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그는 오랫동안 강호에 몸을 담아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였고, 눈앞에 있는 상대는 이제 약관을 넘은 듯한 청년일 뿐이다.
“조금 전 경공으로 보아 무공을 익히고 있는 놈이 틀림없겠군. 네놈이야말로 뭐하는 녀석이냐. 저 장원에 누가 있는 줄 알고 불을 지른 것이냐?”
신유강은 머리를 긁적였다.
대강 둘 사이에 오간 말을 들은 결과, 눈앞에 있는 남자가 장삼을 죽이려 했던 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불만 지르고 돌아갈 생각이었던 신유강은 의외의 복병이 나타나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짧게 한숨을 쉬었다.
“장삼아, 너는 먼저 가는 게 좋겠다.”
“너, 너는?”
“걱정하지 마. 위험할 것 같으며 바로 사천당가로 달려가지 뭐.”
장삼이 보기엔 도망을 친다 해도 죽음을 피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너무나도 태연한 신유강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안심이 되었다.
그것은 일종의 신뢰였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신유강을 옆에서 보아 왔던 장삼은 신유강이라면 어떠한 일이라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한 그가 진소소에게 어느 정도 무공까지 배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자신이 있는 것 자체가 신유강의 발목을 잡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죽지 마라.”
장삼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등을 돌리자, 신유강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풍백이 몸을 움직여 장삼을 가로막으려 하였는데, 그보다 빠르게 신유강이 풍백의 앞을 막아섰다.
“건방진 놈, 죽고 싶어 안달이라도 난 것이냐?”
담담하게 말을 했지만, 지금 그의 머릿 속에선 경종이 울렸다.
신유강은 한 걸음 내딛였을 뿐인데, 기이한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애송이인데…….’
“방화, 그리고 살인.”
“…….”
풍백이 말없이 응시를 하자 신유강은 슬쩍 몸을 내밀었다.
그것은 마치 베어 보라는 식의 행동 같았기에 풍백은 아미를 찌푸렸다.
정말 죽고 이러는 행동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가?
풍백은 신유강을 바라보며,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지만, 이내 웃음을 터트리고 자세를 잡았다.
상대는 어린 청년이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 봤자 자신의 상대는 아니었다.
그가 일보를 내딛자마자 그의 신형이 빠르게 신유강을 향해 날아갔다.
절정에 달한 무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빠른 신법이었고, 동시에 뽑아 든 칼날의 번뜩임은 그야말로 섬광(閃光)이었다.
쉬이익!
하지만 풍백의 검은 허공을 갈랐고, 신유강의 몸은 어느새 뒤로 젖혀졌다.
그 빠른 움직임을 간파하고, 피해 낸 것이다.
풍백은 너무 놀라 식은땀을 흘렸다.
방금 전 공격은 전력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일류 고수들조차 받아 내기 힘든 일검이었기 때문이다.
검을 피해 낸 당사자인 신유강은 조금 전 보았던 검의 궤적을 떠올리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눈을 뜨며 손가락으로 검의 움직임을 따라해 보더니, 시선을 풍백에게 주며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깔끔하게 몸을 가르는 일검……. 역시 당신이 맞군.”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신유강의 몸이 사라졌다.
‘이형환위?!’
풍백이 놀라 눈을 부릅떴으나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순간, 갑자기 눈앞의 광경이 뒤집히며 하늘이 보였다.
쿵!
커다란 소리와 함께 머리통에 극심한 충격이 느껴졌고, 동시에 누군가의 발이 그의 머리를 밟았다.
퍽!
“크악!”
평소 미약한 내공을 이용해 몸을 보호하고 있었던 풍백은 그 발이 닿는 것과 동시에 내공이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게다가 코뼈가 주저앉는 고통이 엄습했다.
또 발이 내려오는 것을 본 풍백은 이를 악물며 몸을 틀어 피해 냈고, 자리에서 일어나 훌쩍 신유강과 거리를 벌렸다.
아니, 그랬다고 생각을 했다.
분명 발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그것을 피한 게 확실한데, 어느새 다가온 것인지, 신유강의 발이 풍백의 복부를 가격하였다.
“컥!”
엄습해 오는 통증과 함께 몸이 주르륵 밀려 나갔다.
풍백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무너진다는 것은 이십 년 동안 강호에 몸담았던 그의 자존심을 철저히 뭉개 버리는 일이다.
재차 자세를 가다듬으려 몸을 움직인 그는 순간, 어이없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언제……!’
퍼억!
풍백은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러서며 자세를 잡으려 했던 그는 신유강이 손을 뻗는 것과 동시에 다시 신유강의 발아래 누워 있었고, 어김없이 발이 안면에 틀어박혔다.
분명 도망을 쳤고, 몸을 일으켰는데, 한 치도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그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또한 신유강의 발길질이 몸을 가격할 때마다 내공이 흩어지는 통에 고스란히 그 타격을 받아야 했으니 고문도 이런 고문이 따로 없었다.
신유강은 다시 한 번 풍백의 복부를 걷어찼다.
퍽!
둔탁한 울림과 함께 날아간 신형이 나무에 부딪혀 스르륵 무너졌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풍백은 비틀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키며, 매서운 눈빛으로 신유강을 바라봤다.
당장 신유강을 죽여 버릴 듯한 살기가 가득한 눈빛이었다.
거기에 그가 내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리자 살을 에는 날카로움마저 느껴졌다.
“죽여 버리겠다, 이 자식!”
그러나 신유강은 웃었다.
그것이 눈에 거슬렸기에 풍백의 인상이 구겨졌다.
“사술을 믿고 여유를 부렸다간 목이 달아날 게다. 같은 사술에 두 번 당하지는 않는다!”
“사술?”
“그것이 사술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이냐!”
신유강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지금까지 사술이라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풍백의 말을 들어 보니 일리가 있었다.
회귀신공의 힘은 정말 사기적이었으니, 사술이라 여겨도 딱히 이상할 것은 없었다.
“뭐, 그럴지도 모르지.”
“놈!”
풍백은 이를 갈며 달려들었다.
낭인이라고는 하나 절정에 오를 정도로 무수한 경험과 실력을 겸비한 그는 조금 전 개처럼 얻어맞았다는 것에 대해 울분을 금치 못했다.
더욱이 상대가 고작 약관밖에 되지 않은 청년이라는 것이, 그의 자존심을 더욱 자극했다.
신유강을 향해 움직이며 일검을 내지른 풍백의 기세는 그야말로 폭풍과도 같았다.
또한 내질러진 검은 그 폭풍을 뚫고 날아가는 한 마리의 매(鷹) 같았고, 그것은 사냥감을 노리는 듯 번뜩이며 신유강의 눈으로 향했다.
극성의 내력을 끌어올린 탓인지 날아오는 매의 기세는 살벌하다 못해 두려움을 줄 만큼 대단하였는데, 신유강의 눈을 꿰뚫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일검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헉?!”
풍백은 아득 이를 갈며 주위를 둘러봤다.
이형환위는 초극의 경지에 올라선 무인들만 쓸 수 있다는 고절한 수법이다.
저 약관의 청년이 그런 수준에 도달했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더욱이 잔상 또한 남지 않았고, 발을 움직이는 기색도 없었다.
말 그대로 눈앞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난 것이다.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사이 신유강은 그의 등 뒤에 나타났으며, 신유강이 주먹을 내지르는 것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기세가 풍백의 전신을 압박했다.
퍼엉!
“크악!”
몸을 보호하는 내력이 흩어지며 극심한 통증이 전신을 자극했다.
삼 장 이상 날아가 피를 토한 그였으나, 쓰러지지 않고 눈 깜빡일 새도 없이 다가온 신유강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기혈이 뒤틀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극성의 내력을 담은 풍백의 검은 날카로웠다.
그러나 검의 흐름에 따라 부드럽게 움직인 신유강의 손이 강물이 흐르듯 자연스런 기세를 만들어 내더니, 곧 그 흐름을 끓어 내며 검신을 후려쳤다.
단천수(斷川手)!
고서점에 진열되어 있던 무공 중 하나였다.
“으아아악! 내 팔! 내 팔!”
흐르는 물길조차 끊어 버린다는 어마어마한 수공(手功)이었으며, 책자에 적혀 있기론 천하삼대수공 중 하나라 하였다.
그러나 진소연이나 당소혜에게 물어보아도 그것을 아는 이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강호에 존재하는 수공 중 으뜸이라 평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신유강은 새삼 단천수의 위력을 머릿속에 상기하며, 부러진 두 팔을 부여잡은 채 땅을 구르고 있는 풍백을 바라봤다.
“죽이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라.”
나지막하게 읊조린 신유강은 한기가 서린 목소리로 입을 열며, 슬그머니 발을 놀렸다.
단순한 발차기였음에도, 내력으로 몸을 보호할 수 없으니 그 통증은 상당했다.
“컥!”
“넌 사람을 잘못 건드렸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한 신유강은 천천히 그의 단전에 발을 올려놓고 지그시 풍백을 응시했다.
신유강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달은 풍백이 절규를 하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아, 안 돼! 그, 그것만은 안 된다! 내가, 내가 잘못했다. 그, 그러니 단전만은…….”
단전이 파괴된 무인들은 대부분 폐인처럼 생활을 하게 된다.
그것은 내공이 높은 고수일수록 더더욱 그러했다.
항상 내공에 의존을 하며 살다 보니, 내공이 사라지면 허전하다는 말로는 표현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랬기에 단전을 잃은 무인들 중에서는 평범한 이들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 또한 많았다.
더욱이 풍백처럼 온 사방에 적을 만들어 놓는 성격이라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신유강은 하등 상관이 없다는 듯, 그저 무심한 눈빛으로 풍백을 바라보며 발을 움직였다.
퍼걱!
“끄아아악!”
풍백은 신유강의 발이 닿는 것과 동시에 단전의 내공이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격류처럼 기맥을 갈가리 찢어 버릴 듯 움직인 그것들은 극심한 고통을 안겨 주며 서서히 사라졌다.
풍백은 파르르 몸을 떨었다.
비명을 지르는 것조차 힘이 들었는지, 눈을 뒤집고 몸을 떨고 있는 그는 이미 이지를 상실한 듯 보였다.
잠시 후, 단전이 부서진 풍백은 쥐죽은 듯 누워 있었으며, 신유강은 그런 그를 한 번 바라보더니 조용히 등을 돌렸다.
“자, 그럼 다음은…….”
* * *
홍화루는 사천에 있는 하오문 산하 기루 중 가장 큰 곳이었으며, 문을 열 시기가 되면 불곰파가 관리를 하고 있었다.
늦은 밤거리를 홀로 거닐고 있는 신유강을 본 기녀들이 소리를 치며 그를 불렀지만, 신유강은 그저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 줄 뿐이었다.
홍화루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들려오는 것은 시끄러운 풍악과 여인들의 교태 섞인 웃음소리였다.
곳곳에선 술에 취해 떡이 된 이들을의 자리에 은근슬쩍 점소이들이 빈 병을 가져다 놓는 모습도 보였다.
신유강은 예나 지금이나 취한 사람들에게 바가지를 씌워 장사를 하는 이들의 행태에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아침엔 도박장, 저녁엔 기루냐?”
퉁명스레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이 기루를 관리하고 있는 적대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