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100화 (100/200)

# 100

“아, 누님이 저를 쫓아오신 건가요? 하하하! 이거 큰일 났네요.”

호야는 진소소를 앞에 두고도 여유가 넘쳤다.

갓 흡수한 내공이 몸 안에서 날뛰고 있음이 분명한 상황에 저리 여유를 보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소소의 실력이라면 지금 당장 호야를 죽이는 것 또한 어렵지 않은 일.

우웅!

그녀의 우수에 강렬한 기운이 맺혔다. 이대로 일 장을 쏟아 내기만 한다면 호야의 몸은 걸레짝이 되어 널브러질 것이 분명했다.

“조심하는 게 좋아요 누님.”

“뭐지?”

“지금까지 입 다물고 있었는데, 사람들을 죽이다 보니 때때로 귀한 물건들이 손에 들어올 때가 있거든요.”

호야는 천진난만한 미소와 함께 무언가를 진소소에게 던졌다.

그것은 둥그런 무언가다.

‘연막인가?’

생각해 보았으나 그러한 것은 아닌 느낌이다. 그러나 호야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리 평범한 물건 같지는 않았기에, 진소소는 재빠르게 그것을 향해 장력을 내쳤다.

무엇인지는 모르나 다가오기 전에 부술 생각이었다.

그러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다.

콰아앙!

* * *

산속 어느 한 곳에서 율초언과 신유강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주위에 다른 적호대원들도 있었지만, 칼을 겨누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나서지 않을 모양이다.

신유강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물었다.

“무슨 생각이지?”

“무엇을 말인가?”

“이상하잖아. 당신의 목적은 흡혈광마다. 그런데 그 둘이 도망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쫓아가지 않는다는 게 말이 돼? 명령이라면 죽는 시늉도 하는 놈들이?”

삐딱하기 그지없는 말투에 율초언은 웃었다.

확실히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이라 여길 것이다. 그러나 율초언의 입장에선 흡혈광마 따위야 어떻게 되든 아무래도 좋았다.

기실 썩 내키지 않았던 임무였고, 설령 실패했다 해도 정파의 방해가 들어왔다 말한다면 부교주조차 뭐라 하지 못할 것이다.

이미 흡혈광마에 대한 것은 율초언에게 있어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눈앞에 있는 신유강이 더욱 흥미를 끌었다.

고작해야 수개월 만에 이 정도 무공을 익힌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더욱이 소동이 사천을 벗어난 것과 신유강이 사천에서 사라진 것은 동일한 시기.

혹자는 폐관을 했다 여길 수도 있을 테지만, 신유강이 사라진 직후부터 계속해서 장원을 관찰하고 있었던 율초언은 그러한 것이 아님을 안다.

더욱이 소동이 마교에 입성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몇 개월 뒤, 신유강이 돌아오기 무섭게 마존의 명이 떨어졌다.

신유강을 감시하라.

율초언은 바보가 아니다.

누구보다 뛰어나니 적호대 대주라는 직책을 맡은 것이다. 현재 그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있었고, 그것은 확신에 가까웠다.

“천하에 명성이 자자한 소동의 실력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버릴 수야 없지.”

그 말에 신유강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곧 신색을 고치며 웃었다.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니 과연 율초언이 확신한 대로였다.

“오너라, 지난번과는 다르게 진심으로 그대를 대하도록 하지.”

율초언은 한껏 기세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우우웅!

적호대 대주라는 직책은 허명이 아니라는 듯, 대기를 울리는 기세가 지금까지 만난 이들과 명백히 다르다.

“저기다!”

그때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흡혈광마와 적호대를 쫓기 위해 흩어졌던 이들이 신유강과 율초언을 발견하고 다급하게 달려온 것이다.

당장이라도 이를 갈며 율초언을 향해 달려들 것 같았던 무사들은, 신유강과 율초언이 대치한 모습을 보고는 짐짓 굳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생사결이다.

적호대 대주와 권룡 신유강이 생사결을 벌이려 하는 것이다.

어느새 다가온 이들이 율초언의 기세에 겁을 먹었는지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그 순간, 적호대원들이 슥슥 움직이며 정파 무인들이 판에 끼어들려 하는 것을 막아섰다.

어느새 당초운과 윤환, 그리고 옥진마저 도착했지만, 함부로 타인의 생사결에 끼어들 수는 없어 조용히 상황을 지켜볼 따름이었다.

“와라.”

먼저 움직인 것은 신유강이다.

선선운현무의 움직임으로 부드럽게 일보를 내딛었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속도로 거리를 좁힌 것은 물론, 매섭게 휘둘러진 권은 바위마저 쪼갤 듯 묵직했다.

퍽!

“큭!”

단순히 그것을 막아 내려 했던 율초언은 돌연 내공이 흩어지는 것을 느끼며, 신유강의 힘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슨 사술인가!?’

그러나 놀라고 있을 새가 없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약간의 거리가 벌어지자, 그의 검이 그야말로 전광석화(電光石火)와도 같이 번뜩였다.

깔끔하기 그지없는 검 놀림이다.

보는 이들의 전신을 오싹하게 만들 만큼 대단하다.

그러나 그것은 여지없이 허공을 갈랐다.

눈앞에 있어야 할 신유강의 신형이 사라져 있었다.

율초언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이 상황에도 침착하게 마음을 다잡으며 힐끗 시선을 돌렸다.

퍼억!

율초언은 잽싸게 각을 뻗어 왼편으로 모습을 드러낸 신유강을 걷어찼다. 동시에 몸을 틀어 검기를 사방으로 쏘아 내니, 날카로운 기세를 머금은 검기가 신유강의 전신을 조각조각 도륙할 듯 날아들었다.

그러나 상황이 참으로 기이하게 돌아갔다.

캉!

신유강이 손을 뻗어 그 검기들을 쳐 낸 것이다.

맨손이 틀림없으나, 검기들은 피육을 잘라 내지 못하고 그대로 흩어져 사라졌다.

“뭐!?”

“대, 대단하군…….”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의 탄성이 들려왔다.

율초언의 공세는 그야말로 혀를 내두를 만큼 대단하다. 날카롭고 군더더기가 없어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당초운과 윤환, 그리고 옥진마저 식은땀을 흘릴 정도다.

과연 천하에 다시없을 인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신유강은 더욱 대단하다.

몸놀림 하나하나가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권을 뻗어 지르는 동작, 내딛는 걸음, 공격을 막아 내거나 반격하는 것에도, 마치 신선이 움직이는 것처럼 부드럽기 짝이 없다.

바라보고 있는 모두가 둘의 공방에 빠져들어 간다.

두 사람의 공방은 더욱 치열해졌다. 고수들 간의 싸움에 익숙한 이들조차 그 광경에 넋을 잃을 정도였다.

쿵!

신유강은 진각을 밟았다.

순간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땅이 크게 울렁이더니, 균형을 잡고 있던 율초언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 신유강이 주먹에 한껏 기세를 머금고 후려쳤다.

태산마저 부술 수 있을 것 같은 극강의 힘이다.

회(回)의 힘을 머금고 있는 탓에, 일단 제대로 맞기만 한다면 그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놈!”

율초언도 그 매서운 기세를 느끼고 있는 것인지 극성의 내력을 끌어 올려 맞섰다. 검강이 맺혀 있는 검은 꿰뚫을 수 없는 것이 없다는 듯 파고들어 신유강의 심장을 노렸다.

콰아앙!

어마어마한 폭음이 울렸다.

회공(回功)과 강기가 부딪히며 생긴 그 파급력은 대단하다. 그들이 서 있던 주변으로 일 장 정도가 초토화되며 자욱한 흙먼지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그 속에서 걸레짝이 되어 널브러진 율초언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떨리는 두 손으로 검을 쥐고 있었다.

조금 전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강기가 순식간에 역류하며 되돌아왔다.

재빠르게 수습하지 않았다면 서 있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이미 속은 만신창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방금 자신의 온몸을 진탕시킨 그 권력은, 마존조차 흉내 내지 못할 만큼 가공할 공세다.

어째서 마존이 신유강을 감시하라고 말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이놈은 위험하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지금도 보아라.

그 정도 강기와 강기가 부딪혔음에도 불구하고 신유강은 태연하게 선 채, 오연히 그를 내려다보며 매서운 눈빛을 뿌리고 있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절대자의 기세다.

마치 마존을 보는 것처럼 두려웠다.

율초언은 파르르 몸을 떨었다.

움켜쥐고 있는 검을 뻗어 신유강을 죽이려 했으나, 더 이상 힘을 줄 수 없어 털썩하며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일순 장내에는 조용한 정적이 감돌았다.

다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그러는 사이 적호대원들이 눈치를 보다 재빠르게 율초언을 업고 사라지자, 한 사람이 번뜩 정신을 차렸는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궈, 권룡이 적호대주를…….”

“이, 이, 이겼어!?”

“우와아아아!”

사람들은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적호대주가 누구던가?

저승사자라 불리는 적호대를 이끌고 있으며, 천하백대고수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절대강자 중 한 명이다.

그가 이십 년 안에 칠제(七帝)의 위치까지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고수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 신유강이 그를 꺾은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인 셈이다.

“대단한 친구로군…….”

“그, 그러게 말일세…….”

모용후를 비롯한 후기지수들은 더듬거리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번 진자명을 손봐 줄 당시, 고작 한 수만에 그를 제압할 수 있었던 이유를 짐작한 것이다.

애당초 천하백대고수에 들 만한 실력이니, 고작 후기지수라 불리는 진자명이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새로운 천하백대고수의 등장인가…….”

제갈가후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신유강을 바라봤다.

같은 후기지수라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신위, 더욱이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적호대주를 꺾었으니 그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갈 것이다.

무림에 새로운 바람이 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어디선가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콰아앙!

마치 하늘에서 벼락이라도 치듯 엄청난 폭음이 그들의 귀를 자극했다.

모든 이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소리가 난 쪽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활활 불길이 치솟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신유강의 얼굴이 돌연 변했다.

그쪽은 진소소가 백호영준을 쫓아간 방향이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마음 한편이 아리는 느낌과 함께, 심장이 거세게 요동쳤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든 것이다.

신유강은 재빠르게 몸을 날렸다.

모든 기운을 다리로 모아 단숨에 도약하니, 마치 사람이 아닌 것처럼 순식간에 허공을 나아갔다. 보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경악성을 터트릴 정도로 엄청난 경공술이다.

“쪼, 쫓아갑시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흡혈광마를 쫓아왔다.

적호대도 물러갔으니 폭음이 들려온 쪽에 분명 목표라 할 수 있는 흡혈광마가 있을 터.

지금까지 율초언과 신유강의 싸움 때문에 그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당초운은, 곧 매섭게 안광을 빛내며 신유강의 뒤를 쫓았다.

반면 신유강은 진소소가 있을 곳으로 몸을 날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회귀신공을 익힌 뒤로 이러한 적이 있었던가?

아마도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이건 틀림없이 신유강의 마음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불안하니 신공의 기운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그러나 신유강은 침착함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그야말로 처참하기 짝이 없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전쟁터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주위는 온통 난리가 났고, 익숙한 옷을 입은 여인이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진소소-!”

신유강의 외침이 산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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