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그만큼 충격적인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초절정, 혹은 그것을 넘어선 무인들의 절망 가득한 표정이 결코 잊히지 않을 만큼 생생하게 그의 머릿속에 각이 되었다.
신유강이 이 개꿈이 무엇인지 안다.
한때 진소소에게 들었던 현선자의 무공, 회천공을 펼치는 모습이다. 그것도 죄 없는 무인, 정사마, 세외까지 두루 돌오다니며 개미를 밟아 죽이듯 죽이는 느낌.
신유강은 덜덜덜 몸을 떨었다.
“내가…… 이런 괴물의 무공을 익히고 있단 말인가?”
어째서 이런 꿈을 꾸었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그가 꿈속에서 펼친 회천공의 움직임이 아직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마치 현선자가 신유강에게 회천공을 전수시켜 주려는 것 같았다.
신유강은 마른침을 삼켰다.
“빌어먹을…….”
꿈자리가 사납다.
사납다는 말로도 이 개 같은 기분을 어찌할 수가 없을 정도다. 신유강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씻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피를 뒤집어쓴 느낌이었다.
비록 그것이 땀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씻지 않는다면 이 찝찝한 기분을 결코 지울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른 새벽부터 온몸에 물을 끼얹는 신유강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을 빛내며 숨을 몰아쉬었다. 도대체 현선자는 무엇을 위해 그 많은 목숨을 앗아 갔던 것일까.
생생하기 짝이 없는 그 꿈속에서 나왔던 말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현선자에게는 어떠한 목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무엇일까?
신유강은 신음을 삼키며 등을 돌렸다.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부서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은 신유강은 장원을 나섰다. 다른 이들은 아직까지 깨지 않은 듯했지만,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신유강이 향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과거 기연고서점이 있던 곳이다. 굽이굽이 산길을 타고 움직이고 있는 그는, 대략 한 시진에 걸쳐 기연고서점이 있던 자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보이는 것은 그저 수풀뿐이다.
신유강은 주위에 있는 거대한 바위에 걸터앉았다.
왠지 모르게 뒤숭숭하기 짝이 없다.
“당신이 원했던 것이 무엇이오?”
누구도 그 말에 대답을 할 리가 없지만, 신유강은 현선자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메아리치는 한마디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신유강은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윽고 한 걸음을 내딛고 주먹을 뻗었다.
팡! 하는 거친 소리가 들리며, 선선운현무의 일 초식이 펼쳐졌다. 그러나 영 느낌이 살지 않는다. 꿈에서 보았던 현선자의 무공은 결코 이렇게 약하지 않다.
완벽했고, 깔끔했다.
상대를 집어삼키며 끝장을 낸다.
그것이 바로 현선자가 사용했던 회천공이라는 희대의 마공이다.
파팡!
또다시 그의 거칠게 손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무언가 달랐다.
신유강의 주위로 바람이 요동치며 기운이 거세게 뻗어 나갔다. 끌어 올리려 하지 않았으나, 회귀신공에 기운이 그의 움직임에 절로 반응하여 움직인 것이다.
퍼펑!
한 수를 떨쳐 내자 쏟아져 나간 권풍이 거대한 고목에 구멍을 내며 사라졌다. 바위가 부서지고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퍼펑!
또다시 움직이며 손을 뻗자 이번엔 하늘마저 때려 부술 기세가 발했다.
지축이 크게 흔들리며 그가 딛고 있는 땅이 갈라졌다. 신의 경지에 범접한 무공이라던 마존의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닌 듯 매섭기 짝이 없는 기세다.
그렇다.
여태 회귀신공이라는 것이 단순한 신공(神功)으로, 심법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면, 지금 신유강이 펼치고 있는 것은 완벽한 무공이었다.
더욱이 꿈에서 보았던 현선자의 무공보다 그 파괴력이 더 대단했다. 현선자가 말년에 만든 회귀신공을 기반으로 하였기에 더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았다.
회천공을 연마하고 있는 신유강의 모습은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듯했다.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오로지 움직이는 데만 집중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사뭇 기이하기까지 했다.
표정과 눈빛이 진지하기 짝이 없다.
몸을 움직이며 회귀신공의 힘을 더하더니, 곧 회천공을 응용하는 것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주먹을 내지른 신유강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윽고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내며 발을 뻗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는 그의 신형을, 눈으로 쫓을 수 있는 이는 아마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설령 마존이라는 거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한 시진 신유강이 그 자리에서 춤을 춘 시간이었다. 드디어 그가 숨을 고르며 동작을 멈췄을 때에는 주위가 마치 천재지변(天災地變)이라도 일어난 듯 처참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변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수풀이 무성했던 곳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할 만큼 황량했다.
신유강은 그것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 * *
“그래, 어찌 되었소?”
사천으로 들어선 육평우는 한동안 머물기 위해 빌린 장원에 들어선 뒤, 먼저 사천에 도착해 조사를 하고 있었던 이들을 향해 물었다.
아비의 죽음은 흡혈광마가 저지른 것이라고 이미 무림맹 측에서 연락이 왔다.
복수를 하려면 응당 그에게 해야 함이 마땅하나,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기에 대부분이 반쯤 포기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육평초는 달랐다.
비록 마음에 들지 않는 형이기는 하나, 죽은 것이 아니라면 응당 집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육평우는 짧게 한숨을 쉬며 옆을 바라봤다.
그곳엔 손약란이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내심 그녀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다른 것보다 형의 안위가 문제였다.
“전혀 성과가 없습니다. 혹시 사천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간 것이 아닌지…….”
“그런 것이라면 하오문이나 개방에서 이미 보고를 해 주었겠지. 하나, 그들 또한 아무런 말이 없으니 응당 사천에 있다는 것이 맞지 않겠나?”
“그러합니다만…….”
남자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육평초가 지금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반대로 말해서 화를 입었다는 것과 같다.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하여 모르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육평우는 물론이며 상단의 총관 역시 말이다.
“형님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이들이 누구요?”
“기연객잔의 사람들입니다. 그곳에서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고 합니다. 그 뒤로 종적이 묘연해지셨습니다.”
기연객잔이라는 말에 손약란이 눈을 크게 떴다.
그곳은 과거 천운객잔이 있던 자리이니 만큼,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 설마하니 그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고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들이 무언가를 했을 가능성은?”
“가능성이 완전히 없지는 않습니다만…….”
“그럼 그곳을 조사하도록 하지. 가세.”
“사, 상단주! 그게…….”
육단호의 죽음이 알려지자마자 상단주로 등극을 한 육평우는 인상을 쓰며 자신을 말린 이를 쏘아봤다.
“무슨 일인가? 혹 내가 모르는 일이 더 있는가?”
“그…… 기, 기연객잔 말입니다.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는 곳입니다.”
“명문세가의 것인가?”
“아, 아닙니다.”
“그럼, 고관대작의 것이라도 되는가?”
“그것도 아닙니다.”
육평우는 더욱 얼굴을 찌푸렸다.
사천의 명문세가, 즉 사천당가의 휘하에 있는 것도 아니고, 고관대작이 운영을 하는 곳도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대운상단의 행사를 방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혹, 무림맹이 뒤를 봐준다는 소리를 하려는 것인가?”
육평우의 말에 남자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결국 육평우는 쩌렁쩌렁 소리를 내지르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도대체 무엇인가! 누가 있어 감히 우리 대운상단의 행사를 방해할 수 있단 말이더냐!”
대운상단은 천하의 십대상단이다.
금력으로 따진다 해도 같은 십대상단이 아니라면 상대할 수 있는 이가 없을 정도이며, 가진 바 무력 또한 상당하다.
명문세가나 구파일방, 관이 끼어 있지 않는다면 황제가 남부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혀 뜻하지 않은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그…… 요즘 소문 쟁쟁한 권룡이라는 자를 아십니까?”
“물론 아네. 그자를 모르는 이가 없지 않은가. 고작 약관에 불과하면서 천하백대고수에 한 축, 적호대주를 이겼다지?”
“그렇습니다. 그 권룡이 운영하는 객잔이 바로 기연객잔입니다.”
그 말에 육평우는 물론이며 곁에 있던 손약란 또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권룡이라면 현 무림의 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자다.
결코 함부로 손을 쓸 수 있는 이가 아니란 것이다.
육평우는 인상을 쓰며 혀를 찼다.
“그래도 그자가 명문 출신도 아니고, 구파일방 출신은 더더욱 아닐진대, 무엇이 문제인가?”
“상단주, 아무리 저희 낭인들이 강하다 해도 적호대주를 이기지는 못합니다.”
“그 말은?”
“저희 측 고수를 모조리 끌고 간다 하더라도, 되레 당하기만 할 것입니다.”
“하, 웃기는 소리. 어찌한 사람이 다수를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육평우는 상술에 뛰어난 면모를 보여 주고 있기는 하지만, 무인이 아니라 무공에는 무지하기 그지없었다. 경지의 차이에서 나오는 위력이 얼마나 큰지 전혀 실감을 하지 못하는 듯했다.
남자는 난감한 기색이다.
“조사는 해 보았겠지?”
“그, 그렇습니다.”
“말해 보게.”
육평우가 이번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온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남자는 기연객잔에 대한 모든 것을 조사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육평초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다.
틀림없이 무언가 꺼림칙한 것이 있으리라 판단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썩 내키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손약란을 힐끗 바라보더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이는 올해 스물 셋, 이름은 신유강이라 합니다. 몇 년 전, 천운객잔에서 일을 하던 점소이었지만, 진소소라는 여인을 만난 뒤부터 노점을 열었고, 곧 막대한 부를 쌓았다 합니다.”
노점이라는 말에 육평우가 아미를 좁혔다.
고작 그러한 것으로 얼마나 벌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가장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손약란이었다. 이런 곳에서 신유강의 이름이 왜 나온단 말인가? 그녀가 눈을 크게 뜨며 남자를 바라보았으나, 그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기색으로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현재는 무관 근처에 있는 노른자 땅에 상당히 큰 장원을 소유하고 있으며, 기연객잔을 비롯하여, 기루와 다루, 그리고 상당한 규모의 땅도 가지고 있습니다. 사천십대거부라는 말이 돌고는 있지만, 조금 더 깊게 조사를 해 본 바에 의하면, 이미 중원 전체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대단한 부를 쌓고 있다 합니다.”
“허, 고작해야 점소이였던 녀석이 출세를 했군.”
육평우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손약란을 바라봤다.
천운객잔이라 하면 그녀의 아비가 운영을 했던 곳임을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 시선 때문인지 손약란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또한 권룡이라는 별호로도 유명합니다. 흡혈광마의 사건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적호대주를 제압했고, 기천검 진자명과 쌍검룡 도우겸을 몇 수 만에 꺽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