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신유강은 단순히 칼질을 하든 혹은 독약을 마시든, 회귀신공의 권능이 몸을 지켜 주기 때문에 그리 말하는 것이었으나, 받아들이는 흑의인들에게는 상당히 다르게 들렸다.
적호대 대원들과 율초언은 겁도 없이 광오한 말을 내뱉는 신유강을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한마디로 천하에 적수가 없다는 말이지 않은가.
“어리석은 놈이로군.”
신유강은 슬쩍 발을 놀리기 시작하는 율초언을 바라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아침 장원을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평화롭던 일상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하루 종일 치고받는 연속이었다.
퍽!
“크억!”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을 무렵, 돌연 턱에서부터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언제 다가온 것인지 율초언의 무릎이 그의 턱을 가격한 것이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게다.”
빠각!
검갑을 이용해 머리통을 내려치는 속도는 가히 빛살과도 같았다.
진소소조차 흉내 내지 못할 것 같은 움직임을 신유강이 막아 낼 리가 없었으며, 회귀신공을 사용하려 했지만, 작은 틈조차 생기지 않았다.
퍽퍽!
“커억!”
몸은 절로 치유가 되고 있으나 공격은 불가능하다.
움직이려는 순간 절묘하게 파고드는 율초언의 공격은, 신체의 자유를 빼앗았고, 신유강은 매섭게 날아오는 공격을 단 한 번의 반격조차 하지 못한 채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절로 몸이 치유가 된다고는 하나 정신만은 그렇지 않다. 더욱이 상대가 내공을 사용하지 않으니, 회귀신공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는 회(回)의 힘을 이용해, 상대의 힘을 되돌릴 수도 없었다.
“끈질기군.”
정신없이 주먹을 뻗고 있는 율초언은, 생각했던 것 보다 단단한 신유강의 맷집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힘을 빼고 있다고는 하나, 일류 고수들조차 몇 대만 맞아도 피를 토하며 널브러질 공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유강은 꿋꿋하게 서 있었다.
율초언은 짐짓 인상을 쓰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빠각!
“커억.”
신유강은 입안에 고인 피를 내뱉으며 비틀거렸다.
회귀신공을 쓸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있으니, 그저 얻어맞고 있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빌어먹을’
단순히 무공에 길들여져 있는 자였다면, 얼마든지 이길 자신이 있는 그였으나,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박투술에도 상당히 능했다.
신유강은 지금까지 내공에 의존하는 무인들과 싸워 왔다. 흑영이나 흑호는 물론이며 지금까지 싸웠던 모든 이들이 내공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내공은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자랑하나, 신유강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회귀신공에 기운들이 내공을 되돌리면서 들어오는 힘을 격감시키기 때문이다.
돌아온 내력에 상대는 내상을 입게 되고, 신유강은 언제나 그 틈을 타 승기를 잡았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다르다.
내공을 사용하지 않으니, 되돌릴 내력이 존재하지 않았고, 고스란히 그 충격이 전해져 왔다.
더욱이 신유강의 몸이 반응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내질러 오니, 회귀신공을 사용할 틈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 무슨 개 같은…….’
신유강은 율초언과 거리가 조금 벌어졌다는 것을 느낀 순간, 회귀신공의 공능을 끌어올리며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그것을 가만히 봐줄 율초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적당한 힘을 주며 주먹을 휘둘렀던 율초언은, 쓰러지지 않는 신유강에게 질렸다는 듯, 강하게 주먹을 움켜쥐고 안면을 가격했다.
빠각!
“커억……!”
일순 신유강의 몸이 크게 휘청거리더니, 결코 쓰러질 것 같지 않았던 그의 몸이 힘없이 널브러졌다.
율초언은 쓰러진 신유강을 바라보며 피 묻은 손을 털었다.
무공 수준이 별로라는 정보와는 다르게, 생각했던 것 보다 잘 버텼다는 느낌이다.
만약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큰 흥미를 가졌을 것이다.
“끌고 가라.”
“명!”
第四章. 마교인연(魔敎因緣)
“으아아악!”
신유강은 번뜩 눈을 뜨며 괴성을 내질렀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고, 혼란스러움을 정리할 새도 없이, 몸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를 느꼈기에 소리를 지른 것이다.
“이제야 일어났군.”
차츰 몸에서 고통이 사라지자 신유강은 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장원에서 있었던 일이 꿈이 아니라는 듯, 흑의를 입고 있는 이들이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신유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유강은 화들짝 정신을 차리며 숨을 골랐다.
‘꿈이 아니다.’
생생하게 전해져 오는 이 감각, 그는 회귀신공이라는 어마어마한 무공을 익힌 뒤로, 단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었던 자신이 처음으로 패배를 했다는 사실을 머릿속에 상기하며 신음을 흘렸다.
“쯧,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나? 다시 한 번 하라.”
돌연 들려오는 율초언의 목소리에, 신유강은 상념을 깨며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깨어났소, 깨어났다니까?”
“흐음, 내가 보기에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구나.”
“정신이라니?”
신유강은 빙긋 웃는 율초언의 얼굴을 바라보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와도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기에 더욱 울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정신이 들었다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에 정직하게 대답하도록.”
“도대체 뭐가 궁금해서 이런 짓을 하는 것이오?”
장원에서 이들을 처음 보았을 때는 단순히, 인신매매범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흑영과 흑호를 잡아가는 것을 눈으로 보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신매매범들이, 흑영과 흑호를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자신을 이렇게까지 몰아넣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강은 짧게 숨을 고르며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봤다.
수십여 명의 흑의인들.
지금 신유강은 어딘지 모를 폐가 같은 곳 기둥에 묶인 채로, 고문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신유강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어째서?’
온갖 의문들이 머릿속에 가득하였지만, 대충 답을 추측해 본다면, 이들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장원에 침입을 하였고, 흑영과 흑호는 그 희생양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신유강은 웃었다.
“하, 하하, 이것 참…….”
“뭐가 웃기느냐?”
“마교의 사람이라는 자들이, 힘없는 사람을 잡아다 이런 일을 벌이고 있으니, 어찌 우습지 않겠소.”
흑영과 흑호를 강제로 데려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들.
처음부터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인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성격 더러운 흑호가 반항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시켰다면 충분히 이들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을 것을.
신유강은 게슴츠레 눈을 떴다.
오늘 하루 일진이 더럽게 사납다는 생각을 하며.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구나, 흑영과 흑호는 교를 배신했으니 교에서 처벌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반대로 네놈은…….”
율초언은 슬그머니 말끝을 흐렸다.
마치 궁금하면 맞춰 보라는 듯, 기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기 때문에 신유강은 애써 터져 나오려는 욕을 참으며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무엇이오?”
“금의신 소동에 대해 알고 있다지?”
순간 신유강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육평초가 쓸데없는 한마디를 한 탓에 하오문의 분타주가 움직였고, 그 소동을 정리한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또다시 그것 때문에 이 난리가 일어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놈의 멱을 끊어 놓았을 것을…….’
단순히 장원을 불태우고 빚더미에 몰아넣은 것으로 끝을 냈던 것이 이런 식으로 되돌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육평초가 일을 벌이기 전에 제거를 했어야 함이 옳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신유강은 슬쩍 눈알을 굴렸다.
송곳으로 뚤렸던 다리가 멀쩡해졌다.
정신이 돌아온 순간, 회귀신공의 공능도 되살아났으니, 다친 것이 순식간에 아문 것이다. 더 이상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다.
다행히 옷과 피에 가려 보이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만약 이것을 흑의인들이 알게 된다면 단순히 금의신 소동에 대한 이야기로 끝날 것이 아니다.
신유강은 모든 것을 체념한 사람처럼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빌어먹을, 소동이라면 내가 아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이곳을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을 빠져나간다 하더라도 이들은 다시금 장원을 찾아올 것이고, 그때는 단순히 신유강만 말려들지 않을 것이다.
진소소 또한 위험해질 수 있다.
신유강은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자네가 곱게 소동에 대해 말을 해 준다면 나는 결코 네놈을 죽이지 않겠다.”
‘나는…… 이라고?’
그 말인 즉, 자신은 손을 쓰지 않더라도 수하들은 언제든 손을 쓸 수 있다는 말과 같았기에, 신유강은 헛웃음을 지었다.
결국엔 입막음을 하겠다는 소리이지 않은가.
그러나 신유강은 최대한 티를 내지 않았다.
“소동에 대해 무엇을 알고 싶으시오?”
“그가 있는 곳.”
“이곳 사천이오.”
아주 당연한 말을 서슴없이 하는 그를 보며 흑의인들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소동이 사천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웃고 있었던 율초언의 얼굴이 굳어졌고, 날카롭기 그지없는 눈동자로 신유강을 쏘아보며 물었다.
“장난하느냐?”
“나도 그 이상은 모르오.”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신유강은 소동에 대해 아는 것을 전부 이야기했다는 듯싶기도 하다. 그러나 율초언이 원하는 것은 그러한 답이 아니었다.
육평초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 믿는다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율초언은 신유강이 어떠한 이유인지는 모르나, 소동에 대해 알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떨리는 눈동자는 물론이며, 어색하게 웃음 짓는 표정, 그리고 정신이 불안할 때 나타나는 여러 징후 등을 바라보며 말이다.
“소동이 사천에 있다는 것은 어린아이조차 아는 사실이다. 내가 원하는 답이 그러한 것이 아님을 네놈은 알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율초언은 조용히 말을 하며 은근슬쩍 신유강의 안색을 살폈다. 그러나 처음 보였던 그 어색한 표정과 행동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지금은 당당하게 눈을 마주하며 고개를 젓는다.
“글쎄?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소만…… 사천에 있다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전부라오.”
만약 지금 행동을 조금 전 보여 주었더라면, 율초언은 육평초에게 속았다는 생각을 했을 만큼 진심이 담겨 있는 한마디였다.
그러나 이미 확신을 가지고 있는 율초언에게 통하지 않을 대답이다.
“그렇군. 네놈이 쉽게 입을 열 것이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럼 이걸 어쩐다? 나는 꼭 소동에 대해 알아야 하겠고, 네놈은 입을 열지 않으려 하니…….”
율초언은 은근슬쩍 시선을 돌려 피범벅이가 되어 있는 신유강의 허벅지를 바라봤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한 자루에 비수가 들려 있었고, 뒤틀린 표정에 율초언은 단순히 찌르는 행위만으로 끝낼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뭐…… 뭘 하려고…….”
있는 대로 이 상황을 받아들인다면 율초언이 할 수 있는 것이야 뻔하다.
고문하여 신유강의 입을 강제로 열게 하려는 심산이 분명하다.
“다시 한 번 묻지. 금의신 소동의 위치는?”
마지막 경고를 하는 율초언의 목소리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금의신 소동에 대한 단서는 사천 전체를 뒤진다 해도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