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정말 아슬아슬했다.’
만약 소소가 객잔에 물건을 놓고 오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장삼은 죽었을 테고, 객잔은 활활 타오르고 잿더미만 남았을 것이다.
물론 재만 남았다 하더라도 본래대로 돌려놓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이미 불타 없어진 곳이 하루 아침에 본래의 모습을 찾는다는 건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신유강이 도착했을 때에는 흑의인들로 보이는 이들이 어둠 속으로 막 사라질 때였고, 장삼이 피를 뿌리고 누워 있었다.
그는 회귀신공을 극도로 발휘하여 객잔이 있는 공간을 불이 붙기 전으로 돌려놓았고, 죽어 가는 장삼을 치유하여 집에 데려다 놓았다.
한 번에 큰 힘을 쓴 탓에 회귀신공이 몸 안에서 크게 날뛰고 있지만, 장삼과 객잔이 타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객잔이 잿더미가 되었다면 진소소가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 분명했다.
신유강은 끙 하며 신음을 삼켰다.
“이걸 어쩐다?”
대운상단에 소문이 좋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벌써 손을 쓸 줄은 몰랐다. 불을 지르려 할 만큼 객잔을 손에 넣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아 또다시 무슨 일을 저지를 것이 분명했다.
신유강은 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 * *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육평초는 태어나 지금같이 소리를 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하고, 또 해 보아도 결코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인지라, 절로 언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수하들은 분명히 불을 질렀다고 했다.
그러나 객잔은 멀쩡하게 돌아갔다.
어디 한 곳 그을린 데가 없으며, 한바탕 난리가 났을 법도 하것만, 그러한 낌새조차 없이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굴러가고 있었다.
말이 되지 않는다.
객잔에 불을 지른 것은 풍백이었다.
그는 육평초가 고용한 일류 고수로 상당히 이름이 있는 이였으며, 여태껏 실패해 본 적이 없었다.
분명 그가 불을 질렀다 말을 하였고, 객잔에서 일하는 이 또한 죽였다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객잔은 멀쩡하고 죽었다는 이는 멀쩡하다 한다. 하오문에 연락을 넣어 정보를 긁어모았으니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육평초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풍백! 풍백!”
“그렇지 부르지 않아도 옆에 있소.”
“이게 어찌 된 일이냐고 묻지 않소!”
“그러니까 난 잘 모르겠다니까. 분명히 객잔에 불을 지른 건 사실이고, 그 숙수 놈인지 뭔지 하는 그놈도 죽였소.”
“그런데 객잔은 불에 타지도 않았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다그치는 육평초를 바라보며 풍백은 아미를 찌푸렸다. 그 또한 어떻게 된 일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확실하게 손을 썼다는 것은 틀림없다.
“다른 놈들에게 물어보시오. 나는 분명히 했소이다.”
육평초는 바득바득 이를 갈면서도 더 이상 뭐라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미 그곳에 갔던 수하들에게 그 당시에 일을 모조리 들었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기름을 뿌렸고, 화섭자로 불까지 붙였다고 한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정말 미치겠군.”
이번 일은 대운상단이 진행하고 있는 일들 중에서도 꽤 규모가 컸다.
무림맹에서는 돈이 얼마가 들든지 사천에다 학관을 지으려 하고 있었으며, 대운상단은 그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온갖 힘을 들이고 있다.
이미 천운객잔 주변 땅들은 대부분 사 두었다.
남은 것은 그곳 하나였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직접 가 보는 게 어떻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상하기 짝이 없는 것은 풍백 또한 마찬가지다.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고, 진법에 빠져든 것도 아닌데, 활활 타오르던 객잔이 멀쩡하니 당연하다.
“얼굴을 보이지 않았겠지?”
“죽은 놈이 보긴 했지만…… 뭐, 어떻소?”
“이런 제길!”
죽은 놈은 무얼 보아도 상관은 없다.
그러나 그놈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상황이 다르다. 이래선 풍백이나 객잔으로 갔던 이들을 모두 숨겨 두어야 할 판국이었다.
가뜩이나 일손이 모자란 상황이기 때문에 육평초의 인상은 더더욱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군……. 나 혼자 다녀올 테니 당신은 여기서 집이나 지키시오.”
“큭큭, 그러시구려.”
한껏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은 풍백의 태도에 육평초는 더더욱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실력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돈을 주는 고용주를 무시하는 그의 행태가 못마땅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가도 괜찮겠소? 분명히 사천당가주가 찾아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기연객잔을 향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풍백은 움찔 손을 멈추었다.
확실히 조금 있으면 당가의 가주인 당초운이 이곳으로 찾아올 것이다.
무림맹에서도 상당한 요직에 앉아 있는 당초운이니 무시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아마도 학관이 지어질 자리를 확보하였는지 알아보기 위해 오는 것일 터다.
“빌어먹을…….”
* * *
진소소는 고운 아미를 찌푸리며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사천에 있는 황룡객잔보다 더욱 유명한 곳이니, 하루에도 상당히 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제일 바쁜 것은 점소이가 아닌 요리를 만드는 숙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숙수인 장삼이 눈을 뜨지 못한 채 누워 있으니,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진소소뿐이었다.
“니미, 이 짓도 오랜만이네.”
평소 객잔을 지키는 무사라는 신분으로 탱자탱자 놀고만 있었던 흑호는 무시무시하게 눈을 부라리는 진소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점소이 노릇을 하고 있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하지 않던가?
진소소가 객잔을 관리만 할 때라면 상관이 없지만, 그녀가 직접 요리를 만든다면 흑호 또한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흑호가 노는 것에 배알이 꼬리기 때문이다.
“오향장육이에요.”
요리가 나오자 제일 먼저 흑호가 다른 점소이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 눈빛이 어찌나 살벌한지, 한참 동안 손님과 수다를 떨고 있던 점소이 하나가 후다닥 달려가 오향장육을 받아 왔다.
“다른 사람 시키지 말고, 직접 해요. 직접!”
“내가 하나 저놈들이 하나 똑같은데 뭘 그래?”
“저 사람들 하나 나를 때 아저씨는 네다섯 개를 나를 수 있잖아요.”
오랫동안 노점을 하면서 얻은 것이 있었던 탓에 흑호는 이미 최고의 점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접객에 능했다.
더욱이 무공마저 익히고 있으니, 사람들 사이사이를 빠져나가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인지라, 그가 이 드넓은 객잔을 제일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에이 빌어먹을! 대주도 오라고 그래!”
“흑영 아저씨는 다른 일 때문에 바쁘잖아요.”
“집에서 주판이나 두들기는 사람이 뭐가 바쁘다고!”
흑영은 총관이 되었다.
홍등가를 비롯하여 이곳저곳에서 나는 수입을 관리하는 것이 그의 일이니, 웬만하면 장원에서 나오지 않았다.
워낙 일이 많은 탓도 있었지만, 그의 집안이 본래 상인 집안이었던지라, 상재가 뛰어났다.
진소소와 신유강이 이만큼 부를 쌓을 수 있는 것도 대부분 흑영의 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소소는 흑영에게 딱히 일을 하라 닥달하지 않았는데, 그것 때문에 더욱 마음에 들지 않은 흑호였다.
“그럼 흑호 아저씨도 흑영 아저씨처럼 돈 벌어 오세요. 돈.”
“널 먹여 살리는 건 유강이 그놈 하나면 됐지, 나까지 너를 먹여 살려야 하냐?”
흑호가 슬쩍 말꼬리를 올리자 진소소가 웃었다.
“아저씨한테 저 먹여 살리라고 말 안 할게요. 이런 일을 하기 싫으면 꼬박꼬박 흑영 아저씨 버는 만큼은 가져다 달라는 거예요.”
총관 일을 하면서 흑영이 벌어들이는 돈은 상당했다.
신유강이 도박장에서 회귀신공을 사용해 사기를 치지 않아도, 잃은 돈을 얼마 있지 않아 회수를 할 정도였으니, 버는 돈만 따진다면 한 달에 몇 천 냥은 족히 될 것이다.
그것을 상재도 없는 흑호가 번다고 한다면 어디 가서 사기를 친다든가, 아니면 도박장을 이용하는 방법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흑호는 신유강이 아니다.
도박장에서 돈을 잃으면 잃었지 따지는 못한다.
“그렇게 돈이 좋으면 객잔 산다는 사람 있다며? 그놈들한테 팔아 버리고 딴 데다 지어. 돈 좀 만지겠네.”
흑호 딴에는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생각했다.
사천 바닥이 넓다고는 하지만 하남이나 북경만큼 발전이 되어 있지 않은 곳이다.
더욱이 빈 공터나 다름없는 이 자리를-사실 이것도 흑호 때문이었지만- 고작 오백 냥을 주고 샀으며, 객잔을 짓는 데에는 고작해야 오천 냥 정도가 들었을 뿐이다.
칠만 냥에 판다면 어마어마한 이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제안을 걷어 찼다는 것이 흑호에게 있어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말 말아요. 여긴 우리 네 명이서 쌓아 올린 곳이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다른 사람한테 팔라는 소리가 나와요?”
네 명이서 쌓아 올린 것이라는 말에 흑호는 헛기침을 했다.
과거 노점에서 일을 할 때가 생각이 났던 것이다.
추운 겨울날에도 옷가지를 여미고, 음식을 날랐다. 그렇게 한 푼 두 푼 벌었으며 드디어 제대로 된 객잔이라는 곳을 세운 것이다.
그 당시 느꼈던 희열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모를 것이다.
“크큼, 그, 그렇긴 하지.”
“거 봐요. 흑호 아저씨도 이 객잔을 좋아하긴 하잖아요.”
“따, 딱히 그런 건 아니다. 단지 내가 살아온 방식과는 조금 달라서 흥미가 있었을 뿐이지.”
흑영도 그러하지만, 흑호 또한 마교에서 무공만 익히고 살던 천상 무인이다. 그런 이들이 생전 처음으로 자신들에 손으로 쌓아 올린 것이 생겼으니, 자연스레 정이 들 수밖에 없다.
“큼! 그런데 유강이 녀석은 왜 아직도 안 오는 것이냐? 어제 저녁에도 들어오지 않았지? 설마 벌써 바람을…….”
뭐라 말을 이을려고 했던 흑호는 돌연 콰직! 소리와 함께 진소소가 잡고 있었던 그릇이 깨져 나가자, 시퍼런 안색으로 얼굴을 굳혔다.
흑호는 지난 세월 동안 연무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에는 괴물이라는 것들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특히 이 눈앞에 있는 진소소라는 계집은 그 괴물들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했다.
고작해야 스물넷, 이름있는 후기지수들조차 일류 고수에 들어 겨우 절정을 내다보려 안간힘을 쓰는 나이임이 분명하나, 진소소는 이미 절정에 들어섰다.
지금 흑호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진소소의 상대는 결코 되지 못했다.
‘뭔 말을 못해 썅.’
흑호는 진소소가 특히 신유강에 대한 이야기라면 결코 나쁜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항상 말 조심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지만, 흑호가 생각하기에 다 큰 남자가 외박을 하면 다 거기서 거기였다.
‘과거에 일도 있고 말이지.’
“유강은 장삼이네 가 있어요. 어제도 말한 것 같은데 귀 좀 뚫어 드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