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호야를 구해 준 것뿐 아니라, 그 비싼 곰의 가죽을 선뜻 건네는 모습은 과연 대협의 풍모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문주라 칭하고는 있지만 그는 고작해야 삼류.
물론 삼류 중에서도 동네 파락호보다 못한 자이며, 이런 작은 마을이 아니었다면 문파라는 이름을 내걸지 못했을 자였다.
백호영준은 은근슬쩍 눈알을 굴려 신유강을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어떠한 표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신유강의 모습은 자못 위협스럽기도 하였지만, 지금 백호영준은 오로지 한 가지 생각을 했다.
“대, 대협!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조금 전까지 돈을 내놓으라 버럭버럭 고함을 내지르던 백호영준은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며, 어느샌가 신유강의 발치로 다가와 넙죽 절을 하였다.
멋대로 엎드려 구배지례를 하려는 그 모습에 신유강을 기겁을 하며 물러섰다.
“이보시오!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을 제자로 둘 생각이 없으니 일어나시오.”
어찌나 당황했는지 말투조차 바뀌고 말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어딘가 석연치 않은 녀석이라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하였지만, 신유강은 갑작스럽게 구배를 하려는 백호영준을 보며, 어딘가 모자란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아이고, 대협. 이렇게 만난 것도 무슨 인연 아니겠습니까. 이 백호영준, 평생토록 대협. 아니, 스승님을 쫓아가렵니다.”
“스, 스승이라니? 나는 당신에게 가르쳐 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소.”
신유강은 당황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제자를 삼는다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으며, 설령 우연찮게 그런 사람이 생긴다 하더라도, 회귀신공을 알려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백호영준과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언성을 높이며 싸우던 사이가 아니었던가? 아직 그 당시에 감정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대협이니 스승이니 말하니, 신유강은 어이가 다 없을 지경이다.
“당신은 한 문파의 문주라 하지 않았소? 갑자기 스승이라니?”
“문파는 무슨 문파입니까. 그냥 작은 촌에서 폼이나 잡아 본 것입니다.”
툭 하고 내뱉은 말에 호야가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이 복호촌에서 백호영준의 생각을 모르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무공이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놈이 무인을 동경하여 우습지도 않은 문파라는 허울을 세우고 떵떵거리는 모습에 속으로 비웃음을 지으면서도, 겉으로는 백호영준을 따라 주었다.
문주라 추켜세워 주면서 공짜로 일을 부려먹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눈앞에 진짜 고수가 나타났으니, 체면이고 뭐고 다 버리고 엎드려 비는 백호영준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는 호야다.
“저기, 대협께서 곤란하지 않으시다면 저희 문주님을 꼭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굉장히 곤란하다. 무지하게 곤란하다.”
신유강은 딱 잘라 거절을 했다.
애초부터 남에게 가르쳐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데다, 이런 멍청한 놈을 제자라고 받아 주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만에 하나 알려 준다고 하더라도 선선운현무일 텐데, 석무자의 후계자는 신유강 본인이 아닌 진소소였다. 함부로 그녀의 무공을 유출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신유강은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 백호영준을 억지로 떼어 냈다.
“이보시오. 내 열 냥을 물어줄 테니, 이것 좀 놓으시오!”
“아이고, 스승님. 이거 왜 이러십니까. 열 냥이고 백 냥이고 필요 없습니다. 이 백 모, 스승님을 죽을 때까지 섬길 것입니다.”
신유강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말을 해도 전혀 들어먹을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백호영준 때문이다.
“대, 대협, 죄송합니다. 저, 저희 문주님께선 진짜 무인이 되는 걸 평생의 꿈으로 여기고 계시기에.”
반면 어린 호야는 그런 백호영준의 행동이 부끄러운 듯, 잔뜩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하늘처럼 떠받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고아인 자신을 거두어 준 사람이 바닥에 넙죽 엎드려 비는 꼴이 창피한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누구도 제자로 받을 생각이 없으니, 이것 좀 놓으시오.”
신유강은 귀찮다는 듯 백호영준의 손을 떼어 놓으려 하지만, 피죽 한 그릇 제대로 먹지 못했을 것 같은 녀석이, 어찌나 힘이 센지 도통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신유강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들어 마가 꼈는지 참으로 재수 없는 일들만 꼬이는 듯했다.
“그러니까 놓으라고 좀!”
퍼억!
“쿠웩!”
* * *
신유강과 호야는 백호영준이 기절한 틈을 타, 재빠르게 무너진 움막을 멀쩡한 모습으로 되돌려 놓았다.
능숙하게 움막을 다시 짓던 호야가 움막이 심심치 않게 무너졌다는 말을 하여 신유강의 분노를 사긴 했지만, 어쨌든 움막이 다시금 지어지는 데에는 채 한 시진도 걸리지 않았다.
비가 쏟아지면 샐 것 같고, 방한(防寒)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곳인지라, 사람이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그 움막 안에 눌러앉아, 신유강은 지그시 호야를 바라봤다.
“움막은 이 정도면 되겠고…… 그런데 웃기는군. 문주라는 사람은 이곳에서 놀고, 문도인 네놈이 산에서 약초를 캐서 먹여 살리는 것이냐?”
“아하하, 보통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죠.”
호야는 어색한 듯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에는 이유가 있다.
“여기 계신 우리 문주님. 뭐, 문주라 해 봐야 복호권이라는 이상한 주먹질 하나만 익히고 계신 데다, 똥개랑 싸워도 지시는 분이긴 하지만…….”
똥개랑 싸워도 진다는 말에 신유강은 살짝 어이가 없는 눈초리로 여전히 정신을 잃고 있는 백호영준을 바라봤다.
“부모를 잃고 굶어 죽을 뻔한 저를 거둬 주신 분이세요. 십 년 안에 천하제일인 될 거라고 호언장담하시기도 하셨죠.”
“그거랑 네가 이놈을 먹여 살리는 것과 무슨 상관이지?”
“아, 그게…… 원래는 문주님과 같이 산을 올라가는데, 며칠 전 문주님이 똥개랑 밥그릇 싸움을 하다 물리시는 바람에…….”
슬쩍 말꼬리를 흘리는 호야는 참으로 참담한 모습이었다. 물론 개에게 물릴 수 있다. 무공을 제대로 익힌 사람도 아니니 당연하다.
하지만 밥그릇 싸움이라니?
그것도 객잔 주인이 똥개 먹으라 던져 준 개 밥그릇 때문에 싸우다 물려 몸져누웠으니, 그 참담한 심정이 오죽할까.
호야는 당시의 일만 떠올리면 머리가 다 지끈거릴 정도였다.
“걷는 것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던데?”
“에에, 멀쩡한 척하는 거세요.”
호야는 그렇게 말을 하며 기절해 있는 백호영준에게 다가가더니, 곱게 누워 있는 그를 뒤집고는 똥개에게 물린 곳을 보여 주었다.
“……할 말이 없군.”
서슴없이 엉덩이를 까자, 그곳에는 시뻘겋게 개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고,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해 살이 썩어 가는 것이 보였다.
상당히 오래된 모양이었다.
“언제 그런 거지?”
“몇 달 되었어요.”
“그럼 몇 달 동안 네가 먹여 살렸단 말이냐?”
“에에…… 뭐.”
호야는 어색한 듯 웃음을 짓지만, 백호영준을 먹여 살렸다는 것에 별다른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다. 몇 년 전 백호영준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테니 말이다.
“금창약 하나 살 돈이 없었단 말이야?”
“보다시피 작은 마을이에요. 문도라고는 저 하나밖에 없는 데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문주님을 이용하기만 하고 돈을 주진 않거든요.”
호야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백호영준은 가끔 진장을 부려도 심성이 착했다.
문주님 문주님 하며 다가와 부탁이라는 말로 꼬드기면, 아무런 이익 없이도 화마(火魔)에 뛰어들 정도라는 것이다.
그 점을 이용하는 마을 사람들 때문에 호야 또한 여간 골치를 썩고 있는 중이었다.
굳이 무엇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하다 못해 사람 취급 정도는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불쌍하게도 사는군.”
신유강은 끙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이야 진소소와 회귀신공이라는 어마어마한 힘 덕분에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칠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신유강은 지금 눈앞에 있는 호야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신유강은 악바리 같은 근성으로 버틴 것이고, 호야는 백호영준이라는 품 안에 있다는 것이었다.
“하하, 그런 말씀 마세요. 그건 그렇고 시장하시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금방 먹을 것을 사 올께요. 사실 이 정도 돈을 받은 것이 처음이라 너무 기뻐서, 음식을 사 오는 걸 잊어버렸어요.”
“그, 그래라.”
고작해야 은자 열댓 냥에 지나지 않는다.
칠 년 전 신유강이 아무리 가난하고 고달팠어도, 그 정도 돈은 수중에 쥐고 있었다. 훗날 떵떵거리며 살기 위해 안간 힘을 썼으니, 수중에 은자 열댓 냥 없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이라니…….’
신유강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사천 성도가 아니다.
애초에 자그마한 마을과 성도의 물가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호야가 방긋 웃음을 지으며 밖으로 나가자, 남아 있는 것은 신유강과 여전히 엉덩이를 깐 채 게거품을 물고 있는 백호영준뿐이었다.
신유강은 가만히 그의 엉덩이를 바라봤다.
“역겨워.”
치료를 해 주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그 엉덩이에 손을 올려놓을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르게 오싹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여자도 아닌 남자의 엉덩이에 손을 올리다니?
이 무슨 파렴치한 짓인가.
물론 상대가 여자였다면 더욱 후환이 두려운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에휴, 내 팔짜야.”
결국 한숨을 한 번 내쉰 신유강은 백호영준을 향해 다가갔다.
단전 깊숙히 가라앉은 회귀신공에 기운을 천천히 끌어올리기 시작하며, 어느새 손은 벌거벗은 백호영준의 엉덩이에 가져다 대었다.
그때,
벌컥!
“대협, 그러고 보니…….”
밖으로 나갔을 것이라 생각했던 호야가 돌연 방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백호영준의 엉덩이에 손을 올려놓고 있는 신유강을 멀뚱멀뚱 바라봤다.
“시, 실례했습니다!”
무언가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꾸벅 인사를 한 호야는 다급하게 문을 닫고 후다닥 달려 나갔고, 신유강은 멍하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이런 빌어먹을!”
* * *
기연객잔은 오늘도 평화롭기 그지 없다.
아침부터 줄을 잇기 시작한 손님들을 보고 있자니, 하루 매상이 얼마나 많이 올랐는지 한눈에 알 정도였다. 무림맹에서 무관을 짓기 시작하면서 몰린 인부와 한몫 챙기기 위해 들어온 상인들 탓이었다.
여기저기 바쁘게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으며, 진소소는 해맑게 웃음을 지으며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 이건 어디로 옮겨요?”
물론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오로지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천제일미라 칭송 받는 진소소의 외모를 보기 위해 몰린 것은 물론, 사천당가의 막내 여식인 당소혜와 친해지기 위함도 있었다.
흑호와 신유강의 빈 자리를 당소혜와 청랑이 대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기 저쪽으로, 랑아는 이쪽이야.”
“네, 아가씨.”
“알겠어요.”
진소소의 말에 점소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발 빠르게 음식들을 탁자 위에 차려 놓았다.
그것은 굉장히 흐뭇한 광경이었다.
한 명은 누구인지는 모르나 상당한 당소혜에게 뒤지지 않는 미모를 가지고 있으니, 보는 것만으로 눈이 정화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릇 남자들은 술을 마시며 군침을 삼켰다.
그러나 누구 하나 접근을 하려하는 이들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