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31화 (31/200)

# 31

전신이 걸레짝이 되어 버린 듯한 기분을 떨쳐 낼 수 없었다.

게다가 기이하게 몸이 무거웠으며, 단전에는 한 줌의 진기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눈을 뜨며 주위를 둘러보니 그는 조금 전, 점소이와 손을 섞었던 그 골목에 누워 있었다.

눈앞에 있는 당소혜가 포옥 하며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된 것이오?”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남궁상은 재차 확인을 하기 위해 물었다.

자신이 진짜 점소이 따위에게 졌다고 생각을 하기에는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억이 안 나세요? 일방적으로 얻어터지고 지금까지 누워 있었잖아요.”

“……꿈이 아니었단 말인가.”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차마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소혜의 한마디는 매몰차게 들려왔으며, 남궁상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천하의 남궁 소협께서 점소이에게 맞아 한 시진이 넘게 정신을 잃었으니, 현실 도피를 하실 만도 하죠.”

“제가 한 시진이나 누워 있었단 말이입니까?”

“그래요, 사람을 불러 세가로 옮길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이유는 알고 있죠?”

굳이 어떠한 이유 때문인지 말을 하지 않아도 안다. 남궁세가의 직계가 처참한 몰골로 돌아간다면 크게 사단이 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후기지수들에게 얕보일 수도 있는 문제다.

남궁상은 까득 이를 갈았다.

“도대체 그 점소이는 누구입니까? 어느 고인의 제자인지 소저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아직까지도 그녀가 신유강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남궁상은 당연히 당소혜가 신유강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당소혜는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예전에는 이 근방에 있던 천운객잔의 점소이였는데, 설마 무공을 익히고 있었을 줄이야.”

“정말로 모르는 사이였단 말입니까?”

“당연하죠. 아까도 몇 번이나 말했지만, 제가 객잔 점소이를 알 필요는 없잖아요.”

남궁상은 멍청한 표정으로 당소혜를 바라봤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괜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단 말이었다.

당소혜에게 잘 보이기 위해, 또 그녀의 시선을 받고 있는 그 점소이가 밉살스러워 본때를 보여 주어야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손을 쓴 것인데, 그것이 완벽한 오해였다고 하니 할 말을 잃었다.

‘내 부서진 자존심은……?’

단순히 부서졌다고 말로도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그의 꼴은 처참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도 모른 채, 십 년을 넘게 연마해 온 그의 무공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저기…… 남궁 소협? 울어요?”

“으흑…… 하…… 하하,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흐윽, 울다니요.”

당소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는 남궁상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울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오만정이 다 떨어졌다.

* * *

진소소는 심부름을 시킨 신유강이 돌아온 시간이 상당히 늦은 데다, 무척 피곤해 보였기에 꽤 걱정스러웠다.

그가 신경 쓰여 제대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듯 힐끔힐끔 신유강에게 시선을 주었으며, 그 때문에 타 버린 음식을 손님에게 주는 어이없는 일도 벌였다.

웃긴 것은 진소소가 만들어 준 음식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던 자들이 우걱우걱 식사를 끝마치고 은자 한 냥을 낸 뒤, 배를 움켜잡고 나갔다는 점이다.

“어이어이, 정신을 어디다 팔고 있는 거야?”

결국 참다못한 흑호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애초에 그 역시 진소소가 신유강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지금은 일을 하는 중이니,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말라는 의미였다.

“아, 죄송해요. 잠시 한눈을 팔았네요.”

“쯧, 그냥 장사 접고 들어가자.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저 새끼도 피곤해 죽으려고 하는데 이런 날은 빨리빨리 들어가는 게 최고다. 하하하!”

무슨 이유에서인지 흑영이 사천에 남아 있었던 탓에 흑호 또한 그의 곁에 남았다. 그러나 애초에 뼛속 깊이 무인이었던 그가, 점소이 짓을 하고 있으니 못마땅한 것은 당연하다.

물론 가끔 마교에서 특수 임무를 받았을 때 온갖 허드렛일을 하는 이들로 변장을 했었던 적은 있지만, 그것과 이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흑영 또한 흑호와 같은 의견을 보였다.

“그래 맞다. 일도 좋지만 저놈 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봐서, 열이라도 있는 것 같은데…… 저거 쓰러지면 너도 쓰러질 테니 오늘은 이만하는 것이 어떠하냐?”

“……왜 유강이 쓰러지면 제가 쓰러지는 거죠?”

진소소는 의미모를 흑영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는데, 흑영이 그런 진소소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입꼬리를 짙게 말아 올렸다.

“부부는 일심동체라 하지 않더냐?”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내가 모를 줄 아나? 유강이를 보러 오는 여자들의 음식에 약을 타는 것 말이다. 그리고 은근히 저놈의 질투심을 자극하기도 하고.”

지난 몇 달 동안 진소소를 옆에서 보아 왔던 흑영이었고, 연륜이 연륜인지라 진소소의 행동이 눈에 뻔히 들어왔다.

진소소는 아무도 모를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들키자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흑영이 부드럽게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이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저놈한테는 입 다물고 있을 테니 걱정 마라.”

“저한테 아부해도 아무것도 안 나와요.”

“하하하! 그럴 생각 없다.”

흑영은 껄껄 웃음을 지으며 등을 돌렸다.

그것은 마치 자애로운 아비의 모습과도 같았기에, 진소소는 내심 뚱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는 쉬는 것이 최고다.

“후우…… 유강, 오늘은 이만 접도록 하죠.”

“벌써 말입니까?”

애써 아픈 내색을 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파리한 그의 안색을 보고 있자니 진소소는 마음이 다 아팠다.

생각해 보니 일을 시작한 지 벌써 몇 달이 되었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쉰 적은 한 번도 없다. 더욱이 신유강은 밤에 연무까지 하고 있으니, 몸에 탈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오늘은 제가 좀 피곤해서 그래요. 일찍 들어가서 느긋하게 쉬고 싶네요.”

“아직 손님들이…….”

신유강 또한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몸 안에서 한 번 날뛰기 시작한 기운들이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힘이 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앞에는 아직까지 상당히 많은 손님들이 있었고, 그들 중에는 한 시진이 넘게 기다린 자들도 있었다.

이런 이들을 내치고 접는다는 것은 상도덕에 문제인 것이다.

“괜찮다. 우리가 알아서 마무리할 테니 둘은 먼저 들어가거라.”

흑영은 신유강이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애초에 미부인들인 흑영의 얼굴을 보러 오는 이들이고, 젊은 남자들은 진소소를 보러 오는 이들이다.

진소소가 빠져나가고 흑영이 미부인들을 상대한다면, 불만을 내뱉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괜찮겠습니까?”

“나보다 네놈 걱정이나 해라.”

“하하…….”

몇 달 전의 흑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부드러워진 흑영의 말에 신유강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호의를 거절해서는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뒤를 부탁할께요.”

어느새 다가 온 진소소가 신유강의 손을 이끌며 말을 하자 흑영이 기분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두 아이가 사라지자, 흑호는 퉁명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주, 완전 저것들 부모 같소.”

흑호의 날카로운 한마디에 흑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는 신유강이 자신의 몸을 낫게 해 준 보답으로 평생은 아니더라도 이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을 때까지 곁에서 보호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으니 응당 정이 들법하다.

“그런데 대주. 우리는 언제 돌아가오?”

“글쎄다…… 한 몇 년은 더 있을 생각인데?”

흑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을 하는 흑영을 바라보며 살짝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임무를 완수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아직 마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어찌본다면 배신자로 낙인찍혀 척결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임이 분명한데, 흑영은 생각했던 것보다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흑호는 슬그머니 흑영을 바라봤다.

수많은 미부인들 사이에서 부드럽게 웃음을 짓고 있는 그의 모습은 제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에효, 내 팔자야…….”

천하의 흑영대주인 그가 미부인들을 꼬시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흑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第三章. 세월유수(歲月流水)

사천성 하오문을 관리하는 루주 홍화는 하나의 장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뒷골목 왈패들이 관리하는 곳 중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내어야 하는 곳은 도박장이었다.

한데 이상하게 그곳에 수익이 요 몇 년간 꾸준히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요염한 표정을 지으며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주먹을 꽤 잘 쓰는 듯 건장한 체구와 단단해 보이는 주먹을 가진 남자는 홍화의 날선 시선에 뱁새눈을 돌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어떻게 된 거죠? 벌써 이번 달에만 벌써 오만 냥이 넘게 수익이 줄었어요.”

홍화의 말은 꽤 날카롭게 남자의 귀로 파고들었다.

은근히 내력을 섞어 말을 했으니 당연하다.

만약 조금만 더 압박을 준다면, 남자는 틀림없이 내상을 입고 자지러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 그것이 저도 정말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부, 분명 저희 애들 기록상 수익이 나야 하는데, 막상 정산을 하면…… 꼭 돈이 모자랍니다.”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나요?”

“아, 아닙니다.”

홍화는 슬쩍 손을 털었다.

그 순간 그녀의 소맷 사이에 숨겨졌던 침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가 남자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크윽!”

“당신의 수하 중 하나가 돈을 빼돌리는 거겠죠? 당장 가서 그 간이 부은 놈을 잡아오지 않는다면 다음에 그걸 머리에 박아 주겠어요.”

“아, 알겠습니다.”

남자는 부르르 몸을 떨며 고개를 숙였으나, 속으론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밑에 있는 아이들을 의심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여 무공을 익힌 이들을 이용해 감시를 해 보았지만, 누구 하나 돈을 만진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도박꾼들이 중간에서 돈을 삥땅 치지는 않으니, 범인을 찾을 수 없어 돌 지경이었다.

남자는 깊게 고개를 숙이고 그곳을 빠져나오면서 울상을 지었다.

* * *

희비가 엇갈리는 그곳은 사람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한쪽에서 환호성이 들렸고, 다른 곳에선 눈물짓는 이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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