번 회귀는 고작해야 이틀의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신유강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점점 주기가 짧아진다는 것은, 자칫하다간 회귀하는 것과 동시에 다시 또 회귀를 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회귀를 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소리다.

그것이 무한히 반복이 된다면, 죽는 것만 못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신유강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음 회귀가 또 언제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 전에 확실한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이것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던 기연고서점에 주인 석무자는 전혀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진소소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리 총명한 그녀라고는 하지만, 일이 층도 아닌 삼 층에 있는 신인(神人)의 비급을 해석할 만큼 대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 썩을.”

신유강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발을 굴렀다.

기연고서점.

다른 사람들 눈으로 본다면 틀림없이 기연을 얻을 수 있는 장소였지만, 신유강에게 있어서 그곳은 지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원히 같은 날, 같은 시를 보내야 하는 기분.

또 자칫 잘못하다가 눈을 뜸과 동시에 회귀를 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알 수 없다.

애초에 현선자라 불리는 신인(神人)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천하의 마공을 만들어 내었을까? 자신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힘을 말이다.

신유강이 보기에 회귀신공을 만든 현선자라는 인물은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였다.

진소소나 혹은 석무자는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듯했으나, 회귀신공 외에도 수많은 비급을 통해 현선자의 행보를 분석해 본 신유강은 그의 행보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신유강과 동갑, 즉 열다섯의 나이에 이미 일류 고수 반열에 들었으며, 스물이 되기 전에 천하제일고수라 불렸다.

서른이 되면서 고금제일이란 칭호를 받았으며, 그 당시 선인의 경지에 들어 세상을 굽어보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그 뒤로 회귀신공을 완성하기 위해 세상을 등졌지만, 현선자만큼 대단한 무인이자 도인은 두 번 다시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우스운 것은 그 정도로 엄청난 고수를 석무자나 진소소, 혹은 사천당가의 사람들조차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선인……?”

그러다 무언가가 떠오른 것인지 신유강은 번뜩 고개를 들었다.

신인(神人)에 오른 이가 만든 것들을 모아 놓은 곳이 바로 삼 층이다.

그렇다면 현선자가 선인의 경지에 오른 뒤 만들어 낸 것 또한 고서점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현선자가 회귀신공을 창안해 내기 전 만들어진 것. 고로 회귀신공에 원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진작 생각을 못했지?”

신유강은 끙 하며 신음을 삼켰다.

그동안 현선자의 대한 것을 알아보기는 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기에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어쩌면 현선자를 생각하는 것보다 당장 자신의 앞날이 걱정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층, 이 층이라…….”

신유강은 자신의 방 밖에 있는 툇마루에 주저앉아 신음을 삼켰다.

기연고서점.

그곳의 일 층엔 한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이들의 심득과 지식이 존재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기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나, 진짜 놀라운 것은 다름 아닌 이 층부터다.

세상엔 우화등선(羽化登仙)을 하기 위해 도를 닦는 이들이 있다.

중원무림에 뿌리 내린 무인들이나 도인들이라면, 인간의 육신에서 벗어나 선인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는 사람은 지극히 적었다.

수백 년에 한 사람이 나올까 말까할 만큼, 오르는 이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층에는 그 우화등선(羽化登仙)을 하여 선인의 경지에 도달한 이들의 지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무인들이 꿈에서도 바라는 비급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삼 층엔?

선인의 경지를 초월해 신(神)의 권능을 엿보이는 이들.

절대적인 인물들이 남긴 비급이 있었다.

일 층과 이 층에도 기연들이 가득하지만, 따지고 보면 삼 층이야말로, 기연고서점이란 이름에 걸맞은 진짜 기연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 신유강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였다.

‘결과적으로 현선자가 처음으로 익힌 무공을 찾든지 회귀신공에 원류가 되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가 않다.

삼 층과 마찬가지로 이 층 또한 선택 받지 않은 자는 들어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유강은 지금까지 일 층에 있는 서적들 외에는 볼 수가 없었다.

“그 늙은이 앞에서 도둑질을 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지금까지 숱한 회귀를 하면서 그것에 대해 석무자에게 자문을 구해 보기는 했지만, 석무자는 결코 신유강을 이 층에 오르게 하지 않았다.

“인연이 닿지 않은 자는 올라갈 수 없다.”

그것이 석무자가 한 말이었고, 거기에 대해 반박을 할 거리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신유강은 석무자를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상대는 고작해야 열일곱 살인 진소소를 일류 고수 반열에 올릴 괴물 중 괴물이다.

그를 속이고 이 층에 올라간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신유강은 미간을 찌푸렸다.

“일단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려야겠군.”

쉽게 손에 들어올 것이라 생각을 하지 않지만, 어쨌든 제일 먼저 확인을 해야 하는 것은 과연 이 층에 현선자가 만든 또 다른 비급이 존재하느냐는 것이었다.

신유강은 불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지금 그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현선자가 만들었을 것이라 추측되는 한 권의 비급뿐이었다.

물론 있을지 없을지 전혀 알 길이 없지만.

* * *

지난번과는 다르게 신유강은 꽤 열성적으로 객잔 일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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