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게다가 냄새가 장난 아니게 독했다.
흑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흑호가 통 하나를 들고 객잔 곳곳에 마치 물 뿌리 듯 뿌리고 있었는데, 순간 그것이 뭔지 알아챈 흑영은 안색을 굳혔다.
“너?! 지금 뭐하는……?”
“어헝? 대주가 깨우라면서요, 저 돼지.”
객잔 구석구석 통에 담겨 있던 것을 뿌리던 흑호는, 능글맞게 웃으며 흑영이 있는 곳을 향하여 냅다 통을 던졌다.
촤아악!
“이 새끼가?!”
“안 죽어, 안 죽는다니까.”
마치 흑영을 놀리듯 말을하던 흑호는 느긋한 표정으로 품속에서 화섭자를 꺼내 불을 붙였다.
화르륵!
사방에 뿌린 기름 탓에 객잔이 타오르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화마가 서서히 객잔 전체를 집어삼켰고,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르자, 눈을 감고 있었던 손금운은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부…… 불이…… 커억!”
삼 대를 이어 온 천운객잔이 타고 있는 것을 보며 놀람을 금치 못한 손금운이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튀어 나가려 하자, 흑호가 그의 복부를 걷어찼다.
“안 죽어, 이놈아. 얌전히 있어라.”
“네놈은 불에 타도 안 죽는가 보구나.”
흑영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세상에 화마에 휩싸인 곳 중심에 가만히 서 있으면서, 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설령 무가 하늘에 닿았다는 십무제(十武帝)라 하더라도 질식사할 것이 불보듯 뻔했다.
“아이고! 내 객잔!”
손금운은 아주 미칠 지경이었다.
아무 일 없이 넘어갈 것이라 생각을 하며 자는 척을 하고 있었는데, 객잔에 불을 지를 줄이야!
“야 이놈들아! 내 객잔 물어내! 아이고!”
흑영은 생각했던 것보다 머저리 같은 놈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골이 아픈 듯 머리를 움켜쥐었다.
언제 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객잔을 물어내라는 타령만 하고 있으니, 불을 지른 놈이나 타고 있는 객잔 주인 놈이나 똑같이 보였다.
“병신들.”
흑영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불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며 울고 있는 손금운을 향해 다가갔다.
“네놈이 이 객잔의 주인이지?”
“야 이놈아! 그럼 내가 점소이로 보이냐?!”
“겁을 상실했군. 내 경고하는데 한 번만 더 그따위로 말을 하면 목을 잘라 주마.”
한기가 섞인 흑영의 목소리는, 뜨거워진 객잔의 온도마저 싸늘하게 식히는 듯했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던 손금운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대, 대체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오? 왜 이러시오?”
손금운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말 했다.
타오르고 있는 객잔은 얼마 못 가 폭삭 주저앉을 것이 분명했다.
손금운은 일단 자신의 방에 고이 놓여 있는 전표와 금붙이들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광마도라는 자를 아느냐?”
“과, 광마도라면…… 오늘 낮에 유강이가 어떤 놈들 거, 겁 ?을 때 말한 사람이오.”
무림사에 전혀 관심이 없는 그가 광마도라는 이를 알리가 없다.
간간이 호사가들이 찾아와 이것저것 말을 했지만, 자릿세에만 관심이 있던 손금운에게 그저 딴 세상 이야기일 뿐이었다.
흑영은 가만히 손금운을 내려다봤다.
말을 하고 있는 손금운의 눈동자는 심하게 떨리고 있지만, 그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 때문이 아닌, 흑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유강이라면 그 점소이 꼬마 놈을 말하는 거겠지?”
“무, 물론이오.”
“그놈은 뭐하는 놈이지?”
우르르!
불타고 있는 객잔 지붕 한 곳이 무너졌다. 그 파편이 어김없이 떨어져 내리며 지축을 울렸지만, 흑영과 흑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손금운은 당혹스런 표정으로 침을 삼켰다.
“하, 하남의 거지 소굴에 있던 놈이오…… 사천으로 흘러 들어와서…… 다른 객잔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내, 내가 데리고 왔소.”
대답을 하는 순간에도 불기운은 더욱 거세지고 있었고, 연기는 코와 입으로 스며들었다.
손금운의 얼굴엔 콧물과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으며, 화기에 전신이 구워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손금운은 미칠 것 같았다.
“그놈은 돌아오지 않았나?”
“심부름을 보냈는데, 소, 소식이 없소.”
흑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객잔에서 나가는 것은 이미 그들이 보았다.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광마도의 검에 희생을 당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광마도는 대체 어디를 갔단 말인가.
그때, 흑영은 멀리서 몰려오는 사람들의 발소리를 감지했다.
한둘이 아니었다.
“불이 난 것을 보고 관부가 나선 모양이로군. 이만 교로 돌아간다.”
“그냥 갑니까? 이놈을 이대로 놔두고?”
흑호는 여태 자신들의 얼굴을 본 놈을 살려 둔 적이 없었다. 그러니 그냥 가자는 흑영의 말을 곱게 들을 리 없었다.
어느새 검을 반쯤 뽑은 그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손금운을 바라보았는데, 눈동자에 살기가 번뜩였다.
흑영은 그것을 바라보며 흑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퍽!
“아, 진짜 말로 합시다!”
“무공도 모르는 무지렁이를 죽이러 온 것이 아니다. 객잔 하나 태웠으면 됐지 뭘 더 바라느냐.”
흑영의 말에 흑호는 뭔가 아쉽다는 듯 혀로 입술을 적시고는 지독하게 펴져 가는 화마를 뚫고 모습을 감추었다.
“운 좋은 줄 알아라. 그리고 우리에 대해서 한마디라도 입을 벙긋 했다간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단순히 협박을 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흑호보다 더욱 진득한 살기를 발산하는 그의 말을 들은 손금운은 이 뜨거운 화마 속에서 등골이 서늘해져 하의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 마교…….”
어느새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덜덜 떨고 있던 손금운은 그제야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힘겹게 몸을 이끌고 황급히 객잔 정문을 향해 뛰어갔다.
第七章. 소소유강(小炤流强)
“와, 여기가 유강이 머물고 있는 객잔인가요? 굉장히 멋지네요.”
기연고서점에서 다시 한 번 촌극을 경험하고 진소소와 함께 객잔으로 돌아온 신유강은 눈앞에 벌어진 참상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었다.
“대체.”
객잔은 번개라도 얻어맞아 큰 불이라도 난 것인지, 뒤에 있던 후원까지 깡그리 타 버렸다. 후원에 있던 신유강의 방은 물론이며, 손금운과 손약란의 거처 또한 말이 아니었다.
“괜찮아요?”
만약 곁에 있던 진소소가 부드럽게 신유강의 손을 잡아 주지 않았더라면, 유강은 한동안 불타 없어진 천운객잔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충격이 심했다.
‘지난 회귀 때와는 뭔가 다르다.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무, 물론입니다. 저는 괜찮아요.”
신유강은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좋은 기억이 없는 곳이라 하지만,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곳이 불타 없어졌다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강이? 유강이 아니냐?”
그때 저 멀리서 다가 온 것은 다름 아닌 천운객잔에 숙수 왕소였다.
왕소는 죽었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있었던 신유강이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상당히 놀란 모습이 역력했다.
“왕 아저씨, 이게 대체……?”
“아이고, 이놈아. 나는 네가 죽은 줄만 알았다.”
“고생은 좀 했지만,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왕소는 어색하게 웃고 있는 신유강을 끌어안고는 눈물을 지어 보였다.
하루아침에 객잔이 망하고, 일자리를 잃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방화라고 하더라.”
“바, 방화요? 이 객잔에?”
“그래, 인석아.”
사천 사람들 중 손금운을 싫어하는 이들이 꽤 있지만, 그렇다고 방화를 할 만큼 성격이 나쁜 이들은 없다.
신유강은 이 어이없는 상황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방화라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두 사람의 안위였다.
“손 어르신과 약란이는요?”
“그렇게 당하고도 그놈의 안부를 묻고 싶으냐? 손가는 지금 반쯤 얼이 빠져 의방에 누워 있고, 약란이는 그놈을 돌보고 있다.”
왕소는 쯧쯧 혀를 찼다.
명백히 방화를 한 흔적 때문에 관아에서 범인을 뒤쫓고 있었지만, 당시 객잔 안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는 손금운이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기에 사건은 지지부진할 뿐이었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그놈을 싫어하는 놈이 어디 한둘이더냐? 천벌을 받은게지.”
그런 말을 하면서 왕소는 은근슬쩍 신유강의 눈치를 살폈다.
기실 방화라는 결론이 난 직후, 가장 의심을 받은 사람이 신유강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신유강이 불을 지르고 다른 곳으로 도망을 쳤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유강이 다시 나타났으니 그것은 아닌 듯했다.
왕소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네 옆에 있는 아가씨는 누구더냐?”
마음 같아선 네가 불을 지른 것은 아니냐고 속 시원히 묻고 싶었으나, 신유강의 사람됨을 믿고 있는 왕소는 그 물음 대신 곁에 있는 진소소를 바라봤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쌍이었다.
신유강은 초라한 몰골이었는데, 진소소는 값비싼 비단옷을 입고 있으며, 이 근방에서 미색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손약란보다 더 예뻤던 것이다.
“이쪽은…… 하남에 있을 때 알게 된 아가씨입니다. 사천에 놀러오신 걸 우연히 만나서…….”
“소소라고 해요.”
뜻하지 않은 거짓말이었기에 신유강은 은근슬쩍 진소소를 바라보았는데, 그녀는 한 치 망설임 없이 다소곳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크큼! 예, 예쁜 아이구나. 네가 이런 아가씨를 알고 있었다니 좀 놀랐다.”
왕소는 어린 소녀가 무척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자 괜히 무안했다. 딱 보아도 손약란과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아 보이는데, 와닿는 매력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과찬이세요.”
“하하, 정말 대단한 아가씨로군. 객잔 멀쩡했다면 맛있는 음식이라도 잔뜩 만들어 주고 싶은데, 참으로 안타까워…….”
왕소는 흔들리는 마음을 억지로 부여잡고 웃음을 지었다. 사십이 넘은 나이에 저런 아이를 성적으로 본 사실이 창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어쩔 셈이냐?”
“어, 어쩐다뇨?”
왕소는 더 이상 진소소에게 관심을 두려 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시선을 빼앗긴다면 다잡은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객잔은 타 버렸고, 손 어르신은 하남으로 간다더구나. 그쪽에 손 어르신의 가족들이 있거든.”
생전 처음듣는 소리에 신유강이 고개를 갸웃했다. 삼 대째 내려온 곳이라 하여 자연히 사천 토박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하, 모르고 있었나 보구나. 어르신이 사천 토박이인 것은 맞지만, 천운객잔 전대 주인께선 지금 하남에 살고 계시다.”
“그렇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