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신유강의 목소리는 싸늘하기 그지없다.

언제나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던 진명의 표정이 구겨질 정도이니, 그의 말투가 얼마만큼 날카로운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진명은 가늘게 눈을 뜨며 검을 들었다.

카캉!

뻗어진 주먹을 검을 막는 것과 동시에, 내공이 역류하는 것을 느꼈다. 참으로 기이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인상을 찌푸리고, 다시 한 번 매섭게 검을 휘둘렀다.

피할 곳조차 허용치 않고 휘둘러지는 그의 검은 정말 기겁을 할 만큼 아름다운 형태를 그리고 있었다.

천하제일세가의 검술에 걸맞게 무척 화려하고 우아했으며, 완벽하게 상대를 죽이는 살검(殺劍)이었다.

검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신유강의 몸에 상처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명은 이 묘한 기분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검날이 스칠 때마다 내공이 역류해 온다…….’

이 무슨 기이한 사술이란 말인가.

검에 맺힌 검강이 희미하게 빛을 발한다.

정신없이 검에 상처를 입고 있는 신유강의 몸에 날이 닿을 때마다 내공이 되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으니, 완벽한 검강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진명은 아미를 찌푸리며 계속해서 내공을 불어넣었다.

펑펑펑펑!

한 걸음 뒤로 훌쩍 물러선 진명의 검에서 매서운 검탄이 쏘아져 나갔다.

몸을 꿰뚫기만 한다면, 손바닥만 한 구멍이 날 것이 자명한 위력적인 검탄이었다.

신유강은 그것들을 피해 내며 연신 발을 놀렸다.

선선운현무의 움직임을 이용해 지금까지 잘 피해 내고 있었지만, 끊임없이 내공을 쏟아붓는 통에 오래 버티지는 못할 듯하다.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공격뿐이었다.

와르르르!

그 순간 객방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시야를 가렸다. 자욱한 흙먼지가 튀어 오르고 신유강의 앞을 완벽히 가린 그 찰나,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매서운 검기 수십 개가 쏟아져 왔다.

서거걱!

“크으윽!”

신유강은 신음을 삼키며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기척을 감지하는 것이 떨어졌기에 이런 어이없는 수법에 당한 것이다.

스윽!

신유강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진명의 뒤를 잡았다.

“……재미있는 짓을 하는군.”

진명은 이형환위와 비슷하나 같지 않은 그의 신법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신유강과 겨루면서 깨달은 것은 오로지 하나다.

“대단하기는 하나, 기척을 느끼지 못해서야 허수아비나 다름이 없지.”

스으윽!

신법이 뛰어난 것은 진명 또한 마찬가지다.

뒤에 나타난 신유강의 기척을 느끼며,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동시에 푸른 검강이 빛을 뿜자, 신유강은 기겁을 하며 몸을 뒹굴었다.

쾅!

뻗어져 나간 검강의 힘은 그대로 다른 건물을 갈라 버렸다. 그때, 몸을 뒹군 신유강이 반격을 하기 위해 주먹을 뻗자, 매서운 파공성과 함께 여섯 개나 되는 권력이 뿜어졌다.

펑펑펑!

거대한 지축이 울리며 땅이 흔들린다.

가까스로 그것을 피해 내기는 했지만, 충격의 범위 안에서 완벽히 벗어나지는 못하였는지, 진명의 입가에 주륵 피가 흘러내렸다.

수차례 공방 끝에 진명은 꽤 진을 뺐는지 거친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반면, 신유강은 여전히 태연하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진명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천하십대고수 중 한 명인 진명을 상대로, 숨소리가 거칠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아직까지 여유를 부리고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놈! 감히!”

진명은 매서운 일갈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신유강이 자신을 가지고 논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반면 신유강은 인상을 썼다.

이번 격돌로 회귀신공의 힘이 아무리 대단해도 천하십대고수쯤 되면 충분히 대항책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공을 사용하는 대결에서 신유강은 이토록 오랫동안 손을 섞은 적이 없었다. 길어야 다섯 합 정도, 적으면 한 수에도 상대를 제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명은 여태 상대했던 자들과는 수준이 확연하게 다르다.

역류하는 내공을 자연스레 다스리며 다시 뿜는다.

그는 확실하게 신유강을 압박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천하십대고수의 힘?’

신유강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을 냈다.

심장이 터질 듯 크게 두근거렸다. 율초언과 싸울 때조차 느끼지 못했던 호승심이 치솟아 올랐다.

‘시험해 볼까?’

신유강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주먹을 쥐었다.

조금 전까지 피어오르던 부드러운 기세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그가 꿈속에서 보았던 회천공을 떠올리는 것과 동시에, 몸 안에 흐르는 회귀신공의 기운들이 맹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선운현무를 사용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

그의 주먹에는 보이지 않는 기세들이 맹렬하게 소용돌이를 치고 있었다. 무엇이든 닿기만 한다면 갈가리 찢어 버릴 것 같은 어마어마한 기세.

그러나 그것을 느끼고 있는 이는 오로지 신유강 하나뿐이었다.

“그만하세요!”

신유강의 주먹과 진명의 검이 서로 부딪치려 할 때, 둘 사이를 강맹한 기운이 매섭게 스치고 지나갔다.

신유강과 진명은 빠르게 내력을 회수하며 훌쩍 뒤로 물러섰다. 만약 움직이는 것이 조금만 더 늦었다면, 틀림없이 머리에 구멍이 났을 것이다.

진명은 숨을 고르며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한 중년인과 묘령(妙齡)의 여인이 있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몸을 굳힌 채 움직이지 못했다. 과거 제 어미를 빼다 박은 듯한 아름답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마치 죽은 그녀가 다시 환생하여 서 있는 느낌이다.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부르려 했던 진명은 굳게 입을 다물며 시선을 돌렸다.

진소소의 눈빛에는 맹렬한 적의(敵意)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짓이죠?”

사마강과 함께 있는 진소소는 주위를 둘러보며 아미를 찌푸렸다.

객방이었던 건물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고, 주변은 그야말로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난 듯한 모습이다.

사람의 힘으로 이런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 정녕 믿어지지 않았다.

“이게 무슨 짓이냐고 물었어요.”

진소소는 단호하기 짝이 없는 투로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러나 신유강은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시선을 돌릴 뿐이었고, 진명 또한 마음이 어지러운 탓에 아무런 대답도 못하였다.

그것이 더욱 진소소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하북진가의 가주라는 분께서, 남의 집을 때려 부수고,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후학에게 살초까지 쓰다니…… 참으로 잘 나셨군요.”

진소소의 날카로운 말투에 진명은 할 말을 잃었다.

잠시 잠깐 이성을 잃었다.

그녀의 유일한 혈육이, 자신의 유일한 딸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얼굴을 보려 하였지만 단칼에 거절을 하는 신유강에게 살심이 일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훈계(訓戒)를 할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한데 어린놈이 자신의 공격을 맞받아치자, 무인의 호승심이 들끓어 이성을 잃었다.

진소소의 말대로 나이와 위치를 생각하면 창피한 일이었다.

“돌아가세요. 당신들이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어 보이는군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냐? 아니면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냐?”

결국 고심 끝에 진명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전히 차갑기 그지없는 딸의 눈빛을 마주하며, 어려운 말을 꺼낸 것이다. 때문인가? 진소소가 몸을 움츠리며 가늘게 몸을 떨었으나, 이내 주먹을 불끈 쥐며 정면으로 진명을 바라봤다.

“이제 그만하세요. 제가 집을 나온 순간, 저와 하북진가의 인연은 끝이 난 겁니다.”

“……정녕 그리 생각하느냐?”

“물론이에요. 제가 진소소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은, 단순히 어머니가 지어 주셨기 때문이에요.”

진명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어린 시절, 진자명을 비롯한 다른 형제들에게 심하다 말을 할 정도로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을 그가 모를 리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외면했다.

마음 같아서야 어르고 달래며, 그녀의 마음을 보듬어 주고 싶었지만, 진명은 그리하지 못했다. 왜? 라는 질문은 우문(愚問)이다.

그 역시 비슷한 시기를 겪었고, 그것을 이겨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어린 진소소는 그러한 것을 참지 못해, 세가를 뛰쳐나갔다.

그제야 사방으로 정보를 모으며 그녀를 찾으려 했으나, 마치 세상에서 사라진 듯 아무런 소득이 없었기에 반쯤 포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갈백헌에게 진소소를 발견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뻤던가? 하북에서 이곳까지 밤잠을 설쳐 가며 달려왔다.

그런데 딸아이는 자신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마음이 아픈 듯, 진명의 눈빛에는 씁쓸함이 감돌았다.

“너는 하북진가의 직계다. 그것을 거부한다는 것이냐?”

천하명문 하북진가의 직계라는 것은, 세상의 부와 명예를 얻은 채 태어났다는 소리와 같다.

때문에 그러한 물음을 던졌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결코 변하지 않다.

“그따위 것 개나 줘 버리세요.”

진소소의 한마디에 당소혜는 눈을 크게 떴다.

곳곳에서 놀란 신음이 들려왔다.

지금 진소소의 말은, 하북진가의 명예와 부를 따위라 칭한 것이다.

“이년!”

진자명이 검을 뽑아 들며 나섰다.

어찌나 빠르게 발검을 하며 쏘아 오는지, 다른 누가 보더라도 충분히 절정에 이른 검술이었다.

그러나 진자명의 검은 진소소에게 닿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진명의 곁에 있던 신유강이 어느새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마침 손을 쓰려 했던 사마강은 물론, 그 상황을 지켜보며 얼굴을 찌푸리던 진명마저 놀라워할 만큼 대단한 신법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신유강이 사용한 것은 신법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 자식!”

진자명은 눈을 부릅뜨며 신유강을 바라봤다. 조금 전 신유강이 제 아비와 손을 섞으면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 못한 모양이다.

극성의 내력을 끌어 올린 진자명의 검이 매섭게 휘둘러졌다.

그 순간 신유강이 슬쩍 손을 뻗었다.

검은 아직까지 그의 몸에 닿지 않았다. 그러나 기이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진자명의 검에 모인 기운들이 역류를 하며 맹렬하게 되돌아가기 시작하더니, 동시에 신유강의 손끝에서 묘한 기운이 소용돌이를 쳤다.

쩌저저정!

검이 휘었다.

그러나 과거 신유강이 사용했던 기술과는 그 격이 달랐다. 진자명의 검이 쩌적! 소리를 내며 부서져 나가기 시작하였고, 그 균열은 검날과 검신을 산산조각 내 버렸다.

신유강의 힘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검을 부쉈음에도 기세를 잃지 않고 뻗어 나간 그것들은 그대로 진자명의 전신을 갈가리 찢어발길 듯 전진했다.

퍼걱!

그 순간,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완벽하게 진자명은 신유강의 손에 죽었어야 할 상황이었는데, 돌연 뒤에서부터 날아온 기이한 힘이 진자명을 쳐 냈던 것이다.

와장창!

“커억!”

단순한 지풍에 지나지 않은 그것은 진자명의 몸을 멀리 날렸으며, 그의 몸을 당소혜의 거처 창문을 부수게 했고, 그 안에 처박아 버렸다.

족히 사 장 이상은 날아간 느낌이다.

신유강은 힐끗 사마강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진명은 조금 전 그 한 수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사마강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신유강과 격돌하기 직전에 저러한 힘이 날아온 것을 상기한 것이다.

“애들 싸움에 나서는 것은 취미가 아니다만, 그렇고 아비 앞에서 아들을 죽이는 몰상식한 짓은 하지 마라.”

사마강의 말에 신유강은 고까운 표정이다.

그러나 반항하진 않았다.