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소동의 모습을 한 신유강은 발 빠르게 산을 타고 움직였다.
신법의 강약을 조절하며 나무와 나무 사이를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는 그 모습은 마치 경공을 연마하는 무인과도 같았다.
발에 기운을 더하면 더할수록 경공을 더욱 빠르게 전개할 수 있었다.
땅을 박찰 때마다 펑펑! 하는 거친 울림이 들린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점점 탄력을 받고 속도를 올리는 신유강의 모습은 그야말로 경공으론 대적할 자가 없을 것만 같은 모습이다.
얼마 전까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고작해야 이류와 일류 사이 정도 되는 경공을 구사하던 신유강이었으나, 회귀신공의 힘을 한 곳에 집중시킬 수 있게 된 뒤부터, 그는 한층 진보한 면모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앞으로 나아가던 신유강은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여 우뚝 걸음을 멈췄다.
마치 황궁을 가져다 놓은 것처럼 웅장하기 짝이 없는 천산마교의 본거지.
그 앞에는 정문을 수호하는 무사 십여 명이 있었으며, 그들은 신유강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과 동시에 빠르게 발검을 했다.
“누구냐!”
스릉, 스릉!
검이 뽑혀지는 것과 동시에 상대가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공격을 가할 심산인 듯하다.
조금 전부터 기이한 폭음이 가까워졌는데, 갑작스레 누군가 나타났으니 긴장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설령 그것이 어린아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신유강은 느긋하게 십여 명에 무사들을 살폈다.
하나같이 대단한 기도.
정확한 수준을 측정할 수 있을 만큼 무인의 감각이 선 것은 아니지만, 당소혜나 쌍검룡 정도는 능히 상대할 것이다.
“칼을 거두어라. 나를 초대한 것은 그대들이 아니었느냐?”
“이놈! 어린놈이 말을 함부로 내뱉는구나. 예가 어딘 줄 알고! 썩 꺼지지 않는다면 단칼에 베어 주마!”
어린아이가 세상 다 산 노인네 흉내를 내며 웃고 있는 것을 가만히 봐주고 있을 그들이 아니다.
하나같이 살기가 짙다.
신유강은 혹여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전신에 기운을 돌리기 시작했다.
전신기맥을 돌기 시작하는 회귀신공의 기운들은 신유강에게 안도감을 안겨 주었다.
“나를 보자고 청한 것이 그대들의 주인인데, 그대들이 감히 내 앞을 막겠다는 겐가?”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그들의 주인이라는 말은 마교의 절대마존을 칭하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마존이 이 꼬마를 불렀다는 뜻이기에 문지기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감히 마존의 이름을 사칭하느냐! 한 번만 더 그따위 망발을 입에 담는다면, 어린아이라 해도 결코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문지기의 말에 신유강은 답답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율초언이 소동을 찾았으니, 자연스레 마교에서 소동을 찾는다 생각을 했다.
은근슬쩍 찔러보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생각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봐, 혹시 저 녀석이 그 소문의 소동 아닌가?”
“소, 소동?”
그때 가만히 신유강의 모습을 살피고 있던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마교에서 사천으로 파견된 적호대의 목적이 소동을 찾기 위함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없다. 더욱이 소동은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아이이며, 늙은이와 같은 말투를 쓴다고 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을 선뜻 믿을 만큼 문지기란 자리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네놈이 소동이라는 증거가 있느냐?”
“허, 그대들은 본 소동이 우스운가? 사천에서 이곳까지 먼 길을 지나왔건만 대접이 변변치 않으니, 이만 돌아가야겠군. 혹여 나중에 문책을 당하게 되더라도 본 소동을 탓하지 마라.”
이 자리에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신유강이다. 적호대라는 마교의 무력 단체가 움직였을 만큼, 소동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마존이라는 자가 한낱 문지기들 탓에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단순히 웃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문지기들도 그러한 것을 느낀 것인지 다급하게 신유강을 붙잡았다.
“자, 잠깐만 기다리시오. 우리가 실례했소이다. 안에 기별을 넣고 올 테니 잠시만, 잠시만 기다리시오.”
문지기들을 관리하는 대장 격으로 보이는 자가, 떠나려는 신유강을 붙잡고는 황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상대가 정말로 소동이라면 자신들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신유강은 안으로 들어가는 이를 가만히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다른 문지기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말일세. 이곳은 정말 대단한 곳인 것 같군. 과연 십만마도의 성지라는 생각이 드는군.”
“그, 그렇습니까.”
대답을 하는 문지기는 언짢은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해야 열 살짜리 어린아이에게 존대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는 것이다.
만약 소동만 아니었다면 한 칼에 베어 버렸을 것이다.
“하하, 그래그래. 한데 저곳은 뭐하는 곳인가?”
신유강이 가리킨 곳은 천산 아랫마을에서도 보였던 높고 높은 탑이었다. 얼마나 높은지 고개를 치켜들어야 그 끝이 보일 만큼 어마어마하다.
“저곳은 마존께서 머무는 곳입니다. 그리고 저 탑의 지하는 교의 대역죄인들을 가두는 곳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대역죄인이라? 천마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 대역죄를 범하기도 한다는 소리인가?”
“뭐…… 그렇지요.”
문지기는 아무런 생각 없이 순순히 입을 열었다.
상대가 어린아이라는 것에 경시하는 마음이 들어 쓸데없는 소리까지 줄줄이 새어 나오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그걸 안다고 해도 뭘 어찌하겠냐는 생각도 있었다.
동료들 또한 그러한 이를 말리지 않는다.
정말로 눈앞에 있는 자가 소동이라면, 최대한 지루하지 않게 이 자리에 붙잡아 놓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 마존께서 등극한 뒤로는 한 번도 없었는데…… 얼마 전에 붙잡혀 온 이들이 처음이었던가?”
문지기는 슬쩍 다른 동료들을 향해 물었다.
그러고 보니 매일같이 다툼이 끊이지 않는 것이 마교인데, 마존이 등극한 뒤로는 한 차례도 반란이 일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며칠 전 두 명의 인물들이 잡혀 왔다.
“흑영대주와 부대주를 말하는 거지? 나도 들었네. 믿기지는 않네만.”
“그렇지. 흑영대주라면 충성심 하나는 누구보다 높은 사람 아닌가.”
신유강은 두 눈을 반짝였다.
가장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드디어 들은 것이다.
사천에서부터 이곳까지 최대한 빠르게 온 것이지만, 역시 길을 제대로 알고 있는 적호대에 비할 수는 없었다.
흑영과 흑호는 꽤 오래전에 도착을 한 모양이다.
‘잘 있으려나?’
“호오, 그런 이들이라면 즉각 처형하지 않나?”
“마존께서 직접 처단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면…… 뭐 뇌옥 안에서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하하, 그 확률이 가장 높지. 그 뇌옥에 들어간 이는 시체가 되지 않는 한 나오지 못하지.”
그들의 말을 들은 신유강은 가슴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설마 이곳까지 힘들게 왔는데 흑영과 흑호의 시체를 보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때문이다.
신유강은 짧게 심호흡을 했다.
“그런데 당신이 정말로 소동이 맞습니까?”
“아까도 말하지 않았더냐. 이 몸이 바로 소동이라고.”
“크흠! 그, 그럼 제 팔 좀 봐주시지 않겠습니까?”
“팔?”
남자는 살짝 헛기침을 하며 슬쩍 팔뚝을 걷었다.
불에 심하게 데었는지 살 전체가 화상 자국이었다. 이 정도라면 팔을 움직이는 것도 여의치 않을 것이다.
신유강은 그것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화상인가?”
“에 뭐…… 항산대전 때 뭣도 모르고 움직이다가 크게 데였습니다.”
“그때가 언제인가?”
“약 오 년쯤 되었습니다.”
“흐음…….”
신유강은 항산대전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다만 정파와 마교가 충돌한 대사건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물론 왜 부딪혔는지 관심도 없으며, 객잔에 흘러 들어온 호가사들에게도 물어본 적도 없었다.
“고치는 것이야 그리 어렵지 않네만, 자네는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엣?”
“그러니까 그것을 고치는 데 무엇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네.”
남자는 그제야 금의신 소동에 대한 소문을 떠올렸다. 금력이 곧 자신의 힘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치료 한 번에 어마어마한 돈을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고, 돈이 없는 사람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최악의 의신이라는 것을 말이다.
“가, 가진 것은 얼마 없지만, 이 정도라면…….”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품에 가지고 있던 은자를 모조리 꺼냈다. 그의 한 달 녹봉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이 모은 듯 대략 은자 오십 냥 정도는 되어 보였다.
신유강은 그것을 빤히 바라보며 실소를 지었다.
“난 이 정도 돈을 받고 사람을 고친 적이 없네만…….”
“그, 그렇습니까?”
마음 같아선 돈을 얼굴에 집어던지며, 네놈이 그러고도 사람을 고치는 의원이냐!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남자는 꾸욱 참았다.
자칫 소동의 기분이 상해 돌아간다면, 화상이 문제가 아니라 목이 날아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 내 이곳 천산에서 처음 의술을 펼치는 것이니 은자 한 냥으로 특별히 봐주도록 하지. 자네 붕대 가지고 있는가?”
“저, 정말이십니까?”
“본 소동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게. 그보다 붕대 있느냐고 물었네.”
붕대라는 말에 남자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어느 순간 전투가 발생할지 모르는 곳이 바로 이 마교라는 곳이다. 최소한의 응급 도구 정도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남자는 조심스레 붕대를 신유강에게 전해 주었고, 신유강은 그것을 가만 바라보다 근처에 있는 잡풀 몇 개를 뜯어 빻았다.
통통통!
“저기 뭐하시는 겁니까? 그건,그냥 잡풀입니다만.”
“보고만 있게.”
단숨에 치료를 시켜 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순식간에 몸을 낫게 하는 신기를 발휘하는 것은 신유강에게도 상당히 꺼려지는 일이다.
결국 잡풀을 뽑아 빻은 신유강은 그것을 붕대에 덕지덕지 성의 없이 붙이고는, 화상을 입은 남자의 팔목에 휙휙 감아 냈다.
애초에 의학 지식 따위를 가지지 않은 신유강이 붕대를 제대로 감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붕대는 헐렁하기 짝이 없으며, 당장이라도 풀릴 것처럼 아슬아슬하기만 했다.
남자는 그것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장난하십니까?”
“장난을 치는 게 아니니 걱정하지 말게. 그리고 붕대는 꼭 내일 아침에 풀도록 하게. 그러면 깨끗하게 나을 것이네.”
그리 말을 하면서 화상을 입은 곳을 손으로 g나 번 매만진 신유강은 씩 웃음을 지었다.
“혹여나 지금 그 붕대를 뜯을 생각은 하지 말게나. 내일 아침까지 꼭꼭 싸매고 있어야 할 것이야. 한 번이라도 푼다면 뼈는 물론 살이 더 상해서, 팔을 잘라 내야 할 테니까.”
“정말입니까?”
“거짓말 같으면 본 소동이 지금 당장 풀어 주랴?”
신유강은 당장이라도 헐렁한 붕대를 풀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남자는 다급하게 손을 빼며 붕붕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믿을 수 없는 말이긴 하지만, 어쨌든 소동이라 자칭한 아이가 한 말이다. 결코 허투루 들을 수 없으며, 팔을 잘라 내고 싶지도 않았다.
“다 나으면 본 소동에게 평생 감사하면 살게나.”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남자는 슬그머니 붕대로 감긴 팔을 감싸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