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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신공-70화 (70/200)

# 70

“잠시 여장을 풀고 중원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스승님의 유언에 따라 무림맹을 위해 칼을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자네와 같은 무인이 정도인이라는 것이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지는군. 내 무림맹에 서찰을 넣어 두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장문인.”

고개를 푹 숙이며 예를 표하기는 하나 도우겸의 입꼬리는 비릿하게 말려 올라가 있었다. 약하기 그지없는 낭인들을 상대로 칼을 휘두른 것은 내키지 않았으나, 품 안에 가득한 은자를 떠올리니 오늘 하루 펑펑 써도 남을 듯했다.

그가 곤륜대전에 참가를 한 이유는 명예나 곤륜대전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중원으로 가야 하는데 여비는 없고, 산적을 털기는 귀찮으니 낭인들이나 출던하는 곤륜대전에 참가한 것이다. 덕분에 은자 백 냥이 넘는 큰 돈을 벌었고, 곤륜파 장문인과도 면식을 텄으니, 이것이 바로 일거양득(一擧兩得) 아니겠는가.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래, 언제 시간 되면 또 곤륜을 찾아오시게나.”

“예.”

술을 마시고 싶어 근질근질한 상황에서 말이 더럽게도 긴 장문인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도우겸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예를 갖춘다.

그래도 그는 이름 있는 검제의 후예이지 않은가.

‘으흐흐, 홍등가, 홍등가, 홍등가!’

지금 도우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홍등가라는 단어만 들어 있었다.

원체 여자를 좋아하는 성격인데, 사부에게 무예를 배우면서 강제로 금욕(禁慾) 생활을 하였으니, 그는 당장이라도 쌓였던 것을 뽑아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날 기다려라! 홍등가여!’

도우겸은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방실 웃음을 지으며 곤륜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반면 곤륜의 장문인은 기분 좋게 웃음을 지으며 내려가고 있는 쌍검룡 도우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굴을 싹 바꾸곤 쯧쯧 혀를 찼다.

쌍무검제의 후인이라는 자가 저렇게 천박한 자라니, 애석하기 그지없었다.

“애들 싸움에 어른이 나선 꼴이지 않은가.”

추켜세워 주기는 했지만, 장문인의 도우겸에 대한 평가는 꼴사납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장문인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 * *

기연객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신유강은 백호영준과 호야를 떼어 놓은 곳에서부터 곤륜파의 영역까지 고작 십 일 만에 달려오는 어마어마한 신기(神技)를 보였다.

회귀신공의 강약을 조절하며, 몸을 보호했기 때문에 그는 조금도 지쳐 보이지 않았다. 다만 흙먼지를 뒤집고 쓰고, 며칠 동안 배를 곯았던 탓에 상거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모습이었다.

“주, 죽겠다.”

신유강은 헉헉거리며 숨을 골랐다.

사천 성도를 떠난 지 벌써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한 달 만에 청해의 끝에 있는 커다란 마을까지 들어왔으니, 가히 어마어마한 속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신유강은 숨을 고르며 기운을 가라앉혔다.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달렸으니, 몸을 제대로 쉬게 하지 않으면 탈이 나도 단단히 날 것이 분명해 보이는 모습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호야에게 은자 세 냥을 빌렸다는 것이고, 그것이 아직까지 품에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까지 없었다면, 산에 올라가 사냥을 해야 할 판국이다.

신유강은 먼지를 털어 내고 주위에 객잔을 찾았다.

뭐라도 먹지 않으면 아사(餓死)를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뭐, 뭐야?”

그러나 마을에 있는 객잔 대부분이 만원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그 탓에 끼니를 챙기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곤륜대전인지 뭔지가 열린다고 했지.”

이 마을은 곤륜파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긴 했지만, 거리만 따지면 곤륜파와 상당히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곤륜파가 있는 곳은 신강과 꽤 떨어져 있고, 그곳을 지나면 오히려 서장으로 들어가는 꼴이니 당연했다.

그러나 이곳은 청해성의 성도 다음으로 큰 마을이었고, 그러므로 곤륜대전이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린 것이 분명했다.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나…….’

신유강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객잔에서 끼니를 때우는 것은 포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어이, 저기 좀 봐. 쌍검룡 도우겸 대협이야.”

“오오, 과연 헌앙한 풍모가 쌍무검제의 후인답군.”

“이야, 이번 곤륜대전은 저분을 위해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 나는 진짜 고수가 펼치는 무공은 처음 봤다고.”

등에 쌍검을 매고 있는 도우겸이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그를 치켜세웠다.

그도 그럴 것이 곤륜파에서 열리는 비무 대회이긴 하나, 진짜 청해의 주인인 곤륜파의 무인들은 곤륜대전에 한 사람도 출전하지 않았다.

그런데 쌍무검제의 후인인 도우겸이 출전을 하고, 우승을 차지했으니, 일반인들에겐 그야말로 하늘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배가 고파 지친 듯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던 신유강 또한 사람들이 웅성거리니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려 도우겸을 바라봤다.

주변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는 것이 사람들이 치켜세워 주니 아주 좋은 모양이다.

그러나 곧 신유강은 관심이 없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그는 쌍무검제가 누구인지 모르는 데다, 지금은 율초언을 제외하면 다른 무인들에겐 일체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바닥에 주저앉아 힘없이 하늘을 올려 다 보고 있는 신유강을 발견한 도우겸은 무언가 재미있는 생각이라도 난 듯, 크게 헛기침을 하며 조심스레 다가왔다.

“이보게, 괜찮은가?”

부드럽게 웃음을 지으며 다가온 도우겸은 상거지와 같은 꼴을 하고 있는 신유강을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오오, 저런 거지 놈에게도 손을 내밀다니, 과연 쌍무검제의 후인은 다르군.”

“그러게 말일세. 저 거지한테는 말 그대로 부처님의 손이지. 에잉, 더러워지진 않을까 걱정되는군.”

도우겸처럼 대단한 사람이 거지에게 손을 내밀어 주자, 평범한 이들이 보기엔 부처가 자비를 베푸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질투와 시기심에 신유강을 향해 욕을 퍼부었고, 눈에 불을 켰다.

도우겸이 청해 지방에서 이제 막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무인이라고는 하나, 그의 스승은 몇 십 년 전 천하를 굽어 본 인물들 중 하나였으니 부러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신유강은 내밀어진 도우겸의 손을 가만히 바라봤다.

“뭐하는 짓이오?”

신유강이 시큰둥하기 그지없는 표정과 떨떠름한 말투로 도우겸을 바라보자, 사람들에게 자애로운 인상을 심어 주려 했던 도우겸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화를 낼 수는 없었기에 입가를 씰룩이면서도 웃고 있는 표정만큼은 무너트리지 않았다.

“에…… 그러니까, 소형제께서 이런 곳에 주저앉아 있으면 혹여 나쁜 일이라도 당할까 하여…….”

“그래서?”

“이 도우겸이 도움의 손길이라도 내밀어 줄까 했소이다만…….”

도움의 손길이라는 말에 신유강은 기가 찬 듯 웃음을 짓고는, 손사래를 치며 콧방귀를 뀌었다.

“난 됐으니 가던 길이나 가시오.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만큼 궁하지 않소.”

“누, 누구인지 모르다니, 나를 모른단 말이오? 이 도우겸을?”

“그대의 이름이 도우겸이오?’

청해 전체에 울리고 있는 것이 쌍검룡 도우겸이라는 이름이다.

쌍무검제의 배경마저 있으니 머지않아 중원 전체에 그 이름을 날리는 것이 분명한 그였으나, 애초에 신유강에겐 관심이 없는 일이다.

“그, 그렇소.”

“내 이름은 신유강이오.”

“그, 그렇소이까?”

“통성명을 하자고 멍청하게 서 있는 것은 아닐 테고, 볼일 다 끝났으면 이제 그만 가던 길 가시오.”

도우겸의 얼굴이 시뻘겋게 붉어졌다.

단순히 더러운 거지 한 명 구제해 주고, 자신의 이름을 더욱 올릴 수 있는 기회라 생각을 하여 말을 건 것인데, 아주 고얀 녀석이지 않은가.

더군다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이리 대하다니, 도우겸은 결국 소리를 쳤다.

“이놈! 어찌 이리도 방자하게 구느냐. 한 번 혼쭐이 나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자존심이 상했다는 말로도 도우겸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쌍무검제의 후인이자 청해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무인인 자신이 고작 거지 놈에게 무시를 당했으니 응당 그럴 만도 했다.

“당신과 싸우고 싶어서 한 말은 아니니 신경 쓰지 마시오. 그보다 이 자리에서 검을 뽑는다면, 천하의 도우겸 대협께서 힘없는 거지 하나를 죽이려 검을 뽑았다는 오명을 얻을 것이오.”

사람들은 신유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우겸이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본디 강자라면 약자를 지켜야 하는 것이 무인의 도리라고 알고 있다.

물론 신유강의 말이 조금 심했다는 것은 인정을 하나, 모욕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정도는 아니었으니, 이 자리에서 검을 뽑는다면 도우겸의 체면이 구겨지는 것은 당연지사.

신유강은 그 점을 파고들었고, 도우겸은 할 말을 잃은 듯 멍한 표정을 짓다, 이내 붉으락푸르락한 신색으로 이를 갈았다.

“기, 기억해 두마, 네놈!”

“하하하, 나 또한 잊지 않겠소.”

신유강은 더 이상 이곳에서 도우겸을 놀렸다간 그가 검을 뽑고 달려들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잽싸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우겸을 골리는 것으로 지친 마음의 활력이라도 얻은 듯, 웃으며 손을 흔드는 신유강의 모습은 참으로 해맑기 그지없었다.

“그럼 나중에 또 뵙도록 하겠소. 그…… 뭐였지? 하여튼 이름 모를 대협.”

“이, 이놈!”

신유강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폭소를 터뜨리며 달렸다. 한참을 웃으니 어느새 배가 고픈 것조차 잊어버린 듯한 모습이다.

뒤에서는 분한 듯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 도우겸이 보였고, 주위에 몰린 사람들은 도우겸 앞에서도 태연하기 짝이 없는 신유강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느낌이다.

신유강은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그곳에서 멀어졌다.

“그건 그렇고 이제 어쩐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사람을 만난 덕에 기분이 좋아진 것은 분명하나, 지금은 그러한 것보다 배를 채울 수 있는 무언가가 더 중요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산에서 칡이라도 캐 올 것을…….’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의 수중에 은자 세 냥이 있다는 것이다.

신유강은 품 안에 넣어 놓은 은자 세 냥을 만지작거리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식사는 조금 미루고…… 먼저 도박장에라도 가 볼까?”

청해성의 성도인 서녕 다음으로 큰 마을이니, 자연히 큰돈이 오가는 도박장이 있을 테고, 고작 은자 세 냥이긴 하지만 상당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신유강은 씩 웃음을 지었다.

“이 짓도 오랜만이군.”

* * *

“크으윽…….”

흑영과 흑호의 몰골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

사천 성도에서부터 이곳 신강까지 몇 달이 걸리는 거리를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려 도착한 그들은 마존의 명이 있을 때까지 뇌옥에 갇혀 있는 신세였다.

마교에 반란을 일으킨 대역죄인들만 가두는 곳인지라, 온갖 독충들은 물론이며 하루에 죽 한 그릇, 물 한 모금밖에 주지 않았다.

기실 이곳에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것이다.

“괜찮은 것이냐?”

“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대주나 걱정하쇼. 당장 눈 뒤집고 뒤질 것 같은 몰골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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