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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신공-114화 (114/200)

# 114

한기가 서린 그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이지만, 실전 경험은 그리 많지 않은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억지로 검을 부여잡고 있었다.

신유강이 인상을 찌푸리며 시선을 돌리자, 그녀를 상대하고 있는 남자들이 보였다. 꽤 낯익은 인상들, 대운상단에 소속된 낭인들이었다.

낭인이기는 하나, 대운상단의 호위를 하고 있을 정도로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다.

그들은 눈앞에 있는 여인이 무공은 고강하나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이죽이죽 거리며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신유강은 더욱 미간을 좁혔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며 그것을 구경하고 있으나 누구도 나서는 이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일은 대운상단에 행사다.

함부로 나섰다간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알게 뭔가.

“이봐, 계집. 손이 떨리고 있는 게 다 보인다. 하하하.”

“얌전히 물러간다면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지. 옆에 있는 계집을 내놓고 네 갈길을 가거라.”

낭인들은 제법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 했다.

아무리 고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경험이 일천하다면, 다수가 이길 수밖에 없는 것이 이 험난한 강호다.

더욱이 그 다수는 실전 경험마저 풍부하다.

결코 여인이 이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건장한 남정네들께서 여인 한 명을 겁박하려 하다니 창피하지도 않으신가요?”

“겁박? 웃기는 소리. 그년은 우리 상단주님과 혼인을 약속한 사이다. 그런데 상단주님의 얼굴에 상처를 내어 놓고 도망을 쳤으니, 응당 그 죗값을 치르는 게 맞지 않은가?”

“……재미있는 소리로군요.”

하아, 하며 짧게 한숨을 내쉰 여인은 더욱 거세게 검을 고쳐 잡았다.

그녀의 옆에는 아직까지도 손찌검을 당한 공포가 남아 있는 듯, 손약란이 그 가녀린 어깨를 파르르 떨고 있었다.

여인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손약란을 지키려 마음 먹은 듯, 앙칼지게 이를 물며 정면을 바라봤다.

그녀의 검에 차가운 한기가 서렸다.

음한지공(陰寒之功).

흔히 북해의 무인들이 사용하는 그 힘을 알아본 낭인들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지금 이 사천 바닥에서 음한지공을 사용할 만한 여인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북해빙궁에서 온 유소란.

새외의 세력이라고는 하나, 무림맹과 나쁜 관계가 아닌 북해빙궁이 무관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입관을 시킬 여제자 한 명을 뽑아 보냈다.

그 사람이 유소란이었다.

빙궁의 막내 제자로, 전체적인 무위는 뛰어나지 않으나, 음한지공만큼은 제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말을 듣는 여인이었다.

그러나 낭인들은 곧 신색을 고치며 검을 바로 쥐었다.

확실히 전신이 얼어붙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독한 한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갑작스레 강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당장이라도 검을 휘두를 기세였다.

일촉즉발(一觸卽發)에 상황.

그러나 뜻하지 않게 그 분위기를 누그러트린 것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눈을 굴리고 있던 손약란의 행동이었다.

그녀는 신유강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마치 구원자를 발견했다는 듯 큰 소리를 치며 이름을 불렀다.

“시, 신유강!”

“응?”

으적으적 당과를 씹어먹으며 상황을 구경하고 있었던 신유강은 쓰러져 있던 여인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며칠 전, 육평우가 그녀를 데리고 장원으로 찾아왔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그러나 이렇게 함부로 사람의 이름을 부를 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한지라, 신유강은 그저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도…… 도와줘…….”

“하아? 나를 아시오?”

신유강의 한마디에 손약란의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그와 재회를 했을 때 통성명조차 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린 것이다.

손약란은 이미 그가 신유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애초부터 손약란에게 관심이 없었던 신유강은 그녀의 정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손약란은 힘겹게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에 씁쓸함을 느낀 것이다.

지난번에는 육평우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그러려니 하였지만,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유강은 손약란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다.

“나야, 나 약란이라고!”

약란이라는 말에 신유강은 입안에 가득한 당과를 씹지도 못한 채 멍하니 바라봤다.

주위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신유강을 향해 쏟아졌다.

당장 검을 휘두를 것 같았던 여인과 육평우의 호위들마저, 갑작스런 권룡의 등장에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더욱이 권룡과 손약란이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자칫 잘못하다간 육평우가 권룡의 손에 아작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아니나 다를까, 천천히 손약란을 향해 다가선 신유강이 마치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가만히 그녀를 얼굴을 살펴보고 있었다.

신유강은 일전에 육평우와 함께 온 손약락을 보았을 때부터, 어딘가 낯이 익은 얼굴이라 생각을 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러나 칠 년이나 된 일인 데다, 워낙 성숙하게 변한 모습에 그녀가 과거의 손약란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신유강은 살짝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네가 왜 여기에 있냐?”

“그게…….”

“응? 얼굴은 또 왜 그러고?”

신유강이 그 상황을 모를 리가 없다.

이미 유소란과 무사들 사이에서 오가는 말을 들었으니, 벌겋게 달아오른 손약란의 얼굴이 무엇 때문인지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육평우의 호위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손약란의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조마조마한 것이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신유강이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인지, 손약란은 고개를 저으며 벌겋게 달아오른 뺨을 손으로 가렸다.

그때 유소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사람들이 이 여인을 겁박했어요.”

뜬금없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신유강은 고개를 돌려 유소란을 바라봤다. 그녀는 마치 꿈에 그리던 님을 만났다는 듯,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신유강에게 바짝 다가와 있었다.

짜릿한 그녀의 향기에 현기증이 다 날 지경이었다.

“그…… 그렇군.”

“권룡 신 대협이시죠?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적호대주를 이겼다는 말에 정말로 꼭 한번 뵙고 싶었어요. 앗!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북해빙궁의 소…… 아니, 유소란이라고 해요. 잘 부탁해요, 신 대협!”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잘못된 일을 이르고 칭찬을 바라는 듯한 행동이었다. 또한 신유강이 등장한 이후부터 그녀의 관심은 무사들이 아니라 오로지 신유강을 향해 있었다.

무관에서는 빙설화(氷雪花)라는 별호로 불리고 있는 그녀인 데다, 타인들과 그 어떤 접점조차 갖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신유강에게는 사족을 못쓰는 것 같아 보인다.

신유강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발 물러섰다.

‘이 느낌…….’

좋지 않았다.

이래 봬도 신유강은 사천에 살고 있는 여인들과 상당한 접점이 있다. 굳이 진소소나 당소혜뿐 아니라, 기녀들은 물론이며, 객잔 단골들의 여식들까지 잘 안다.

그런데 이러한 유형의 여인은 처음이다.

외간 남자에게 서슴없이 다가오는 것은 물론이며, 거리낌없이 대화를 한다. 더욱이 눈빛이 초롱초롱하여 마치 자신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듯하니, 신유강은 그녀가 더더욱 껄끄럽기 그지없었다.

신유강은 마른침을 삼키며 다급하게 손약란의 손을 잡았다.

“수, 수고하시오.”

“앗, 신 대협?!”

뒤에서 유소란의 외침이 들려오고 있었으나, 도망치는 신유강의 발걸음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 * *

“하아…….”

“후우…….”

유소란을 피해 신유강이 몸을 숨긴 곳은 다루(茶樓)였다. 기연객잔만큼은 아니지만 이곳도 상당히 유명한 곳으로, 신유강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사업체 중 한 곳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무수히 많은 여인들이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한때 홍등가에서 몸을 팔던 여인들이었는데, 제법 다도(茶道)를 능숙하게 해내기에 고용한 것이었다.

당연히 사내들에게 인기도 좋았다.

어쨌든 신유강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심스럽게 이 층으로 올라갔고, 꽤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자, 오랜만에 온 신유강을 반기던 여인들이 웃음을 지으며 차와 다과를 가져다주었다.

신유강은 한 모금 차를 마시며 힐끗 손약란을 바라봤다. 정말이지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스쳐 지나간다면, 틀림없이 알아보지 못할 만큼 손약란은 성장해 있었다.

그렇기에 지난번 보았을 때 전혀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고.

신유강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언제 온 거냐?”

“며, 며칠 됐어.”

“흐음…… 왔으면 왔다고 말을 해야지. 전혀 못 알아봤잖아.”

신유강의 말에 손약란은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지난번 육평우와 함께 신유강을 만났을 당시, 손약란은 그가 자신이 알고 있던 신유강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사천제일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거부.

천하백대고수라 불리는 권룡.

그녀는 이 어마어마한 명성을 가진 신유강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황송할 지경이었다.

대운상단의 안주인이니 뭐니 해도, 결국 이러한 처지에 불과한 그녀가 어디 함부로 말을 섞을 수 있겠는가.

“하, 하지만 굉장히 놀랬어. 설마 네가 이렇게 성공을 할 거라곤…….”

“하하, 나도 가끔 꿈은 아닌가 싶다. 내가 이렇게까지 성공할 거라곤 한 번도 생각지 못했으니 말이다.”

물론 이 성공에는 진소소의 노력이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만약 신유강이 혼자였다면, 틀림없이 이 정도까지 올라서지 못했을 것이다.

신유강은 진소소의 생각이 나자,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으며 차를 들이켰다. 그 모습은 정말이지 보는 이의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어 주는 미소였다.

손약란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숨을 골랐다.

“그래, 손 대인은 잘 계시지?”

“으응, 아버지야 뭐…… 예나 지금이나 똑같으시지. 가끔 너를 보고 싶다고 하시던데. 혹시 이번 사천행에서 네가 아직도 점소이를 하고 있으면, 꼭 하남으로 데리고 오라고도 하셨고…….”

그 말에 신유강은 인상을 찌푸렸다.

손금운의 밑에서 일을 할 당시, 좋은 기억이 없었던 탓이다.

녹봉도 녹봉이지만, 사람을 괴롭히는 것에 맛이 들린 손금운의 행동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손약란은 갑작스레 인상을 찌푸리는 신유강의 모습에 목을 움츠리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어렸을 때에는 잘 몰랐으나,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손금운이 신유강을 꽤 괴롭혔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 농담이야.”

“당연히 그래야지.”

신유강은 기분 나쁘다는 듯 말을 내뱉으며 차를 들이켰다. 그것을 끝으로 둘 사이에는 기나긴 정적이 일었다.

아직도 맞은 곳이 상당히 아픈지, 손약란은 한쪽 뺨을 계속 만지작거렸고, 그 모습을 본 신유강은 조금 전 그 상황을 떠올리며 더욱 불쾌한 듯 인상을 썼다.

“대운상단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지?”

“할아버님과 인연이 있었어. 덕분에 몇 년 전부터 간간이 만나기도 했고…… 그리고 지금은 육평우와 혼인을 앞두고 있지.”

신유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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