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88화 (88/200)

# 88

“유강이 원한다면 받아들여도 괜찮지만…….”

“걸리는 것이라도?”

“네, 조금 많이요.”

진소소의 감은 날카롭기 그지없다.

은근슬쩍 호야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한 그녀의 시선은, 객잔 밖에서 장작을 패고 있는 백호영준에게 머물러 있었다.

신유강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만났던 백호영준은 무언가 거리낄 것 없었던 사내다.

약간 이상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기야 했지만, 그렇다고 적의를 가진 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객잔으로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진소소의 행동은 뭔가 꺼림칙함을 느낀 것 같았다.

신유강은 전적으로 진소소의 감을 믿는다.

그녀는 총명한 머리만큼 감 또한 상당히 날카롭기 때문이다.

“그럼 어쩔 수 없군. 당분간 일을 시키고, 내가 알아서 돌려보내도록 하지.”

“힘들 텐데요?”

호야에게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모든 것을 들었던 진소소는, 백호영준이 쉬이 객잔을 나갈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물론 힘으로 내쫓는 것 또한 가능하긴 하지만, 무공조차 익히지 않은 이들을 상대로 거기까지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도록 하지. 그보다 호야는 어쩔 셈이지?”

“일심동체(一心同體)라고는 하지만, 호야는 이대로 객잔에서 쓰고 싶어요.”

신유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함께 왔다고는 하지만 결국 타인은 타인이다.

또한 깊은 인연도 아닌 이상한 인연으로 만났으니만큼 백호영준을 내쫓는 것에 대해 그리 거부감은 없지만, 어린 호야만큼은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럼 조만간 백호영준에게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

“조심해요. ……그 사람, 뭔가 이상해요.”

“하하, 걱정도 많지.”

신유강은 대수롭지 않게 웃음을 지었다.

백호영준이 복호문이라는 우습지도 않은 곳의 문주라고 하지만, 결코 신유강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더욱이 실제로 익힌 무공 또한 삼류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다 해도 결코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으아아, 언니! 힘들어요.”

그때 객잔 정리를 다한 것인지, 당소혜가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쪼르르 다가와 진소소의 품에 안겼다. 어찌나 안쓰러워 보이던지, 진소소는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 참, 그리 나약해서 어떻게 할래? 천하의 사천당가의 금지옥엽께서.”

“너, 너도 하루 종일 그릇 닦고 청소하고 움직여 봐. 사람들 상대하면서 좋지도 않은데 히죽거려야 하고…… 얼마나 짜증 나는 줄 알아?”

“나는 십 년을 넘게 했다.”

“아…….”

당소혜는 그제야 신유강이 점소이 출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황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이러나저러나 신유강에게는 도무지 말로 이길 수 있는 싹수가 보이지 않는다.

당소혜는 샐쭉한 표정으로 신유강을 쏘아보고는 이내 한숨을 푹 쉬며 재차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은 다른 것보다 지금 들은 소문에 대해 말하는 것이 급한 모양이다.

“그보다 아까 들어보니 또 난리가 났던데요.”

“난리?”

“응? 아아, 너는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서 모르지? 지금 사천 곳곳에서 흡혈광마가 다시 나타났다고 떠들썩하잖아. 뭐, 네 소문 때문에 묻혀 버리기는 했지만…….”

슬쩍 진소소의 품에서 빠져나온 당소혜가 어색하게 웃었다.

설마하니 권룡이 진짜 신유강이었을 줄이야. 상당히 충격을 받은 사실이긴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뿌듯함이 서렸다.

사천에 현재 흉흉하기 짝이 없는 소문들만 가득한데, 그나마 신유강 덕분에 한껏 가라앉은 분위기가 바뀐 듯했다.

본인은 아마 모르겠지만 사천당가 쪽에서도 현재 신유강의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물론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도 들리고 말이다.

‘작은 아씨께서 권룡과 연을 맺었다느니…….’

거기까지 생각하던 당소혜는 얼굴을 붉혔다.

“흡혈마?”

“아…… 응, 삼류 무사들이 곳곳에서 습격을 받았어. 대부분 내공을 모조리 빼앗긴 채, 미라처럼 말라 죽었다고 하던데. 그 덕분에 당가 전체에 소집 명령이 떨어져서 내 호위들도 본가에 가 있어.”

당소혜는 마치 직접 눈으로 본 것처럼 파르르 몸을 떨었다.

내공을 빼앗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살 떨리는 일인데, 미라처럼 몸이 쪼그라든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충격이다.

“너는 안 가고?”

“나는, 안 가도 돼…….”

신유강은 필시 당초운이 그녀를 부르지 않았음을 짐작했다. 있어 봐야 발목이나 잡을 테고, 자칫하다가 험한 일을 겪을지도 모르니, 차라리 안전한 진소소 옆에 붙어 있으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니까 너도 조심해. 야밤에 돌아가는 거 좋아하니까 괜히 그런 꼴 당하지 말고.”

“나보다 네 걱정이나 해라.”

“나…… 난 괜찮다고! 이 사천 바닥에서 누가 있어 이 당소혜를 습격해!?”

신유강은 단호하게 말하는 당소혜를 바라보며 쯧쯧 혀를 찼다. 예나 지금이나 위기감이라는 것이 약간 부족한 아가씨다.

* * *

주위는 어둡기 그지없다.

스산한 안개가 낀 탓에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음은 물론, 등불마저 꺼진 거리는 마치 귀신이라도 나올 듯 오싹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이미 한 달 전 사천으로 들어섰던 육단호는 호위들을 거느리고 그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장남이 실종된 터라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으나, 그보다 상단에 막대한 손해를 입힌 것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려 하는 느낌이 강했다.

“도대체 이 빌어먹을 자식은 어디에 있단 말이냐!”

쥐 죽은 듯 조용한 거리에 울려 퍼지는 소리는 그야말로 천둥이라도 친 듯 우람차다.

상당히 화가 난 것인지 얼굴마저 붉히고 있던 그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다.

근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육평초를 찾기 위해 사천 곳곳을 다 뒤지고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도통 알 길이 없으니 울분이 치밀어 오를 정도다.

육평초가 손에 넣으려 했던 기연객잔은 사천당가의 여식과 팔대세가의 후기지수들이 있는 탓에 함부로 손을 쓰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굴렀다.

육단호는 아득 이를 갈았다.

“네놈들은 대체 뭐하는 놈들이냐. 하나같이 쓸모가 없어서는…… 쯧쯧.”

괜스레 곁에 있는 호위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상단 내에서도 상당히 뛰어난 측에 속하는 이들이었으나, 무림인 주제에 사천 거리 어딘가에 있는 아들 하나 찾아내지 못하니 쓸모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육단호는 저벅저벅 거리를 걸었다.

돈이 한 푼이라도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상단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사천 거리에도 보이지 않으니 무슨 일이 생겨도 크게 생긴 것이 분명하다.

육단호는 애가 탔다.

아들을 찾기만 한다면 다리를 부러트려 버리겠다고 다짐했지만 미운 새끼라 해도 자식 새끼, 혹여 죽은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러나 누가 있어 대운상단의 장남을 건드릴 수 있는가.

육단호는 머릿속에 드는 잡념을 떨치며 그가 머물고 있는 객잔을 향해 걸었다.

황룡객잔은 사천제일의 객잔이다.

중원 곳곳에 있는 곳이며, 값싼 소면 한 그릇이라 해도 산해진미와 버금가는 맛을 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중원 전역의 상권을 휘어잡고 있는 주가장이 만든 곳이니만큼, 그가 머물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물론 사천에는 그보다 더 유명한 객잔이 있었지만, 육단호는 그곳의 그림자조차 밟고 싶지 않았다.

“상단주, 차라리 개방이나 하오문 같은 곳에 부탁해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과거 풍백보다는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지만, 일류와 절정 사이를 엿보고 있는 고수다. 대운상단에 몸을 담기 전에는 낭인들 사이에서도 꽤나 이름을 날렸던 자다.

그는 이렇게 사천을 이 잡듯 뒤져 봐야 육평초를 발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애초에 어딘가에서 죽었을 거라 생각하고 있으니, 육평초를 찾는다는 그 모든 행위가 그저 우스울 뿐이다.

“뭐라? 지금 그걸 말이라 하느냐? 네놈은 이 육단호에게 그런 거지 같은 곳에 돈을 쓰라는 소리냐?”

호위무사는 검미를 찌푸렸다.

결국은 아들을 찾는 것에 돈을 쓰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육평초가 못났다고는 하지만, 아비가 된 자로서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호위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더 이상 말을 섞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오늘은 이쯤하고 내일 다시 찾아보도록 하지.”

호위들은 저마다 속으로 혀를 찼다.

정말이지 역겹기 그지없는 놈이다.

그렇게 육단호와 호위들은 황룡객잔을 향해 나아갔다. 스산하기 짝이 없는 거리지만, 곁에 있는 네 명의 무사들이라면 어지간한 일쯤은 순식간에 처리할 것이다.

슥-!

그때 무언가 검은 인영이 순식간에 시야에 잡히더니 곧 사라졌다.

육단호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고, 호위들은 재빠르게 그를 보호하듯 에워쌌다.

“누구냐!”

호위들은 신음을 삼키며 소리를 쳤다.

최근 사천에는 좋지 않은 소문들이 무성하다.

무관이 들어서고 있어 곳곳에서 무인들이 모인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이들을 긴장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흡혈광마라는 존재다.

대략 백여 년 전의 일일 것이다.

서장에서 흘러 들어온 색목인 한 명이 기괴한 무공을 사용하여 타인의 내공과 그 생기를 갈취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그를 흡혈광마라 불렀으며, 어떤 이들은 혈마라고도 불렸다. 그가 그를 잡기 위해 몰린 무인들의 피를 뒤집어썼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초절정에 근접한 무위.

사람의 내공과 생기를 갈취하면서 점점 더 강해지는 그를 잡기 위해 구파일방과 팔대세가의 가주들과 문주들이 모조리 나섰을 정도라 한다.

그런 흡혈광마가 사천에 나타난 것이다.

현재 사천당가와 아미, 그리고 청성 쪽에서 인원을 파견하여 밤거리를 순시하고 있지만, 지금 이들이 있는 곳에는 아무도 없다.

슥-!

“이놈!”

또다시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조금 전보다 뚜렷하게 그것을 볼 수 있었기에, 호위들은 잽싸게 병장기를 뽑아 들며 호통을 쳤다. 그러나 온몸이 긴장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 쥐고 있는 검날이 미세하게 떨렸다.

“뭐…… 뭣들 하는 게야! 어서 어서 죽이지 못하고.”

“가만히 계십시오.”

육단호는 호들갑을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스산한 분위기에서 누군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데다, 그 목적이 자신들인 것 같으니 괜스레 불안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퍼걱!

“크억!”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다가온 검은 인영이 호위 중 한 명의 얼굴을 부여잡고는 그대로 사라졌다. 검을 휘두를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빠른 몸놀림이었다.

“으아아악!”

이윽고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려 퍼지더니, 곧 쥐 죽은 듯 잠잠해졌다.

육단호와 호위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슥-!

이윽고 검은 그림자가 또다시 움직인다.

* * *

이른 아침부터 부스스한 몰골로 눈을 뜬 신유강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휘적휘적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기실 일어나고 싶어서 일어난 것이 아닌, 누군가 계속 방문을 두들겼기 때문이다.

슬쩍 문을 열어 보자 익숙한 얼굴의 여인이 보였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급한 일이라도 있는 느낌이다.

탁!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