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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신공-89화 (89/200)

# 89

다시금 문을 닫은 신유강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침상에 몸을 눕혔다. 그 때문인지 문을 두들겼던 이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거칠게 안으로 들어왔다.

“왜 문을 닫는 거야!? 내가 얼마나 힘들게 깨웠는데!”

“너는 좀 조신해야 할 필요가 있어. 혼인도 안 한 처녀가 남자 방을 뭐 그리 쉽게 들어오고 난리냐?”

“할 말이 있어서 그런 거잖아!”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만 조금 이따가 하던가. 어제 늦게까지 수련을 하느라 몸이 축났으니까.”

신유강은 마치 흐믈거리는 오징어처럼 축 늘어진 몸으로 침상을 뒹굴었다.

어느새 이불을 돌돌 말아 몸을 숨겨 버리더니, 곧 쿨쿨하는 소리가 격하게 들려왔다.

당소혜는 그 모습을 어이없는 눈빛을 바라봤다.

아무리 친한 사이고, 또 여자로 보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이건 조금 도가 지나치지 않은가?

후기지수들에게 수없이 고백했다 차이면서 헤픈 년이라 알려진 당소혜지만, 미모만큼은 진소소를 제외하면 견줄 여인이 없다.

당소혜는 삐친 듯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당차게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턱을 괴며 입을 열었다.

“일어나 봐. 할 말이 있으니까.”

“고백이라면 나중에 해라. 졸리니까.”

“누가 너 따위한테? 헛소리하지 말고 일어나!”

당소혜는 끈질겼다.

결국 두 손을 들었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힘겹게 이불을 걷어 낸 신유강이 침상에 걸터앉아 삐딱한 표정으로 당소혜를 바라봤다.

“뭐지?”

“오늘 아침 일찍 당가에서 들어온 소식이야. 그…… 대운상단 알지?”

“아, 그 돈줄……. 잊고 있었군.”

신유강은 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육평초가 쓴 그 각서를 지금에서야 떠올린 것이다.

흑영이 가지고 있긴 했지만, 워낙 갑작스레 일이 터진 탓에 지금까지 깔끔하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신유강은 슬슬 돈을 받으러 갈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대운상단이 왜?”

“그 상단주가 새벽에 흡혈광마한테 습격을 받고 죽었대.”

“…….”

신유강은 짐짓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하며 귀를 후볐다. 그러나 아무리 머릿속을 되짚고 귀를 후벼 파도, 당소혜의 입에서 나온 말은 바뀌지 않았다.

“그럼 내 돈은?”

“응? 무슨 돈.”

“육평초가 나한테 빌린 돈 말이야, 돈!”

육평초가 돈을 빌렸다는 말에 당소혜는 눈을 크게 떴다.

확실히 객잔에서 소동에게 돈을 빌렸다고 말했는데, 지금 신유강은 자신에게 돈을 빌렸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소혜가 작은 머리를 외로 꼬며 물었다.

“그 사람이 너한테 돈을 빌렸어?”

“응.”

“얼마?”

“금 이십만 냥. 그리고 하루 이자가 금 백오십 냥.”

당소혜는 골이 아픈 듯 머리를 매만졌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말도 안되는 금액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십만 냥이라 한다면 이전에 육평초가 객잔에서 소리를 친 금액과 같다.

물론 그것은 금자가 아닌 은자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어리숙한 당소혜는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는지 그저 기가 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 네가 그런 돈이 어디 있어서 그 돈을 빌려 줬어? 혹 그 장원을 판 돈으로……?”

“하하하, 그럴 리가 없잖아.”

대수롭지 않게 웃고 있지만, 기실 이 거래는 누구에게도 말 못할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었다.

육평초는 분명 돈을 받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신유강은 단 한 푼도 돈을 빌려 주지 않았다.

완전범죄라 해도 과언이 아닌 사기 실력으로 육평초에게 엿을 먹인 셈이기 때문이다.

아마 진소소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신유강은 장원으로 끌려가 수련을 빙자해 꽤나 얻어맞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

“그런 게 있으니 알 생각하지 마라. 그보다 대운상단주가 죽었다면 일이 조금 더 쉽겠군.”

“무슨 일?”

“당연히 돈을 받는 일이지. 넌 지금까지 내 말을 듣기나 한 거냐?”

신유강이 어이없다는 식으로 바라보자 당소혜가 아미를 찌푸렸다.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늘어놓는 데다 혼자서 납득하고 있는데, 그것을 어찌 알 수 있는가.

더욱이 지금은 그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대운상단주가 죽은 일로 사천은 지금 난리 법석이야. 그래서 말인데…….”

신유강은 슬쩍 말꼬리를 흐리는 당소혜를 바라보며 무언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가끔 귀찮기 짝이 없는 일들을 가지고 올 때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로 싫어.”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네가 나를 괴롭힐 때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으니까.”

“하, 하아……. 잘 이해가 되지는 않는데……. 어, 어쨌든! 우리 아빠가 직접 네게 하는 의뢰야. 이번 흡혈광마 사건에 힘을 좀 보태 달래.”

신유강은 인상을 찌푸렸다.

당초운이 직접 나설 정도라면 일이 심각할 정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하긴 천하십대상단 중 한 곳, 대운상단의 상단주가 사천 거리에서 죽었으니 응당 그럴 법도 하다.

“아미와 청성까지 나선 마당에 굳이 나한테까지 기대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지.”

“현 중원에서 가장 유명해지고 있는 권룡이 나선다면 아버지 체면도 좀 살잖아.”

당소혜는 수줍게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 본가를 방문했을 때 떠들썩하게 울려 퍼지던 소문 때문이다.

신유강과 당소혜가 곧 혼례를 올릴 거라는, 또 당소혜에게 부탁하면 신유강은 반드시 움직여 줄 거라며 호언장담하던 당초운의 웃음마저 떠올랐다.

이것은 마치 당초운이 당소혜의 신랑감으로 신유강을 선택했다는 것과 같지 않은가.

물론 가장 큰 벽이라 할 수 있는 진소소가 있기는 했지만, 당소혜는 결코 굽히지 않겠다는 듯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보수는…….”

“응?”

“금 스무 냥이다.”

“으…… 으응…….”

당소혜는 풀이 죽었다.

진소소와 함께 객잔으로 돌아간 당소혜를 뒤로하고, 신유강은 흑호를 데리고 육단호가 죽은 곳에 와 있었다.

그곳에는 이미 당초운을 비롯한 당백문과 아미와 청성에서 나온 이들이 있었으며, 하릴없이 객잔에서 시간만 축내고 있던 후기지수들 또한 몇몇 보였다.

신유강은 슬쩍 후기지수들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며칠 전 그와 말싸움을 했던 진자명이 보였던 탓이다.

“오, 그래. 드디어 왔구나.”

당초운이 여전히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신유강을 반겼다.

기실 신유강을 부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현 중원에서 권룡이라 불리는 이와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과시함으로써, 다른 팔대세나 구파일방에 우월함을 내비치려 한 것이다.

또한 당초운의 부탁으로 권룡이 왔으니 체면을 세울 수 있었고, 일이 잘 풀린다면 여기저기 차이고 다니던 당소혜의 짝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당초운은 밑바닥에 이런저런 계산들을 깔았다.

“신유강이라 합니다.”

신유강은 포권을 하며 주위에 있는 이들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당초운이 이곳에 와 있으니만큼, 아미나 청성에서 나온 이들 또한 상당히 이름 있는 무인일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호오, 천하를 진동시키고 있는 권룡이 누군가 했는데 이리 준수한 미청년일 줄이야. 잘 부탁하네. 나는 청성의 윤환이라 한다네.”

“아미의 옥진이라 한다.”

윤환과 옥진이라는 말에 신유강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아미와 청성의 장문인이며 각각 아미제일검, 청성제일검이라 불리는 자들이다.

지금까지 산에 처박혀 나오지 않던 자들이, 대운상단의 상단주가 죽은 것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슬금슬금 기어 나온 것이다.

그러나 표정에는 명백한 귀찮음이 가득하다.

‘만약 당초운이 나서지 않았다면 아직까지도 산속에서 도나 닦고 있을 년놈들이겠지.’

신유강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속으로 쯧 혀를 찼으나, 표정만큼은 천하의 굽어보는 대협이 따로 없었다.

“명성 자자한 선배님들을 뵈어 영광입니다. 권룡이라는 허명을 얻고 있습니다만…… 그리 대단하지는 않습니다.”

“허허허, 겸손하기도 하고. 과연 정파의 기세가 느껴지는 인물이로고.”

‘어디가?’

신유강은 속으로 그러한 말을 되뇌었다.

도대체 자신의 말 속에서 어떻게 해야 정파의 기세를 찾을 수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더욱이 신유강은 정파니 사파니, 혹은 마교니 하는 개념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물론 마교 쪽은 그리 좋지 못하지만 말이다.

“반갑습니다. 제갈가후라 합니다. 이쪽은 제 동생은 제갈연, 그리고 다른 분들은…….”

제갈가후는 한껏 웃음을 지으며 신유강에게 다가왔다.

기실 진소소를 노리고 있는 이들이라면 신유강이 방해가 됨이 분명할 텐데도, 그의 눈빛에는 그 어떠한 적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모용후라 하오.”

“나, 나, 남궁상입니다.”

“……진자명이라 하네.”

신유강은 대강대강 한 귀로 흘리며 그들의 이름을 무시했다.

그러나 문득 남궁상이라는 말이 나오자 과거의 일이 떠올랐는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남궁상은 마치 호랑이 앞에 쥐새끼처럼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우리 예전에 만난 적이 있지 않소?”

“아, 그, 자, 잠깐 말입니다. 하하하…….”

남궁상은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칠 년 전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를 대하기 어려운 이유는, 다름 아닌 권룡이라는 별호를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배경으로 누르는 것은 가능하나 사천당가의 비호를 받고 있는 몸.

더욱이 쌍무검제의 진전을 이은 쌍검룡을 고작 두 수만에 제압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으니 응당 두려움이 든 것이다.

신유강은 그런 남궁상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당백문의 모습이 보였는데,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휙 하고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입니다 형님, 요즘 얼굴 보기가 힘듭니다.”

“그, 그렇지. 요즘 좀 바쁘네…….”

시선조차 마주하려 하지 않는 당백문을 바라보며, 남궁상은 뭔가 동질감(同質感)을 느꼈는지 고개를 안타깝다는 듯 끄덕였다.

눈치 빠른 제갈가후와 진자명도 당백문이 신유강을 꺼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저런 고수가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제갈가후는 의아한 눈빛으로 신유강을 바라봤다.

처음 진소소를 보았을 때에도 같은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신유강은 그것보다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 존재다.

“그럼 이야기를 본론으로 돌리도록 하겠네. 자네를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네. 현재 사천에서 활동 중인 흡혈광마를 잡을 생각이네. 그것에 꼭 힘을 보태 주었으면 하네만, 어떠한가?”

“소혜에게 이미 모든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선배님들께서 괜찮으시다면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신유강의 한마디에 옥진은 물론이고, 윤환마저 놀란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수많은 후기지수들을 보아 왔지만, 이렇게 겸손하게 선배 대접을 받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기 때문이다.

윤환은 슬쩍 다른 후기지수들을 바라봤다.

그 눈빛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에 제갈가후가 어색하게 웃었다. 진자명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슬그머니 시선을 돌릴 뿐이다.

“그리 말해 주니 고맙네. 자, 그럼 시작하도록 하지.”

뭘 시작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신유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초운의 분위기를 보자면 단순히 옆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흡혈광마의 특징은 기공을 끌어 올릴 때마다 눈동자가 변한다는 것이네. 붉은색으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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