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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신공-33화 (33/200)

# 33

그것은 꽤 거리낌 없는 행동이었고, 만약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눈에 불을 켰을 만한 상황이었으나, 정작 손을 잡힌 신유강이나, 손을 잡은 진소소나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늘은 객잔에 가 볼 거죠?”

“그러고 보니…… 객잔은 어쩌고 나온 거지?”

“아……. 그게 기 공자가 도와준다고 해서…….”

진소소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미산검문의 후예인 기왕윤과 신유강은 상당히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물론 왕윤의 입장에선 진소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신유강에게 접근을 한 것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과거와 같이 불미스러운 일은 아직까지 생기지 않았다.

지금은 진소소의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접었고, 개과천선하여 미산검문의 후예로서 무공에 전념을 하고 있지만, 간간이 객잔을 들릴 때면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러나 진소소는 그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미 사천 바닥에서 진소소는 신유강의 부인이나 다름이 없었고, 기왕윤에게도 다른 생각이 없었지만, 신유강이 없을 때 객잔을 찾아와 일을 도와주니 다른 이들의 눈에 어찌 보이겠는가?

신유강은 진소소의 마음을 알고 있는 것인지, 웃으며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놈 일은 신경 쓸 것 없어. 걔가 약간 모자라 보이기는 하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소소에게 딴마음을 품을 리가 없으니.”

신유강의 한마디에 진소소는 풉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과거와 비교해 본다면 정말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기 힘들 정도로 당당하게 바뀐 신유강의 성격은 무척 남자다웠다.

“고작해야 몇 년 사이에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가 있나요?”

그녀가 과거를 떠올리며 말을 하니 신유강 또한 쑥스러운 듯 웃었다.

성숙하지 못했던 때와 지금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안다.

더욱이 지금에 신유강은 세상을 다 가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남 부럽지 않을 만큼 돈도 있으며, 옆에는 사랑하는 이가 있다.

이처럼 좋은 일이 어디에 있는가?

물론 둘은 아직까지 혼례를 치른 사이는 아니다.

아직까지 둘 다 그 부분에 대해서 상당히 더딘 모습이 역력하였는데, 현재 장원에서 총관 직을 맡고 있는 흑영은 아직까지 둘 다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아이라 그런다고 생각했다.

“총관을 잘못 뽑은 걸까…….”

그러나 진소소 딴에는 과거의 귀여웠던 신유강 또한 마음에 들었던 탓에 이렇게 신유강의 성격을 바꿔 버린 흑영에 대한 원망이 조금은 있었다.

그가 ‘모든지 남자답게 행동해라!’라고 말을 하며 신유강의 등을 떠밀었던 탓에, 지금의 신유강이 탄생할 수 있었다.

“대체로 사람은…….”

진소소를 바라보며 뭔가 말을 하려던 신유강은, 저 멀리서 숙수복을 입은 익숙한 얼굴에 청년이 보이자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냐?”

“유, 유강아, 하아, 하아.”

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신유강의 앞에 선 청년의 이름은 장삼으로, 한때 기왕윤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칼을 좀 다루던 놈이었다.

몇 년 전부터 진소소에게 요리를 배웠고, 지금은 사천 바닥에서도 꽤 알아줄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가진 숙수가 되었다.

여기저기에서 장삼을 빼내려 안간 힘을 쓰고 있지만, 그는 신유강을 배신하지 않았고, 또 요리를 가르쳐 준 진소소를 평생의 은인으로 여기고 있었기에 죽을 때까지 신유강의 객잔에서 일을 하겠다고 맹세를 한 의리 좋은 놈이다.

한 달 봉급으로만 은자 오십 냥을 받아 가고, 어린 나이에 벌써 결혼해 근처에 좋은 땅과 장원을 짓고 부모에게 효를 다하니, 사천 사람들은 그를 효자라 평하길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 개, 객잔에…….”

“객잔에?”

“나, 난리가 났어!”

신유강과 진소소는 얼굴을 굳혔다.

* * *

기연객잔(奇緣客棧).

한때 천운객잔이 있었던 그 자리에는 사천에서 가장 유명하면서도 큰 객잔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이 유명한 것은 그 맛도 맛이지만, 사천 토박이들과 잘 어울렸던 신유강의 인덕(人德) 때문이었고, 어린 시절 사고만 치고 다니던 왈패들을 교화시켜 사람 만들어 놓았다는 이유도 있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보이는 객잔 벽면에는 노점을 자주 찾던 유명한 화공이 신유강과 진소소의 앞날을 축복하기 위해 그려 준 십장생도가 멋들어진 자태를 뽐냈다.

그것은 객잔의 일 층과 이 층 벽면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큰 그림이었고, 그 웅장함과 살아 있는 듯 생생한 화벽(畵壁) 때문에 기연객잔이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기연객잔에서 일을 하고 있던 왕윤은 물론이며 점소이, 혹은 오랫동안 이 객잔을 다녔던 사람들까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객잔 이 층에는 한 여인 묘령(妙齡)의 여인이 묵묵히 앉아 화주를 들이켜고 있었는데, 어찌나 아름다운지 진소소와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의 주위에는 십여 명의 남자들이 거품을 물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것이 이 객잔이 조용한 이유였다.

객잔 안으로 들어온 신유강과 진소소는 이 층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었다.

이 층은 온통 난장판이었으며 의자와 탁자가 죄다 박살이나 있어 처참한 광경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십장생도가 그려져 있는 벽에 상처가 생기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다.

신유강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왕윤의 옆구리를 툭 쳤다.

“말렸어야지, 이 자식아.”

“말리긴 뭘 말려. 말렸다간 내가 죽게 생겼는데, 오늘은 다른 때보다 더 장난이 아니야.”

기왕윤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태어나 지금까지 무공을 연마하면서 누군가에게 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살았다.

물론 아직까지 신유강에겐 이기지 못하니, 그것은 논외로 치더라도 사천당가의 사람들과 부딪힌다 해도 지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오늘 보니 장난이 아니다.

여인에게 껄떡대던 십여 명의 남자들이 순식간에 드러눕는데, 어찌나 손속이 매섭고 빠른지 눈을 뜨고도 어떤 수법을 사용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기왕윤은 어째서 사람들이 그리 팔대세가를 추켜세우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신유강과 진소소는 이 층에서 술을 홀짝이는 당소혜를 바라봤다.

예쁘장한 얼굴로 독한 화주를 벌컥벌컥 거침없이 들이켜는 모습은 주당이라 불리는 이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한참을 그걸 바라보고 있었던 신유강은 객잔 일 층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진소소와 함께 이 층으로 올라섰다.

“끄으으…….”

쓰러진 남자 하나가 신음을 삼켰다.

떡이 되어 버린 이들 중에서 그나마 나은 차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무리를 이끈 대장격으로 보였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원인 제공자였기에 신유강은 지나가며 그의 얼굴을 발로 차 버렸다.

“컥!”

남자가 한차례 신음을 흘리며 두 눈을 까뒤집고 넘어가자, 그제야 사람의 기척을 느낀 당소혜가 시선을 돌렸고, 당소혜의 눈에 진소소가 들어오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으앙…… 언니…….”

당소혜는 마치 진소소를 기다렸다는 듯 크게 울음을 터트리며 품에 안겼다.

노점을 할 때부터 당소혜는 진소소의 미모에 질투심을 보이기보단 동경하여 졸졸 쫓아다녔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친분은 가히 친자매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진소소는 어색하게 표정을 지으며 당소혜를 토닥였다.

그러곤 한가득 탁자 위에 놓인 술병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때 신유강이 자리를 잡고 앉으며 퉁명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또 차였냐?”

진소소의 품에서 울고 있던 당소혜가 앙칼지게 눈을 흘기며 신유강을 쏘아봤다.

생각하기 싫었던 말을 거침없이 쏟아 내면서 당소혜가 마시고 있던 잔에 술을 따라 마시고 있는 신유강을 향해 죽일 듯한 기세를 뿜었다.

“너! 말이면 다인 줄 알아?”

“거 참, 너야말로 차일 때마다 우리 객잔 좀 부수지 마라. 아무리 물어 준다고 해도 그렇지……. 너 올 때마다 장사가 안 되잖냐.”

신유강은 객잔 입구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기분좋게 식사를 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오던 사람들이 조용한 객잔을 한차례 둘러보다, 이 층에 있는 당소혜를 발견하고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치며 나가는 것이 보였다.

“유강, 장사도 중요하지만 사람도 중요한 거예요. 당 동생이 이리 슬퍼하는데, 달래 주지는 못할 망정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죠.”

말은 그리했으나 진소소 또한 한숨을 쉬었다.

신유강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 오랜만에 큰돈을 들여 산 비단 옷인데, 당소혜의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가 되어 더러워져 버렸다.

안겨 있는 당소혜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진소소의 눈빛과 표정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딱히 틀린 말이 아니기에 신유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화주를 한 잔 들이켰고, 힐끔거리며 당소혜를 바라보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번엔 누구냐? 황룡? 팽가? 지난번엔 제갈세가였지? 지지난번엔 모용세가였고, 작년엔 언가였나?”

당소혜의 얼굴이 시뻘겋게 붉어졌다.

사천당가의 일원인 자신이 누군가에게 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인데, 신유강은 과거의 일을 들추며 말을 하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더욱이 밑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쿡쿡거렸다.

그녀는 빽 고함을 쳤다.

“시끄러워! 그 자식들이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거야.”

“놀고 있네. 네 성격을 생각해 봐라 누가 데려가겠냐?”

“너…… 너…… 죽을래?”

신유강은 잔을 입에 가져다 대며 웃었다.

“그러니까 그 성격 좀 고치라고. 소소 좀 봐라. 성격 좋아, 무공도 잘해, 똑똑해, 얼굴 예뻐, 가진 거 많아, 뒷바라지 잘해. 빠지는 게 없잖아. 그의 비해 너는…….”

거침없이 쏟아지는 칭찬에 진소소는 얼굴이 붉히며 고개를 숙였고, 당소혜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터질 듯 시뻘겋게 달아올랐으며, 무엇이 그리 분한지 입술마저 잘근잘근 씹었다.

“가진 건 뭐 사천당문이 있으니까. 그런데 무공은…… 그저 그렇고. 또…… 뭐 있냐?”

“으…… 으아아앙! 너 이 자식 나중에 정말로 가만히 안 둘거야!”

당소혜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잔뜩 붉어진 얼굴로 울먹이며 객잔을 뛰어나갔다.

얼마나 억울한지 객잔을 나가기 전에 신유강을 바라보며 한차례 소리를 질렀고,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멀뚱멀뚱 서 있던 기왕윤의 복부에 거침없이 주먹을 꽂았다.

“커어억!”

이어 새우처럼 굽어진 기왕윤의 다리를 걸어 넘어트리더니, 얼굴을 한차례 밟은 후, 앙칼진 눈빛으로 신유강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이 멍청한 도박 중독꾼 자식아! 똥통에나 빠져 죽어 버려라!”

당소혜가 밖으로 나가자 객잔 안은 싸늘한 정적이 감돌았다.

신유강은 입에 대었던 화주를 들이켜며 웃었다.

“이제야 나가는군.”

“유강…… 하아…….”

진소소는 아미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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