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구리 문 몇 푼이면 만들 움막 하나 가지고 참 너무하는군!”
“아니, 그 움막을 때려 부순 사람이 누군데 성질을 내는 것이오, 지금?!”
“때려 부수다니? 지 멋대로 바람에 휩쓸려 날아간 것이 내 탓이란 말이야?”
당연히 신유강의 탓이긴 하나, 신유강은 결코 돈으로 배상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 배짱이 더욱 남자의 성질을 건드렸는지, 남자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네놈이 괜히 이곳에서 연무를 하다 박살이 난 것 아니냐!”
“그러니까 내가 새것처럼 지어 준다고!”
“필요 없으니까 돈 내놓으라고 돈!”
허름한 움막 따위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다시 짓는다.
반 시진도 걸리지 않고 다시 움막을 지을 자신이 있는 거지에겐 무너진 움막보다 끼니를 챙겨 먹을 수 있는 돈이 필요했다.
신유강과 남자는 한 발도 물러나지 않고 서로를 노려봤다.
“좋다! 얼마를 원하는 거냐?”
으르렁거리던 신유강은 매서운 눈빛으로 남자를 쏘아보며 물었다. 지금 당장 가진 것이 없다고는 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수중에 돈 몇 푼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다만 거리상의 문제가 조금 있었다.
신유강이 되돌릴 수 있는 거리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이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나, 사천 성도와는 상당히 떨어진 곳이 분명하고, 그 거리는 신유강의 회귀신공으로 돌릴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설 것이다.
게다가 이 근방에는 신유강이 거래하는 황룡전장은 존재하지 않으며, 수중에 한 푼도 없으니 도박장에서 돈을 벌 수 있을 리도 없다.
그래도 회귀신공을 잘만 사용하면 저 허름한 움막을 배상할 돈을 만드는 데에는 채 한 시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신유강은 이미 짜증이 오를 대로 올라와 있는 듯했다.
비루먹은 움막 한 채가 몇 푼이나 한다고 돈 타령을 하고 있으니 열이 뻗친 것이다.
“은자 열 냥!”
“뭐? 은자 열 냥?”
“물론이오. 내 움막이 날아갔고 우리 문파의 현판이 부서졌으니, 은자 열 냥이면 싼 것이지.”
거지는 당당하게 말을 하며 허리에 손을 올렸다.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는,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은자 열 냥을 받아 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가득해 보였다.
다만 신유강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은자 한 냥을 줘도 안 가질 법한 허름한 움막이 부서졌다고, 열 냥이나 받아 챙기려는 거지의 못된 심보에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이다.
“이 빌어먹을 사기꾼 자식을 봤나? 구리 열 문이면 될 움막을 부쉈다고 은자 열 냥을 챙기려 들어?”
“뭐, 사기꾼?! 너는 남의 문파 때려 부숴 놓고 그게 할 말이란 말이더냐?”
“문파?”
문파라는 말에 신유강은 살짝 어이가 없다는 듯 남자를 바라봤다. 주위에 문파라고는 아무리 찾아 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문파가 어디에 있단 말이오?”
“저기 있지 않으냐 저기! 네놈이 부순 움막 말이다.”
남자는 성큼성큼 무너진 움막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 낡아빠진 가죽 천 하나를 들어 올려 보였다.
그 천에는 참 서툰 글씨로 복호문(伏虎門)이라 적혀 있었다.
신유강은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서, 설마 진짜로 그 움막이 문파다고?”
“물론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 복호촌(伏虎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복호문의 장자! 백호영준이라 한다! 그리고 복호문의 문주란 말이다. 그리고 네놈이 부순 곳이 복호문이고!”
자신만만하게 소리를 지르는 백호영준을 바라보며, 신유강은 기가 질린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第六章. 복호문(伏虎門)
복호촌(伏虎村)은, 사천과 청해 경계에 있는 자그마한 마을이었다. 인구수는 고작해야 백여 명이 조금 넘을 뿐이며, 관아조차 없는지라 사실상 나라에서 버려진 곳이라 해야 함이 옳았다.
그런 지방의 문파라면 중소문파에도 끼지 못하는 삼류라 할 수 있었는데, 백호영준은 뭐가 그리 잘난 것인지 가슴을 탕탕 치며 호쾌하게 소리를 쳤다.
신유강은 골이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단순한 거지였다면 동정이라도 해 주었을 테지만, 이건 동정을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뭘 그리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오? 어서 은자 열 냥을 내놓고 썩 꺼지시오.”
“문파? 저게 문파라고?”
“그럼 당신의 눈에는 저게 뭐로 보인단 말이오?”
백호영준은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 듯 당당하게 가슴을 내밀었다.
척 보아도 거지들이나 살 법한 움막임이 분명하지만, 그에게 있어 천하의 둘도 없는 문파인 모양이다.
신유강은 머리가 아픈 듯 골을 쥐었다.
왠지 이상한 놈에게 걸린 듯하다.
“뭘 하는 것이오. 빨리 내놓지 않고?”
백호영준은 콧방귀를 뀌며 슬쩍 손을 내밀었다.
당장 돈을 달라는 그의 행동에 신유강은 떨떠름하기 그지없었으나, 이런 초라한 문파도 자신 있게 소리를 치는 그의 기백에 어이없게도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은 가진 것이 없으니, 신강에 갔다가 돌아올 때 열 냥을 주지.”
“거참, 웃기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시오. 그 말을 누가 믿느냔 말이오? 도둑놈이 물건 훔쳐 가면서 나중에 값을 준다는 것과 뭐가 다르오?”
“그럼 없는 돈을 어떻게 하라고?”
“사냥을 하든, 뭘 하든 간에 지금 당장 내 앞에 은 열 냥을 가지고 오시오. 그렇지 않으면 댁을 관아로 끌고 가겠소.”
이 마을에는 관아가 없으니, 끌고 가려면 이틀 정도 떨어진 큰 마을까지 나가야 했다.
그런 귀찮은 일을 하고 싶지 않은 데다, 끌고 간다고 해도 돈을 받을 수 없으니, 백호영준은 그저 위협용으로 내뱉은 말이다.
그러나 신유강은 신유강대로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관아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나, 조사를 받고 재판을 받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은 불보듯 뻔하다. 신강으로 하루라도 빨리 가야 하는 이 시점에서, 괜한 늦장을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좋소, 그럼 이렇게 합시다. 사천 성도에 있는 기연객잔으로 찾아가시오. 그곳의 주인에게 내 이름을 대고 은자 열 냥을 달라고 한다면 줄 것이오.”
물론 진소소가 그냥 줄 리는 만무하다.
고작해야 은 열 냥이라고는 하지만, 신유강이 돌아올 때까지 이들을 엄하게 부려먹고 줄 것이다. 한마디로 일 시켜 먹고 봉급을 줄 것이란 거다.
“사천 성도? 으음…… 며칠은 걸리는 거리인데…….”
백호영준은 손익 계산을 하는 듯했다.
이곳에서 사천 성도까지는 거리가 상당했다. 마차나 말을 타고 가지 않는 이상, 며칠은 거릴 거리이고, 그 사이 쓰는 돈을 합한다면 능히 열 냥은 넘을 것이다.
말을 빌리는 데만 해도 그 정도는 나올 것이니, 차라리 이 자리에서 신유강에게 돈을 받는 것이 백 번 천 번 나은 일이다.
“당신의 말을 어찌 믿고 그 먼 사천 성도까지 간단 말이오? 어서 내놓으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장 관아로 끌고 갈 것이니.”
신유강은 고집을 피우는 백호영준 때문인지 더욱 인상이 구겨졌다.
그렇지 않아도 돈을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것을 무척이나 후회하고 있었는데, 계속해서 돈 타령을 하니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없는 돈을 지금 당장 어찌 만드냐고?”
“어허, 이 사람이, 남의 문파를 무너트렸으면 죄송하다 사과를 하고 배상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이거늘, 되려 화를 내는 것입니까?”
누가 들으면 신유강이 홀로 문파를 뒤집어엎어 버린 절세의 고수라 생각이 들 만한 말이었지만, 기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으니, 웃기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신유강은 더욱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확 기절을 시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거지가 곱게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가야 할 길이 아직도 천리인데, 이런 곳에서 발목이 잡힐 수 없으니, 신유강은 백호영준을 기절시키고 빠져나갈까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
“형님, 시끄럽게 무슨 소리를 그렇게 질러댑니까?”
그때 이 외진 곳으로 쪼르르 다가오는 작은 소년이 하나 있었다. 소년은 누군가와 말 싸움을 하고 있는 백호영준을 향해 물었다.
“오오, 호야, 지금 돌아오는 것이냐?”
“예, 형님. 그런데 무슨 일인데 그리 화를 내십니까? 저 먼 곳까지 형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립니다.”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호야는 고개를 갸웃했다. 백호영준의 성격이 약간 기이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는 것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탓이다.
“무슨 일은, 저 양반이 우리 문파를 아주 박살을 내었기에 배상을 하라고 말을 하고 있던 중이지.”
“에엑? 무, 문파를 말입니까?”
문파라는 말에 호야라 불린 아이는 눈을 부릅뜨며 움막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물론 문파라는 것은 말뿐이고, 단순히 거지 움막이긴 하지만, 어쨌든 백호영준에게 있어서는 문파이고, 호야에게 있어서는 하나뿐이 없는 보금자리인 셈이었다.
그런 곳이 처참하게 무너진 것을 본 호야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도대체 누가……?”
호야는 그제야 슬금슬금 시선을 돌리며 신유강을 바라봤다.
약간 날이 어둑해지는 시간이었기 때문인지, 처음에는 의아해 하던 호야는 어느새 신유강을 알아보고 크게 반색을 하였다.
“대, 대협? 대협이 아니십니까?”
“산에서 보았던 그 꼬마였군.”
신유강은 돌연 나타난 호야라는 꼬마가 산에서 보았던 그 소년임을 상기하며 자못 놀라운 눈빛을 보냈다. 이런 상황에서 나타난 데다, 백호영준과 상당히 친분이 있어 보이니 구명줄이라 판단을 한 것이다.
“아, 아는 사이더냐?”
백호영준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호야의 표정과 행동을 보아하니,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입니다, 형…… 아니, 문주님. 이 대협께서 곰에게 습격받고 있는 저를 구해 주셨습니다.”
신유강은 호야가 문주라는 말을 입에 달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애를 데리고 소꿉장난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인가?
백호영준 또한 그 시선을 느꼈는지 시뻘겋게 안색을 붉혔으나, 이내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러하냐? 그런데 곰?”
“예예, 그것도 아주 큰 대웅이었습니다, 문주님. 대협께서 순식간에 신법으로 몸을 날려 일권을 뻗었는데, 대웅은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즉사를 했습니다.”
호야는 산에서 보았던 것들을 상세히 설명을 해 주었다. 대웅이라면 웬만한 고수들조차 쉬이 잡지 못할 만큼 빠르고 강한 짐승이다.
그것을 일권에 잡았다고 하니 백호영준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 그 정도란 말이야?’
백호영준은 신유강의 연무를 모두 지켜보지 못했다. 그저 큰 소리를 듣고, 어기적 어기적 움막을 나왔을 때, 돌연 거센 바람과 함께 움막이 무너지는 바람에 그대로 기절했기 때문이다.
일어났을 때에는 이미 대참사, 또한 신유강에겐 태양혈의 도드라짐이 보이지 않았으니, 고작해야 삼류 수준이라 판단을 하였다.
그런데 대웅을 일권에 잡아?
“히끅!”
백호영준은 저도 모르게 딸꾹질을 하며, 두 손으로 입을 틀어 막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당당했던 그의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참으로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문주님, 이것 좀 보세요. 대협께서 잡으신 곰을 저에게 주셔서 그 가죽을 팔았더니, 돈을 이 만큼이나 받았어요.”
호야는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것인지, 방긋방긋 웃음을 지으며, 모피를 팔아 번 돈 열닷 냥을 보여 주었다. 대웅의 가죽치고는 상당히 짜게 받은 것이긴 하지만, 어린아이에게 쳐준 값으론 후하다 할 수 있다.
달그락거리는 호야의 전낭을 매만지던 백호영준은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