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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신공-81화 (81/200)

# 81

상당히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곳까지 온 것이다.

만약 신유강의 말이 모조리 거짓이었다면 울화가 치밀어 화병으로 누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신유강에게 당한 것이 억울하고 수치스러웠다.

“말해 주시오.”

“고작 하나로?”

이어질 말을 듣기에는 아직 은자가 모자라다는 뜻이리라.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진소소를 바라봤다.

은자 한 냥은 큰 금액이다.

고작해야 객잔 위치를 묻는 일에 한 냥을 주었으니 차고 넘칠 텐데, 진소소는 모자르다는 식으로 말하며 웃고 있을 따름이다.

쌍검룡 도우겸!

신유강에 대한 복수심 하나로 머나먼 청해 땅에서 이곳 사천까지 당도한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돈을 뜯기고 있었다.

탁!

“이거면 되겠소?”

또다시 탁자 위로 은자 한 냥이 올라왔다.

그것을 보며 만족한 웃음을 머금은 진소소가 조금 전처럼 은자를 쥐고 저만치 떨어져 있는 점소이를 향해 던졌다.

“자, 돈을 주었으니 이제 말해 보시오. 그 신유강이라는 놈의 객잔이 어디요?”

“여기에요.”

“……?”

“그러니까, 이 기연객잔이 우리 유강의 객잔이라는 소리에요.”

티 없이 맑게 웃는 진소소의 얼굴에선 도우겸을 속였다는 죄책감은 일체 찾아볼 수 없었다.

도우겸은 순간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싶어 멍하니 진소소를 바라봤다.

그러나 조금 전 들렸던 그 말이 아직 귓가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만큼, 곧 잘못 들은 것이 아님을 인지하게 했다.

“정말로 이곳이 그놈의 객잔이란 말이냐!”

쩌렁쩌렁한 소리가 객잔 전체에 울려 퍼졌다.

한껏 기세를 담은 탓인지 내공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괴로운 듯 신음을 흘릴 정도였고, 삼 층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던 후기지수들 또한 귀가 아프다는 듯 인상을 썼다.

그만큼 도우겸의 내력이 대단한 것이다.

“물론이에요. 이곳이 유강의 객잔이에요. 그런데 당신은 누구시기에 우리 유강을 찾는 거죠?”

이미 등의 쌍검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어렴풋하게나마 쌍검룡이라 생각하고 있을 정도다.

그런 상황에서 눈치 빠른 진소소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으니, 이는 단순히 상대에게서 확언을 듣기 위함이었다.

“이 몸은 쌍무검제의 진전을 이은 쌍검룡 도우겸이라 한다! 신유강 그놈은 어디에 있느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도우겸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신유강에게 놀림을 받은 것에 이어 어처구니없이 깨졌다.

하여 복수를 다짐하며 꾸역꾸역 사천까지 올라왔는데 그놈의 객잔에서 또다시 엿을 먹었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유강은 지금 여기에 없어요.”

진소소는 설레설레 손을 저었다.

그리곤 더 이상 도우겸에게 볼일이 없다는 듯, 등을 돌려 주방으로 향했다.

쌍검룡 도우겸 본인이 확실하고, 저리 화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신유강이 권룡이란 사실에는 일말의 거짓도 없는 듯했다.

진소소는 오랜만에 듣는 신유강의 소식에 들뜬 미소를 지었다.

쌍검룡과 권룡의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은 약 두 달 전.

그러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슬슬 신유강이 돌아올 시기라는 것이다.

‘뭐부터 먹이지?’

진소소는 벌써부터 신유강에게 해 줄 요리를 생각하며 들뜬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흑영과 흑호 또한 상당히 고생했을 테니, 맛난 요리를 대접해야 함이 마땅하다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신유강이 향한 곳은 천하제일인이라 불리는 천마존의 영역.

아무리 기이한 무공을 익히고 있는 신유강이라 할지라도, 어떠한 변수가 일어나 위험한 상황에 내몰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중을 가야 하나?”

콧노래를 부르는 그녀를 바라보며 청랑은 혀를 내둘렀다.

신유강도 신유강이지만, 그의 여인인 진소소 또한 상당히 대담한 담력을 가지고 있었다. 눈을 부릅뜨고 살기를 줄줄이 뿜어내는 쌍검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다.

아마 세상 어느 누구도 저러지는 못할 것이다.

“이년! 신유강 그놈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라는 소리가 안 들리느냐!”

“아, 죄송해요. 그런데 어쩌죠? 그 녀석은 정말로 이곳에 없는데.”

그때, 보다 못한 당소혜가 쪼르르 다가와 사과했다.

당장이라도 객잔에서 난동을 피우려는 도우겸 때문이 아니라, 그가 난동을 피움으로써 좋은 기분을 망친 진소소의 얼굴을 보기 싫었다.

저런 즐거워 보이는 진소소를 보는 건 상당히 오랜만이었던 탓이다.

“네년도 그 녀석을 알고 있느냐?”

“네? 저요? 아, 물론이에요. 이 사천 땅에서 신유강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당소혜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하듯 쳐다봤다.

도우겸의 시선 또한 자연스레 돌아갔다. 그러자 살벌한 분위기 때문에 밥 먹는 것조차 잊은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놈은 어디에 있느냐!?”

“글쎄요, 언니를 떼어 놓고 여행을 간지라 정확히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신유강이 흑영과 흑호와 함께 어디를 나갔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고, 정확한 것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진소소는 쓸데없는 일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 못을 박은 실정이고, 청랑은 원체 말이 없어서 물어보는 것조차 꺼림칙하다.

반면 어렵사리 사천까지 온 도우겸의 기분은 말이 아니었다.

고작해야 몇 마디 듣자고 은자 두 냥을 빼앗긴 데다, 정작 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신유강은 만나지도 못한다 하니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우지끈!

홧김에 욕을 하며 탁자를 내려치자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어찌나 대단한 내력이던지 막 주방으로 들어서려던 진소소가 발길을 멈추고 슬쩍 뒤를 돌아봤을 정도다.

그러나 구태여 부서진 탁자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살을 찌푸리며 조용히 주방으로 발길을 옮길 뿐이다.

“천하의 쌍검룡께서 무슨 짓을 하시는 것이오?”

그러나 세상에는 눈치 없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굳이 객잔에서 괜한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던 진소소가 꾹 참고 있었는데,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함인지 삼 층에 있던 모용후가 인상을 쓰며 나선 것이다.

쌍검룡의 내력이 심후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러한 것보다 진소소에게 잘 보이는 것이 먼저였다.

“네놈은?”

“모용후라 하오.”

“그래서?”

도우겸의 말투는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줄기줄기 살기를 퍼트리며 게슴츠레 눈을 뜨자 당당했던 모용후도 기가 죽었는지 금세 목을 움츠렸다.

쌍무검제의 진전을 이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천하를 약속받은 이라는 것과 같았고, 하필 신유강에게 걸려 호되게 당하기는 했지만 도우겸의 실력은 고작해야 모용후 따위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보게, 모용후. 진 소저가 조용히 있는데 우리가 나설 일이 아니라 보네.”

제갈가후가 말리지 않았다면 모용후는 자존심을 굽히고 싶지 않아 틀림없이 검을 빼 들었을 것이다.

다행히 제갈가후의 말 덕에 자존심 상하지 않고 물러설 수 있는 틈이 생기자, 모용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수롭지 않게 시선을 돌려 버렸다.

“흥! 내 반드시 그놈이 있을 때 다시 찾아오겠다.”

도우겸은 더 이상 이곳에 있을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는 듯, 온갖 신경질을 내며 발길을 돌렸다. 어쨌든 신유강이 운영한다는 객잔을 찾았으니 남은 것은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도우겸이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자, 객잔의 종놈이라 할 수 있는 백호영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산골 촌 동네에서 제법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던 그였으나, 과연 성도에는 무시무시한 괴물 같은 녀석들이 널려 있었다.

백호영준은 어째서 스승인 신유강이 복호문이니, 혹은 문주라는 소리를 하지 말라고 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말 한 번 잘못했다가는 뼈조차 추스르지 못할 것 같다.

“문주님, 괜찮으세요? 얼굴색이 안 좋아요.”

쪼르르 다가온 호야가 묻자 백호영준은 어색하게 웃었다.

‘문주는 무슨…….’

가르쳐 준 것 하나 없고, 이제는 객잔에서 잡일이나 하는 처지인데 아직까지 호야가 저런 식으로 자신을 부르니 괜스레 찔리는 기분마저 들었다.

“자, 잠시 쉬다 오마.”

이미 객잔에서 해야 할 일은 모조리 끝냈다.

남은 것은 장작 몇 개 정도를 패는 것이니 시간적으로 여유가 넘쳐 나는 백호영준이다. 어차피 점소이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니만큼, 결국 그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었다.

백호영준은 씁쓸하게 객잔 후원을 향해 걸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스승님.”

그것은 신유강에게 하는 말이다.

분명 자신과 비교해도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음이 분명한데 이렇듯 번듯한 객잔은 물론 장원까지 가지고 있다.

더욱이 곁에는 사천제일미라 칭송받는 진소소.

어디 그것뿐인가?

말은 하지 않아도 당소혜 또한 신유강을 은근히 사모하는 눈치다.

청랑이라는 소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리 봐도 신유강과 모종의 사이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백호영준은 쓰게 웃으며 거처로 향했다.

그의 거처는 과거 천운객잔 당시 신유강이 머물고 있던 곳이다.

불이 나기는 했지만 유일하게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과거의 추억 때문인지 그것을 부수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었다.

백호영준은 그 방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작은 방이긴 하지만 호야와 둘이서 생활하기에는 그리 나쁜 곳이 아니다.

더욱이 객잔에서 일하면서 녹봉을 받으니, 천막 생활을 하는 것보다 백배는 나은 생활이다.

“나도 언젠가는…….”

백호영준은 언제나 화려한 삶을 꿈꾼다.

진소소나 당소혜와 같은 천하절색의 미녀들을 곁에 끼고, 드넓은 집에서 살면서 황제 부럽지 않게 떵떵거리고 싶었다.

그러나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차가운 벽에 기대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신유강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삶조차도 꿈에서나 가능했을지 모른다. 혹은 진짜 재수 없게 무인들에게 걸려 칼침을 맞고 쓸쓸하게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 생각하자 저도 모르게 파르르 몸이 떨렸다.

“강한 무공을 배워야 해.”

강해지기 위해서는 무공을 익혀야 한다.

복호권이라는 우습지도 않은 무공이 아닌, 진짜 사람을 해칠 수 있고 타인의 위에 설 수 있는 그러한 무공이 필요하다.

그러나 백호영준의 주위에는 그걸 가르쳐 줄 이가 아무도 없다.

힘을 길러 이 객잔은 물론, 진소소 또한 지켜 주고 싶었다.

“……응?”

그때, 백호영준의 눈에 기이한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방구석, 허름하기 짝이 없는 책장이 있는 곳이다. 물론 책장이라고 해 봐야 진열되어 있는 책은 아무것도 없었으나, 어찌 되었든 책장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그 책장과 벽 사이, 사람의 눈으로도 잘 보이지 않는 작은 틈에, 기묘한 무언가가 보였다. 지금까지 방을 제대로 신경 쓰지 않았던 탓에 그러한 것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백호영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곳으로 다가갔다.

가볍기 짝이 없는 책장을 들어 옆으로 슬그머니 옮기자, 낡아 빠진 책 한 권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게 보였다.

“……흡혈마…… 공?”

백호영준은 그것을 바라보며 손을 떨었다.

한때, 수차례 회귀를 거치던 신유강의 손에 쥐어졌던 책.

회귀신공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고서점으로 들어갔어야 했던 그것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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