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많은 무인들이 참석한다고는 하나, 결국 얼마 전 보았던 풍백 정도의 수준을 지닌 이들뿐일 것이다.
그런 이들이 떼로 덤빈다 한들 신유강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지금 그의 눈에 있는 것은 오로지 율초언.
그 정도 되는 고수가 참석을 해야 조금 끌릴까?
“아니, 곤륜대전에는 관심이 없다. 단지 일이 조금 있어서 청해를 지나갈 뿐이지.”
“그, 그러시군요.”
“너는 그 곤륜대전에 참석하려는 게냐?”
“아, 아닙니다. 저 같은 무지렁이가 어찌 그런 자리에…… 다, 당치도 않습니다.”
애초에 나이가 어린 이는 참가를 하지 못하니 만큼, 소년은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말이다.
“무공을 익히고 있는 것 같은데?”
신유강은 슬쩍 눈을 흘기며 물었다.
어린 나이에 이 정도 담을 가지고 있는 데다, 곰에게 도망을 치고 있을 때 보였던 속도는, 결코 평범한 아이가 보일 만한 것이 아니다.
만약 무공을 익히지 못하였다면, 진즉에 죽어도 죽었을 거란 소리다.
“내세울 것 없는 작은 문파입니다.”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는 소년을 바라보며, 신유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문파라는 게 얼마나 작은지 짐작을 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듯하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본래라면 한 시진이면 충분했을 거리를 거의 두 시진이 걸려서야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린 소년이 둘러업고 있는 곰의 모피 때문에, 걸음이 늦어진 탓이다.
“그, 그럼 대협 오늘은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소년은 무슨 급한 볼일이라도 있는 듯,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는 쪼르르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신유강은 당혹스럽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었다.
목숨을 구해 줬으니 밥 한 끼 대접을 해 줘도 충분할 텐데, 인사만 하고 사라져 버렸으니 꽤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이래선 오늘 하루 묵을 곳조차 없다.
“이런…….”
‘이럴 줄 알았다면 그 모피를 받아 두는 것이었는데…….’
지금 와서 후회를 해 봐도 늦은 일이다.
* * *
결국 신유강이 선택한 것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마을 외곽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었다. 다행히 산에서 뜯어 온 칡뿌리가 조금 남아 있으니, 배를 곯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조용하군.”
아직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닌데도, 주변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하긴 주위에 있는 건물이라고는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낡은 움막 하나밖에 없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신유강은 그 움막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저런 움막에도 사람이 살기는 하는 것인지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움막과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은 신유강은, 조용히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신경을 쓰지 않아도 거침없이 몸을 돌고 있는 회귀신공이니, 별다른 운기행공이라는 행위 자체가 필요 없었다.
그러나 마음을 다스리기에는 이것이 제일이다.
느긋하게 숨을 고르고 천천히 내뱉는 것으로 마음을 진정시킨다. 그럴 때마다 거침없이 몸을 돌고 있던 회귀신공에 힘이, 서서히 느려졌다 빨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내공이 아닌 회귀신공으로는 앞으로가 문제일 거다.’
회귀신공은 최고의 무학이라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신유강은 율초언 같은 고수를 마주해도 지지 않을 정도로 강해지기 위해서, 지금보다 더욱 높은 경지를 엿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신유강은 회귀신공 탓에 내공을 전혀 익힐 수 없는 몸이다.
시도를 몇 번 해 봤지만,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을 되돌려 버리니, 내공을 쌓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이다.
신유강은 한동안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하더니, 일각 정도 시간이 지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연무를 시작했다.
그가 추는 춤은 석무자의 선선운현무였다.
처음에는 진소소가 펼칠 때와 다름없이 부드러운 기세가 느껴지는가 싶더니, 곧 그 어떠한 느낌도 들지 않게 되었다.
한 줌 내공조차 없는 무인이, 그저 폼을 따라하고 있는 것으로 뿐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신유강은 멈추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주먹과 발을 뻗고, 힘을 실었다.
뻗는 주먹과 발에 회(回)의 힘을 담으니,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기세들이 일순간에 몰아쳐 오는 듯한 느낌이 역력하다.
이것은 지난날부터 신유강이 무공을 펼칠 때마다 사용하는 수법이다. 회(回)를 무공을 담아 사용하니 그 파괴력은 평범한 수준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모자라다.’
연무를 멈춘 신유강은 아미를 찌푸렸다.
“조금 더 빠르게.”
율초언의 움직임을 머릿속에 새긴 신유강은 조금 더 빠르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격렬하게 움직이는 회귀신공에 기운들 탓에 기맥이 갈가리 찢어지는 극심한 고통마저 느껴지고 있다.
그러나 신유강은 회귀신공의 치유력을 믿고 더욱 격렬하게 몸을 움직였다.
예전에 진소소가 보여 주었던 선선운현무는 이 정도가 아니었다.
율초언이 신유강에게 보여 주었던 움직임은 이 정도가 아니었다.
더욱 빠르고 격렬하게, 상대를 완벽하게 제압하면서, 회귀신공의 힘을 완벽하게 살릴 수 있는 그러한 움직임이 필요했다.
신유강은 주먹을 뻗었다.
파앙!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만약 주위에 사람이 있다면 놀라 비명을 내질렀을 것이다.
일순 신유강의 눈에 황금빛이 서렸다.
회귀신공이라는 어마어마한 힘이, 주인이 가진 의지를 읽기라도 한 듯, 조금 전보다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다.
하나 그것은 마치 한 몸이 되어 버린 것처럼 부드럽기 짝이 없었다.
‘믿는다.’
신유강은 눈을 감고 마음속 깊숙이 외쳤다.
이 회귀신공이라는 어마어마한 힘을, 자신이 제대로 다룰 수 있을 것이라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내가 원할 때마다 기운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 강하게 믿었다.
신유강은 넘실넘실 춤을 췄다.
기연이라 불릴 만한 것은 아니다.
단순히 알고 있는 것을 재구성하여 무공을 펼친 것뿐이었지만, 과거에 비해 사뭇 다른 느낌이 나는 것은 틀림없이 회귀신공을 믿고 있는 그의 의지와 이루고자 하는 그의 일념 때문일 것이다.
펑펑!
엄청난 소리와 함께 주변의 바위가 박살이 났다.
아무리 절정에 오른 무인이라도 저 정도 거대한 바위를 흔적도 없이 가루로 만들어 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신유강은 가볍게 권을 내지르는 것으로 그것을 쉬이 이루어 내었다.
쿵!
일보를 내딛는다.
돌연 모든 회귀신공에 기운들이 다리로 몰려들며 어마어마한 괴성을 냈다. 내디딘 그의 오른발에 거대한 구덩이가 파였으며, 그 모양은 마치 회오리처럼 신기하기 짝이 없다.
‘돌리고, 돌아온다.’
신유강의 주위로 강렬한 회오리가 머물렀다.
주위에 한가득 일어난 먼지들이 맹렬하게 휘돌기 시작했고, 그것들은 마치 신유강의 손짓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신유강은 장력을 뿜듯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모여진 바람이 강한 기세를 머금고 쏟아져 나아갔고, 이내 약간 남아 있던 바위의 잔해를 완벽하게 가루로 만들며 사라졌다.
한데 사라졌다라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그 바람은 어느새 신유강의 주위로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회(回)와 귀(歸)를 동시에 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그러나 신유강은 지금 그것을 이루어 낸 것이다.
단순한 연무라 생각을 했던 행동이 아주 행운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후우…….’
신유강은 기세를 갈무리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격렬하게 요동치던 회귀신공의 기운들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하더니, 곧 쥐죽은 듯 단전 깊숙한 곳에 잠들었다.
맹렬하게 그의 주위를 돌던 돌풍이 가라앉고, 신유강은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러나 문득 기이한 것을 느끼며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평소 그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기맥을 돌며 신유강을 보호하고 있던 회귀신공의 기운이, 완전히 가라앉아 버렸기 때문이다.
뜻밖에 상황에 신유강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더욱이 무한회귀를 끝냈을 때부터, 몸을 돌기 시작한 기운들이었으니, 자칫 또다시 영겁에 가까운 시간을 회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신유강은 다급하게 기운을 끌어올리려 하였다.
그러나 그때, 한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보시오, 이보시오!”
돌연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상념을 깬 신유강은 화들짝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남자를 바라보며 꽤 놀라고 말았다. 예나 지금이나 기척을 감지하는 것만큼은 서투르기 짝이 없었다.
“아, 깜짝이야.”
“깜짝이라니 내가 더 놀랬소. 대체 이게 무슨 짓이오? 보아하니 무인 같아 보이는데, 남의 집을 다 박살 내면 쓰겠소?”
남자의 나이는 신유강과가 언뜻 비슷해 보였지만, 꾀죄죄한 몰골과 더불어 역하게 풍겨 오는 냄새는, 거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역겨운 모습이었다.
신유강은 훅 하고 풍겨 오는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남의 집을 박살 내다니?”
“거참, 당신이 연무를 하면서 권풍을 쏘아 내는 바람에 내 움막이 아작 났소. 저기 보이시오?”
정확히 말을 하자면 권풍이 아닌 회(回)의 힘을 쏘아낸 것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곁에서 본다면 충분히 기겁할 만큼 대단한 권풍이었다.
때문인지 남자는 신유강이 대단한 무인이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리 가까이에서 얼굴을 보니 자신과 그리 나이가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때 신유강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런, 죄송하게 되었소. 연무에 몰두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손이 과했나 봅니다.”
“하아, 이 사람이 지금 남의 집을 부숴 놓고 과했다고 하면 다라 생각하시오?”
신유강은 슬쩍 미간을 꿈틀거렸다.
확실히 회의 힘을 이용해 권풍을 쏘아 낸 것은 사실이기는 하나, 그것이 움막을 노리고 쏘아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가뜩이나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허름한 움막이었고, 재수 없게 바위에 부딪힌 권풍의 여파에 휩쓸려, 무너진 것이다.
“내 권풍에 휩쓸려 저리된 것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집이지 않았습니까?”
“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거라니, 저 움막은 지난 이 년 동안 단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을 정도로 튼튼한 곳이었소! 당신의 권풍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멀쩡했을 것이란 말이오.”
말은 그렇게 하나 남자 또한 잘 알고 있다.
비바람이 조금 심하게 몰아치기만 해도, 움막이 휘청거리며 날아갈 정도로 아슬아슬했고, 움막의 운명은 오늘내일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재수 없게 신유강이 연무를 하다 무너졌으니, 남자는 손해를 메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은 셈이었다.
“좋습니다! 내 다시 지어 주겠소!”
“아니, 누가 집을 지어 달라 했소? 집을 무너트렸으니 응당 배상을 해야지 배상을!”
신유강은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거지 청년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집이 무너진 것 때문에 화를 내고 있는 것으로만 보였는데, 지금 보니 저 웃기지도 않은 움막을 무너트렸다고 돈을 챙길 모양이었다.
“내가 새것처럼 다시 지어 준다니까?”
신유강의 말투가 거칠어졌다.
“필요 없으니 돈으로 내놓으라고!”
거지 또한 마찬가지로 언성을 높였다.
물어 줄 돈을 가지고 있지 않은 신유강과 어떻게 해서든 돈을 받아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거지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