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하여 그 단서를 알고 있는 신유강을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지옥을 맛보여 주는 것 정도는 쉬이 할 수 있었다.
어찌 되었든 말을 할 수 있고, 대답을 할 수 있는 기력만 있으면 그만이다.
율초언은 아무런 대답이 없는 신유강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말없이 무언가를 명령하는 그의 모습에, 흑의인은 망설임 없이 신유강의 팔에 비수를 꽂았다.
푸욱!
“으아아악!”
송곳으로 한 번 찔렸던 그곳에 다시금 비수가 거침없이 들어가자, 신유강의 입에서 괴성이 울려 퍼졌다. 그것으로 끝이 아닌 것인지 비수를 뽑아 낸 율초언은 몇 번이고 같은 곳을 쑤셨다.
“으아악!”
신유강은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소리를 내질렀다.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몸에 날붙이가 들어오는 느낌과 그것을 생생하게 바라보며, 고통을 느껴야 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이었다.
그만 멈췄으면 했으나, 율초언은 일각 동안 멈추지 않고 신유강의 허벅지를 찔렀고, 한동안 폐가 안은 신유강의 비명 소리로 가득 찼다.
“다시 한 번 묻지. 소동의 위치는?”
“크윽…… 나는 정말로 모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신유강은 괴로움에 발버둥을 치며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시뻘겋게 얼굴이 붉어진 것은 물론이며, 눈의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드러나 있는 것이 상당히 화가 나 있는 모양이다.
“나는 거짓말을 하는 녀석을 싫어한다. 어디 보자, 이번엔 네놈의 눈알을 파 보도록 하지. 눈을 파고도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조금 번거롭기는 하지만 네놈이 머물던 장원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신유강의 장원이 있는 사천의 성도와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 곳으로, 한 시진 정도 거리가 있다.
아무리 경공을 발휘하여 달린다 해도 족히 반 시진은 더 걸릴 것이니, 율초언에게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장원이라는 말에 신유강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신유강은 이곳이 어디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저들이 장원으로 간다는 소리는 결국 진소소에게 해를 가하겠다는 말과 같으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컥 솟구쳐 오르는 살심을 감추지 못했다.
“흑영도 그렇고 네놈도 그렇고, 그 장원에 네놈들이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하군.”
지난 칠 년 동안 사천 바닥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율초언은 흑영이나 신유강이 가장 지키고 싶어 하는 인물이 진소소라는 여인이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무공을 익히고 있는 데다 성이 진씨라는 것만 보아도, 하북진가를 연상할 수 있다. 더욱이 그녀의 미모는 한때 중원제일미라 칭송받았던 하북진가의 전 안주인과 꼭 빼다 박았다.
아무리 모자란 사람이라도 이 정도의 정보가 있다면 충분히 그녀가 하북진가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마교의 정보에 따르면 오래전 집을 나간 뒤로 소식이 없다고 하였는데, 그런 그녀가 고작 점소이와 함께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저 웃음만 나올 지경이었다.
율초언은 내심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입술을 말아 올렸다.
“자…… 네놈이 입을 여는 것을 기다릴까 아니면 장원으로 돌아가서 그 계집의 입을 열어 볼까? 진소소라 했던가?”
신유강은 매서운 눈빛으로 율초언을 쏘아봤다.
그에게 있어 돈과 명예 같은 것은 일절 필요 없었다. 가지고 싶다 생각을 해 본 적은 있지만, 지금 와서 그러한 것이 무슨 소용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소소를 속이면서까지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이유는 오로지 그녀에게 평온한 삶을 선물하기 위함이었다.
진소소는 신유강에게 있어서 삶의 이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데 율초언이 진소소에게 위해를 가하겠다고 말을 하고 있으니, 자연스레 분노가 치미는 것이다.
“입 다물어. 함부로 그녀의 이름을 그 더러운 입에 올리지도 마라. 역겨우니까.”
거침없는 신유강의 말에 흑의인들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는 마교에서도 교주 외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는 적호대의 대주 율초언이었다.
장로들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위치에 있으며, 중원의 정파에서도 그가 나타났다는 소리를 들으면 오줌을 지릴 정도다.
그런데 고작 점소이 출신의 버러지 같은 녀석이, 자신들의 대주를 가리켜 역겹다 말을 하니, 열이 뻗쳤던 것이다.
결국 화를 참지 못한 한 흑의인이 쏜살같이 움직이며 신유강을 향해 낫을 휘둘렀다. 단순히 위협으로 휘두르는 것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목숨을 뺏기 위해 휘두른 것 또한 아니다.
푸욱!
“크으윽!”
흑의인의 낫이 신유강의 허벅지를 깊게 파고들었다.
피가 튀기는 것과 동시에, 신유강의 입에서 고통에 겨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흑의인은 마치 그런 신유강의 얼굴을 즐기고 있는 듯한 모습이 역력했다.
입꼬리를 비틀며 허벅지를 깊숙이 찍어 놓은 낫을 빙글빙글 돌리기까지 한다.
그럴 때마다 신유강은 더욱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그쯤 해라.”
율초언은 히죽 웃음을 지었다.
‘어린놈이 강단도 좋군.’
무공을 제대로 익힌 것 같지도 않은데, 이리 많은 수의 마교인들이 있음에도 전혀 기죽는 기색이 없다.
더욱이 고문을 받으면서도 살려 달라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
웬만한 무인들조차 하지 못하는 일을 이 어린 녀석이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만남이 아니었다면, 데려다 제자로 삼고 싶을 정도로 욕심이 나는 그였으나, 율초언은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자였다.
“묻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네놈이 입을 열지 않는다면 장원으로 돌아가기 전에 더 험한 꼴을 당할지도 모르지.”
싸늘한 경고를 하는 율초언의 한마디에 신유강의 입이 호선을 그렸다.
과거 무수히 많은 시간 회귀를 하면서 신유강은 온갖 일을 다 겪어 보았다.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너무 안일했다.’
신유강은 반성을 하고 있었다. 지난 칠 년 동안 자신은 너무 평화에 찌들었다. 찌들다 못해 중독되어 버렸다. 하루하루 긴장을 하며 살던 예전의 그는 사라졌다.
그것이 이렇게 큰 고통으로 되돌아와 교훈을 주고 있었다.
“소동이라는 놈을 왜 나한테서 찾느냔 말이야! 이 개자식들아!”
지금까지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던 율초언의 얼굴이 굳어졌다.
또한 지켜보고 있던 다른 적호대원들마저 인상을 찌푸릴 만큼 대담한 말이었다.
고작해야 약관을 넘은 청년이다.
그러나 가지고 있는 강단은 적호대원들 못지않게 굳건했다.
율초언은 한숨을 내쉬었다.
“끈질긴 놈이로군.”
신유강은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금의신 소동에 대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숨겨야 하는 일이다.
어떤 병이든 걸리지 않았을 때로 되돌리는 그의 능력은, 어찌 본다면 진소소가 가지고 있는 선기단보다 위험했다.
물론 선기단만 하겠냐만, 아픈 사람들에게 있어 소동이라는 존재는 그야말로 신과 동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신유강은 신음을 삼켰다.
이대로 더 시간을 끌었다간 저들에게 들킬지도 모른다.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인간이 가장 바라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행히 그의 전신은 피투성이였다.
상처가 나아도 그리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이 정말로 눈알을 판다면 반드시 들킬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율초언이나 다른 이들의 눈빛이 조금씩 기이하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신유강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분명 가장 많이 찔린 허벅지가 걸레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러한 낌새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에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신유강은 숨을 골랐다.
‘어찌해야 하나.’
회귀신공을 이용해 이곳에서 탈출한다 하더라도, 이들은 틀림없이 장원으로 찾아올 것이다. 신유강은 결코 그러한 상황을 원치 않았기에, 괜스레 골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다.
그때였다.
불빛조차 새어 나가지 못하게 사방을 막아 놓은 폐허 안에, 기이한 연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흑의인들은 돌연 동료 하나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기겁을 하며 손으로 코를 틀어막았다.
“독이다!”
단순한 독으로 적호대원들이 쓰러질 리가 없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독에 대한 면역력을 기르기 위해 수많은 실험을 받은 자들이었고, 백독불침(百毒不侵)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독들은 통하지 않는 몸이기 때문이다.
율초언은 사방으로 들어오는 독을 마시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빠져나갈 곳이 없는 독무(毒霧)를 밖으로 빼내기 위해 막아 놓은 창을 부수는 것 또한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창을 부숨과 동시에 빠져나갈 것이라 생각했던 독무들은 더욱 폐가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마치 그들이 있는 곳 전체가 독무에 휩싸여 있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을 정도다.
“누구냐!”
화가 난 나머지 소리를 지른 것이 잘못이었던 것인가. 그것이 아니면 한 명 한 명 쓰러지고 있는 수하들을 보며 울화가 치밀었던 것인가.
율초언은 한껏 내공을 끌어올리며 소리를 쳤고, 그 덕분에 상당 양의 독무를 흡입하는 실수를 하였다.
“크억!”
속에서부터 울컥하며 피가 치솟아 올랐다.
‘천하의 적호대가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다니…….’
서서히 정신을 잃어가는 율초언는 바득바득 이를 갈며 저도 모르게 신유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적호대원들조차 견디지 못하는 독무를 한껏 들이마시며, 멀뚱멀뚱 눈을 뜨고 있는 그의 모습을 말이다.
‘이…… 이게 대체…….’
온갖 의문들이 그의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하였으나, 거기까지였다.
돌연 퍽! 하는 소리가 들리며 겨우 버티고 있었던 대원들이 픽픽 쓰러지기 시작을 하였고, 율초언 또한 뒤통수에 강렬한 일격을 받고 널브러졌다.
멍하니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신유강은 돌연 흑운무(黑雲霧)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청랑을 바라보며 입을 쩍 벌렸다.
“어떻게 여길?”
태연하게 입을 여는 신유강을 바라보며, 청랑은 꽤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폐가 안에 뿌린 독은 그녀가 직접 제조를 한 독으로, 절정에 이른 고수라 하여도 결코 버티지 못하는 것이었다.
살상 능력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나, 독을 들이마신 양에 따라 몇날 며칠 잠을 자는 것은 기본이었고, 한 달가량 내공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천하의 적호대가 무너진 것을 보면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법한데, 그런 독을 태연하게 들이마시고 있는 신유강은 도무지 중독된 이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랑은 신유강을 사람이라 생각해야 할지, 혹은 괴물이라 생각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어요.”
“하하, 그보다 먼저 이것 좀 풀어 주면 고맙겠소.”
밧줄에 묶여 있는 몸을 힘겹게 움직이며 말을 하자, 청랑은 힐끗 신유강을 바라봤다.
그의 힘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한 차례 부딪혔다 처참하게 진 기억이 있으니 풀어 주기가 꺼림칙했던 것이다.
청랑은 한참 동안이나 신유강을 바라보다, 전혀 꺼릴 것이 없다는 듯 태평하게 웃고 있는 그의 얼굴에 결국 한숨을 내쉬며 묶인 밧줄을 잘라 내며 입을 열었다.
“루주에게 무슨 짓을 한 거죠?”
“무슨 짓이라니? 이야기만 하다 나왔는데? 뭔가 일이라도 생겼소?”
밧줄을 잘라 내던 청랑은 손을 멈칫하며 눈을 게슴츠레 떴다. 홍화와 그녀를 호위하는 두 명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