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신유강을 흠씬 두들겨 패놓지 않으면 기분이 풀리지 않을 것이기에, 일권을 내지르는 그의 손에는 상당한 공력이 담겨 있었다.
그것을 보며 신유강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매섭게 쏟아져 오는 주먹을 옆으로 흘리며, 오른 손을 뻗어 부드럽게 남궁상의 가슴을 밀었다.
퍽!
단순히 사람을 미는 듯한 행위였고, 힘 또한 강하게 들어간 것 같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남궁상은 몸속으로 파고드는 기이한 힘에 내력이 역류하는 것을 느끼며, 열 걸음이나 뒤로 물러섰다.
주춤주춤 물러서던 그가 무릎을 꿇었다.
“크윽!”
갑작스레 돌아오는 공력을 갈무지하지 못한다면 그 파장은 상당히 크다.
남궁상은 온몸의 기혈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신음을 흘렸다.
마음같아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에 휩싸였지만, 차마 점소이에게 얻어맞아 내상을 입었다는 것을 당소혜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극한의 인내를 발휘하며 참아 냈다.
“그만두십시오. 어디의 누구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웬만하면 얽히고 싶지 않습니다.”
“이, 이 새끼가!”
남궁상은 태어나 지금처럼 모욕감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더욱이 그런 모욕감을 준 상대가 방금까지만 해도 자신이 점소이라고 무시했던 자였기에 더욱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상을 입은 탓에 안색이 좋지 않았으나, 신유강을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는 살심만은 어마어마했다.
만약 그가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경지에 올라가 있었다면 신유강은 틀림없이 골백번은 더 죽었을 것이다.
“우와…….”
반면 당소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보기에 신유강은 무척 초라한 존재였다.
남궁상은 그보다 머리 두 개 정도 차이가 컸으며, 체구 또한 단단하였다.
한데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으니 뭐라 할 말을 잃은 것이다.
그녀는 둘의 싸움을 말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신유강이 남궁상을 상대로 어디까지 몰아붙일 수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정작 당사자인 신유강은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그가 광마도나 흑영과 흑호를 상대했을 때에는 이성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한 몇 달 사이에 상당한 수련을 하기는 했지만, 이렇듯 실전에서 써 먹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조금 긴장했다.
그런데 그런 긴장이 무색하게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과거 회귀신공이 살기에 반응을 하여 반사적으로 움직였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고, 상대에게 정확히 자신이 원하는 수법이 먹혔을 때, 얻는 쾌감은 전율을 일으켰다.
신유강은 더욱 마음을 가다듬었다.
지금까지 왼손에 들고 있었던 음식을 바닥 한편에 내려놓고는, 자신을 죽일 듯 쏘아보며 다가서는 남궁상을 바라봤다.
“퉤, 네놈의 사문이 어디냐?”
“그런 건 없습니다.”
남궁상은 더욱 아미를 찌푸렸다.
이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는 놈이 문파조차 없다는 것을 어찌 믿는단 말인가?
게다가 조금 전 신유강이 보여 주었던 그 한 수는, 삼류 문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나 남궁상은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당소혜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면, 지금은 무인으로 써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신유강을 꺾어야 했다.
그것이 그가 가지고 있는 무도(武道)였다.
스릉!
검이 뽑혀지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평범한 검이 아닌 듯, 칼날에서 느껴지는 예기(銳氣)는 보는 사람을 긴장케 했다.
신유강은 마른침을 삼켰다.
눈앞에 있는 남자가 진심으로 자신을 죽이기 위해 검을 뽑았다는 사실을 인지함과 동시에 몸이 크게 요동을 치고 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두려움과 공포.
그러나 오랜 세월 회귀를 반복하고, 결정적으로 광마도와 흑영, 흑호의 일을 겪은 신유강은 그러한 것을 떨쳐 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 검엔 눈이 없다. 죽기 싫으면 무릎을 꿇고 죄를 빌어라.”
“제 손에도 자비는 없습니다.”
“건방진 놈!”
신유강의 대꾸에 남궁상이 화를 참지 못하고 성급하게 움직였다. 번뜩이는 검광을 뿌리며 매섭게 휘둘러진 그의 검은 제왕(帝王)의 기세를 머금은 듯 웅장하고 무거웠다.
신유강은 빠르게 휘둘러지는 그것을 바라보며 발을 디뎠다.
일보(一步)에 일검(一劍)을 피하고, 이보(二步)에 방향을 꺽어 들어오는 검을 흘렸으며, 삼보(三步)에 손을 뻗어 느긋하게 검을 막았다.
회귀신공에 공능이 빠르게 손으로 몰려들며 검을 쳐 내자, 머금어졌던 제왕의 기세가 깔끔하게 사라지며, 남궁상의 내공이 역행했다.
“큭!”
남궁상은 또다시 되돌아오는 내력을 수습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만약 조금 전 경험이 없었다면 큰 내상을 입었을 게 분명한 상황이다.
“어디서 사술을!”
까득 이를 간 남궁상은 신유강이 가지고 있는 의미 모를 힘이 사술이라고 생각했다.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의 내력을 되돌리는 무공은 들어 본 적이 없었던 탓이다.
‘사술이 분명하다. 아니, 사술이어야만 해.’
신유강이 펼치고 있는 초식은 그가 알고 있는 사마외도와는 다른 것들이었고, 오히려 정도에 가까운 무공같아 보이지만, 남궁상은 신유강을 마도라고 확신했다.
“이 마교 놈이!”
남궁상의 검이 더욱 매섭게 뻗어졌다.
모든 내력을 끌어올려 펼친 그의 제왕검법은 그가 팔대세가의 후기지수들 중에서 다섯 손가락에 든다는 것을 확연하게 증명하는 힘을 담고 있었다.
이번에는 번뜩이는 검광조차 보이지 않는다.
기척을 느끼려 하지만 보다 빠르게 날아오는 검 때문인지, 신유강은 난색을 표하며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날아오는 검날이 그가 피하는 것보다 빨랐다.
‘움직여야 한다.’
신유강의 머릿속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그것 하나다.
몸을 움직여 저 검날을 피한다. 그리고 공격을 하여 승기를 잡는다.
그러나 검은 너무나 빠르고 자신은 너무 느리다.
신유강은 생각했다.
‘조금 전 있던 그 장소로 돌아간다면 저 검을 피할 수 있다.’
방금 자신의 몸이 있었던 곳으로 돌아간다면 분명 이 싸움의 승리자는 자신이 될 것이다.
‘믿는다’
그는 믿었다.
자신이 조금 전 있었던 그 장소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회귀신공의 힘이 크게 날뛰었다. 거칠기 짝이 없고 흉폭한 용(龍)과 같은 기세를 머금은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요동을 쳤다.
쉬이익!
그리고 그 순간, 남궁상의 검이 신유강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
“뭐?!”
그는 신유강을 베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남궁상은 손끝에서 베는 감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화들짝 눈을 크게 떴다.
바로 앞에 있어야 할 신유강이 보이지 않았다.
‘이형환위?’
스슥!
뒤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에 재빠르게 뒤를 돌아보자,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인지 신유강이 매섭게 주먹을 뻗는 것이 보였다.
퍼걱!
“크악!”
단순한 일권으로 보이지만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다. 약간이지만 회(回)의 수법이 가미되어 있는 그것은 남궁상의 기막을 뚫고, 소용돌이처럼 남궁사의 전신에 충격을 줬다.
“세, 세상에…….”
당소혜는 자신의 두 눈으로 보고도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단순히 객잔에 점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뭔가?
저 점소이는 그 많고 많은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남궁상을 상대로, 한 대도 맞지 않고 승리했다.
더욱이 방금 본 그것은 초절정 고수들이나 펼칠 수 있다는 이형환위라는 수법이 아니던가?
천하의 사천당가 가주인 당초운조차 펼치지 못하는 고절한 수법을 고작해야 약관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펼친 것이다.
당소혜는 너무 어이없는 상황에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못한 채 얼어 버렸다.
‘말도 안 돼!’
“좋은 승부였습니다.”
꾸벅 인사를 한 신유강은 여전히 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하며, 놓아 둔 음식을 가지고 자리를 떴다.
등을 돌려 저벅저벅 걷고 있는 그의 모습은 흡사 대협의 풍모를 보는 것만 같았다.
물론 정신을 잃어버린 남궁상이 그러한 것을 볼리는 없겠지만, 당소혜에게 있어서 지금 신유강의 모습은 딱 그러했다.
반면 싸움을 끝내고 중 의원의 의방으로 향하고 있는 신유강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패자를 앞에 두고 웃을 수는 없는지라, 억지로 참으며 덤덤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는 지금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당소혜와 같이 있는 것을 보면 무림에서 꽤 유명한 후기지수라는 것은 분명했다.
자신이 그를 상대로 완벽하게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신유강은 지난 몇 달 동안 회귀신공을 집중적으로 연마해 왔다.
물론 다른 이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실이지만 말이다.
회귀신공(回歸神功), 회귀(回歸).
과거로 돌아간다는 뜻도 있겠지만, 결코 그러한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회(回), 귀(歸).
회는 돌고 도는 것을 뜻하며, 귀는 돌아온다, 혹은 돌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비록 무공으로서는 미완성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것과 다른 무공이 결합한다면, 그야말로 무적이나 다름없는 신공이 탄생하는 셈이다.
‘돌아간다.’
신유강은 생각했다.
조금 전 남궁상이 검이 자신의 몸을 가를 때를 말이다. 그때 그는 그가 몇 초 전 있었던 위치로 돌아갔다.
즉 신유강은 자신이 밟았던 그 어떠한 장소든 마음만 먹는다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그가 완벽하게 회귀신공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 범위는 한정되어 있었지만, 완벽히 회귀신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면, 세상에 못할 것이 없으리라 생각을 했다.
신유강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조금 전 급박하게 힘을 썼던 탓에 몸 안의 힘이 미친 듯이 요동을 쳤다.
“역시 무적은 아니라니까.”
슬그머니 자신의 팔목을 바라본 신유강은 웃음을 지었다. 조금 전 힘을 사용하는 게 조금 늦었던 탓에 살짝 베였다.
평소라면 말끔하게 사라졌을 상처가 아직까지도 남아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을 보니, 지금 이 상황에서 남궁상이 쫓아와 검을 휘두른다면 신유강은 틀림없이 죽음 면치 못할 것이다.
또한 몸이 극도로 피로해졌다.
격하게 힘을 발휘한 탓인지, 아니면 회귀신공을 아직 완벽하게 다스리지 못한 탓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신유강은 심신이 크게 지치는 것을 느꼈다.
“……안 쫓아오겠지?”
신유강은 내심 불안한 듯 뒤를 돌아보았지만, 애초에 정신을 잃은 남궁상이 신유강을 쫓아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 *
“크윽…….”
남궁상은 극심한 통증에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