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121화 (121/200)

# 121

기실 세상에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진자명은 뒤에서 일을 꾸미며 온갖 악행을 저지른 적이 상당히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비에게 얻어맞은 기억이 한 번도 없었다.

힘이 있으면 응당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도, 그의 아버지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북진가는 힘이 있고, 당한 이들은 힘이 없다.

약육강식(弱肉强食).

무림의 근간을 이루는 그것을 하북진가는 철저하게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을 천하제일세가로 만든 원동력이기도 했다.

친혈육이라 하더라도 힘이 없으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가장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진자명이 소가주의 자리를 확고하게 다진 것이다.

“……죄송합니다.”

“오면서 많은 소문을 들었다. 골육상잔(骨肉相殘)이 일어나고 있다고 모두 혀를 차더구나.”

진명은 아미를 좁히며 말했다.

명문세가나 십대상단 정도라면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여태까지 하북진가는 한 번도 그러한 소문이 돌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확실하게 뒤처리를 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자명은 어이없게 자신의 꼬리를 밟혔고, 결국 그 소문이 중원 전역에 퍼지며 하북진가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

진명은 그것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소소를 죽이고 싶더냐?”

“정말로 소소인지 아닌지 모르지 않습니까.”

“제갈 총사가 이미 확인했다고 들었다.”

“이름과 얼굴이 비슷하다고 꼭 같은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직접 그녀에게 오라버니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진자명은 애써 그것을 입에 담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진소소를 자신의 동생이라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명은 아미를 찌푸렸다.

기천검이라는 별호를 얻으면서 승승장구를 했던 아들의 의젓한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아들은 패배자였다.

기연고서점에서 벌어진 진소소와의 대결, 그리고 권룡이라 불리는 이에게 얻은 맞은 일, 그 모든 것을 들었던 진명은 쯧쯧 혀를 차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본가에 있었을 때에는 아들만큼 대단한 후기지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을 하였는데, 지금 보니 다른 세가의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다.

“내 직접 확인할 것이다. 가서 제갈 총사를 불러 오고,네놈도 갈 채비를 해라.”

“아, 알겠습니다.”

진자명은 무언가 할 말이 더 있는 듯하였지만, 진명은 더 이상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손을 휘휘 저었다. 어서 가서 말한 대로 행하라는 것일 터였다.

진자명은 아득 이를 갈았다.

그러나 반항을 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아버지가 얼마나 두려운 사람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 *

파파팍!

신유강은 거친 소리를 내며 연신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일말의 내공조차 쓰지 않는 가벼운 수련이긴 하지만, 그 상대를 하고 있는 이가 율초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공을 끌어 올린 상태에서 율초언은 신유강의 상대가 전혀 되지 못한다.

그러나 단순한 육탄전이라면 율초언을 공격을 피한다는 것을 무척 힘든 일이다.

물론 과거의 비해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율초언이 열 번을 휘두르면 열 번 모두 얻어맞았던 신유강은, 어느새 그중 네 번은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는 것이다.

사람은 성장한다.

그리고 그 성장하는 폭 역시 사람마다 확연하게 다르다.

진소소는 물론이며 당소혜, 그리고 흑영과 흑호, 도우겸마저 그 광경을 구경하면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신유강이 무공의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굳이 회귀신공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선선운현무 하나만으로도 능히 후기지수들 으뜸이라 불리는 진자명을 때려눕힐 수 있을 것이다.

“괴물이로군.”

지금까지 신유강을 보아 왔던 흑영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그만큼 신유강이 발전하는 속도는 엄청났기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약 보름이다.

손약란이 떠나고 보름 동안, 사마강은 조금 더 강도를 높여 신유강을 훈련시켰다.

신유강은 그것을 쉽게 따라가고 있었다.

마치 하루에 한 번씩 성장을 하는 기분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하다.

파파파팟!

율초언과 신유강의 손이 서로 교차했다.

선선운현무를 사용하고 있는 신유강, 그러나 그 부드러움은 이미 다른 곳에 팔아 버렸는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좋군.”

사마강이 만족스럽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신유강에겐 부드러움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한 것보다는 힘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것이 그의 적성에 맞다.

하여, 사마강은 선선운현무를 뜯어 고쳤고, 신유강은 지금 그것을 익히고 있었다.

퍽퍽!

“큭!”

팽팽하기 짝이 없었던 공방은 신유강의 방어가 무너지며 끝이 났다.

율초언의 그의 복부와 가슴을 연타하고는, 그대로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은 것이다.

내공을 쓰지는 않았지만, 내공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느낌의 수련이니, 이 정도 일격을 허용했다면 응당 율초언의 승리였다.

“좋은 승부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하군.”

율초언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지난번, 당가의 뒷산에서 졌던 기억은 이미 떨쳐 버린 지 오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공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이긴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첫날 수련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율초언은 속이 시원할 만큼 신유강을 두들겨 팼다.

이제는 패는 것도 지긋지긋할 정도다.

다만 상당히 어이없는 일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아무리 때려도 신유강의 얼굴은 물론, 몸에 상처하나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율초언은 그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빌어먹을…….”

“어제보다 더 괜찮아졌다. 앞으로도 계속 그런 수준이라면, 얼마 되지 않아 나를 따라잡을 수도 있겠군.”

말은 그렇게 하나 율초언의 입가에는 함박웃음이 걸려 있었다.

신유강에게 지는 것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렇게 많이 이겼고, 또한 그가 이를 갈 만큼 때려 주었으니, 한 번쯤은 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순간부터 두 번 다시 대련을 하지 않을 테니, 율초언의 입장에선 손해가 나는 일은 결코 아니다.

율초언의 얼굴을 본 신유강은 더욱 미간을 좁혔다. 율초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나, 괜스레 기분이 나빴던 탓이다.

“오늘은 이만 되었다. 다들 물러가도록.”

이윽고 현 장원의 실세라 할 수 있는 사마강의 입이 열리자, 사람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당소혜나 도우겸은 사마강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안다.

바로 명문세가의 가주나 혹은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조차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고수라는 점이다.

그런 이에게 수련을 받는 신유강이 내심 부러웠다.

반대로 신유강의 입장에선 불만이 가득했다.

신강에서부터 이곳 사천까지 찾아와 한다는 것이 고작해야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신유강은 당최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그렇다고 이 수련을 내팽개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마강의 눈빛이 너무 매서웠기 때문이다.

“불만스런 표정이군.”

신유강이 숨을 고르며 불만스런 표정을 짓고 있자, 사마강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애초에 이런 수련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네놈은 약하다. 그것을 모르느냐?”

“이런 식이 아니라면 절대 지지 않습니다.”

“그거야 그렇겠지. 현선자가 만들어 낸 무공을 익히고 있는 네놈의 적수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느냐만…….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

형형하게 안광을 빛내며 말을 하자 신유강은 침을 삼켰다.

마치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더욱 높은 경지에 이르게 하려는 심산 같아 보였으나, 지금 사마강의 눈빛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

그는 직접 자신의 호적수를 키우려 하고 있었다.

지난번 무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와 같은 눈빛으로 신유강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네놈이 조금이라도 더 강했더라면 흡혈광마인지 뭔지 하는 녀석을 놓치지 않았을 것 아니냐?”

그 말에 신유강은 아미를 찌푸렸다.

흡혈광마를 놓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애초에 적호대가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그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신유강의 눈빛이 매섭게 율초언을 향해 돌아가자, 그가 헛기침을 하며 슬쩍 눈을 피했다.

“지금 이 상황만 해도 보아라. 네놈은 하북진가를 적으로 돌렸어. 곧 찾아오겠지. 어디 그뿐이더냐? 제갈세가, 그리고 무림맹주까지 무시를 했으니 응당 네놈을 고깝게 볼 것이 분명하지.”

“그거야…….”

사마강의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어쨌든 그가 무림맹주를 엿 먹인 것은 사실이다. 성격 더러운 것으로 유명한 맹주이니, 신유강에게 어떠한 보복을 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당금의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하북진가, 제갈세가.

제갈가후나 제갈연과는 어느 정도 친분이 있다고는 하지만, 세가의 전체 의견이나 다름없는 제갈백헌과의 사이는 틀어질 대로 틀어졌다.

모두가 인정하는 천하제일세가(天下第一世家)와 천하제일뇌(天下第一腦)를 적으로 돌린 셈이다.

신유강은 끄응 하며 신음을 심켰다.

어째 일이 점점 커져 가는 기분이 드는 것은 착각인가?

“네놈이 얼마나 무능력하면, 소소라는 아이가 골목에서 혼자 질질 짜고 있겠느냐?”

“……무슨 소리입니까?”

처음듣는 말에 신유강은 표정을 굳혔다.

소소가 울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신유강은 진소소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사마강의 입에서 나온 소리를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신유강의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내가 이 장원에 처음 찾아온 날 말이다. 그 아이, 골목에서 울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오열을 했지. 어찌나 서러워 보이던지 노부의 마음이 다 짠해질 정도였다.”

사마강은 쯧쯧 혀를 차며 신유강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표정에 한껏 여유가 넘쳤던 신유강의 얼굴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사마강은 지금까지 신유강을 자세히 살펴 왔다.

고작 며칠뿐이 되지 않으나 어느 정도 파악을 한 것이다. 신유강은 사람들이 흔히 부르는 대협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헤픈 성격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더욱이 그의 마음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진소소에 관해서는 특히 더 심했다.

지금의 신유강을 있게 만들어 준 여인이나, 반대로 약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만약 그녀가 무너지면 신유강 또한 무너질 것이다.

마치 둘이면서 하나인 존재.

그것이 사마강이 판단한 신유강과 진소소의 모습이다.

“왜……?”

신유강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는지, 의문을 토해 내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진소소가 요즘 장원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의 원인이 본인이라 생각을 한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신유강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그때, 조금 전 사라졌던 흑호가 허둥지둥 달려왔다.

“유강아! 하북진가에서 사람이 왔다!”

흑호의 말에 신유강은 번뜩 정신이 드는 것을 느꼈다. 진소소가 무관에 찾아간 뒤부터 한동안 조용하기 짝이 없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하북진가에서 사람이 왔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진소소의 아버지, 즉 진가의 가주가 왔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신유강은 아미를 좁히며 표정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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