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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신공-23화 (23/200)

# 23

“그래서 몸을 추스른 후에 그곳으로 떠나신다더군. 나야 덕분에 지긋지긋한 놈과 헤어질 수 있어서 좋기는 하다만, 너는 이제 어찌하겠느냐?”

왕소는 다소 곤란한 표정으로 신유강을 바라봤다. 후원에 있을 신유강의 짐이 모두 타 버렸으니, 그간 모아둔 것 또한 날아간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한마디로 알거지가 된 것이다.

물론 너도 나도 데려가고 싶어 하는 놈이니, 어딜 가도 잘 적응할 것이 분명하나, 소년을 혼자 놔두기에는 다소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당분간 우리 집에서 생활하면서 내가 가는 객잔으로 들어가 볼 테냐? 너라면 다들 환영이겠지.”

왕소는 크게 인심을 썼다는 듯 말을 하였고, 신유강은 딱히 나쁜 제안이 아니라 생각했다.

지금은 무엇보다 진소소가 따스한 방에 몸을 눕힐 곳이 필요하다.

신유강이 고개를 끄덕이려는 그 순간, 진소소가 슬쩍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방긋 웃음을 지었다.

“호의는 감사드려요. 하지만 저희는 나름대로 생각해 놓은 것이 있어서요. 조금 곤란하네요.”

“저, 저희라니? 하면 그쪽 아가씨도 유강이와 함께 지낼 생각인가?”

“물론이에요. 그 때문에 사천으로 찾아왔는걸요.”

마치 정혼한 사람을 쫓아 고향을 떠나온 처녀 같은 진소소의 말에 왕소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나이 사십이 넘을 때까지 일만 하며 일가를 이루지 못한 그에게 지금 진소소의 말은 비수를 꽂아 넣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 이봐 아가씨. 설마…… 유, 유강이와 그렇고 그런 사이인가?”

“그렇고 그런 사이? 으음, 비슷하네요. 평생 동안 절 돌봐 주겠다고 약속했으니까요.”

진소소 딴에는 단순히 돌본다는 의미였을 뿐이지만, 오랜 시간 노총각인 데다 여자라곤 홍등가의 기녀들만 알던 왕소에겐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소, 소소!”

신유강 또한 당황을 금치 못하며 소리를 쳤으나, 진소소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신유강을 바라봤다.

“어머, 제 말에서 틀린 것이 있나요?”

그 웃음을 바라보며 신유강은 넋을 잃엇다.

그녀는 틀린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그와 석무자가 한 약속은 분명히 그러한 종류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사람에게 오해를 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에 곤란한 것이다.

더욱이 진소소는 전혀 사심이 없는 상태에서 한 말이었지만, 신유강은 수많은 회귀를 겪으며 진소소를 단순히 돌봐 주어야 할 상대로 보지 않게 되었다.

결국 신유강은 얼굴을 시뻘겋게 붉혔고, 진소소는 그것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며 웃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볼께요. 왕 숙수라고 하셨죠? 그동안 우리 유강이를 돌봐 주셔서 감사했어요.”

꾸벅 인사를 한 그녀는 서슴없이 신유강의 손을 부여잡고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녀가 한 말은 이제 가족이나 다름없는 신유강을 돌봐 줘서 고맙다는 의미였지만, 듣는 이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했다.

“으아아아악!”

노총각 왕소는 절규하며 주저앉았다.

“소소, 그런데 우리는 갈 곳이 없는데요…….”

신유강은 어색하게 웃으며 앞서 가는 진소소의 뒤를 따랐다.

그러고 보니 워낙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손금운이 어느 의방에 누워 있는지조차 물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후, 저분 굉장히 재미있네요.”

“남자가 사십이 넘을 때까지 혼자 살면 보통 저렇게 된다고 하더군요.”

살포시 웃음을 짓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하자, 진소소는 또다시 풉 하며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웃을 일이 아닙니다. 이제 우린 정말로 갈 곳이 없어졌습니다.”

“전화위복(轉禍爲福). 화는 곧 기회라고도 했어요.”

신유강은 살짝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뭐라도 가진 게 있어야 그 기회를 잡지 않겠는가.

객잔이 모두 타 버리는 바람에 가진 전부를 잃었으니, 당장 먹고 살기 위해서는 구걸이라도 해야 할 판국이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유강은…… 무공을 좀 하죠?”

“무공이요?”

“네, 무공이요. 무공만 할 줄 알면 세상에 돈 버는 일은 무지하게 쉽다고 할아버지가 항상 그러셨어요.”

“무공을 알아도 저희 같은 아이들을 써 줄 곳이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으음, 그것도 그렇군요.”

진소소는 살짝 풀이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나름대로 괜찮은 생각이라 여겼는데, 하필이면 나이가 걸릴 줄이야.

진소소의 경지는 이제 일류를 넘어 절정을 바라보는 상태였다.

게다가 신유강의 경지는 측정 자체가 불가능했다.

나이 문제만 아니라면 돈을 정도 버는 것은 누워서 떡을 먹는 것보다 쉬운 일일 터였다.

“이럴 때 할아버지가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혹시 유강은 뭐 들은 거 없나요? 할아버지가 생전에 돈을 어디다 숨겨 놨다든가?”

“아뇨.”

신유강은 말도 안 되는 소리에 고개를 저었다.

가장 오랫동안 석무자 옆에 있었던 진소소가 신유강에게 이런 소리를 하는 이유는 활발히 움직이는 기운에 이번 회귀가 뭔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신유강이 석무자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놨기 때문이었다.

석무자와 신유강이 그녀는 들리지도 않게 기막을 쳐 놓고 비밀 리에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진소소 입장에선 기분이 나쁠 만도 했다.

더욱이 그 이유조차 알려 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쉽네요. 그런 이야기하는 줄 알았는데.”

“하하…….”

진소소는 샐쭉한 표정으로 잠시 신유강을 쏘아보다가 이내 머리에 꽂혀 있는 비녀를 뽑아 들었다.

백옥(白玉)으로 만들어진 그것은 척 봐도 상당히 비싸 보였다.

온갖 문양이 새겨져 있는 데다 정교하니 만큼 판다면 상당한 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네요. 이거라도 팔아야죠.”

“그건 안 됩니다.”

그러나 신유강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 비녀는 그녀 어머니의 유품이었다.

진소소가 태어나자마자 돌아가셨기에 그녀는 어미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무엇보다 저 비녀를 아낀다는 것을 신유강은 몇 번의 회귀를 통해 들었다.

하여 신유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저것만은 팔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신유강을 진소소가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저기…… 유강, 혹시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어요? 왠지 모르게 저의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요.”

“그, 그럴 리가요.”

붕붕 고개를 내젓는 신유강을 바라보며 진소소는 눈을 가늘게 뜨며, 손에 쥔 비녀로 신유강을 가리켰다.

“그럼 왜 이것을 팔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내게 말해 줄래요?”

“그, 그거야…….”

“그거야?”

신유강은 한 차례 숨을 골랐다.

뭐라 말을 해야 할까?

잠시잠깐에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흘렀고, 진소소의 눈빛이 점점 더 가늘어 지는 것을 본 순간, 신유강은 큰 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걸 머리에 꽂고 있는 소소는 최고로 아름답기 때문이죠.”

“아…….”

진소소는 전혀 뜻밖에 말이 들려오자 얼굴을 잔뜩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지금 둘이 있는 곳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대로였고, 그들 모두 신유강을 알고 있었기에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귀엽다는 듯 쿡쿡 미소를 지으며 지나갔다.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겠는지 진소소는 쭈뼛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가는지조차 말을 해 주지 않았고, 멈출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신유강은 힘겹게 그녀를 따라갔다.

“저기…….”

“마, 말 걸지 말아 봐요.”

“네?”

“잠깐만 말 걸지 마요. 마음을 좀 다스려야 할 것 같으니까.”

뭘 다스리는 것인지 전혀 알 길이 없는 신유강이었지만, 깊게 고개를 숙인 채 심호흡을 하고 있는 진소소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이 이상 말을 걸면 그녀의 주먹이 날아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걸 어쩌지?’

신유강은 여전히 우물쭈물하고 있는 진소소를 뒤로 하고 생각에 빠졌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시점에 객잔이 불타 버리는 바람에, 갈 곳이 사라져 버렸다. 일단 묵을 곳부터 찾는 것이 급했다.

손금운을 찾아가는 것 또한 방법이라 할 수 있었지만, 신유강은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부정했다.

이제 와서 손금운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유강은 한 차례 신음을 삼키고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부여잡았는데, 순간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진소소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한 군데 있습니다. 제가 옛날에 한 달 정도 생활을 했던 곳이.”

“정말요?”

머물 곳이 있다는 말에 진소소가 고개를 퍼득 들어올리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을 본 신유강은 찝찝한 마음을 금치 못하였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당가에서 버려 놓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천운객잔에 있었던 그의 방보다 못할 정도로 허름한 곳이며, 청소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쥐죽은 듯 살아야 한다.

회귀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사천당가 사람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큰일이 나기 때문이다.

“별로 좋은 곳은 아닌가 보네요.”

진소소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신유강을 바라보며 짐작을 하였는데, 그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며 아미를 찌푸렸다.

“어떤 곳인데요?”

“그 사천당가에서 버려 놓은 땅입니다. 오는 사람들도 없어서 숨어 있기는 아주 좋은 장소죠.”

“숨어 있기에는 말이죠?”

“네. 숨어 있기에만 좋은 곳이죠.”

진소소는 강조하는 신유강의 말투를 들으며 짧게 한숨을 토했다.

어쨌든 사람이 오래 머물 만한 곳은 못 된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진소소는 한 차례 머리를 쓸어 올렸다.

“도대체 유강은 어떤 생활을 해 온 건지 궁금하네요,그 나이에 도피처까지 따로 있고.”

그 말을 들은 신유강은 더욱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나열한다면, 진소소는 분명히 까무러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계속된 회귀에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모든 것을 털어놓았을 때 몇 번 그런 적이 있었다.

“후, 어쨌든 정말 곤란하게 됐네요. 이러다간 정말로 길바닥에서 생활을 해야 할 판국이에요.”

진소소는 그리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기연고서점에서 신유강을 따라올 때부터 각오를 하기는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진소소는 서점을 나오기 전, 걱정스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조부의 얼굴을 떠올리며 또다시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 남자는 능력이라는 말이 나오는 건가? 하아…….’

혼인도 하지 않은 처녀의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니었으나 상황을 여실히 나타내는 생각이었다.

第八章. 회귀신공(回歸神功)

흑영과 흑호는 저 멀리 보이는 소년소녀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틀림없이 광마도에게 죽었을 것이라 생각을 했던 것과는 다르게 신유강이 멀쩡하게 살아 돌아왔으니, 무척 놀라웠다.

“거 보쇼, 반로환동한 고수라니까.”

흑호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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