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94화 (94/200)

# 94

“쿨럭! 괘, 괜찮고말고……. 이 정도로는 죽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라.”

백호영준과 호야는 인적이 없는 길을 타고 움직이고 있었다.

신유강의 장력에 당한 상처가 깊은 것인지, 백호영준의 안색은 파리하기 그지없다.

호야가 제때 오지 않았다면 필시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객잔으로는 가면 안 된다. 이대로 성도를 빠져나가 새외로 가자꾸나.”

흡혈마공을 익힌 뒤부터 지금까지, 두 사람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내공을 빨았다.

무공을 익힌 지 고작해야 두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나 그 내공이 벌서 이 갑자에 육박하니,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였는지 감도 오지 않을 정도다.

“머…… 먼저 운기를 해서 당 아가씨의 내공을 문주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는 거 아시잖아요.”

“그, 그렇긴 하지…….”

백호영준은 쿨럭하며 각혈을 했다.

당소혜의 내공은 지금까지 취한 그 어떤 이들보다 대단한 양이다.

일 갑자가 넘는 어마어마한 그것이 단전에서 흡수되지 않고 미친 듯이 날뛰고 있으니, 백호영준의 몸이 쉬이 회복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너, 너는 괜찮으냐? 시…… 신유강, 그놈의 내공을 흡수하지 않았더냐?”

“흡수는 커녕 되려 얻어맞았어요. 갑자기 제 내공이 역류하는 바람에 저도 죽을 뻔했구요.”

그 말에 백호영준은 식은땀을 흘렸다.

신유강이 권룡이라는 사실은 불과 얼마 전에 알게 되었지만, 막상 붙는다면 결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 흡혈마공의 힘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이 갑자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내공은 백호영준에게 그런 확신을 가지게 해 준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하기 그지없다.

고작 일 수에 나가떨어져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

공격에 성공했던 호야마저 저리 말하니, 신유강이 얼마나 대단한 무예를 익혔는지 이번에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다.

“당소혜를 노린 게 잘못이었어요. 그냥 진소소를 노렸어야 했어요.”

“쿨럭! 무슨 소리를……. 진소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 그 때문에 당소혜를 죽여 흔들어 놓으려 했던 것 아니냐.”

또 한 차례 각혈을 하며 입을 연 백호영준이 이를 갈았다.

이번 당소혜를 습격한 것은 다름 아닌 진소소를 노리기 위한 발판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강한 여인이라 하지만,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당소혜가 죽는다면 자연스레 흔들릴 테고, 그 틈을 이용해 그녀의 내공과 몸을 취하려 했다.

신유강만 오지 않았다면 그의 계획은 성공했을지도 몰랐다.

뿌득!

백호영준은 울화통이 터진다는 듯 이를 갈아붙였다.

그때 어딘가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발견했느냐?”

“이쪽은 조용합니다. 아무래도 다른 쪽으로 향한 것 같습니다만…….”

흡혈광마를 찾기 위해 꽤나 많은 무인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곳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자들이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백호영준과 호야는 숨을 죽였다.

“당소혜 아가씨를 노린 것은 바로 우리 당가를 모독한 일이다. 반드시 놈들을 잡아 열배, 백배로 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예!”

대답을 하는 당가 무인들의 눈빛이 매섭게 타올랐다.

사천에서 당가의 위세는 그야말로 무소불위(無所不爲)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이 사천 바닥을 몇 백 년 전부터 지켜 왔으니만큼, 가히 사천의 황제라 해도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정도다.

흡혈광마는 그런 곳의 금지옥엽을 건드린 것이다.

당가의 무사들은 당장이라도 흡혈광마를 붙잡아,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발길 것 같은 흉흉한 기세가 가득하다.

백호영준과 호야는 숨을 죽이며 침을 삼켰다.

“먼저…… 몸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에요.”

작게 속삭이는 호야의 말에 백호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있다간 사천성을 벗어나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 *

“흐음…….”

기연객잔 후원에 있는 방으로 들어선 신유강은 텅 비어 있는 그곳을 바라보며 신음을 흘렸다.

하긴 아무리 안개가 끼어 있었다 하더라도 걸릴 확률이 있는 이상 객잔으로 돌아오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방 안은 깔끔하기 그지없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두 흡혈광마가 살고 있던 곳이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신유강은, 안으로 들어옴과 동시에 훅 하고 퍼지는 피 냄새를 맡았다.

방 한구석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는 봇짐.

그것을 풀어 보니 시뻘건 피가 묻은 장삼 몇 벌이 드러났다.

피 묻은 옷을 빨려면 인적이 없는 곳으로 가야 하니만큼, 쉽사리 처리하지 못한 모양이다.

“머리 좋군.”

등하불명(燈下不明)이라 했다.

야밤에 빨래를 하기 위해 객잔을 나섰다면 다른 점소이들이 그것을 눈치챌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옷을 방 안에 놓아 두고 나무를 할 때마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 빤다면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터다.

백호영준이 아닌 호야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라는 것을, 신유강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백호영준은 영악하지 못하다.

그러나 호야는 어린아이치고 상당히 머리가 좋아 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과거의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낀 것이 바로 그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놈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니 괘씸하기 그지없다.

지부작족(知斧斫足)이라 했던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한 차례 더 방 안을 꼼꼼하게 살핀 신유강은 더 이상 별다른 것들이 나오지 않자 길게 한숨을 내쉬며 거리로 나섰다.

곳곳에서 횃불을 들고 움직이는 수많은 무인들이 보였다.

아마도 진소소가 당가에 전서를 날렸을 테고, 그 덕분에 사천당가 쪽에서 총력(總力)을 기울여 흡혈광마를 찾으려 하는 것일 터다.

“여기 있었군. 그래, 당 소저는 잘 보내셨소?”

생각에 잠긴 채 거리를 걷고 있던 신유강을 발견한 진자명과 그 일행들이 돌연 말을 걸어왔다. 흡혈광마의 뒤를 쫓아갔던 그들이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모양이다.

“일단 내 장원으로 보냈소. 그보다 그쪽은 어찌 되었소?”

“여기저기 흔적이 남겨져 있기는 한데, 모두 허탕입니다.”

제갈가후가 면목 없다는 듯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흡혈광마는 마치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며 돌아다녔다.

그 덕분에 추격은 고사하고, 괜한 힘만 뺀 셈이 되었다.

“영리한 놈이로군.”

“생각보다 더 영리합니다. 하하, 설마 이 제갈가후의 눈을 속일 줄이야.”

제갈세가의 특성상, 상대를 추적하는 법 또한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완벽하게 놓쳐 버렸다.

꽤나 어이없는 일이기에 제갈가후는 연신 면목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데…… 무언가 알아내기라도 하신 듯한 표정입니다.”

눈치 빠른 제갈가후의 한마디에 진자명의 시선이 휙 하고 돌아갔다.

설마하니 당소혜가 무언가를 떠올리고 그것을 이야기해 준 것은 아닌가 했기 때문이다.

“누구인지 짐작은 했소.”

“당 소저는 분명 아무것도 못 봤다 했는데, 자네는 꽤 쉽게 이야기를 하는군. 그게 사실인가?”

“믿든 안 믿든 그건 댁의 자유요.”

신유강은 진자명의 날카로운 시선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개가 짖는다 하여 신경을 곤두세울 만큼 속이 좁지 않은 탓이다.

“당장 말해 주시오! 그게 누구요?”

하지만 진자명이 당장이라도 입을 열라 압박해 오니, 오히려 말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신유강은 굳게 입을 다물어 버렸다.

속이 좁고 넓고를 떠나 진자명은 정말이지 주는 것 없이 얄미운 인물이었다.

“당신들이 알아서 좋을 것은 없으니, 당 가주님께 직접 이야기하겠소. 이것으로 우리 모임은 끝이오.”

“이놈! 장난을 치는 것이냐? 흡혈광마를 잡기 위해 공들인 시간이 얼마인데 이제 와서 포기를 하라고?”

“당신이 공들인 시간 따위 나와는 상관없소만.”

삐딱한 신유강의 말에 진자명은 울화통이 터진 듯했다.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으로 쏘아보며 아득바득 이를 갈고 있는 꼴이, 지금 당장이라도 칼을 뽑고 덤빌 것 같은 기세다.

“진 소협, 괜한 분란을 만들지 맙시다. 사실 이 일에 우리는 관계가 없지 않소. 당 소저가 당할 뻔했으니, 응당 당가에서 처리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제갈가후는 어떻게 해서든 흡혈광마를 잡으려 하는 진자명에게 진저리가 쳐지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장차 무림을 이끌어 갈 후기지수로서 젊었을 때부터 그 공을 세우려 하는 것은 잘 알겠지만, 당소혜가 당한 시점부터 이 일은 이미 그들의 손을 떠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것을 모르는 이는 진자명 혼자뿐인 듯했다.

“웃기는 소리! 당소혜가 죽지 않았으니 괜찮겠지. 그보다 흡혈광마를 찾는 게 시급하다는 것을 왜 모르나. 기껏 잡을 수 있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넘겨주라는 소리인가!”

그러나 진자명은 결코 안 된다는 듯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기천검 진자명이라 불리며 온화하면서도 대협의 풍모를 보여 주던 그가, 사천에 들어오면서 마치 뒷골목 파락호와 같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후기지수들 중 최강이라 불리던 명예를 권룡 신유강에게 빼앗겼으며, 객잔에 있던 모든 사람들 앞에서 진소소에게 패배했으니,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뭔가 큰 공이 필요한 것이다.

진자명은 결코 굽힐 수 없다는 듯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 순간!

퍼걱!

“어억!”

진자명은 돌연 안면에 극심한 충격을 느끼며 몸을 휘청였다.

누가 때렸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느새 다가온 신유강의 주먹이다.

“쓰레기보다 못한 놈 같으니라고……. 개도 적당히 짖어야 귀여운 맛이 있는 것이다.”

신유강은 비틀거리며 한 발 물러선 진자명을 매섭게 쏘아봤다.

하북진가, 그것도 진소소를 괴롭혔던 자 중 한 명이라는 점에서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껄끄럽기 그지없는 놈이다.

지금까지 꾹 참은 이유는 괜한 분란을 만들어 하북진가와 악연이라도 맺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내뱉은 말은 도무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한 말로는 들리지 않았다.

죽지 않았으니 괜찮겠지?

고작해야 무림행을 하여 이름을 떨치고 싶다는 생각 하나 때문에, 다른 이들 따위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는 식이지 않은가.

신유강은 바득바득 이를 갈며 진자명을 향해 다가섰다.

제갈가후는 물론 모용후마저 말리지 않는다.

특히 가장 뒤늦게 합류했던 당백문은 당장이라도 찢어죽일 듯한 시선으로 진자명을 쏘아봤는데. 신유강이 먼저 나선 탓에 차마 손을 쓰지는 못한 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놈!”

스릉-!

얻어맞은 진자명이 다가오는 신유강을 향해 빠르게 발검했다.

완벽히 사람을 죽이기 위한 살기(殺氣)를 머금은 그 공격은, 피하지 않는다면 깔끔하게 목을 가를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진자명의 공격은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그 자리에 있어야 했던 신유강의 모습이 어느덧 뒤로 돌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빠르다?

그러한 말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미처 몸이 반응하기도 전에 신유강의 권이 복부를 파고들었다.

퍼억!

“커억!”

진자명은 끌어 올렸던 내공이 순식간에 역류하는 것을 느끼며, 몰려드는 극심한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듯, 신유강은 차갑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다시 한 번 주먹을 휘둘렀다.

퍽퍽!

“컥!”

단순히 주먹을 쥐고 휘두르는 것밖에 보이지 않는 공격.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