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107화 (107/200)

# 107

“요즘 명문세가의 사람들은 남의 집 가구를 함부로 부수어도 되는 겁니까? 이거 꽤 비쌉니다.”

“진정 나를 기만하려 하는가?”

“먼저 시비를 걸어온 것은 제갈 총사이지 제가 아닙니다.”

“시비라니? 내가 언제 자네에게 시비를 걸었단 말인가!”

제갈백헌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그에게 진소소의 일은 시비라고 할 일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팔대세가, 그것도 ‘그녀’의 여식이라면 응당 본래 있던 장소로 돌아가야 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설마 소소의 일 때문에 그런 것인가?”

“글쎄요……?”

“정말이지 불쾌하기 짝이 없군. 자네 그건 아는가? 나는 이미 하북진가의 연통을 넣었다네. 머지않아 그곳에서 사람들이 소소를 찾으러 내려오겠지. 그때도 그런 태도로 일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닮은 사람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명문세가는 닮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남을 자기 자식이라 우길 수도 있는 겁니까?”

“하, 말이 통하지 않는군. 이번 일은 하북진가뿐 아니라 팽가 쪽에서도 움직일 것일세. 팔대세가 두 곳을 상대로 그렇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하북진가와 하북팽가는 이웃사촌과도 같은 관계다.

도로 유명한 하북팽가의 힘은 가히 진가와 견주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대단하다. 팔대세가 중 세 손가락에 들어간다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웃음을 짓고 있던 신유강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하북진가라면 이해를 하겠지만 팽가라니?

그쪽이 무슨 연유로 움직인단 말인가.

“전혀 이해가 안 되나 보군. 하북팽가의 첫째 장남이, 소소의 약혼자일세. 지금까지 소식이 없어서 파기가 될 뻔했으나, 다시 소소가 나타났으니 응당 팽가에서도 움직이겠지.”

제갈백헌의 말에 신유강은 게슴츠레 눈을 떴다.

지금까지 보여 주었던 유유자적했던 느낌과는 다르게, 전신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한기가 서린 눈빛이다. 그것과 마주한 제갈백헌은 저도 모르게 파르르 몸을 떨었으며, 절로 넘어가는 마른침이 그가 얼마나 긴장을 하고 있는지 익히 알려 주었다.

“재주가 있다면 어디 한번 데려가 보시오.”

말투마저 달라졌다.

방금 전까지 꼬박꼬박 존대를 하던 것과는 다르게 이젠 반존대를 사용했다. 그것이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제갈백헌은 한숨을 토해 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포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네. 팽가는 물론이며 하북진가까지도 움직인단 말이네. 곧 진자명까지 알게 될 일이니, 당장 이곳으로 쳐들어올 지도 모르겠군. 권룡이라는 이름 하나로 그들 모두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하하, 제 이름 하나가 부족하다면 두 개를 내세우면 될 일이고, 그것도 모자란다면 더 많이 내세우도록 하지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그가 알기론 권룡이라는 별호가 신유강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별호였다. 그런데 마치 다른 것을 내세울 수도 있다는 말에 제갈백헌은 이해가 되지 않는 고개를 모로 꼬았다.

그러나 신유강은 딱히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현 무림에서 권룡이라는 이름이 주는 힘은 참으로 대단했다.

별호라는 것은 그 사람을 대변해 주는 무기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유강에게는 아직 감춰 둔 수가 하나 있었다.

바로 소동이라는 이름이다.

천하의 다시없을 명의.

지금까지 신유강이 치료를 해 준 이들 중엔 관에 연이 있는 이들도 있으며, 팔대세가나 구파조차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이들 또한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소동이 하북진가와 팽가에게 압박을 받는다면? 응당 소동에게 은혜를 입은 이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선 그 만한 대가를 치르기는 했다지만, 소동은 그들에게 있어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쨌든 그런 이들의 도움이 아니더라도, 소동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가 권룡을 능가하니,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이가 없을 것이다.

또한 신유강이 믿고 있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신유강이라는 그림자에 가려 드러나지는 않고 있지만, 진소소와 청랑, 이 둘의 능력은 후기지수라는 이름을 진즉에 뛰어넘었다.

청랑의 경우 암살로만 따지자면 백대고수들의 목마저 취할 정도이니,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은 분명했고, 진소소의 경우 말하면 입만 아프다.

그녀의 무위가 백대고수 반열이라곤 말할 수 없지만, 일파, 혹은 일가의 가주나 문주 급은 된다 할 수 있었다.

이미 절정과 초절정 사이를 엿보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북진가나 혹은 하북팽가가 덤빈다 할지라도, 결코 쉽게 꺾여 나가지 않을 전력인 것이다.

“으음.”

제갈백헌은 신음을 삼키며 차를 들이켰다.

아무래도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신유강은 훨씬 더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 듯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상황에서 저리 당당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네. 조만간 하북진가 사람들과 함께 다시 찾도록 하지.”

신유강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백헌은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거칠게 발을 놀려 그곳을 빠져나갔다.

“못돼 처먹은 놈 같으니라고.”

신유강은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제갈백헌이 진소소를 위한다 말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속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다.

제갈세가는 기실 무공으로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다.

물론 중소 문파들이 가진 무공보다 낫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팔대세가와 비교를 한다면 하늘과 땅 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 천하제일세가, 즉 하북진가와 더욱 긴밀한 사이가 되어 그들의 힘을 등에 업어야 팔대세가에서 밀려 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제갈백헌은 더욱 필사적이었다.

하북팽가의 장남이 진소소와 혼약을 나눈 사이라는 것은 처음 듣는 사실이긴 하지만, 그것이 만약 사실이라 해도 진소소가 집을 나오기 전, 미성숙했을 당시에 정한 일일 것이다.

즉 네다섯 살 무렵이란 거다.

팽가의 장남이 바보가 아닌 이상, 집을 나선 진소소를 지금까지 기다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팽가가 나선다 해도 결코 깊게 관여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저 불쾌한 시선을 보내기만 할 것이 분명했다.

그럼 제갈백헌은 어째서 그렇게 말을 꺼냈는가.

신유강은 대강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로 제갈가후와 진소소를 엮으려는 수작이었다.

제갈백헌 본인의 실력으로는 신유강에게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으니, 하북진가와 하북팽가를 끌어들여 신유강과 싸움을 붙이고, 진소소를 뒤로 빼돌리고 싶은 것이다.

“웃기는 놈이 다 있군.”

다행히 진소소와 다른 이들이 저자거리에 나갔을 때 찾아왔기 망정이지 만약 이 자리에 소소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한바탕 난리가 났을 것이다.

신유강보다, 제갈백헌이나 제갈가후보다 몇 배 이상 똑똑한 여인이니까.

신유강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방을 나섰다.

그는 생각을 정리하며 툇마루를 걸어 정원이 있는 쪽을 향하던 도중, 한 사람이 바위에 걸터앉아 가만히 연못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작디작은 체구, 척 보아도 약관도조차 되지 않았으나, 얼굴에 나 있는 검상은 어려서부터 험난한 생활을 해 왔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었다.

“같이 나간 게 아니었나?”

신유강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연못을 바라보고 있었던 청랑은 놀란 표정조차 짓지 않고 시선을 돌렸다.

무표정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고, 참으로 외로워 보였다.

“그…… 둘 사이에 끼어들기가 조금.”

청랑은 어색한 표정으로 말 했다.

진소소와 당소혜는 무척이나 사이가 좋다.

누가 보면 오누이라고 말을 해도 믿을 정도였으니, 안 그래도 사람을 대하는 게 서툰 청랑이 그 둘 사이에 끼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신유강은 알 것 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흑영과 흑호는?”

“볼일이 있다면서 나갔어요.

진소소와 당소혜까 나간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흑영과 흑호마저 나갔을 줄이야.

볼일이 있다고는 하지만, 필시 제갈백헌이 온 것을 보고 그와 얼굴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 도망을 간 것이 분명했다.

신유강은 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하여튼 마교를 나온 뒤에도 여전히 정파인들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물론 신유강 또한 제갈백헌 때문에 정파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지만 말이다.

“너는 뭐하고 있는 거지?”

“그냥…… 할 일없으니까 연못을 구경하고 있었어요.”

청랑은 멍한 모습이다.

객잔이라도 열려 있었다면 바쁘게 일이라도 했을 테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청랑이 할 일이라곤 가끔씩 신유강에게 차를 가져다주는 것이 전부였다.

때문인지 꽤 지루한 모습이다.

신유강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보통 할 일이 없을 때는 뭘 했었지? 홍화의 밑에 있을 때 말이다.”

“으음…… 무공을 연마했죠.”

“그럼 지금은?”

“……별로, 홍화님 밑에 있을 때는 사실, 저보다 강한 이들이 없었으니까, 제가 이 사람들을 지켜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뒷말은 굳이 듣지 않아도 안다.

이 장원에 있는 이들 중, 수준 낮은 이들은 아무도 없다. 은신술에 대해서는 청랑보다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흑영과 흑호의 검술과 병장기 다루는 능력은, 한참이나 청랑을 능가한다.

진소소나 신유강은 말 할것도 없다.

물론 당소혜가 있기는 하지만, 애초에 그녀는 명문세가의 일원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약해 빠졌으니 논외로 치는 듯하다.

“무림인이라면…….”

“저는 무인이 아니에요. 단지 살기 위해 익히고 있는 것뿐이에요.”

신유강이 무슨 말을 하려하는지 알겠다는 듯, 청랑은 단호하게 그의 말을 잘랐다. 마교에는 어린아이들을 가둬 놓고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생존술과 무공을 익히게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이 험난한 무림에서 최대한 생존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기 위함이다.

그것은 청랑 또한 다르지 않았다.

홍화의 손에 거두어지면서, 살기 위해, 그리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무공을 익혔다. 그러다 우연찮게 기연을 얻게 되어 강해지긴 했지만, 그 대가는 참으로 처참했다.

홍화의 힘을 빌려 찾은 부모가 만나자마자 하루도 되지 않아 의문사를 당하였고, 또한 그녀와 마음을 터놓으려 했던 이들은 대부분 알 수 없는 죽임을 당했다.

무공을 얻는 대신 지불한 값.

그것은 바로 인연의 끈이라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허황된 이야기라 할 수도 있으나, 당시 그러한 말을 들은 적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그녀와 관계된 모든 이들은 좋은 꼴을 겪지 못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다.

유일하게 믿고 따르던 이가 홍화였지만, 몇 년 동안 그녀가 죽음을 당하지 않은 것은, 홍화가 청랑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것도 신유강이라는 자가 등장하면서 어이없이 사라져 버렸지만 말이다.

진소소나 당소혜, 이 장원에 있는 이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녀와 깊게 관계가 되는 그 순간 어찌 될까?

저주와도 같은 무공을 익힌 대가로, 그 인연을 맺은 자들의 생명을, 혹은 청랑과의 인연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 청랑은 그 때문이 쉬이 다른 이들과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청랑은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도 아마 믿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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