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77화 (77/200)

# 77

“알 것 같다는 눈빛이군.”

“그 기분, 모르는 것은 아니오. 나도 이 빌어먹을 것을 익히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하기도 했으니. 지금도 보시오, 이것 때문에 사천에서 예까지 행차하지 않았소?”

신유강은 대놓고 마존을 힐난했다.

조용히 살고 있는 집안에 평지풍파(平地風波)를 일으켜 결국 자신마저 움직이게 했으니, 신유강의 입장에서 마존을 곱게 볼 수 있을 리가 만무한 것이다.

“뜻밖이군. 현선자의 무공이라면 천마신공과 버금가는 천외신공(天外神功). 무인이라면 응당 기뻐해야 하지 않은가?”

“확실히 심한 꼴을 겪긴 했지만, 얻은 것도 있소.”

마존은 대답 없이 웃음을 지었다.

어찌 되었든 이 둘이 익힌 것은 기연고서점에서도 천외신공(天外神功)이라 불리는 두 가지의 무공. 잃은 것도 있으나 얻은 것이 더 많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마존은 자신을 직시하는 신유강의 눈빛이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자, 조금 전 닫혔던 철문이 활짝 열리며 황염을 비롯한 십여 명의 시비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객이 왔는데 대접을 소홀히 할 수는 없지.”

안으로 가지고 들어온 음식들은 중원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산해진미(山海珍味)였다. 상당히 많은 요리를 익히고 있는 진소소조차 만들지 못할 것 같은 것들만 가득했다.

신유강이 그 산해진미를 바라보며 입을 쩍 벌리고 있을 무렵.

안으로 들어온 황염은 당황을 금치 못하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분명 조금 전 열 살가량의 소동이 안으로 들어갔을 터인데, 그 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 찾을 수 없고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웬 청년이 앉아 있었다.

‘흑룡의!’

더욱이 천마를 상징하는 흑룡의마저 입고 있으니, 벌린 입을 쉬이 다물 수가 없었다. 그 옷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은 천마를 제외하고 마교의 소교주 정도이기 때문이다.

황염은 다급하게 마존을 올려다봤다.

지금 이 이상한 상황을 설명해 달라는 듯한 눈빛이었는데, 마존은 대수롭지 않게 그것을 받아넘기며 의미심장한 웃음만을 짓고 있을 뿐이다.

“저…….”

무언가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던 황염은 다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대천마.

즉, 마존이 하는 행동이다.

거기에 대해서 수하된 자가 그 어떠한 의문을 갖는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었다.

질문을 하는 것은 천마를 의심하는 행위, 마존이 가지고 있는 절대 권력에 대한 도전을 뜻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명령은 오로지 마존의 입에서, 그리고 그 대답은 오로지 수하들의 입에서, 질문은 물론이며 의혹을 가지는 것조차 용서되지 않는다.

황염은 깊게 허리를 숙이며 표정을 숨겼다.

그의 표정과 생각, 여타 모든 것을 모를 리가 없다는 듯 마존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황염은 저도 모르게 파르르 몸을 떨었다.

“수고했으니 나가 보아라.”

“조, 존명!”

황염은 조용히 뒷걸음질을 치며 십여 명의 시비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쿵!

두텁기 그지없는 철문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닫혔다.

마존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황염은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부교주께…… 부교주께 알려야 한다.’

안에 있는 청년이 누구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다만 흑룡의를 입고 있다는 것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일이다.

“끌끌.”

황염이 밖으로 나가는 것과 동시에 마존은 끌끌 혀를 차며 웃었다.

그의 생각과 행동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선하게 그려지니, 이처럼 재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습니까?”

신유강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물었다.

고자인 황염이 웃긴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인지 전혀 짐작되지 않으니 고개만 갸웃거릴 따름이다.

“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도 같군. 하하하, 그보다 본 마존이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현선자의 비급을 내어 달라는 소리만 빼고 뭐든 물어보십시오.”

마존은 동그랗게 눈을 뜨며 신유강을 바라봤다.

천외신공 중 하나인 천마신공을 익히고 있었지만, 현선자가 가지고 있는 무공 또한 그에 못지않은 대단한 것임을 안다.

그러나 두 천외신공을 모두 탐할 만큼 마존은 욕심이 많지 않다.

더욱이 천마신공과 현선자의 무공은 그야말로 상극 중 상극.

익히고 싶어도 익힐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것은 필요 없다.”

“그럼 무엇입니까?”

“하하, 그리 안달 내지 말거라. 본 마존이 알고 싶은 것은, 그저 적호대를 보냈다고 고이 찾아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연고서점.

그것도 삼 층에서 현선자의 무공을 얻었음이 확실한 신유강이다.

아무리 적호대를 움직였다 한들 그들이 신유강의 상대가 될 수 있을 리가 없다.

마존이 보기에 율초언은 틀림없이 신유강에게 죽었거나, 혹은 반신불구가 되었거나 둘 중 하나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적호대를 그 지경으로 만들었다면 응당 마교에 대한 적개심이 들었을 것이고, 이 신강 땅까지 쉬이 올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지만 십만마도인들을 상대하는 것은 지옥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신유강은 당당히 찾아왔다.

이것이 기이한 것이다.

하지만 신유강은 적호대가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몰랐다.

율초언에 대한 적개심이 뼛속 깊은 곳까지 각인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적호대라는 것까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적호대라는 곳이 그…… 사천으로 보낸 그들을 말하는 것이오?”

신유강은 인상을 팍 쓰며 물었다.

그들에게 고문을 당할 당시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만약 회귀신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죽었을 것이 분명하다.

신유강은 저도 모르게 아득 이를 갈았다.

머릿속에 율초언의 얼굴이 떠오른 것이다.

“호오, 설마하니 율초언에게 지지는 않았겠지?”

마존이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기연고서점의 삼 층에 이르러 천외신공이라 불리는 희대의 무공을 익히고 있을 신유강이다.

아무리 뛰어난 적호대라 하더라도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 분한 듯 이를 갈고 있는 신유강을 보고 있자니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빌어먹을, 당신 때문에 싫은 기억이 또 떠올랐군. 그놈들은 뭐하는 놈이오? 내가 이걸 익힌 뒤로 처음으로 졌소!”

“하하하하!”

마존은 껄껄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현선자의 무공을 익히고 있는 이가 다른 누군가에게 졌다?

천마신공조차 백 수만에 제압한 그 무공을 가지고?

실로 어이가 없다.

아니, 그러한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고오오오!

마존은 천마신공을 끌어 올리며 신유강을 바라봤다. 그가 입고 있는 장포가 펄럭이며 검붉은 기운이 매섭게 치솟았다.

마존의 눈빛이 서서히 붉어져 마치 악귀(惡鬼)처럼 변모해다.

신유강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두려운 것이다.

온몸에 자리 잡은 회귀신공의 기운들이 미친 듯이 날뛴다.

마치 이 자리에서 도망을 치라는 듯 경고하는 그 느낌에, 신유강은 마른침을 집어삼키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놈! 천외신공이라 불리는 무공을 익히고도 고작 그따위 놈들에게 졌단 말이냐!”

마존의 호통이 대전을 진동시켰다.

어찌나 대단하고 살벌한지, 마치 탑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가진 바 모든 힘을 끌어 올린 것조차 아님이 분명하기에, 그야말로 신인(神人)을 보는 것 같았다.

“천외신공이니 뭐니 내 알 바 아니오. 그리고 내가 익힌 것은 무공이 아닌 현선자가 만들어 낸 이상한 기운이오!”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는 말에 천마의 눈빛이 묘해졌다.

기연고서점에서 익혔다면 틀림없이 현선자의 무공일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무공이 아니다?”

“회귀신공! 현선자가 죽기 직전에 만들어 놓은 이상한 힘이오. 나는 현선자의 무공은 익히지 못했소.”

“회귀신공…… 이라…….”

마존은 아미를 찌푸리며 말했다.

천마가 죽기 직전, 자신의 모든 무학을 통틀어 천마신공이라는 거대한 절학을 다시금 재탄생시켰으니 현선자 또한 그러했을 수 있다.

“작아졌다 커진 것은 그것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로군?”

마존이 신유강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심안(心眼) 덕분이었다.

천마신공을 익히고 있는 그의 심안은 사람의 마음은 물론, 이질적인 것들을 모조리 꿰뚫어 보는 능력을 지녔다.

마존은 이것을 마안(魔眼)이라 부르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신유강이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과, 그가 현선자의 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지금까지 단순한 진법이나 환영이라 생각했는데 회귀신공이라는 말을 들어보니, 어느 정도 그 힘에 대해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현선자의 후인인데 무공을 잇지 않았다라……. 그럼 네놈이 익히고 있는 무공은 무엇이냐?”

“선선운현무라고 하오.”

선선운현무라는 말에 마존은 눈썹을 찌푸렸다.

삼백 년 전, 천하제일고수라 불리는 석무자의 신공절학이다. 그의 무예 또한 대단하다 듣기는 했지만, 현선자나 천마에 비한다면 어린아이라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현선자의 무공은 회천공이라 한다.”

“회천공?”

마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마저 돌리는 힘.

그것이 바로 현선자의 신공절학이다.

“그런 걸 익힌 적은 없소.”

“으음…….”

마존은 신음을 삼키며 힐끗 신유강을 바라봤다. 분명 회천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지만 신유강이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회천공은 과연 어디에 있단 말인가?

생각을 하나마나 틀림없이 신유강의 머릿속, 즉 회귀신공 안에 있을 테지만, 아직까지 신유강은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마존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어찌 신유강 같은 둔재에게 현선자의 무공이 넘어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왠지 기분이 나쁘니 한숨은 그만 쉬시오.”

“네놈이 가진 멍청함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 정도다. 회천공이 아니라 해도 선선운현무 또한 상승의 무학임이 분명한데 고작해야 율초언 녀석에게 당하다니…….”

“내 무공의 원류는 회귀신공이오. 다른 이들처럼 내공을 가진 것이 아니라 순전히 힘으로만 싸워야 하는데 그런 미친놈을 어찌 이기란 말이오?”

신유강은 회귀신공이 가진 힘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무리 마존과 툭 터놓고 이야기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언제 적이 될지 모르는 이에게 자신의 전부를 가르쳐 줄 수야 없는 것이다.

“현선자의 무공은 의(意)와 신(信)에 있지. 네놈이 그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신유강은 인상을 썼다.

지난 세월부터 지금까지, 회귀신공을 다스리는 방법이라는 것이 의(意)와 신(信)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여, 이곳으로 오는 동안 그는 자기 자신을 믿었고, 회귀신공을 믿으며 연공했다. 그 결과 사천에 있었을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진척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느끼고 있었다.

내공을 사용할 수 없으니 진짜 무인들에 비해 기척을 감지하는 것과 신체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회귀신공의 특성상 내공을 되돌기는 하나 육체적 힘은 그러지 못하니, 신체 능력이 월등히 뛰어난 이와 붙는다면 응당 질 수밖에 없다.

신유강은 그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건 믿고 안 믿고의 그런 문제가 아니오. 내가 그런 것도 모를 것 같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