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이미 창밖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탓이다.
“어머, 겁도 없이 도 대협의 심기를 거슬렸다던 그 거지분이시로군요?”
한 기녀가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묻자, 신유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참으로 넉살 좋은 행동임이 분명하나, 정작 주인인 도우겸은 방 앞에 가만히 서서 씩씩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하하, 내가 사는 곳에서도 간덩이 부은 놈이란 소리를 좀 자주 들었소.”
“어머, 남자답고 괜찮네요.”
신유강이 태연하게 기녀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자, 도우겸은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저 목을 당장 떨어트리려 했던 그는, 왠지 모르게 힘이 빠진다는 듯, 축 늘어진 표정으로 검을 회수했다.
“빌어먹을 거지 놈.”
“하하, 자자, 이리 와서 앉으시오. 그대가 내는 것인데 먹고 마시지 않으면 쓰겠소?”
“네놈에게 먹으라는 소리는 한 적이 없는데?”
“이 많은 음식을 혼자 다 드시려 하였소?”
“크윽.”
신유강의 말 대로 차려 놓은 음식과 술은 상당히 많았다. 곤륜대전에서 우승해 얻은 막대한 상금을 아끼지 않고 썼으니, 온갖 산해진미와 맛 좋은 술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기녀들은 대답을 하지 못하는 도우겸과 당돌하기 짝이 없는 신유강을 바라보며, 기분 좋게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재미있는 분이시네요. 자, 도 대협도 이리 오셔요.”
세 명의 기녀들은 은근슬쩍 자리를 만들어 주자, 도우겸은 마지못해 그곳에 앉았다. 세 명의 기녀를 양 옆에 끼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야 할 것이 분명하나, 도우겸의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그래, 네놈은 뭐하는 놈이냐. 개방의 인물이더냐?”
상당히 허기가 졌던 신유강은 허겁지겁 음식을 목구멍에 넘기며 붕붕 고개를 가로저었다.
“크러릴아 업진 아소.”
“다 쳐 먹고 말해라.”
“푸하, 그럴 리가 없지 않소. 이 몸을 어떻게 보고 개방의 거지들과 비교를 하는 것이오?”
“네놈의 몰골을 보면 개방의 거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는데 뭘 그리 정색을 하는 것이냐.”
몰골이라는 말에 신유강은 자신의 몸을 살폈다. 얼마 전 만났던 백호영준의 옷을 빌려 입은 것이기는 하지만, 워낙 다급하게 달려온 탓에 여기저기 헤진 흔적이 역력했다.
확실히 거지꼴은 거지꼴이다.
“꼴은 이래보여도 나름 잘 나가는 몸이오.”
“잘 나간다?”
잘 나간다는 말에 도우겸은 콧방귀를 뀌었다.
옷 한 벌 사 입을 돈조차 없어 보이는 놈이 잘 나가 봤자, 거지패들 사이에서 잘 나가는 것이겠지 하며 납득을 한 것이다.
“재미있네요. 호호, 얼마나 잘나신 분이시기에 그런 소리를 하시나요?”
그러나 기녀들은 두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신유강이 무엇을 믿고 저러한 소리를 하는지 궁금한 것이다. 더욱이 청해성 전체에 이름을 날린 쌍검룡 도우겸 앞에서 말이다.
신유강은 와구와구 음식을 입 안으로 집어넣어 한참 동안이나 씹어 삼키고는, 기녀가 마시려고 따라 놓았던 술 한 잔을 시원스럽게 들이켰다.
“크으, 좋다. 이래봬도 내가 사천에서 이름이 조금 있소. 사천 십대거부 중 하나로도 꼽힌다오. 객잔도 하나 가지고 있고, 기루도 가지고 있소. 사청 성도에서 신유강이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
“호호호, 정말인가요? 이거 잘 보여야 하겠는데요?”
“꺄르륵. 공자, 잘 부탁해요.”
기녀들은 신유강의 말을 단순한 거짓말로 치부했다. 사천의 십대거부라는 자가 호위 한 명도 없이 이런 꼴로 돌아다닌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도우겸 또한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인 신유강은 그들이 오해를 하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끄윽, 이거 맛있군. 그런데 그쪽 분께선 꽤 이름을 날리시고 있는 것 같은데, 어디 문하시오? 곤륜?”
어느새 배를 다 채운 신유강이 술잔을 들이켜며 묻자, 도우겸은 올 것이 왔다는 듯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한때 천하를 굽어본 칠제(七帝) 중 한 분, 쌍무검제의 후인으로 쌍검룡이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다. 이번 곤륜대전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지. 하하하.”
“멋지셔요.”
“호호, 정말 대단하셔요.”
기녀들이 치켜세워 주자 더욱 기가 산 도우겸이 호탕하게 웃음을 지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지 않았던 그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도무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정작 신유강은 시큰둥했다.
“그 삼류 낭인들이 출전한다는 대회 말이오? 나 또한 들은 적 있소. 그런데 거기서 우승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오?”
“뭐…… 뭐라?”
목젖이 보일 정도로 웃던 도우겸은 마치 석상처럼 굳은 모습으로 힘겹게 신유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기녀들 또한 상당히 놀란 눈빛이다.
“응? 아아, 그대의 무공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니 곡해 하지 마시오. 그저 삼류 낭인들이 출전하는 대회에서 우승하는 게 진정 어려운 일이냐고 묻고 있는 것이오.”
도우겸과 기녀들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곤륜대전에 출전자들이 대부분 이름 없는 낭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다만 이번에 출전한 이가 쌍무검제의 후인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치켜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신유강의 말투는 그딴 대회에서 이긴 것이 뭐 그리 자랑할 일이냐는 투였기에, 기분이 좋았던 도우겸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네, 네놈…… 지금 그깟 대회라 했느냐?”
“내가 기분 상할 말이라도 했소? 왜 그리 얼굴을 굳히시오? 내 말이 틀린 것도 아니지 않소. 애들 싸움에 어른이 끼어든 것과 뭐가 다르오?”
도우겸은 도무지 참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신유강과 대화를 하는 와중에 몇 번이고 화를 낸 적은 있었지만, 지금 이만큼 강한 기세를 풍기는 것은 또 처음이다.
물론 그가 한 곤륜대전에 나간 것은 신유강의 말처럼 애들 싸움에 어른이 끼어든 것과 다름이 없었으나, 그것을 대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경우가 아니다.
쌍검룡이 고작 그런 애들 싸움판에 끼어들어 놓고 자랑을 하고 다닌다고 비하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스릉!
그 소리는 정말 날카롭고 섬뜩하기 그지없다.
날카로운 기세를 머금고 발검과 동시에 휘둘러진 칼날은 신유강의 앞에 있는 술병을 갈라내고, 그의 목까지 가져갈 심산인 듯했다.
그러나 신유강의 움직임 또한 상당했다.
마치 처음부터 기다렸다는 듯 목을 움직여 그것을 피해 냈다.
“이놈! 역시 한 수 재간이 있었구나!”
일검에 목을 가르려 했던 것이 실패하자, 도우겸은 한 발 앞으로 움직이며 더욱 빠르게 검을 움직였다. 한 마리 독사가 먹이를 노리고 돌진하는 것 같은 쾌속!
더욱이 이만큼 지근거리라면 피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순간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신유강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그 자리에서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이형환위와도 같은 느낌, 그러나 그런 종류의 빠르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도우겸은 재빠르게 검을 틀었다.
상대의 발이 아무리 빠르다고는 하지만 기척을 감지하는 것 정도는 누워서 떡을 받아먹는 것만큼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검의 궤도가 꺾이며, 어느새 기방 한편에 모습을 드러낸 신유강의 목을 노렸다.
신유강은 그것을 바라보며 숨을 골랐다.
회귀신공의 기운을 전신에 퍼트린다면 틀림없이 맞아도 산다. 그러나 고작해야 그렇게 대항하기 위해, 일부러 도우겸을 도발한 것이 아니다.
‘좋아.’
신유강은 전신기맥으로 뻗어 나간 기운들을 손으로 몰아넣었다.
카캉!
이윽고 들려오는 소리는 마치 칼과 칼이 부딪치는 듯한 소리였다.
그러나 그러한 것보다 도우겸을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기이한 기운이 신유강의 손과 부딪힌 칼날 쪽에서 느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칼 전체가 엿가락처럼 휘어질 것 같은 기세.
도우겸은 그것을 내공으로 억제하며 이를 갈았다.
‘평범한 놈이 아니다.’
어느새 신유강이 난간을 뛰어넘어 훌쩍 길 한복판에 내려섰다. 가까스로 검을 파고든 기운을 억누른 도우겸은 눈에 불을 켜며 뒤를 따랐다.
“놈! 가만히 두지 않겠다!”
양손에 검 한 자루씩, 쌍검룡의 현현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은 물론이고, 기루에 있던 기녀들까지 우르르 몰려나와 그 싸움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오시오.”
신유강은 진중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까딱였다.
명백하게 상대를 도발하는 행위, 그러나 지금 가장 긴장을 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도발을 하고 있는 신유강 본인이었다.
‘회귀신공을 이용해 전신을 보호하면 틀림없이 이긴다. 그러나 내 의지에 따라 한 곳에 기운을 집중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사천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회귀신공을 연공하며 느낀 것이 있다.
몸 전체를 보호하듯이 기운을 퍼트리고 있는 것보다 한 곳에 끌어모아 쓰는 것이 더욱 강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신유강은 무한한 치유 능력만 믿고 설치던 과거와는 다르게 이제 어엿한 무인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인지도 몰랐다.
그때, 지금까지 숨을 고르고 있던 도우겸이 움직였다.
강한 기세가 맺혀 있는 것은 물론이며, 그 속도와 검에 맺힌 기운들은 절로 살이 떨릴 정도로 대단했다.
신유강은 총 네 군데에 기운을 모았다.
두 발과 두 양손.
그리고 일보는 내딛는 그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기기묘묘(奇奇妙妙)했다.
선선운현무의 시작은 언제나 일보(一步)다.
한 걸음을 내딛고 좌우로 조여 오는 검을 피했다. 이윽고 이보와 삼보를 내딛으며 도우겸을 향해 파고들어, 좌수로 그의 턱을 치고 우수로 가슴을 타격했다.
퍼퍽!
“크윽!”
도우겸은 갑작스럽게 변한 신유강의 움직임에 상당히 놀란 모양이다.
더욱이 턱과 가슴을 맞았을 때, 끌어 올렸던 내공이 강제로 가라앉았던 탓에, 그야말로 맨몸으로 공격을 받은 꼴이 되어 버렸다.
“놈! 무슨 수작을!”
“이번엔 내가 가지.”
신유강은 다시금 숨을 고르며 손을 움직였다.
이번에 선공을 취한 것은 신유강이다. 조금 전과 전혀 다르지 않게 일보를 뻗어 거리를 좁히며 도우겸을 압박했다.
매섭게 날아오는 검들이 휘황찬란하게 그의 눈을 현혹시켰다. 쌍무검제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대단한 검술이라는 것을 머릿속에 새길 정도다.
신유강은 손을 뻗어 하단으로 들어오는 검을 쳐 냈다.
캉!
쇳소리와 함께 약간의 피가 튀었지만, 이미 회귀신공이 보호하고 있는 손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치유가 됐다.
정작 도우겸을 그러한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히죽 웃음을 지었는데, 그 순간 마치 보란 듯이 똑같은 비웃음을 입가에 머금은 신유강이 주먹을 뻗었다.
빠각!
“컥!”
도우겸의 안면에 적중한 주먹은 그야말로 극심한 고통을 안겨 주었다.
신유강이 손이 안면에 닿는 순간, 몸을 보호하고 있던 내력이 풀려 버리니 그 아픔이 오죽할까?
신유강은 웃었다.
‘상대가 아니다.’
그것이 신유강이 내린 결론이다.
새로운 방법을 연습하려 한다 해도 상대가 약하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도우겸은 처음부터 신유강, 아니 회귀신공의 적수가 아니었다.
‘오래 끌 필요는 없겠지.’
신유강은 거친 신음을 흘리며 주춤 물러선 도우겸에게 따라붙었다.
이미 밟았던 곳이니, 마치 이형환위처럼 그의 몸이 사라졌다 나타났으며, 그것을 바라본 사람들이 환호를 내질렀다.
“우와아아아!”
“봤어? 봤어? 저게 절대 고수들만 쓴다는 이형환위라는 거라고!”
“저, 저런 고수가 어디서 나타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