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두 사람 모두 지칠 법도 하건만, 기이하게 진소소의 눈빛은 초롱초롱하기 그지없다.
속이 후련하다는 느낌이다.
“이제야 이야기가 맞는군요.”
진소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하니 그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본다면 어느 정도 느낌이 오기는 했다.
선선운현무를 가르쳐 주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익히고 있는 것은 물론, 오로지 그녀만이 알고 있는 사실을 신유강이 알고 있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과거예 만 번이 넘게 만났다면 응당 있을 법한 이야기다.
“후우…….”
진소소는 한숨을 토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편해지긴 하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 좋으면서도 씁쓸한 감정마저 들었다.
좋은 느낌은 틀림없이 그 수많은 회귀를 하면서도 자신을 잊지 않았던 신유강의 일편단심(一片丹心) 때문일 것이고, 씁쓸한 것은 자신이 모르는 과거의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진소소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그러한 생각을 떨쳐 냈다.
아마도 신유강이 지금까지 이야기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결론적으로 그 회귀신공이 삼 층에서 얻은 무공이라는 거죠?”
“응.”
“그나마 다행이네요. 회천공이 아니라서…….”
진소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삼 층에서 얻은 무공이니 그 대단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신유강이 같은 날을 수없이 반복하고, 죽지 않는 몸이 된 것만 보아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안도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그렇게 한숨을 내쉬는 찰나, 신유강이 기이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회천공이라는 것이 뭐지?”
이미 한 차례 회천공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신유강은 궁금증을 감출 수가 없었다.
회천공은 현선자의 무공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존의 천마신공과 필적, 혹은 그 이상일 것이란 걸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진소소는 의아해 하는 신유강의 얼굴을 바라보다, 이내 방긋 웃음을 지으며 조금 전 이야기를 이어 나가듯, 고운 목소리를 냈다.
“천마신공을 고작 백 수만에 꺾어 낸 무공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인간이 범접해서는 안 되는 무공……. 할아버님 말로는 회천공을 익힌 그 사람이 중원과 서장 새외를 돌아다니면서 천여 명이 넘는 초절정 고수들을 학살했다고 해요. 그래서 역사에서조차 잊혔다고…….”
진소소가 말끝을 흐리자 신유강은 벙찐 표정을 지었다.
천여 명의 초절정 고수들을 학살했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귀신공에 적힌 현선자의 글귀를 보았을 때 그는 천하에 다시없을 천재다.
동시에 천하에 다시없을 선인이라 할 수 있었는데, 어찌 그런 자가 전 대륙을 돌아다니며 그 많은 이들을 죽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정사마는 물론 새외의 합공을 받기도 했다죠.”
“……그래서 죽었나?”
“아니요. 할아버지가 그는 결코 죽지 않았다고 했어요. 수많은 무인들의 합격을 견뎌 내고 살아남은 괴물이라 했죠. 이후, 무림에선 그의 무공을 익힌 자를 무림공적으로 선포했다는 말을 들은 것 같네요.”
신유강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것이 정말로 현선자라면, 그의 무공을 이어받은 신유강 또한 무림공적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쉴 법한 한마디가, 진소소의 입에서 들려왔다.
“공적이라 해 봐야 이미 잊혀진 사람의 무공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더욱이 유강이 익히고 있는 무공은 회천공이 아니잖아요.”
“그…… 그렇지.”
“그러니 마존의 말을 너무 마음에 두지 말아요.”
불안해 하는 신유강을 안심시키려 하는 것인지, 진소소는 티 없이 맑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신유강은 천천히 숨을 고르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녀의 말처럼 천 년 전이다.
이미 역사에서조차 사라진 무공을 알고 있는 이들은 없을 것이고, 결정적으로 신유강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회천공이 아니라 그것에 기반을 둔 회귀신공, 그것도 무공은 선선운현무다.
“그리고 아무리 예리한 칼날이라도 사람에 따라 사용법이 다른 거예요.”
조금의 틀림도 없는 한마디에 신유강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말처럼 회귀신공이 설령 회천공을 바탕으로 두었다고는 하지만, 그가 악의를 가지고 사용하지 않는다면 과거와 같은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지. 남은 이야기는 일어나서 하기로 하고. 소소도 피곤할 테니 어서 자는 게 좋겠어.”
그 말에 진소소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기지개를 쭉 폈다. 하루 종일 앉아 있었더니 온몸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끄응, 그렇게 하죠. 유강도 피곤할 텐데, 이렇게 오래 잡아 놔서 미안해요.”
“아니, 오랜만에 느긋한 시간을 보냈어.”
자리에서 일어 선 신유강은 걱정거리를 모두 날려 버린 사람처럼 웃음을 지었다.
이러나저러나 진소소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신유강은 조심스레 방문을 빠져나갔다.
탁자에 앉아 있던 진소소는 잔을 치우다 말고 신유강이 나간 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조금 전까지만 신유강에게 보여 주었던 미소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굳은 표정만 역력하다.
“평범하지 않아.”
그렇다.
삼 층에서 얻은 무공이라고는 하지만, 신유강에게 들은 그 능력은 결코 평범한 무공이 아니란 것을 확연히 느낄 정도다.
흘러 들어오는 내공을 역류시키는 것은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신의 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욱이 천마의 기억을 온전히 이어받은 마존의 입에서 천외신공이라는 말이 나왔다면 틀림없이 회천공을 만든 이가 창안해 낸 무공.
그야말로 신(神)의 무공이다.
어찌 인간이 그러한 능력을 쓸 수 있게 만든단 말인가.
사람은 결코 신이 아니다.
어쩌면 신유강이 가지고 있는 그 능력은, 신유강에게 있어 치명적인 무언가를 빼앗아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진소소는 그러한 것이 걱정된다는 듯, 아미를 찌푸렸다.
“흐음…….”
자신의 거처로 발길을 옮긴 신유강은 툇마루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진소소의 말을 들으면서도부터 느꼈던 기묘한 느낌.
그것은 다름 아닌 회귀신공을 창안해 낸 현선자의 진정한 목적이다. 누군가와 만나고 싶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원했다.
그러나 인간인 이상 그러한 행위는 결코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이야기를 듣자하니, 회천공은 회귀신공과 같은 것이 아닌 단순한 무학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선운현무와 같은 그러한 것 말이다.
신유강은 신음을 삼켰다.
여러 가지 의문이 들고는 있지만, 현재 신유강의 머릿속을 계속해서 자극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과연 현선자가 어떻게 이 회귀신공을 창안해 냈냐는 것이다.
회천공이라는 것이 무공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이상 그것은 논외로 친다. 애초에 회귀신공은 무공이라기보다 심법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머리 아프게 하네.”
신유강은 쯧 하고 혀를 찼다.
천 년 전 천마의 기억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마존 또한, 회귀신공과도 같은 신의 필적하는 힘을 가지지 못했다.
의(意) 신(信).
회귀신공을 사용하기 위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 두 단어다. 그리고 마존의 말을 들어본다면 회천공 또한 이것을 기반으로 한다 했으나, 그것은 다름 아닌 회귀신공을 발현해 내기 위한 조건일 것이다.
결국 처음부터 현선자의 무공은 이 회귀신공이 기반이었다는 게 된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전적으로 신유강의 생각일 뿐이다. 애초에 회천공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낼 수 없으니 만큼, 거기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회귀신공이 회천공이 만들어지기 전에 창안되었다. 이리 생각하면 응당 그럴 법한 추측이라 할 수 있으나, 전후가 반대라면 회귀신공의 기반은 회천공이 되어 버린다.
거기까지 생각한 신유강은 검미를 찌푸렸다.
회천공이 먼저이니 회귀신공이 먼저이니 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신유강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회천공이 있든 없든, 그 기반이 회귀신공이든, 혹은 그 반대이든 간에, 이 빌어먹을 무공이 흔히 저주받은 무림의 마귀라 불리는 현선자의 무공이라는 것에는 결코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유강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러나저러나 골치 아픈 것을 익히고 만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 * *
늦게 잠을 잤음에도 불구하고 진소소의 아침은 빠르다.
신유강에게 손수 요리를 대접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그녀의 실력은, 과거보다 더욱 나아진 것이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극상이다.
흑영과 흑호는 마치 감격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그것들을 먹고 있었다.
뇌옥에 갇혀 있으면서 가장 생각났던 것은, 다름 아닌 진소소가 차려 준 밥상이기 때문이다.
“하하, 두 번 다시 못 먹을 줄 알았던 진미 아닌가!”
“거 보슈, 내가 포기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흑호는 마치 걸신이라도 들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그것들을 먹기 시작했다. 그 역시 진소소가 만든 음식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에 당소혜나 청랑이 있기는 했지만 워낙 감동하며 먹고 있는 세 사람 때문인지, 쉬이 이야기에 끼어들지 못하고 있었다.
당소혜와 청랑은 재빠르게 자신들의 밥그릇을 비우더니, 이윽고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갔다. 아무래도 조금 더 그들만의 시간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어쨌든 당소혜와 청랑이 밖으로 나가자, 신유강과 흑영, 그리고 흑호와 진소소만 남았다.
이미 두 그릇째 밥을 깨끗하게 비운 신유강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배를 두드리고 있자, 그 옆에 앉아 있던 진소소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본론?”
갑작스런 말에 신유강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흑영과 흑호의 시선이 진소소를 향해 돌아갔다.
“어제 대부분 이야기는 유강에게 들었어요. 약간 걸리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걸리는 것이란 건, 틀림없이 신유강이 익히고 있는 회귀신공일 것이지만, 그것을 굳이 입 밖으로는 내지 않는다.
“마교에 대한 문제에요.”
“마교? 부교주가 유강을 적이라 판단했을지도 모른다는 건가? 그건 그거대로 안 좋은 일이기는 하나, 조금 깊게 조사해 본다면, 결국 손을 뗄 것이 분명한 이야기다.”
마교의 부교주라는 자가 사리 분별을 못할 리 없다.
처음에는 신유강이 위협이 될 것이라 여기겠지만 마교에 나타나지 않고, 유강의 뒷조사를 하다 보면 결국 흥미를 잃게 될 것이 분명하다.
물론 권룡이라는 사실이 이미 파다하니 그 정도는 귀에 들어갈 터지만, 마존과 어떠한 관계도 없다는 사실을 인지할 것이다.
“하지만 미리 대비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죠. 지난번처럼 어이없게 당한다면, 두 번이 없어요?”
진소소가 싱글싱글 웃음을 지으며 흑영과 흑호를 번갈아 바라봤다. 또다시 율초언 같은 고수들에게 걸린다면 그때는 어찌할 것이냐는 말이다.
거기다 지금 진소소는 흑영과 흑호 탓에 신유강이 사천에서 신강까지 갔던 일을 꼬집어 말하는 것이었다. 만약 또 같은 일이 생긴다면, 신유강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구하러 가는 것을 전력으로 저지하겠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