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신유강은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기에, 그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몸이…… 조금 더 가벼워진 것 같기도 하고.”
불사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신유강은 지치기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회귀신공에 기운들이 기맥에서 흐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신유강은 전혀 피로감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더욱 이상한 것은 이대로 죽을 때까지 달린다 하여도 숨 하나 헐떡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의 생각을 증명하듯, 벌써 한 시진째 전력질주를 하고 있음에도, 신유강은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으며, 달리는 속도 또한 줄어들지 않는다.
더욱이 몸이 무척 가벼웠다.
앞으로 쭉쭉 나아가고 있는 신유강의 몸은 마치 일류 고수가 시전하는 경공처럼 빠르고, 가벼웠다.
“어쩌면…….”
신유강은 어쩌면 자신이 광마도와 싸움에서 기연을 얻어 회귀신공을 다스리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만이천 번이 넘는 회귀를 경험하며 동안 풀지 못한 매듭이 고작해야 광마도와 싸웠다 하여 풀린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유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가능성을 부정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혹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연고서점을 향하고 있는 신유강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 * *
서거걱!
섬서에서 이름높은 칠검의 육신이 조각조각 흩뿌려지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떠한 수법을 썼는지 누구도 검광이 번뜩이는 것조차 확인을 하지 못했다.
섬서를 향해 도주를 하고 있었던 피해자들은 한 흑의인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의아함을 머금은 채 그렇게 널브러졌다.
“찾았습니다.”
조각이 나 버린 시신을 뒤지고 있었던 한 흑의인은 그들의 품 안에서 한 장의 지도를 손에 넣었다.
과거 마교의 시조인 천마대제가 남긴 비급들의 위치를 가리킨다는 지도.
지금까지 세상에 드러난 것은 고작해야 두 장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나타날 때마다 정사마는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피 터지는 싸움을 해 왔다.
무림에 풍파를 일으키는 지도인 셈이다.
“다른 것은 없더냐?”
“그것이 전부입니다, 대주.”
대주라 불린 이는 한 장에 지도를 손에 들고 신음을 삼켰다.
동물 가죽을 이용해 만들어 놓은 듯한 지도, 그러나 어떤 비급을 가리키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더욱이 천 년 전 지도인지라, 썩은 내가 풀풀 풍겨 가지고 다니기가 난감했다.
대주는 그것을 슬쩍 바라보곤 부대주를 향해 던졌다.
“네가 가지고 있어라.”
“……냄새가 나서 그러죠?”
부대주의 날카로운 지적에 대주는 뜨끔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신색을 바로잡고 엄한 표정으로 부대주를 바라봤다.
“그럴 리가 없지 않느냐! 헛소리 하지 말고 잘 보관해라. 잃어버리기라도 했다간 목이 날아갈 것이다.”
“예이, 예이.”
부대주는 뭔가 껄끄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차마 대주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그것을 품에 갈무리했다.
“그건 그렇고 광마도 그놈이 안 보이는군요.”
본래 이번 일은 광마도가 나서야 했던 일이었다.
은밀히 그의 뒤를 따르며 혹여 생길지 모르는 사태를 대비하고 있었던 그들은 다행히 섬서칠검들이 빠르게 도주를 하는 것을 발견하고, 처리했다.
“객잔에 그 아이를 쫓아가지 않았더냐. 곧 찾아오겠지.”
“크큭, 혹시 그 꼬마한테 죽은 건 아닙니까? 누가 압니까 녀석이 반로환동 고수였을지…….”
부대주가 킬킬거리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자, 곳곳에서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멍청해도 상대는 광마도다.
분명 어디서 길을 잃어 헤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천마대제조차 이루지 못한 그 경지를 말이냐?”
“킬킬, 세상일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대주. 생각해 보쇼. 광마도가 그 아이를 쫓아간 지 벌써 네 시진이 넘었는데,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잖소.”
대주는 나지막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고작해야 소년 하나 잡아, 뒤를 캐는 일에 이리도 시간이 걸리고 있으니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소년의 뒤를 쫓은 것은 광마도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무림백대고수에 항상 꼽히는 광마도란 말이다.
그는 웬만한 고수들은 뼈조차 제대로 추리지 못할 정도로 강한 마인이었다.
대주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너희들이 떼로 덤벼도 이기지 못하는 그놈을 누가? 무슨 수로?”
“에이, 운 나쁘게 당초운 놈에게 걸렸다든가.”
“하하, 놀고 있군. 당가의 가주도 광마도의 상대는 아니야.”
“진짜 그 꼬마 놈에게 당했다든가.”
“에라이, 새끼야.”
대주는 계속해서 꼬마를 물고 늘어지는 부대주를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아무리 대단한 무인이라 해도 반로환동을 이룬 이는 없었다.
심지어 환골탈태라는 것조차 겪어 본 이들이 없는데, 그 이상에 경지라는 반로환동이라? 지나가는 개가 다 웃을 일이다.
“흐흐, 장난입니다, 장난. 그래도 그 양반이 머리가 안 좋아도 이 정도 시간이면 진작 왔어야 하는데……. 쯧, 일단 찾아보기라도 할까요?”
일단이라는 말에 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실 그들은 광마도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살인에 미친 마두라는 것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공도 모르는 어린애를 베러 갈 때, 머금었던 그 웃음이 아직까지도 전신을 섬뜩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그 객잔이란 곳을 먼저 가 보도록 하자.”
마교에서 은밀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 흑영대라 불리는 이들은 이미 죽어 버린 광마도의 뒤를 쫓기 위해 다시금 천운객잔을 향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만복돈(滿腹豚) 혹은 돈돈자(豚豚子)라 불리는 사천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천운객잔의 주인 손금운.
선대가 쌓아 놓은 덕망(德望)이 없었다면 진즉에 망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망종(亡種)이란 게 사람들에 평이었지만, 어쨌든 손금운은 사천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탁자 위에 발을 올려놓고 세월아 내월아 하며 신유강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새 술시(戌時)가 지났음에도 신유강의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라질.”
손금운은 두툼한 손가락으로 코를 후비며 인상을 썼다. 왕윤에게 받은 은자 열 냥을 고스란히 토해 냈으니, 그의 속이 쓰라린 것은 당연했다.
은자 열 냥이면 하루를 꼬박 벌어야 하는 돈이다.
그 돈을 신유강이 좀 맞는 것으로 얻을 수 있었는데, 어떻게 눈치를 챈 것인지 놈은 손약란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사라져 버렸다.
“그럼 어르신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천운객잔에서 숙수를 하고 있는 왕소가 인사를 하며 객잔을 나섰다.
그러고 보니 내일 저 숙수에게 줄 은자 또한 마련해야 한다.
그것도 은자 열 냥에 가까운 돈이었으니, 손금운은 한껏 인상을 찌푸리며 ㅈㆎㅇ 하고 바닥에 침을 뱉었다.
어차피 내일이 되면 신유강이 닦아 놓을 테니, 더러워질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 근데 이 자식은 왜 안 들어오는 거야?!”
손약란은 학당(學堂)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고 했고, 왕 숙수는 집으로 돌아갔으니, 현재 객잔에 있는 사람은 손금운 혼자뿐이었다.
다른 사람들 눈치 때문에 평소 신유강에게 매질을 하지 못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딱 좋은 시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놈이 나타나지 않으니 점점 울화가 치밀고 있었다.
그때 끼익 하며 객잔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해시(亥時)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니, 천운객잔을 찾는 손님이 있을 리 없다.
자연스레 손금운은 문을 열고 들어온 이가 신유강이라 판단을 하였기에 살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 눈을 지그시 감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놈아, 시간이 몇시인데 지금 들어오느냐?”
나지막하게 울리는 그 한마디는 어른이 아이를 훈계하기 전 분위기를 잡을 때 쓰는 말투였다.
손금운은 신유강을 가만히 놔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자신이 보낸 심부름을 손약란에게 떠밀었으니, 어찌 괘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뺨 한두 대 정도는 후려칠 생각으로, 작은 눈을 뜨며 안으로 들어온 사람을 노려봤다.
“거 보쇼. 이미 죽었다니까.”
그러나 객잔 안으로 들어온 것은 신유강이 아니었다. 새까만 흑의를 입고 있는 두 인물이 느긋하게 객잔을 둘러보고 있었던 것이다.
손금운은 또르르 눈알을 굴렸다.
탁자 위에 올려놓은 발이 이리도 거북하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흑의를 입고 검을 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대는 틀림없이 무인이다.
무림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상당한 고수일 것이라 짐작을 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떳던 눈을 다시 질끈 감았다.
“드르렁.”
잠자는 척을 하려는 것이다.
손금운이 거칠게 콧소리를 내며 고른 듯 숨을 내쉬자, 두 사람의 입에서 피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삼류 무인들도 속지 않을 연기였다.
“어이, 돼지. 잠깐 일어나 보지?”
흑영대 부대주인 흑호는 찰싹찰싹 손금운의 뺨을 때렸다.
그러나 손금운은 눈을 뜰 생각이 없는지, 더욱 질끈 눈을 감았다.
“대주, 이 자식 자는데요?”
흑호가 손금운이 자는 척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 만무했는데도, 씩 웃음을 머금으며 묻자 흑영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깨워라.”
흑호는 지금 이 상황이 꽤 재미있는지, 입꼬리를 한껏 말아 올리며 또다시 툭툭 손금운의 볼을 쳤다.
그러나 손금운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 두 눈을 더욱 질끈 감았다.
“장난하지 말고.”
“에이, 장난이라니? 내가 얼마나 열심히 깨웠는데, 대주는 항상 내가 하는 일이 그렇게 못마땅하쇼?”
흑호의 말에 흑영은 더욱 미간을 찌푸렸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자는 척하는 손금운의 눈을 뜨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흑호는 장난을 치며 흑영의 성질을 긁고 있었다.
기분이 몹시 좋지 않다는 것을 대변하듯 스멀스멀 흑영의 전신에서 검은 기운들이 일어나자, 흑호는 질렸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깨우면 될 거 아뇨, 깨우면.”
“진작 그럴 것이지.”
깨운다는 흑호의 말 때문인지 손금운의 눈살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흑호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자, 불안한 마음에 은근슬쩍 실눈을 떳다.
그 순간 흑영과 눈이 마주쳤다.
손금운은 또다시 질끈 눈을 감았고, 흑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이것 참…….”
단순히 꼬마의 대해 물으러 온 흑영은 다짜고짜 자는 척을 하는 이 용감한 돼지를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일단 배에 칼침이라도 놔줄까 하며 슬그머니 손금운을 향해 다가가려 할 때, 촤악! 하며 무언가를 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