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45화 (45/200)

# 45

“그, 그러고 보니…….”

금 사십만 냥과 은 이십만 냥은 비교를 할 수가 없을 정도다.

또한 이미 무림맹에서 사람들이 와 있으니, 그가 구한 땅을 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빠르면 하루, 늦어도 삼 일이니, 이자가 많아도 몇 백 냥이 더해지는 것뿐이다.

육평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육평초는 금의신 소…….”

“잠깐, 내 이름은 빼라. 네놈이 나에게 돈을 빌렸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여러모로 골치가 아플 테니까.”

“그, 그럼 어찌합니까?”

“네가 그 증서를 가지고 있는 이에게 이십만 냥을 빌렸으며, 하루 이자는 백오십 냥이다. 라고 쓰면 되지 않느냐. 날짜도 제대로 써라.”

“그, 그럼요 물로, 물론입니다.”

대수롭지 않은 말에 육평초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써 내려갔다.

“이렇게 쓰면 되겠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만약 네놈이 돈을 못 갚으면 어찌한단 말이냐?”

“그럴 리가 없습니다. 삼 일 안에 반드시 갚을 것입니다.”

단언하는 육평초를 바라보며 소동을 쯧쯧 혀를 찼다.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라고 사람 일은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데, 육평초는 너무 자신만만했기 때문이다.

“쯧쯧, 본 소동은 사람을 믿지 않아. 오로지 돈만 믿지. 만약 네놈이 내 돈을 가지고 도망을 간다면 나는 누구에게 하소연을 한단 말이냐?”

“그럼 어찌할까요?”

“대운상단! 네놈의 집안이 그곳이니 당연히 네놈이 갚지 못하면 그곳에서 갚아야지.”

지금까지 기분이 좋았던 육평초는 소동이 자신을 믿지 않으려 하자, 꽤 곤혹스러워했다.

결국 대운상단이 보증을 하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궁지에 몰리면 뵈는 것이 없는 법이다.

더군다나 그 정도 돈은 충분히 갚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집안이 있는 데다, 확실하게 돈이 들어올 것이라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무엇을 하든 거침이 없을 것이다.

그것이 설령 범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일이라 해도 말이다.

“이러면 됩니까?”

대운상단이 이 각서를 보증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한 소동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먹도 마르지 않은 각서를 품에 갈무리하고, 전표를 꺼내어 은 이십만 냥을 육평초에게 주었다.

“확인해 봐라.”

육평초는 황룡전장의 직인이 찍혀 있는 그것을 바라보며 웃었다.

황룡상단의 것은 위조가 불가능한 전표이기 때문에 이것이 결코 가짜가 아니라는 것에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소동. 삼 일 안에 찾아와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해라.”

소동은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였다.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새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으니, 참으로 신기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일이 잘 마무리되자 육평초는 기분 좋게 자리를 떴다.

이제 객잔을 살 수 있을 테니, 남은 것은 아침 일찍 무림맹 인사들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가서 기연객잔과 그 주변의 땅을 팔기만 하면 대운상단의 상단주 자리는 그의 것이 될 것이 분명하다.

육평초는 다시금 왔던 길을 돌아 신유강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또다시 그 빌어먹을 진법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으나, 어쨌든 지금은 조금이라도 빨리 신유강을 만나 문서를 받아야 했다.

하늘을 바라보니, 시간은 대강 인시(寅時)쯤인 것 같았다.

신유강과 거래를 하고, 이른 아침 무림맹 사람들을 만나려면 빠듯하기 그지없는 시간인 셈이다.

육평초는 또다시 한참을 걸었다.

한 번 걸었던 길이라 그는 발 빠르게 걸음을 놀렸으며, 그렇게 반각 정도 시간이 흐르자, 진법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보게! 어디 있는가!”

그러나 아무리 주변을 찾아도 신유강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진법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약속하였는데, 주위에선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육평초는 표정을 굳히며 주위를 살폈다.

처음에는 빠져나온 곳이 다른가 싶었지만, 틀림없이 조금 전 신유강과 함께 있던 그곳이었기에 그는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쳤다.

“이보게! 내가 나왔다니까?”

그러나 아무리 외쳐 보아도 신유강은 그곳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장난하지 말고 어서 썩 나오지 못할까!”

그저 어딘지 모를 산속에 울려 퍼지는 것은 육평초의 절규에 찬 외침뿐이었다.

“야! 이 개새끼야!”

* * *

“유강, 어딜 갔다 와요?”

진소소는 본래 아침잠이 많았다.

아무리 무공을 익혔다고는 하지만 천성이 바뀌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 새벽부터 깨어 있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지난 남 들어오지 않은 신유강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장원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진소소의 모습 때문에 신유강은 꽤 놀란 듯한 눈빛이었으나, 이내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기다리고 있었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말은 그리하나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가 있었기에 신유강은 그런 그녀가 고마웠다.

“그런데 또 술을 마셨나요?”

고작 한마디 했을 뿐이지만, 신유강의 입에서 퍼지는 술 냄새를 맡지 못할 만큼 코가 좋지 않은 것이 아니었던지라, 진소소는 아미를 찌푸리며 물었다.

요 며칠 도박장을 가지 않는다 했더니, 이제는 술에 빠져 사는 건가 걱정이 들었다.

그녀는 앙칼진 눈빛으로 신유강을 쏘아보고 있었는데, 그것이 어찌나 매서웠는지 신유강의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신유강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대웅 형님과 딱 한 잔 마셨을 뿐이야.”

한 잔 마셨다는 말과는 다르게, 훅 하고 풍겨 오는 냄새는, 마치 술독에 빠진 인간을 보는 것만 같았다.

진소소는 포옥 하고 한숨을 쉬었다.

왠지 모르게 머리가 아파 왔기 때문이다.

“후우, 되었어요. 어서 들어가서 쉬세요.”

마치 무언가를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신유강은 마음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 돌아가고 있는 모든 상황을 그녀에게 털어놓을 만큼 신유강은 어리석지 않다.

신유강은 진소소만큼은 아무런 걱정 없이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기실 장원이든 혹은 객잔이든 모두 신유강의 것으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만큼 쌓아 올린 것은 모두 진소소 덕이라 할 수 있다.

칠 년이라는 세월 동안 신유강이 한 것이라곤, 진소소의 옆에 꼬이는 파리들을 치우는 것이 전부였다.

하여 신유강은 진소소만큼은 아무런 걱정 근심 없이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설령 객잔에 일이든 혹은 대운상단에 일이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옳은 선택이라 할 수 있을까?

서서히 멀어져 가고 있는 진소소의 쓸쓸한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신유강은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 곧 해가 뜰 시간이다.

객잔으로 나가려면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 할 것 같았다.

“쯧쯧, 그러고 돌아다니다 소소가 도망이라도 가면 어쩌려 그러냐?”

거처로 돌아가고 있던 신유강은 돌연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언제부터 서 있었던 것인지, 흑호가 삐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도 처음부터 진소소와 신유강의 대화를 모두 들은 듯 모양이다.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은 무슨.”

“한 이틀은 못 본 것 같아서 말이죠.”

신유강은 말을 돌리며 웃었으나, 흑호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미를 찌푸렸다.

그는 요즘 들어 신유강의 행동이 하나부터 열까지 죄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얼마 전까진 하루가 멀다 하고 도박장을 다니는 것 같더니, 이제는 술독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꼴을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도박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지금 신유강이 외박을 하며 술을 마시고 다니는 행동은 다른 일을 하는 것을 진소소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방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미 흑영에게 대부분에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벽하게 납득을 할 수가 없다.

특히 진소소에게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답답하기만 하다.

지금까지 그가 본 진소소는 총명하기 그지없고, 누구보다 영악했다.

아마도 신유강이 무슨 일 때문에 발 벗고 뛰어다닌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신유강이 직접 말을 하는 것과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진소소의 입장에선 말을 해 주지 않는 신유강에게 실망과 함께 소외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눈치 빠른 그녀이니 신유강이 어째서 외박을 하는지 흑영이 그 이유를 알고 있다는 것과 흑호도 대강 파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정떨어져, 이놈아.”

“하하.”

진소소가 신유강에게 정나미가 떨어질 것이라 말을 하는 것이었기에 신유강은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럴 리가요?”

그 말은 단호하게 자신감이 서려 있는 대답이다.

혼례를 하지 않은 사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처음 진소소를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해 왔다. 신유강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부부지연을 맺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에이, 썩을 놈. 내 말 좀 들으니라니까! 너 그러다 한 번에 훅 간다고.”

“하하, 여자하고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설득력이 없습니다.”

흑영은 사십이 넘은 나이이긴 하지만 준수한 외모를 자랑한다.

게다가 무공 또한 상당히 높은 탓에 삼십 대 초반의 외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반면 흑호는 그리 잘생긴 외모가 아니다.

노점을 했을 당시, 미부인들은 대부분 흑영을 보기 위해 찾아왔지만, 흑호를 찾아오는 것은 험악한 남자들이 전부였다.

아마도 이 근방에서 흑호만큼 듬직한 사내들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흑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에이, 썅!”

그렇지 않아도 마음에 걸리고 있었던 것을 서슴없이 꺼내는 신유강에게 흑호가 버럭 소리를 쳤다.

그의 나이도 이제 사십을 바라보고 있다.

좋든 싫든 마교 생활을 끝냈으니, 참한 처자를 만나 알콩달콩 살아도 손해날 것은 전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장원에서 일을 해 주며 받는 돈 또한 상당하니, 어디 가서 굶어 죽을 염려 또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따르지 않으니 흑호는 아주 미칠 지경이었다.

흑호는 어느새 등을 돌린 채 사라지고 있는 신유강을 노려보며 연신 입에 욕을 담았다.

“에이, 망할 놈. 뒤로 자빠져 코나 깨져라!”

* * *

“오늘은 언니가 안 보이네?”

지금 시간은 사시(巳時).

고작해야 몇 시진에 불과하지만, 잠을 좀 자둔 탓인지 신유강이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생생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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