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설득 아닌 설득을 해 보려해도 진소소는 결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기연객잔은 노점에서 시작한 사업을 키워서 산 첫 객잔이었다.
게다가 신유강의 친우들이 이곳에서 일했으며, 많은 사천 사람들이 이곳으로 찾아와 음식을 먹는다.
진소소는 그 평화로운 일상이 좋았고, 결코 깨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돈은 딱 필요한 정도만 있으면 족했다. 그 이상은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객잔을 팔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살 만큼 돈을 벌고 있으니, 진소소의 생각은 단호하였고 그 생각은 신유강의 의견과 같았다.
“그럼 볼일은 끝났다고 알고, 이만 일어서겠습니다.”
“시, 십만 냥 어떻습니까?!”
육평초는 다급하게 십만 냥을 불렀다.
그러나 신유강이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육평초는 바들바들 몸을 떨어야 했다.
그가 이곳을 사려는 이유는 단순하다.
곧 이곳 사천에 무림맹에서 만드는 학관이 들어선다. 그런데 학관을 지을 자리가 없어서 좋은 곳을 물색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은 십만 냥에 이 땅을 사, 미리 사 놓은 다른 땅들과 무림맹에 판다면 능히 금 사십만 냥 가까이 받아 낼 수 있으니 얼마나 큰 이익인가?
물론 다른 자리를 살 수도 있지만, 대부분 이곳에 토박이였으며 땅 크기가 얼마 되지 않아, 학관이 들어서기에는 상당히 무리였다.
그러므로 최적이자 최고의 장소는 이 기연객잔이라 할 수 있었다.
일이 틀어졌다는 생각에 육평초는 아드득 이를 갈며 일 층으로 내려선 신유강을 바라봤다.
이번 일은 결코 실패해서는 안 된다.
대운상단주인 아버님에게 얼마나 큰소리를 떵떵 쳤던가?
‘네놈들이 감히 내 제안을 거절해?’
육평초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 * *
객잔을 왕윤에게 맡기고 장원으로 돌아가고 있는 진소소는, 가만히 신유강의 얼굴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가 도박장에서 날린 돈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내심 그가 객잔을 팔지 않을까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신유강은 객잔을 팔 생각이 없었고, 단호하게 거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을 보니 저도 모르게 자랑스러웠다.
“객잔을 팔면 도박하다 잃은 금액을 만회할 수 있었을 텐데…….”
진소소는 신유강이 들으라는 듯 말을 했다.
슬그머니 눈을 흘기며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는데, 때마침 신유강이 시선을 돌리자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깜짝 놀라 얼굴을 돌리자 신유강이 그제야 웃었다.
“그러게 말이야. 객잔을 팔고 더 좋은 장원을 사서 한평생 편하게 지낼 수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노는 건 내 팔자가 아닌 것 같네.”
객잔을 진소소에게 맡겨 두고 도박장이나 다니던 놈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 말이 상당히 우스웠는지, 진소소가 쿡! 하며 웃었다.
이윽고 슬쩍 신유강의 옆으로 다가서더니 팔을 꼭 부여잡았다.
“돈이야 또 벌면 그만이죠. 이제 스물의 나이로 사천의 거부가 되었으니, 서른이 되면 중원십대거부가 되고, 사십에는 중원제일의 거부가 되면, 그깟 십만 냥이 대수인가요?”
꼬옥 팔짱을 끼며 웃자 신유강도 웃었다.
여기저기에서 부럽다는 시선이 돌아왔으나 두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 * *
그날 밤, 객잔에 불이 꺼지고 모든 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늦은 시각, 일련의 무리가 기연객잔에 몰려들었다.
복면을 뒤집어쓰고 주위를 열심히 살피고 있었던 그들은, 묵직한 통에 담겨 있던 기름을 객잔 벽을 향해 뿌리기 시작하였고, 누군가 화섭자를 이용해 불을 붙이자 순식간에 화마(火魔)가 몰아치며 객잔을 집어삼켰다.
“부…… 불이야!”
객잔에서 일하는 점소이들과 별채에서 술을 마시고 돌아가려 하던 장삼은 순간 휘몰아치는 화마에 기겁을 하며 소리를 쳤다.
워낙 다급한 나머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깨우려던 그는 한 흑의인과 눈을 마주쳤다.
“저, 저……!”
그가 기겁을 하며 소리를 치려 하자,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다가온 한 흑의인이 매섭게 검을 움직였다.
서걱!
第四章. 以眼還眼 以牙還牙(이안환안 이아환아)
장삼의 집에선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함께 했던 절친한 이들이 눈물을 삼키고 있었으며, 곤히 누워 있는 친우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들은 참담함을 금치 못했다.
장삼의 어미와 처는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기겁을 하며 정신을 잃은 채 아직까지도 깨어나지 않았다.
신유강은 눈앞에 있는 장삼을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전체적으로 멀쩡한 모습이긴 하였지만, 미동조차 하지 않는 장삼을 바라보고 있는 신유강은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칠 년 동안 함께 했던 친우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당연했다.
곁에 다가온 기왕윤이 신유강의 어깨를 살포시 짚어 보지만, 신유강은 그저 가만히 장삼의 얼굴을 바라볼 뿐, 그 어떠한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았다.
“꼭 사람 죽은 것처럼 침울해 하지 말아 줄래?”
그때 곤히 누워 있던 장삼이 번뜩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집에서 곡소리가 끊이지 않는 데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으니, 마치 자신이 죽은 사람처럼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다.
신유강은 그런 장삼을 보며 웃었다.
“일어났냐?”
“니미…… 향까지 피워 놓고 장난을 쳐?”
일어나려는 장삼은 지그시 머리를 누르는 신유강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한 채 인상을 찌푸렸다.
“꿈쩍도 안 하길래 그대로 가는 줄 알았지. 네 어머니도 그렇고.”
신유강이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어느새 가져온 향을 손에 들고 꾸벅꾸벅 절은 했다. 그것은 마치 죽은 사람에게 예를 표하는 것 같았기에 장삼은 더욱 인상을 찌푸렸다.
“살아 있다. 나 멀쩡하다고, 이 새끼야.”
“그것 참 안타깝군.”
신유강의 표정은 진정 안타까운 듯 보였다.
그것이 어찌나 기가 찬지 장삼은 할 말을 잃은 눈빛을 보냈고, 곁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왕윤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일어났으니 다행이다. 벌써 하루 반나절이 넘게 눈을 뜨지 않아서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냐?”
“내가 하루 반나절이나 자고 있었다고?”
장삼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어쩐지 눈을 뜨자마자 머리가 띵한 게 오랫동안 잠을 자고 있었던 후유증이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된 거야? 객잔은? 다른 애들은?”
잘은 기억이 나지 않았으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객잔이 불타오르는 것을 보았다.
이후, 사람을 깨우기 위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다가 흑의를 입은 이들을 보았고, 그 뒤로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확실한 것은 자신이 그 흑의를 입은 자에게 베였다는 것이었다.
장삼은 자신이 죽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이렇듯 눈을 뜨고 신유강과 왕윤을 보고 있자니 죽은 것 같지는 않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왕윤은 당황스러워 하는 장삼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하루 반나절 동안 눈을 뜨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혹여 누군가에게 당한 것이라면 절대 가만히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객잔은 어떻게 됐어? 분명 불이 났었는데…… 애들은? 또 이상한 흑의인들이…….”
“객잔에 불이 났다고?”
신유강은 장삼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는 듯 물었다.
그러자 장삼은 골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에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하여 죽어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쯧쯧, 중 의원님을 불러다 주랴? 멀쩡한 객잔을 왜 태워, 인마.”
“머, 멀쩡해?”
장삼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화마(火魔)가 집어삼킨 객잔을 두 눈으로 보았다.
결코 멀쩡할 리가 없었다.
과거 천운객잔이 불에 탔을 때보다 더욱 거세게 몰아치는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객잔이 멀쩡하단 말인가?
“정말로 그을린 것 하나 없이 멀쩡하단 말이야?”
“그래, 네놈이 코딱지를 묻혀 놓은 벽면까지 그대로 있다.”
“거짓말하지 말고! 난 봤다고 객잔이 활활 타오르는 걸 말이야!”
신유강은 조금 전부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장삼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빡!
“아악!”
“이 새끼야, 어디서 그런 재수없는 소리를 해? 객잔에 화재가 났으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지금도 잘 굴러 가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개꿈을 꿨나 보군.”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삼은 믿을 수 없었다. 신유강은 물론 왕윤마저 그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객잔은 현재 멀쩡했다.
불에 타 그을린 흔적은 물론이며, 마치 처음 객잔을 지었을 때와 별반 다를 바 없이 깨끗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그럼 이상한 흑의인들은……?”
“흑의인?”
“그, 그래 복면을 쓴 사람들이 객잔 앞에 있었고, 객잔이 불타고 있었고…… 그리고 내가 칼에…… 베였는데.”
칼에 베였다는 말을 하며 장삼은 자신의 상의를 젖혔다.
분명히 그는 가슴이 깊게 베였으며, 그 감각이 아직까지도 생생했기 때문이다.
“어?”
그러나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몸 어디에도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장삼은 허망한 표정으로 축 늘어졌다.
“의원 말로는 심신이 피로해서 쓰러진 것 같다던데, 이제 보니 아주 정신이 나갔구나? 당분간 집에서 쉬고 있어라.”
툭 하고 내던지 신유강의 말에 장삼은 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꿈이라 여길 수 없는 상황이었던 만큼 지금 이 상황이 놀랍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깨어난 걸 봤으니 이만 가련다. 며칠 몸 좀 제대로 추스려라. 특히 여기.”
신유강은 자신의 머리통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마치 장삼의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듯 말이다.
“…….”
그러나 여전히 장삼은 대답이 없었다.
그때 당시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기 바빴다.
신유강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흥미를 잃었는지 등을 돌려 방을 빠져나가고 있었는데, 문득 무언가가 생각이 났던 것인지 은근슬쩍 질문을 던졌다.
“근데 말이다. 그 흑의인이라는 놈들 낯이 익든?”
지금까지 자신을 정신병자로 몰고 있었던 신유강이 처음으로 흑의인들에 대해 물으니 장삼은 고개를 퍼뜩 들었다.
아주 순간이기는 했지만 확실히 기억이 난다.
한 사람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이들은 대부분 당소혜에게 맞아 널브러졌던 대운상단의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대운상단…… 사람들 같았어.”
“놀고 있다. 내가 그놈들한테 객잔을 팔까 봐 설마 이런 연극을 한 건 아니겠지?”
슬쩍 장삼을 향해 시선을 돌린 신유강이 묻자, 장삼은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애초에 그가 객잔을 팔 것이란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탓이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진짜로 간다. 쉬어라.”
벙쩌 있는 장삼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온 신유강은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