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그들은 제일 앞에 있는 남자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숨을 죽이고 있는 그들의 기척을 알아낼 수 있는 이들은 전 중원을 뒤진다 하더라도 얼마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움직인다.
-명!
적호대(赤虎隊)!
무림에서 마교의 칠대무력단체 중 한 곳인 그들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예부터 지금까지 마교를 지탱하고 있는 기둥이며, 정도 무인들이 설설 길 정도로 대단한 무력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곳의 대주 율초언은 눈앞에 있는 장원을 향해 은밀히 몸을 움직였다.
목표는 셋, 하나는 다른 곳에 있지만, 교를 배신하고 나간 흑영과 흑호를 붙잡는 것 또한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다.
담을 넘어 장원 안으로 들어선 오십여 명의 인물들은 그야말로 한 마리에 비조와도 같은 느낌이다.
누가 본다면 그 웅장한 광경에 넋을 잃을지도 모를 것이다.
* * *
툇마루에 앉아 낮잠을 자고 있던 흑호는 번뜩 눈을 떴다. 사이하게 느껴지는 이 기묘한 기운들은 틀림없이 마기(魔氣)였다.
오로지 마교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며, 전신이 찌릿찌릿해질 정도의 마기를 품은 자들이라면 흑영과 흑호보다 월등히 격이 높은 이들이었다.
흑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빌어먹을…….”
간간이 마교에서 오는 살수들을 물리친 적이 있기는 하나, 지금 느껴지고 있는 이 기운들은 흑호나 흑영이 어찌할 있는 수준이 결코 아니다.
흑호는 그것을 느끼며 다급하게 걸음을 놀렸다.
“대, 대주!”
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흑영 또한 그 기운을 느꼈는지, 어느새 밖으로 나와 표정을 굳히며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올 것이 온 모양이구나.”
마교는 배신자에게 결코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설령 중원 밖으로 도망을 친다 하더라도, 반드시 찾아내어 척살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거기까지 생각을 하던 흑영은 웃음을 지었다.
대략 칠 년.
그동안 찾아온 살수만 스물이 넘었으며, 죽을 위기를 겪은 것 또한 그 정도는 될 것이다.
본래라면 진즉 생을 마감했어야 했다.
마교를 상대로 칠 년 동안 버텼다는 것이 참으로 용한 것이다.
그러나 그 운도 오늘로 끝이었다.
흑영은 담장을 넘어 들어오는 오십여 명의 인물들을 바라보며 그리 생각을 하였다.
새까만 흑의.
가슴에 새겨져 있는 붉은 호랑이의 자수.
“흐음.”
마교에서 자랑하는 타격대이자 척살대.
적호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오랜만이오, 흑영대주.”
“그렇군. 적호대주도 오랜만일세.”
적호대의 대주 율초언은 태연하게 서 있는 흑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무감각한 목소리에는 살을 파고드는 살기마저 느껴지고 있었기에, 흑영의 옆에 서 있던 흑호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저, 저게 적호대?’
적호대의 소문을 듣지 못했을 리 없는 흑호는 시퍼렇게 변한 안색으로 율초언과 다른 이들을 바라봤다. 설마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 웬만한 일로는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는 적호대가 나설 줄은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 이 흑영의 목을 가지로 왔소이까?”
“마존의 명을 받고 사천에서 한 가지 일을 해결하기 위해 온 것이오. 당신들은 그저 겸사겸사 가는 길에 잡아 오라는 명령을 받았고.”
율초언은 귀찮다는 듯 입을 열었다.
사천으로 찾아온 주목적은 어디까지나 금의신 소동이라는 자를 찾기 위함이었다.
흑영과 흑호는 운이 나빴다. 금의신이 있는 사천에 머물고 있을 뿐 아니라, 금의신과 관련이 있다던 신유강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율초언은 내친김에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정리하려는 것이다.
“다른 목적이라…….”
“그대가 신경을 쓸 필요는 없소. 자, 어쩌시겠소? 마존께선 당신들을 웬만하면 살려 데려오라 하셨으나, 내가 받은 명령은 생사(生死), 어느 쪽이든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소.”
적호대에게 떨어진 명령은 되도록 둘을 살려서 끌고 오되, 반항이 심하다면 언제든지 척살을 해도 좋다는 것이었다.
율초언은 후자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괜한 짐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씩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있는 율초언의 표정 때문인지, 흑영은 전신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역시 마교에 있었을 때에는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다 자부를 하였거늘, 과연 적호대였다.
격이 다르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끼고 있었다.
“마존께서 우리를 살려서 데리고 오라 말씀하셨다고 했소?”
“직접 손을 쓰겠다고 하셨소.”
흑영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 마교를 다스리는 마존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누누이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이는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말을 하였고, 그 덕분인지 혹은 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반란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흑영과 흑호는 거기에 찬물을 뿌린 셈이다.
음지에 숨어 호시탐탐 시기를 노리고 있는 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해 준 셈이었고, 마존의 입장에선 흑영과 흑호를 본보기로 삼아야 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소?”
“무엇이오?”
“우리가 따라가기만 하면 그만인 일이니, 이곳에 사는 두 아이는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하오.”
마교는 모든 일을 철두철미하게 처리를 한다.
흑영의 위치가 상당히 고위급이었다는 것을 감안하였을 때, 마교의 비밀이 새어 나갔을 수도 있으니, 적호대가 이 장원에 사는 신유강과 진소소에게 손을 쓸 것은 명백한 일이었다.
흑영은 그것을 감안하여 말을 한 것이다.
“이곳에 있는 아이들은 잘못이 없소. 나 흑영이 내 인생과 이름을 걸고 이야기 하는데, 마교에 대한 정보를 일체 넘긴 적도 없소이다.”
그러나 율초언은 아무런 대답 없이 흑영과 흑호를 번갈아 바라보고만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냉정하고 차가운 눈빛이다.
“걱정하지 마시오. 당신들의 일로 그 아이들에게 피해를 입힐 생각은 없으니…….”
무언가 찝찝한 말이긴 하나 흑영은 납득을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알고 있는 적호대의 대주 율초언은 음흉하긴 해도 결코 약속을 깨는 남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포박하라.”
* * *
“소동…… 소동이라.”
기루를 빠져나와 장원으로 향하고 있는 신유강은 홍화의 얼굴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소동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오 년 전부터였다.
당시 신유강은 회귀신공의 힘으로 어려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그것을 이용해 새로운 인물, 즉 소동을 만들어 내었다.
그것은 능력을 쓰고도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고, 회귀신공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확인을 하기 위함이기도 하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금의신 소동.
딱히 돈을 벌기 위해 한 일은 아니었지만, 태어날 때부터 본래 가지고 있던 병만 아니라면, 그 어떠한 것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막대한 돈을 챙기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아, 진짜!”
신유강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짜증스레 소리를 쳤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상황은 육평초 탓이다.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굳이 적대웅에게 정보를 얻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며, 소동의 신분을 이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하오문은 당분간 잠잠할 테지만, 그것이 얼마나 갈지는 결코 모르는 일이다. 육평초가 소리를 쳤을 당시, 객잔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정보력이 뛰어난 곳에서 마음만 먹고 매달린다면, 소동과 신유강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지금보다 더욱 곤란한 상황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 된 거지…… 하아…….”
신유강은 한숨을 폭 하고 내쉬었다.
칠 년 동안 아무 일 없이 평범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육평초가 나타나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하였고, 여기저기에서 파리가 꼬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신유강은 만약 며칠 전으로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결코 소동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을 했다.
그러나 칠 년 전처럼 과거로 무한회귀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회귀신공에 능력을 일일이 확인을 해 보았지만, 자신의 의지에 따라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성공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신유강은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을 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갔다가 또다시 무한회귀를 하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울화가 치밀어 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아.”
신유강은 또다시 한숨을 내뱉었다.
본래라면 객잔으로 돌아가 진소소의 일을 도와주어야 함이 마땅하나, 오늘은 영 일을 할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장원으로 다가선 신유강은 조심스레 장원의 문을 열었다.
힘없는 아이처럼 축 처진 어깨로 터벅터벅 안으로 방으로 향하고 있던 신유강은 기이한 기척에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
“…….”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참으로 이상한 광경이었다.
처음 보는 흑의인들이 오십여 명 정도 있었고, 흑영과 흑호가 포승줄에 묶여 그들에게 끌려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사이 모습을 드러낸 신유강과 흑의인들의 눈이 마주쳤다.
“뭐……?”
신유강은 이 어이없는 상황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었다. 대낮에 납치라니?
더욱이 아리따운 처자도 아닌 우락부락하고 쓸모도 없는 남자 둘을 끌고 가는 건 또 뭔가.
골치가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쥔 신유강은 또다시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라진 흑의인들을 제외하고도 상당히 많은 이들이 있다. 고작해야 좀도둑으로는 보이지 않는 데다, 실력이 있는 흑영과 흑호가 끌려가고 있는 것을 보니, 절정에 오른 고수들이 틀림없어 보인다.
“아이고, 내 인생아…….”
신유강은 자신의 인생을 저주하며 슬그머니 기수식을 취했다. 어쨌든 흑영과 흑호는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신유강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그를 주시하고 있었던 율초언은 돌연 기수식을 취하는 신유강의 모습에 나지막하게 웃음을 지었다.
“네놈이 신유강이라는 녀석이냐?”
“사람 잡아가는 도적놈들도 내 이름을 알고, 나도 참 유명해진 것 같군.”
신유강의 말에 여기저기에서 낄낄거리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신들을 앞에 두고 기수식을 취하는 어리석음과 대 놓고 하급 잡졸 취급을 하는 신유강의 말투가 우스웠던 것이다.
“둘을 돌려받아야겠소.”
율초언은 가늘게 눈을 떴다.
신유강은 무슨 일이 있어도 흑영과 흑호를 돌려받으려 하는 눈치였다.
정보에 의하면 흑영이 칠 년 동안 뒤를 돌봐주었다고 했기에 처음에는 핏줄로 이어진 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러한 것도 아니었다.
인연조차 없는 이들이 모종의 인연으로 만나 칠 년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정이 들었을 테니, 신유강이 저런 식으로 나오는 것 또한 이상하지 않았다.
다만 상대가 나빴다.
“흑영과 흑호라면 포기를 하는 것이 좋을 거다. 그보다 내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꼬마.”
“꼬마라니? 이래 봬도 스물두 살이오, 늙은이.”
늙은이라는 말에 무표정하던 율초언의 인상이 구겨졌다. 그는 흑영보다 나이가 어려도 한참이나 어렸다. 아직 서른 중반밖에 되지 않았으니, 늙은이라 불리는 것이 마음에 들 리가 없다.
“네놈의 목에는 흥미가 없지만, 한 번만 더 지껄인다면 이 자리에서 죽여 주마.”
“나를 죽일 수 있는 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