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그렇다면 그를 꺾은 권룡이란 자는 절정의 중간, 혹은 그보다 우위를 점한 고수라는 소리가 되는데, 이는 진자명조차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이곳에서는 진소소만이 그 정도 수준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돌연 자신들과 비슷한 또래의 절정 고수가 나타났다니 강한 거부감부터 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안도감은 순식간에 부서졌다.
“네놈이 나를 이겼으니 권룡이라 불리지 않더냐! 내 오늘 네놈의 목을 따, 그 별호를 가져가겠다.”
“그냥 가져가도 되는데…….”
신유강은 일체 거짓 없이 진실된 목소리로 말했다.
도우겸의 얼굴이 시뻘겋게 붉어졌다.
별호를 얻기 위해 목숨마저 거는 이들이 무수히 많다.
무인이라면 응당 그러한데, 신유강은 무인의 자긍심조차 없는 소리를 입에 담고 있었다.
진소소는 골치가 아픈 듯 미간에 손을 얹혔다.
“유강, 지금 발언은 조금 안 좋았어요.”
파앗!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이미 발검을 한 도우겸이 매섭게 튀어 올랐다. 부서진 탁자의 파편을 밟고 뛰어오른 그의 신형은, 빠르게 신유강을 향해 거리를 좁혀 왔다.
검은 매섭고도 빠르게 휘둘러졌다.
푸른 검기가 맺힌 두 자루의 검은, 그야말로 전광석화(電光石火)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다.
진자명조차 놀라워할 정도의 쾌검(快劍).
진심이 된 도우겸의 실력을 눈앞에서 본 진자명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나 신유강의 손은 그 쾌검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탕탕!
거진 동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온 두 자루의 검을 쳐 내자, 검에 맺혀 있던 검기가 순식간에 되돌아갔다.
“크억!”
진자명은 갑작스레 역류하는 내공을 회수시키지 못하고 울컥 피사발을 토해 내며 크게 휘청였다. 사람들은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후기지수들은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들이 보기에는 손으로 검을 쳐 내는 것과 동시에 내상을 입힌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 정도 수준은 이미 후기지수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수법이다.
“이…… 이놈! 무, 무슨 짓을…….”
“전보다 더 퇴화한 느낌인데…….”
신유강은 작게 중얼거렸다.
청해에서 만났을 당시 도우겸과 지금 이 자리에서 만난 도우겸의 검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휘둘러 오는 검의 흐름이 정확히 눈에 보이니 만큼, 신유강이 보기에 도우겸의 실력이 퇴화한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던 도우겸이었으니 진보를 했으면 했지, 퇴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유강의 실력이 예전에 비해 더욱 높아졌을 뿐이다.
고작해야 도우겸의 실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웃기는 소리! 내 네놈에게 복수를 위해 그리 칼날을 갈았는데 퇴화했다니! 이 썩을 놈이 말을 참 개같이 하는구나!”
도우겸의 말에 당소혜와 모용후, 제갈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보기에도 도우겸의 칼날은 감히 받아 낼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움을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신유강은 머리를 긁적였다.
본인이 그렇다는데 무슨 말을 하랴.
“어쨌든 더 이상 객잔에서 소란 피우지 말고 돌아갔으면 하오. 긴 여행 탓에 많이 피곤하니.”
신유강은 당장이라도 객방으로 돌아가 쉴 기세다. 장원에서 쉬는 것보다 진소소가 있는 객잔에서 쉬는 것이 더 마음 편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도우겸이 쉬이 신유강을 보내 줄 리가 만무했다.
스윽!
도우겸은 말없이 몸을 움직였다.
내상 탓에 조금 전보다 더딘 움직임을 보이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지닌 기세가 사그라진 것은 아니었다.
피잇!
신유강을 향해 뻗어진 한 자루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뒤이어 뻗어진 검은 정확히 가슴을 노렸으나, 언제 움직인 것인지 신유강은 이미 멀찍이 물러나 있었다.
“이형환위!?”
“초, 초절정 고수였단 말인가!”
이형환위를 쓸 수 있는 고수는 초절정에 달하는 이들 뿐이다.
무림백대고수에 들어야 가능하다는 그것을 실제 눈으로 본다는 건 극히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신유강의 나이는 고작해야 약관이지 않은가.
후기지수들은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나 이미 한 차례 신유강과 접전을 벌였던 도우겸은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다시금 몸을 날려 신유강에게로 향했다.
넘실넘실 검에 맺혀 있던 기운들이 검날과 더불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것이 어찌나 강렬한 느낌을 주는지, 지켜보는 이들은 소름이 다 돋을 지경이다.
그러나 그 춤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선선운현무(扇仙雲現武)의 시작은 일보(一步)라 했다.
첫 걸음을 내딛은 신유강의 몸은, 그야말로 구름 속에서 나타난 선인(仙人)과도 같았다.
굳게 쥔 주먹은 마치 선인이 들고 있는 선(扇)과도 같았다.
내뻗어진 주먹은 검에 맺힌 내공을 역류시키며, 정확히 도우겸의 복부에 꽂혔다.
퍽!
“크억!”
도우겸의 헛숨 삼키는 소리가 객잔 전체를 쩌렁쩌렁 울렸다.
갈비뼈와 내장이 모두 나가 버린 것 같은 소리에 당소혜가 질끈 눈을 감았고, 진소소 또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가 알고 있던 신유강의 실력과는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얻어맞은 도우겸은 비틀거리더니, 곧 힘을 다했는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넘어졌다.
정신을 완전히 잃었는지, 하얗게 눈이 뒤집어진 그의 모습은 과거의 일이 떠오르게 할 정도로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널브러진 도우겸을 일별한 신유강이 이내 백호영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지금까지는 애써 무시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에 너무나도 어울리는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후원에다 옮겨 놓도록.”
“에…… 예, 스승님.”
백호영준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가가 도우겸을 들쳐 업었다.
처음 신유강을 만났을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과연 자신이 스승이라 부를 만큼 강한 남자다.
그러나 곧이다.
곧 저 남자를 뛰어넘을 것이다.
백호영준은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게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후원을 향해 움직였다.
“그럼, 다음은 그쪽이오?”
신유강이 슬쩍 진자명을 향해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가장 걸리적거리던 도우겸을 눕혔으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진자명에게 비무를 신청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 시선을 받은 진자명이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조금 전 보았던 그 실력은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 물러나는 것 또한 우스운 일.
결국 진자명이 이를 갈며 막 검을 뽑아 들려던 그 순간이었다.
“하하하, 과연 소문의 권룡이라 할 만합니다. 이 제갈 모, 오늘 크게 개안을 했습니다.”
제갈가후가 식은땀을 흘리며 나섰다.
진자명의 경우, 이전에 진소소에게 졌던 일이 아직도 사천에서 유명한 일화가 되어 있다.
그런 상황에서 신유강에게도 패배하게 된다면 더 이상 일어설 수 없게 될 것이다.
더욱이 하북진가는 팔대세가의 기둥.
이런 곳에서 무너진다면, 팔대세가 전체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과 같았다.
“과찬이시오.”
“오늘 이 제갈 모가 개안을 한 날이니, 이곳의 음식 값 모두를 제가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음식 값을 내준다고 하니 마땅히 거절할 필요가 없다는 눈치들이다. 사람들은 기분 좋은 듯 웃는 낯으로 신유강을 바라봤다.
그간 도박꾼이니 뭐니 하며 욕하기는 했지만, 오늘 보아하니 결코 진소소에게 뒤지지 않는 남자이지 않은가.
더욱이 권룡이라면 근래 중원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고수.
그들은 신유강과 아는 사이라는 것이 이렇게 뿌듯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눈치다. 그것은 신유강의 친구인 점소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하나같이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신유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이 일은 이쯤에서 넘어가도록 하지. 하지만 당신, 다시 한 번 우리 소소를 모욕한다면, 다음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진자명은 움찔 몸을 떨었다.
한마디에 곁들인 살기가 전신을 찌르는 듯했다. 그러나 무어라 반박하지 못하는 것은, 조금 전 보았던 신유강이라는 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반면 신유강의 한마디에 진소소는 감격이라도 받은 듯 눈물을 흘렸다.
나이로 따지자면 두 살이나 어리지만, 오늘 신유강의 모습은 그야말로 남자를 보는 느낌이다.
“쳇…….”
그러나 당소혜만큼은 뭐가 그리 불만인지 혀를 찼다.
第四章. 천외신공(天外神功)
신유강과 진소소, 그리고 청랑이 물러갔음에도 불구하고 객잔의 분위기는 떠들썩하기 그지없다.
이미 권룡(拳龍)이라 불리는 신유강 덕분에 후기지수들이 더 이상 객잔에서 제멋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갈연이 힐끗 객방을 바라봤다.
진자명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채 나오지 않고 있었다.
제갈연은 쯧쯧 혀를 찼다.
하기야 자존심이 무너질 법도 했다.
기천검(氣天劍) 진자명이라 한다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후기지수인데, 자신의 앞에 세 명의 거대한 벽이 나타났으니 당연한 일이다.
제일 먼저 쌍검룡 도우겸.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경박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 할 수 있으나, 무인(武人)으로서 그의 재능은 이미 진자명을 능가할 정도로 대단하다.
이곳에 있는 후기지수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만약 신유강이 나타나지 않은 채 도우겸과 붙었다면 진자명은 필시 크게 낭패를 볼 상황까지 몰렸을 것이다.
이어 두 번째는 바로 객잔의 여주인인 진소소란 여인이다.
어디의 진씨 성을 쓰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저 하북진가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찌 보면 진자명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익히고 있는 무공 자체가 판이하게 다른 데다, 진자명 또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행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이곳 객잔 여주인 진소소와 연인 관계라 할 수 있는 신유강이다.
권룡이라는 별호를 얻었으니만큼 그 능력은 이미 입증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조금 전, 쌍검룡 도우겸을 고작 두 수만에 제압한 것은, 그가 절정 끝자락에 있는 무인이라는 소리와 다르지 않았다.
“대단하던데요. 엄청난 고수가 나타났어요.”
제갈연의 말에 제갈가후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궁상은 물론 모용후와 언미연까지 이견이 없는 듯했다.
“이미 후기지수의 범주를 뛰어넘었더군.”
제갈가후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려서부터 아무리 많은 실전을 겪었다 해도 약관에 저 정도의 무위를 보여 준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천하제일인의 진전을 이었다는 이들이 간간히 무림에 나타나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신유강이나 진소소처럼 무시무시할 정도의 무위를 보여 주지는 못한다.
결국 타고난 재능이란 소리다.
“둘 다 무공은 비슷했어요. 어느 고인의 무공인지는 판단이 서지 않지만, 적어도 팔대세가나 구파에 뒤지지 않는 최상승 무공이에요.”
“그렇지. 나 또한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신유강이란 자는 뭔가 조금 많이 다르더군.”
“심법이라던가 그런 쪽이 조금 다르겠죠. 아무래도 여자보다는 남자 쪽에서 비전절기를 이어받는 일이 많으니까요.”
제갈연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같은 문하의 제자라 하더라도, 남자와 여자는 엄연히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