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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신공-111화 (111/200)

# 111

기천검 진자명을 꺾었다는 말에 육평우는 황당하다는 시선이었다. 기실 적호대주를 이겼다는 점이 더욱 놀라워해야 함이 마땅하나, 그런 손에 닿을 수 없는 존재보다는 하북진가의 기천검 진자명을 꺾은 것이 더욱 와 닿았기 때문이다.

“대단한 놈이로군.”

“그렇습니다.”

대단하다는 말에 남자는 딱히 틀린 말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권룡이라는 존재는 구파나 명문세가, 심지어 중소 문파에 속하지 않은 낭인들에겐 우상이나 다름이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좋네, 그를 만나 봐야겠어. 그의 장원으로 가도록 하지.”

“……아, 알겠습니다.”

남자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손님?”

아무도 모르게 실컷 연무를 하고 들어온 신유강은 점심을 먹고 있을 무렵 들려온 말에 아미를 찌푸렸다.

“또 제갈백헌인가?”

물론 권룡이라는 이름 때문에,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대문 앞을 서성이거나 두들겼지만, 요즘 대놓고 손님을 자처하며 찾아오는 이는 오로지 제갈백헌뿐이었다.

신유강은 불쾌한 시선을 보내며 젓가락을 내렸다.

“그놈은 아니다.”

“그럼 누굽니까?”

신유강의 질문에 모든 이들이 두 눈빛을 빛내며 흑영을 바라봤다. 다들 이 만찬 시간을 방해한 이가 누구인지 굉장히 궁금하다는 눈빛이다.

그리고 그 순간, 흑영이 씩 웃음을 지었다.

“올게 왔지. 돈줄이 말이다.”

“아, 결국 왔습니까?”

“하하하, 그래, 결국 왔다.”

애초에 대운상단의 일은 신유강과 흑영, 그리고 어렴풋이 알고 있는 당소혜가 전부였다. 그러나 당소혜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한마디를 들었기 때문인지라, 그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소소는 탁 하고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죠?”

“육평초 그놈이 빌린 돈을 받을 때가 온 거지.”

“그 객잔을 사려다 어디론가 사라진 남자 말인가요?”

진소소의 물음에 신유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당시 그에게 돈을 빌려 주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으니, 진소소는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돈을 빌려 준 적이 있던가요?”

“아, 그러고 보니 저도 들은 적 있어요 언니, 유강이 분명 육평초에게 돈을 빌려 주었다고 하던데? 이십 냥이었나?”

이십 냥이라는 말에 진소소는 뭔가 찝찝하다는 눈치였다. 그러나 생각이 날 듯하면서도 나지 않으니, 결국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빌려 주었으면 응당 갚으라고 해야죠. 점심은 다시 차려 줄 테니 가 봐요.”

진소소가 납득을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신유강과 흑영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육평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손님이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차 한잔 내놓지 않는 것이 이 장원의 특색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청랑이 시녀 역할을 해야 하는데, 보다시피 함께 밥을 먹고 있으니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객실에 앉아 있던 육평우는 인상을 썼다.

권룡이니 뭐니 해도, 결국 못 배운 이들은 다 이렇게 티를 낸다고 생각을 하는 눈치다.

그것은 손약란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남에서 살면서 상당히 조숙한 예의범절을 배운 그녀는 내심 지금 이 상황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 보다 더욱 그녀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 것은, 정말로 신유강이 이 장원의 주인이냐는 점이었다.

하남에 있는 그녀의 집보다, 대운상단의 본가보다 더 넓고 웅장하며 아름답기 그지없다.

고작 몇 천 냥 쏟아붓는다 해서 이렇게 될 리가 없으니, 이곳에 주인이라는 신유강의 얼굴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동명이인(同名異人)일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을 테지만, 그러한 생각은 애초부터 깡그리 지워 버렸다. 천운객잔 운운할 때부터, 그녀가 알고 있는 신유강과 지금 이곳 주인인 신유강이 동일인물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조마조마하고 있을 무렵, 끽 하는 소리와 함께 객실에 문이 열렸다.

들어온 것은 총관이라 자신을 소개했던 흑영과, 준수하기 짝이 없는 신유강의 모습이었다.

손약란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당과점에서 보았던 그 남자이지 않은가!

그녀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으나, 곁에 있는 육평우 때문인지 쥐죽은 듯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다만 그녀의 심장이 더욱 크게 뛰었다.

만약 곁에 있는 육평우가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면, 충분히 들렸을 만큼 말이다.

그러나 신유강은 손약란을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다.

“나를 찾으셨다 들었소. 내가 이 장원의 주인인 신유강이라 하오.”

신유강의 말투는 처음부터 강경했다.

보통 위아래가 명백할 때에는 존대를 쓰며 자신을 낮추는 것이 보통일 것이지만, 지금 신유강의 행동은 확연하게 대운상단을 자신보다 아래로 보고 있었다.

육평우는 그러한 사실을 눈치챘는지 아미를 찌푸렸다.

“대운상단의 육평우라 하오.”

“상단주의 일은 안타깝기 그지없소. 미리 알았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테지만…… 나도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육평우는 아득 이를 갈았다.

그의 아버지를 죽인 흡혈광마가 머물고 있던 곳이 바로 기연객잔이라는 곳이다. 또한 육평초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곳도 기연객잔이다.

물론 중간에 전장에서 돈을 챙겨 나가기는 했으나, 어쨌든 그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육평초의 모습을 보았던 곳은 기연객잔이다.

어쨌든 둘에 관련된 일 모두 기연객잔과 연관되어 있으니, 신유강의 말이 육평우에게 기분 좋게 들릴 리가 없었다.

“그래, 어쩐 일로 이곳까지 찾아오셨소. 죽은 상단주의 일은 우리가 책임을 질 필요는 없을 테고…….”

아득!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흡혈광마의 일 때문에 진소소는 한동안 객잔 문을 닫았으며, 결국 신유강이 정파인들을 이끌고 진두지휘를 한 덕분에, 흡혈광마의 시신 한 구를 찾았기 때문이다.

물론 죽인 것은 신유강이 아니었지만, 분노를 풀 곳을 찾고 있던 이들의 울분 정도는 충분히 가실 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울컥한 육평초가 무언가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려고 할 그때, 신유강은 그제야 생각이라도 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돈을 갚으러 오셨군?”

“도, 돈?”

“혹 못 들으셨소? 육평초 그자가 나에게 금 이십만 냥을 꾸어 갔소.”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것이오. 형님이 당신에게 돈을 꿀 리가 없지 않소.”

갑작스러운 말에 육평우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금 이십만 냥이라니?

최근 대운상단에 이런저런 악재가 겹친 탓에, 그 정도 금액을 토해 낸다면 크게 휘청거릴 것이 자명했다.

더욱이 육평초가 그러한 큰돈을 꿀 필요가 무에 있던가? 당시 사천의 땅값을 생각하면, 가지고 간 돈만으로도 충분히 무관이 지어질 땅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로 모르셨소? 나는 당신이 대운상단에서 왔다고 하여 그것을 갚으러 온 줄 알았는데…….”

신유강은 히죽 웃음을 지으며 흑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흑영이 품에서 주섬주섬 각서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을 바라보니 틀림없이 육평초의 지장이 찍힌 각서였다.

“이, 이, 이 무슨…….”

육평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뚫어지게 그것을 바라봤다. 오랫동안 상계에 몸을 담고 있었으니 만큼, 위조인지 아닌지 정도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위조한 것이 아니다.

글씨 하나하나, 그리고 끝에 찍혀 있는 육평초의 지장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기 그지없는 하나의 각서인 셈이다.

“하, 하루 이자가 백오십 냥?!”

“그렇소이다만? 뭔가 잘못되었소?”

“정말로 이런 것을 형님이 썼다는 말이오?”

“글씨와 지장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소. 분명 육평초 본인이 쓴 것이 확실하오. 그리고 갚지 못하겠다면 대운상단이 대신 갚겠다는 조건도 있소.”

“그런,말도 안 되는…….”

“당시 그가 소상단주였으니,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이오.”

육평우는 한 차례 더 각서를 뚫어지게 살폈다.

날카롭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글자 하나하나를 확인을 하던 그가 무언가를 발견하였는지 두 눈빛을 빛내며 거칠게 각서를 내려놓았다.

“금인지 은인지 쓰여 있지도 않지 않소이까.”

“금 이십만 냥을 빌렸다는 것에 대해선 이곳에 있는 우리 총관이 확증을 할 것이오. 그것으로 부족하다면 사천당가의 ‘금지옥엽’인 당소혜 소저가 증명해 줄 것이오.”

상의도 없이 당소혜를 끌어들이는 것이었지만, 애초에 신유강이 고개를 끄덕이라 한다면, 당소혜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예전에는 반항을 좀 했지만, 지금의 당소혜는 신유강의 앞에서 순한 양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완벽 범죄가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믿을 수 없소.”

그러나 육평우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금 이십만 냥에 하루 이자가 백오 십 냥.

몇 달 전에 작성한 각서이니, 그 금액을 모두 지불하면 대운상단이 무너질지도 모르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나올 것이다.

바드득!

육평우는 이를 갈았다.

어째서 육평초가 모습을 감추었을까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것 때문이었다.

추진하던 일은 실패하였고, 상단을 물려받을 수는 없으니, 이십만 냥이라는 거금을 빌리고, 상단에 떠넘기고 잠적을 한 것이다.

그리 생각을 하면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다.

“그럼 어쩔 수가 없지. 내 이것을 사천당가에 넘기도록 하겠소.”

“!!”

사천당가에 넘긴다는 말에 육평우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당초운은 사리분별은 물론이고, 손익(損益)에 밝은 자다.

저 각서를 삼십만 냥에 사 놓고, 몇 년 혹은 몇 십 년 가까이 묵혀 놓은 다음 대운상단에 받으러 온다면 틀림없이 상단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도, 도대체 얼마를 주면 되겠소…….”

부들부들.

육평우의 안색이 심하게 떨렸다.

그러나 지금 당장 눈앞에 벌어진 일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정말로 대운상단은 이 세상에서 통째로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운상단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자신의 이름으로 새로운 상단을 세우면 그만이다. 각서의 내용은 대운상단이라고 쓰여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사천당가에 통할까?’

순식간에 독을 마시게 될 것이고, 일족 전체가 살해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릴 만큼 두려운 일이다.

“돈이 없다고 한다면 장원은 물론이고, 사람까지 가져가겠소.”

“이보시오. 내가 준다고 하지 않소!”

사람까지 데려가겠다는 말에 육평우의 안색이 더욱 변했다. 한마디로 사람을 데려다 하인이나 시녀로 전락시키겠다는 소리이지 않은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돈을 준다는 말을 내뱉자, 신유강은 기다렸다는 듯 웃음을 머금으며 주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으음, 그럼 어디 계산을 해 봅시다. 이십만 냥에 하루 이자가 백오십 냥, 이게 약 일곱 달 전 일이오. 보름에 계약을 했으니, 여섯 달하고 보름, 금 이십이만구천이백 냥이 나오는구려.”

어마어마한 금액에 육평우와 손약란이 입을 쩍 벌렸다.

‘이십이만구천이백 냥?!’

이십만 냥만 해도 현재의 대운상단 전체가 휘청거릴 정도로 어마어마한데, 거기에 삼만 냥 가까운 금액이 이자로 붙었으니 기겁을 하는 건 당연했다.

“이, 이보게…….”

“나도 사람이니 자잘한 것은 제외해 주겠소. 이십이만구천 냥만 주시오.”

육평우는 신음을 삼켰다.

기실 대운상단은 무림맹과 그리 좋지 않은 관계였다. 그런 상황에서 무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큰돈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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