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
그렇기에 신유강은 도우겸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또한 누구를 가르치는 것 자체를 할 수 없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그게 말이오. 사실 나도 어떻게 이겼는지 도통 모르겠소. 단순히 내 무공이 더 고강해서 그런 것 아니오?”
“뭐, 뭐야?!”
“내가 틀린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소.”
신유강의 말에 도우겸은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억누르려 애를 써야 했다.
조언 한마디 받기 위해, 자존심을 꺾고 어렵사리 찾아온 것이었는데, 돌아온 대답이 고작해야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지금 신유강은 칠제 중 일인이었던 자신의 스승 쌍무검제의 무공이 약하다고 말을 했으니, 도우겸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신유강을 바라봤다.
그러나 신유강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대의 무공은 뭐랄까…… 기교가 없소.”
“이, 이 이 자식이…….”
“나에게 의견을 구하고자 한 것은 당신이지 내가 아니지 않소. 왜 화를 내는 것이오?”
“네놈이 지금 나와 내 스승을 모욕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스승인 쌍무검제에게 모든 것을 하사 받았다. 스승께서도 고개를 끄덕이던 내 검이 뭐가 어쩌고 어째?”
“하하하, 그런 것이었소? 그렇다면 당신의 스승이 보는 눈이 낮은 것이오.”
스르릉!
순간의 발검과 동시에 빛이 번뜩였다.
두 자루의 검을 뽑아 든 도우겸의 검은 빠르게 신유강의 목과 가슴을 노리며 그어졌으나, 그것들은 여지없이 허공을 갈랐다.
신유강은 태연하게 그 자리에서 두 발자국 뒤로 움직였을 뿐이었다.
도우겸은 신음을 삼켰다.
언제 몸을 움직였는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무관이 개관을 시작한 지 이제 갓 일주일이 조금 넘었을 뿐이지만, 도우겸은 지금까지 상당히 많은 후기지수들과 검을 섞어 보았다.
하나 누구를 상대해도 이렇듯 발검에서 허공을 가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신유강을 상대했을 때의 결과는 예전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신유강과 검을 섞을 때마다 느껴지는 이 불쾌한 기분, 상대와의 격차가 확연하게 드러나고, 그것을 깨닫는 역겨운 느낌.
도우겸은 인상을 찌푸리며 검을 거두었다.
“의외로 재미있는 한 수였소.”
신유강은 싱글싱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도우겸은 그것이 몹시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실력으로 누르지 못하는 이상, 어떠한 치욕을 받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생각을 했다.
결국 강호는 강한 자만이 진리였다.
만약 신유강이 처음 도우겸을 만났을 때부터 살심을 머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도우겸은 서 있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늘에서 스승님에게 꾸중이라도 듣고 있었겠지.’
“정말로 나에게 부족한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오?”
“그러니까 나는 그런 걸 잘 모른다고 하지 않았소. 애초에 누굴 가르치거나, 조언을 해 주는 건 잘 못하는 성격이라서…….”
도우겸은 아미를 찌푸리며 변명을 하는 신유강을 바라봤다.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내공에 의존하니 움직임이 더딜 수밖에 없지요. 또한 발놀림도 아직 어색하기 짝이 없고, 발검이 빠르다고는 하나, 첫수가 발검이라는 것을 상대가 알게 된다면, 손쉽게 방어하기 마련이죠.”
진소소였다.
당소혜와 청랑을 이끌고 저자거리에라도 갔다 온 것인지, 양손에 들려 있는 짐이 상당했다. 신유강은 두 눈을 반짝이며 쪼르르 달려가 짐을 들어 주었다.
“내가 내공에 의존을 한다고?”
도우겸 또한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스승에게는 그러한 말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의 검술이 완벽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뜻하지 않은 말이 들려오니 인상을 찌푸리게 된 것이다.
“네. 보법은 물론이며, 손놀림 하나하나, 기수식을 취할 때, 상대를 쳐다보면서도 다음 공격을 예측하기 쉽게 만드는 버릇도 있어요.”
진소소는 조금 전 도우겸의 한 수와 과거 기연객잔에서 보여 주었던 그의 버릇을 토대로 도우겸의 단점을 이야기하였다.
쌍무검제의 검술은 쾌검을 기반으로 한다.
쌍검술인 데다, 그 속도마저 빛과 같으니, 막아 낼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러한 것을 도우겸 또한 알고 있었겠지만, 때문에 더욱 발검술에 목을 매는 듯하다.
하나 그를 상대하는 자가 도우겸의 첫수가 발검술이라는 것을 아는 그 순간, 이미 그에 대한 대처법을 찾아내기 마련이다.
물론 신유강은 그러한 것 따윈 생각도 않고, 그저 피해 낸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불쾌하셨나요?”
“계속해 보시오.”
“아까 말한 것들이 전부예요. 그것만 고친다면 으음…… 유강을 이긴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겠지만, 어느 정도 수준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진소소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쌍무검제가 제자인 도우겸의 약점을 모르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말이 되지 않는다. 다만 쌍무검제는 제가가 스스로 그것을 깨닫고 조금 더 연마를 하고, 조금 더 완벽해지기를 바랬던 것이다.
도우겸은 뚫어지게 진소소를 바라봤다.
기연객잔에서 보았을 때 한 수 재간이 있는 것으로 보이기는 했지만, 신유강 보다는 못해 보여 그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다.
다만, 왠지 모르게 그녀의 조언이 자신의 폐부를 날카롭게 찌르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었다.
“그대가 나에게 조언을 건넬 만한 수준에 이른 것이오?”
“글쎄요? 뭣하면 확인을 해 보시겠어요?”
진소소는 허리 차고 있는 검을 탁 하고 쳤다.
최근 들어 뒤숭숭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었던 탓에, 평소 가지고 다니지 않았던 검을 가지고 다니게 된 것이다.
도우겸은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이며 진소소를 바라봤다. 이윽고 그의 손이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두 자루의 칼날이 매서운 섬광을 뿌리며 진소소의 전신을 노렸다.
명백한 살심이 담겨 있는 일격이다.
피하지 않는다면 필시 몸이 갈가리 찢겨나갈 것 같은 공격이었기에, 당소혜는 물론이며 청랑마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진소소는 태연했다.
그녀는 검을 검집에서 뽑지도 않은 상태로 부드럽게 휘둘렀다.
캉!
도우겸의 검이 튕겨 나가자, 그녀는 곧 일보를 내디뎌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어느새 도우겸의 품속으로 파고든 진소소의 검집은 도우겸의 목을 겨누고 있었으며, 언제 꺼내 들었던 것인지 자그마한 소검 또한 그의 옆구리를 살짝 건드리고 있었다.
실전이었다면 완벽하게 ‘죽은’ 것이다.
“뭐……. 뭐…….”
“말했잖아요. 첫 수가 발검이라는 걸 상대가 알고 있다면, 대처법 따윈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애초에 싸움이란 것은 상대의 수를 읽는 것에서 시작된다. 확실히 도우겸의 실력은 여타 후기지수들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할 수 있으나, 진소소에게까지 통할 만한 실력은 아니다.
또한 몇 번이나 같은 수법을 눈으로 보았고, 첫 수가 발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대처법을 찾는 것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진소소는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채 검을 거두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움직임이 둔해요. 어떤 수련 방식을 해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꾸준히 연마를 한 것 같지는 않네요.”
진소소의 말에 도우겸은 움찔 몸을 떨었다.
확실히 스승에게 모든 것을 하사 받고, 강호로 출두한 뒤부터, 제대로 된 수련을 하지 않았다.
이미 자신이 가진 무위가 출중하다는 생각 때문에 연무를 등한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작 그 때문에 신유강이나 진소소에게 졌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애초에 이 두 사람은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인재들이란 것을 도우겸은 몸소 느끼고 있었다.
“제길! 나 좀 가르쳐 주시오!”
“네?”
“응?”
땅에 깊게 쌍검을 꽂아 넣은 도우겸은 진소소와 신유강을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무인이 자존심을 버려 가며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행동에 놀란 것은 진소소보다 신유강이 더했다. 분명 어디선가 한 번 겪어 보았던 느낌이 확연하게 드는 상황이었다.
‘그렇지.’
잊고 있던 백호영준과 호야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신유강은 미간을 찌푸렸고, 진소소는 웃었다.
“도 소협이 무관에 입관을 한 것으로 아는데, 저희가 무언가를 가르쳐 드릴 필요가 있나요? 더욱이 나이도…….”
도우겸의 나이는 신유강의 비해 다섯 살이나 많다. 서른은 되지 않았으나, 그보다 어린 진소소나 신유강이 그를 가르친다는 것은 남들이 보기에 우스운 일이었다.
“무관은 상관없소. 일주일 동안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배워 보았는데, 나한테는 전혀 맞지 않소. 그리고 나이라면 신경 쓰지 마시오. 가르침을 받는 것에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배웠소.”
그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진소소는 웃음을 지으며 신유강을 바라봤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모두 신유강이 결정을 하라는 듯한 시선이다.
사실 진소소는 도우겸을 받아들였으면 했다. 하북진가이니 무림맹이니, 이것저것 골치 아픈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에서, 전력이 될 만한 이는 받아 두는 것이 상책이기 때문이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신유강이 한숨을 쉬었다.
“장원의 무사로 받아들여 줄 수는 있소.”
“무, 무사?”
무사라는 말에 도우겸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왜 싫소? 생각해 보시오. 가르침을 준다고는 하지만, 당신이 소소를 스승으로 받들 것은 아니지 않소?”
“그, 그렇지.”
“그러니까, 우리 장원의 무사로 지내면서, 간간이 소소나 다른 이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또 타인에게 부족한 것이 보이면 그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것 또한 괜찮은 것 아니겠소?”
지당하기 짝이 없는 말에 도우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표정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듯하다.
어느 장원이나 그곳을 호위하는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말단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슬쩍 검을 회수하자, 한쪽에서 진소소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생각하셨어요. 도 소협께선 사천신가의 첫 무사가 되신 거예요.”
그녀의 말에 도우겸은 더욱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 * *
도우겸을 받아들이기도 결정을 한 이후, 그를 흑영에게 맡긴 신유강은 장원을 나와 다시 저자거리로 향했다. 딱히 무언가 일이 있는 것은 아니나, 따분한 장원보다는 사람들이 가득한 저자거리가 훨씬 마음에 드는 그다.
신유강은 저자거리에서 당과를 사 먹으며 어린아이처럼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무관이 들어서며 사천의 분위기가 한층 더 살아난 탓인지, 주위는 마치 축제라도 벌어진 듯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한쪽에서는 낭인들이 무예를 겨루고 있었고, 다른 한 쪽에서는 도박을 하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보이고 있다.
사천 거리는 그렇게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흡혈광마 때문에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마치 거짓말이엇던 것 같은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무관이 열린 뒤 무림맹에서 상당히 많은 고수들을 파견시켰으니, 예전보다 치안이 더 좋아졌으면 좋아졌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신유강은 그런 평온한 분위기를 만끽하며 걸었다.
그 기이한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말이다.
캉!
거친 쇳소리와 함께 검과 검에서 불꽃이 튀었다.
수 명의 남자들이 누군가를 공격하고 있는 듯하였는데, 신유강이 슬쩍 아미를 찌푸리며 다가서자,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상당히 얻어맞았는지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인이 있었고, 그녀를 지키려는 듯 무인으로 보이는 백색 궁장을 입은 여인이 검을 뽑고 상대와 마주하고 있었다.
차갑기 그지없는 눈동자를 가진 여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