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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신공-82화 (82/200)

# 82

당시에 아무런 글자조차 없는 백지였던지라 방구석에 던져 두었던 그것이, 진정한 인연자와 연을 맺는 순간이었다.

第三章. 복룡태동(伏龍胎動)

“정말로 우릴 안 죽이려는 거 맞아?”

흑호는 눈썹을 찌푸리며 매섭게 검을 휘둘렀다.

서걱!

거친 소리가 들리며, 손끝에서부터 검으로 상대를 가른 느낌이 확연하게 전해왔다.

베인 이가 고통의 신음을 흘리며 힘없이 고개를 늘어트리자, 흑호는 검날을 가다듬으며 슬그머니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신강에서부터 이곳 사천까지 상당히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고작 한 달 보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마교도가 틀림없어 보이는 이들이 수차례 그들을 습격했던 것이다. 어찌나 손속이 매섭고 빠른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마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하듯 마교인들은 쉴 새 없이 신유강과 일행들을 노렸고, 그럴 때마다 흑호는 연신 욕을 내뱉고 있었다.

신유강 또한 인상을 썼다.

한 번이야 실수로 그럴 수 있다 생각하겠으나, 그것이 몇 차례나 계속된다면 마교가 일행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존의 성격상, 신유강을 죽이려 했다면 틀림없이 얼굴을 마주한 그 자리에서 일격을 가했을 터다.

신유강은 싸늘하게 식어 버린 추격자들을 보며 한숨을 토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가 보냈단 말인가?

“이걸로 끝입니까?”

신유강의 물음에 흑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꽤나 긴 추격이기는 했으나, 더 이상 느껴지는 기척은 없었다.

하기야 신강과 맞닿아 있는 청해와는 달리 사천은 완벽히 정파의 영역.

더욱이 무관이 들어서니만큼 정파 무인들의 시선이 쏠려 있으니 이 이상 깊게 추격하지 못할 것이다.

흑영이 힘겹게 어깨를 들썩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마존께서 지시하신 일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들보다 더 강한 자가 왔겠지.”

은신 능력이 탁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흑영이나 흑호를 암살할 정도로 대단한 이들이 아니다.

더욱이 검을 섞으면서 느낀 것은 이들이 집요하게 노리고 있는 대상이 신유강이란 점이다.

흑영은 신음을 삼켰다.

대강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마존이나 신유강의 입장에서는 흑룡의 따위 단순히 몸에 걸치는 옷이라 생각했겠지만, 다른 이들의 눈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특히 천마 위를 물려받지 못했던 부교주의 귀에 이 사실이 들어갔다면, 자신의 아들을 위해서도 신유강을 죽이려 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귀찮은 일에 말려들었네. 잘못하다가는 소소에게도 영향이 갈지도 모르겠군.”

흑영은 짐짓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신유강이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머나먼 신강 땅까지 찾아온 것은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나, 그 때문에 원치 않은 일에 휘말려 곤혹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이 꺼림칙한 것이다.

“정말이지 뭔 꼴인지 모르겠군.”

흑호가 한숨을 쉬자 신유강이 어색하게 웃었다.

마교인들이 자신을 노리고 덤벼드는 것을 당사자로서 모를 수 없었다. 흑영과 흑호를 무시하면서 어떻게든 자신을 죽이려 하는 모습은 아직까지 눈에 선할 정도다.

“구해 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할 심보입니까?”

신유강이 시큰둥하게 묻자 흑호는 뜨끔한 표정이다.

어찌 되었든 신유강이 아니었다면 그 빌어먹을 뇌옥에서 천년만년 썩어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들 하거라. 일단 장원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흑영의 말에 신유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천에서 신강까지, 신강에서 사천까지 상당히 먼 거리를 여행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

신강으로 향할 때는 최대한 빨리 흑영과 흑호를 구하기 위해 박차를 가했고, 사천으로 향할 때는 추격자들과 싸우기 바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격렬한 전투 속에서 살아남아 경험을 쌓았다는 것.

사천에서 신강으로 향할 때와 달리, 신유강은 한층 더 강한 면모를 보여 주고 있었다.

흑영은 힐끗 눈알을 굴려 신유강을 바라봤다.

무공에 대한 재능이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던 신유강은, 이제 그의 손을 떠날 정도로 높은 경지에 올라 있었다.

신유강을 바라보는 흑영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처럼 씁쓸한 듯했으나, 왠지 모르게 뿌듯한 감정 또한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갑시다. 언제까지 이 시체더미 속에 있을 겁니까?”

그들이 있는 곳에서 장원까지는 약 일각여 정도의 거리가 있다. 신유강은 주위에 널린 시체들과 추격자들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진소소의 얼굴을 보기 위해 안달이 난 듯 보였다.

흑영과 흑호는 그런 신유강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마교에서 나온 추격자들 덕분에 상당한 실전 경험을 쌓은 신유강은, 처참하게 찢겨 널브러진 시체들을 보면서도 무덤덤한 모습이다.

죽음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흑영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날렸다.

이러나저러나 진소소의 얼굴을 보고 싶은 것은 신유강뿐만이 아니었다.

파앗!

훌쩍 신형을 날린 신유강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 마리의 비조와도 같았다. 일류고수의 경공보다 못했던 지난날을 되짚어 본다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진보를 한 셈이다.

경공에 자신이 있던 흑영과 흑호가 뒤쳐질 정도였으니, 이는 신유강이 얼마나 큰 성장을 했는지 정확히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신유강의 장원은 과거예 비해 상당히 넓어져 있었다.

흑영이 마교로 잡혀가기 직전 장원 증축에 돈을 쏟아부은 후로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났으니, 그 기간 동안 증축이 모두 끝난 것이다.

“겁나 넓어졌네.”

장원을 본 흑호가 감상을 내뱉었다.

그만큼 지어진 건물이 대단했다.

명문세가라 불리는 사천당가조차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넓었고, 백여 명이 산다고 해도 넉넉하게 여유가 있을 정도다.

“조, 조금 심한 것 아닙니까?”

신유강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흑영을 바라봤다. 단순히 건물 보수나 객방을 늘리는 정도라 생각했었는데, 이건 무슨 황궁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흐음…… 이 정도는 되어야 사천제일갑부라는 소리를 듣지 않겠느냐? 하하하.”

흑영은 두 사람의 반응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장원을 바라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가 장원을 크게 중축시킨 것은 일종의 본보기와 같았다.

무림맹 무관이 옆에 지어지고 있는 실정이니만큼 많은 팔대세가, 혹은 구파의 제자들이 사천 거리를 활보할 것이 분명했다.

그때 그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끔 하려는 심산이었다.

고작 몇 사람 머물지 않는 장원이라 하지만 이 정도 크기라면 그 누구도 신유강과 진소소를 얕보지 못할 것이다.

강호라는 곳은 힘 있는 자가 모든 것을 손에 넣는다.

진소소와 신유강에게는 그럴 만한 힘이 있었다, 그와 더불어 재력도 가지고 있으니, 팔대세가나 구파일방이 무에 두렵고 부럽겠는가.

흑영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들어가지. 집 놔두고 예서 수다를 떨 생각이더냐?”

생각했던 것보다 멋지게 장원이 지어진 탓인지, 흑영은 뿌듯하게 웃으며 장원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따라가는 두 사람은 영 떨떠름한 표정이었으나, 장원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풍경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호, 호수가 있다!”

“연못이다 멍청아.”

흑호가 너무 놀라 어이없는 말을 내뱉자 흑영이 그것을 정정했다.

장원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연못은, 그야말로 동정호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듯 아름다웠다.

“무슨 놈의 집을 이리 개판으로 만들어 놨습니까?”

신유강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자신의 분위기와 천지 차이인 집안 풍경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마치 신유강이 아닌, 천상의 선녀나 혹은 황제가 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개판이라니? 나도 이 정도로 변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만, 이 정도면 준수한 수준이지. 듣기로는 천마궁 또한 만만치 않다 하더라.”

“……거긴 그냥 탑이잖습니까.”

“하하, 확실히 마존께서 기거하고 계신 곳은 탑이긴 하나, 그 뒤로 거대한 천마궁이 존재한다. 본래라면 그곳에 계셨어야 하지. 지금은 부교주께서 기거하고 계신 것으로 안다만.”

흑영은 무언가 탐탁지 않다는 듯 말했다.

마존을 비롯해 부교주에게마저 충의를 보여 주었던 그였으나, 후계 자리를 잃고 싶지 않아 계속해서 추격자를 보내는 것을 보고 질린 듯했다.

지금까지 약한 이들만 뒤를 쫓아왔으나, 또 언제 적호대와 같은 거대한 단체가 움직일지 모를 일이다.

훗날을 생각하니 절로 암담한 마음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신유강이나 진소소의 성장을 보고 있자니, 걱정이 곧 머릿속에서 씻은 듯 사라졌다.

“자, 어쨌든 나는 좀 쉬다가 객잔으로 가도록 하마. 네놈들은 어찌할 것이냐?”

“나도 좀 쉴랍니다. 아구, 뇌옥에 처박히고, 사람 죽이며 예까지 오니 아주 몸이 다 아작 나는 것 같수.”

흑호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싸우는 것을 극도로 좋아하는 흑호지만, 쉴 새 없이 몰려드는 이들과 한 달 보름 동안 싸웠던 탓인지 진저리가 쳐지는 모양이다.

흑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신유강을 바라봤다.

“저는 객잔으로 가겠습니다. 소소한테 말도 전해야 하고, 또…….”

신유강이 슬쩍 말꼬리를 흘렸으나,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모를 흑영이 아니었다.

진소소가 보고 싶은 것이다.

몇 달 동안 만나지 못했으니 응당 당연한 일이다.

“알겠다. 이따 가겠다고 말해 두어라.”

“예.”

* * *

기연객잔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만은 않다.

무관이 지어진다는 것 때문에 많은 무인들이 몰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때문인지 빈번하게 싸움이 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은 도우겸이 매서운 눈빛으로 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 끝에는 무림에서 이름을 널리 떨치고 있는 진자명이 있었고, 그의 주위에는 상당히 많은 후기지수들이 눈에 불을 켜고 도우겸을 쏘아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한판 어울릴 듯한 기세.

그러나 쉬이 나서지 못하는 것은, 객잔 주인인 진소소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다는 후기지수들의 생각 때문이었다.

“뭣 하느냐. 당장 칼을 뽑지 않고.”

도우겸은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일의 발단은 최근 사천에서 떠도는 한 가지 소문 때문이다.

사천 곳곳에서 바싹 메말라 죽어 있는 시체들이 발견되기 시작한 지 약 두 달.

대부분 무공을 익히기는 했으나 그리 수준이 높지 않은 하급 무사들이었다.

후기지수들이 담담한 표정으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돌연 도우겸이 끼어들며 그 분위기를 망쳐 놓은 것이다.

“그딴 것이 무서워 벌벌 떠는 것이냐? 후기지수라는 이름이 울겠다, 이것들아.”

도우겸이 쌍검룡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렇기에 최대한 공손히 예를 갖추기는 했지만, 진자명과 몇몇 후기지수들의 자존심을 긁는 한마디임은 분명했다.

이미 한 차례, 객잔에서 진소소와 검을 나누다 깨진 진자명은 눈에 불을 켰고, 덕분에 모용후와 제갈가후마저 나서는 상황이 되었다.

“의미 없는 칼질은 밖에서 하도록 하세요. 찻잔은 물론이고 탁자에 작은 상처라도 난다면 열 배로 보상을 해 주셔야 할 거예요.”

싸늘하기 그지없는 정적 속에서 진소소의 말이 울려 퍼졌다. 대수롭지 않은 듯 객잔을 돌아다니며 그릇을 치우는 그녀의 한마디에, 도우겸은 끄응 하며 신음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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