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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신공-93화 (93/200)

# 93

“잘 생각해 보시오. 지금 흡혈광마 손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유일하게 당 소저뿐이오. 그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말이오!”

진자명은 더욱 언성을 높이며 당소혜를 다그쳤다.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릴 때마다 마치 두려운 듯, 당소혜가 몸을 떠는 것이 보이자 일행들은 저마다 인상을 찌푸렸다.

공도 중요하지만 사람도 중요하지 않은가.

어찌 이런 상황에서 공을 세울 생각만 한단 말인가.

결국 참다못한 제갈연이 무언가 말하기 위해 입을 열려 할 때, 그보다 빠르게 신유강의 입이 먼저 열렸다.

“당신, 입 좀 다물었으면 하는데.”

신유강은 게슴츠레 눈을 뜨며 진자명을 바라봤다.

화가 난 탓에 저도 모르게 기운을 끌어 올리고 있는 것인지, 흉흉하게 빛나는 금빛 안광이 매섭게 진자명을 향했다.

“내가 못할 말을 한 것은 아니오.”

“다물어라, 진자명. 한 번만 더 지껄이면 가만두지 않겠다.”

신유강의 말투는 북풍한설(北風寒雪)보다 차갑기 그지없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어찌 이리도 차가울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진자명은 몸을 움츠렸다.

후기지수들이 자신의 편을 들어 줄 것이라 생각하며 시선을 돌려 보았지만, 대부분 이들이 그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명백히 진자명이 잘못했기 때문이다.

진자명은 아득 이를 갈았다.

“일단 나는 흡혈광마를 찾으러 가겠소. 보아하니 상당히 중상을 입은 것 같으니, 흔적을 쫓다 보면 무언가 나오겠지.”

“그럼 내가 자네와 함께 가도록 하지.”

제갈가후와 모용후가 진자명을 따라 흔적을 쫓기 시작했다. 당소혜의 상태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그들에게 있어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흡혈광마에 대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쯧.”

신유강은 빠르게 사라지는 이들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팔대세가의 이름은 그가 어려서부터 듣고 자랐으니만큼 쟁쟁하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들조차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으며, 당연한 말이지만 신유강은 그들을 동경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보아하니 저들은 쓰레기다.

명문세가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이다.

신유강은 다시 한 번 혀를 차고는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만 떨어져라. 옷 다 버리겠네.”

“으…… 응…….”

퉁명스럽기 그지없는 말투에 당소혜는 더 이상 붙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 언니, 정말로 괜찮나요?”

갑작스레 들려오는 목소리에 신유강은 휘둥그레 눈을 뜨며 시선을 돌렸다.

모든 후기지수들이 흡혈광마의 뒤를 쫓기 위해 갔다고 생각했는데, 제갈연은 아직까지도 그 자리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괘, 괜찮아.”

당소혜는 싱글싱글 웃고 있는 제갈연이 거북한 모습이다.

어정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더러워진 옷을 툭툭 털었다.

기실 아직까지도 그 충격이 가시지 않아 몸이 떨리고 있었지만, 언제까지고 울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다행이에요. 신 대협이 늦지 않아서 말이죠. 엄청 빠르시던데요? 아마 중원 내에서 신 대협의 경공을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진자명이 비명을 알아챔과 동시에 몸을 날린 신유강을 제갈연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순식간에 몇 장씩 거리를 벌려 나가더니, 종국에는 그 모습마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덕분에 이곳을 찾는데 상당한 시간을 지체해야 할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제갈연은 태어나 지금까지 그 정도 수준의 경공을 본 적이 없었다.

초절정에 오른 무인, 즉 천하백대고수 반열에 오른 고수들조차 신유강이 펼친 수준의 경공을 보이지는 못할 것이다.

“에? 유강의 경공이 그렇게 빨라?”

그러나 당소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말투다.

신유강이 강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에 반해 기척을 느끼는 것이나, 경공의 수준은 고작해야 삼류 정도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르셨나요?”

“아……. 응……. 알고 있어.”

당소혜는 당연히 몰랐다며 고개를 끄덕이려 했는데, 돌연한 신유강의 매서운 눈빛 때문인지 잽싸게 말을 바꿨다.

이러나저러나 참으로 숨기는 것이 많은 놈이다.

“걸을 수 있어?”

“으응, 이제 괜찮아.”

신유강의 말투는 다정한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게 느껴졌으나, 당소혜는 만족한 듯 말하며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어느덧 떨리던 몸이 가라앉았다.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이제야 실감되는 것이다.

“그럼 저기 저 소저와 함께 장원에 가 있어라. 나는 잠깐 주위를 둘러보고 들어갈 테니.”

제갈연과 함께 가라는 말에 당소혜는 머뭇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했으나, 차마 싫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신유강의 눈빛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무언가 흔적이라도 찾으려는 듯한 그 눈빛은, 그야말로 살벌하기 짝이 없어 전신이 얼어 버릴 것 같았다.

“그, 그럼 먼저 갈 테니까 조심해야 돼.”

신유강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연이 쪼르르 당소혜의 뒤를 따라 장원으로 향하는 것을 본 신유강은, 길게 한숨을 토해 내며 날카롭게 주위를 둘러봤다.

당소혜가 쓰러져 있던 주변으로 무수히 많은 비도들이 널려 있었다.

비도술이야말로 당소혜의 유일한 특기였으니, 그녀가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던 흔적들인 것이다.

신유강은 묵묵히 그것들을 하나둘 주워 들며 인상을 썼다.

총명하기 짝이 없는 제갈가후라면 능히 이곳을 조사했을 테지만, 흡혈광마의 뒤를 쫓는다는 일념 때문인지 그리 깊게 조사한 것 같지는 않았다.

신유강의 조금 전 찔렸던 곳을 매만졌다.

옷은 흥건하게 피가 젖어 있었다.

당소혜나 다른 이들은 태연하기 짝이 없는 신유강의 태도에 아마 흡혈광마의 피라 착각한 모양이다.

“어떤 놈일까?”

신유강은 실없이 웃음을 지었다.

육평초 때문에 장삼이 죽을 뻔했던 일을 제외하곤 이러한 기분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대수롭지 않게 당소혜를 대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꽤나 정이 들어 버린 모양이다.

“음?”

저벅저벅 주위를 거닐며 흔적을 살피던 신유강은 곧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비도 한 자루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풀 사이에 떨어진 그것을 주워 들자, 다른 비도들과는 달리 독이 묻어 있지 않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열 자루나 되는 비도에 모두 독을 묻히는 것을 깜빡하고 잊은 것이겠지.

나름 어리숙한 당소혜다운 일이긴 하나, 참으로 재수 없게 하필 그 비도가 흡혈광마에게 적중한 모양이다.

날 끝에는 피가 묻어 있다.

깊게 들어가지는 않았는지 많은 양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만약 독이 묻어 있었다면 당소혜는 오늘 목숨을 위협받기는커녕, 생전 처음으로 살인한 날이 되었을 것이다.

“멍청한 것.”

신유강은 쯧쯧 혀를 찼다.

손에 쥐고 있는 비도를 포함하여 열 자루.

그중 아홉 자루에 독이 발려 있었는데, 이 많은 비도를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흡혈광마에게는 운이 좋게, 당소혜에게는 운이 나쁘게 독 없는 비도가 박혔으니 어찌 우습지 않겠는가.

신유강은 다시금 시선을 돌려 조금 전 흡혈광마가 처박혔던 곳으로 다가섰다.

벽이 무너질 정도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하게 도망쳤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는 신유강의 핏자국이 있었다.

“…….”

신유강을 그것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벽과 신유강이 있던 곳과의 거리는 상당하다. 아무리 팔이 긴 인간이 손을 뻗는다 해도 닿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배를 꿰뚫렸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 사람이 더 있다는 소리군.”

진소소나 청랑 같은 기척에 민감한 이들이라면 충분히 알아냈을 법도 했지만, 신유강은 아직까지 기척을 느끼는 것이 미숙했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쓰러진 흡혈광마가 다가와 주먹을 휘둘렀던 것이라 생각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면 우습지도 않은 일이다.

벽이 무너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다.

내공 또한 모조리 역류했을 테니 내외상이 상당히 심각했을 것은 분명하다. 그런 상황에 그런 매서운 한 수를 보인다는 것은, 적어도 초절정 고수 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흡혈광마의 행보는 결코 초절정 고수라 할 수 없다.

그 정도였다면 삼류나 이류 무인들을 노리지 않고, 일류 또는 절정에 오른 이들을 노렸을 테니 말이다.

신유강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안 그래도 분별이 어려운 흡혈광마인데 조력자까지 있으니 쉽게 잡을 수 없을 터다.

그러나 그가 웃은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신유강은 눈앞에 있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안개와 그림자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무언가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허름하기 짝이 없는 책 한 권.

꽤나 낡아 빠져 툭 하고 건든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만 같은 책이다.

신유강은 그것을 향해 다가섰다.

떨어질 당시의 충격 때문인지 종이가 대부분 조각이 되어 날아갔으나, 책의 제목만큼은 선명하게 신유강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흡혈마공…….”

신유강은 천천히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디선가 보았던 것 같은 책.

그러나 그 제목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다.

의아한 마음에 그것을 집어 들자 곧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스스스.

책의 내용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백지만 남게 된 것이다.

“…….”

신유강은 이것을 본 적이 있었다.

회귀 당시 진소소가 궁금하다며 보여 달라고 했던 책, 그러나 내용은 물론 제목까지 쓰여 있지 않던 기이한 책인지라, 대수롭지 않게 방 한구석에 던져 놓았던 바로 그것이었다.

“어떻게 이게……?”

지금까지 회귀를 하면서 기연고서점의 책을 가지고 나온 적이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다시금 고서점으로 돌아갔다.

생각 없이 손을 뻗어 책을 꺼냈을 때, 같은 책만 몇번이고 꺼낸 적도 있으니 모를 리가 없는 사실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왜 이 자리에 있단 말인가?

바스락!

힘을 너무 주었던 것인가?

아니면 그 역할을 다했음인가?

낡아 빠진 책은 이내 가루가 되어 신유강의 손에서 부서져 흩어졌다.

신유강은 머리를 긁적였다.

“사라지지 않았던가?”

어이가 없어 실소부터 나왔다.

결코 있을 리 없는 일이 눈앞에서 일어나자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만약 기연고서점에서 가지고 나온 비급이 사라지지 않고 세상에 흘러 들어갔다면?

단순히 웃는 것으로 끝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신유강은 있을 수 없는 생각이라 하며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다른 무공에는 관심이 없었고 읽은 장소는 자신의 처소, 혹은 당가에서 버려 놓은 그 허름한 폐가다.

그러나 몇 번이고 다시 가 보았음에도 비급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조금 전 부서진 흡혈마공이라는 비급이 상당히 특수하다는 말이 된다.

신유강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등을 돌렸다.

일이 어찌 되었든 간에 지금 생각해 보았자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저 비급을 누가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답이 나왔다.

“빌어먹을 자식들…….”

신유강은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객잔을 향해 걸었다.

* * *

“괘, 괜찮으세요? 문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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